차는 찌그러지고, 건물은 모두 나앉았다.
폐허가 되어 버린 서울.
반쯤 부서져 기울어진 가로등만이.
둘을 은은히 비출 뿐이다.
 
“예상외였습니다”.
 
“닥쳐.”
 
애써 들숨과 날숨을 내쉰다.
공기가 무겁다. 아마 폐를 찔렸겠지.
몸 구석구석이 아리고 쑤신다.
 
멈추지마. 조금만 더 하면 돼.
 
“그녀가 사이드킥을 하나 구했다길래, 후대 육성이라도 하나 생각했는데.”
 
서울을 이 지경으로 만든 장본인이
눈앞에 있으니.
 
“이런 괴물을 숨겨 놓다니.”
 
최악, 최강의 빌런.
 
“방해 요소는 전부 파악했다 생각했는데 이거 원, 히어로 협회의 정보는 믿을게 못되는군요. 다만.”
 
“언터처블”
 
그리 불리는 남자는 이미 사지가 날아가 바닥에 처박혀 있음에도, 웃음기를 지우지 않았다.
 
“당신 같은 괴물이 싹을 틔울 수 없다는 사실이 저에겐 더할 나위없이 기쁘게 다가옵니다.”
 
인정하긴 싫지만, 저 새끼의 말이 맞다.
마나를 끌어올렸으나, 찢어지는 통증이 느껴졌다.
 
…코어가 부서져 버렸다.
한계의 한계를 넘어, 부서질 때까지 혹사시켰다.
모든 걸 쏟지 않으면 이길 수 없는 상대니까.
 
“빌런에게도 너 같은 괴물이 태어나리란 보장은 없어, 곧 뒈질 테니까 보지도 못하겠군.”
 
삐거덕거리는 주먹을 피가 날 정도로 쥐었다.
 
“그들을 믿습니다. 언젠간, 멋지게 제 길을 따라 걸어오리라 믿고 있습니다.”
 
“교주를 잃은 광신도 집단이 제 기능을 하리라 믿나?”
 
고개를 젓는 남자.
 
“저는 교주도 뭣도 아닙니다. 그저 일깨워 줬을 뿐. 빌런을 일으키는 것은 오로지 신념뿐입니다.”
 
“빌런 따위가 신념을 논하지 마라.”

테러를 일으키고, 사람을 죽이는 새끼들이 신념? 기가 차서.
 
“히어로와 빌런은 뭐랄까...마치 반으로 접은 종이 같달까요.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겁니다. ”
 
 
“선을 넘느냐, 안 넘느냐의 차이, 신기하게도 그 둘은 선을 철저히 지킵니다.
크게 다르진 않지만, 달라질 수는 없다는 거죠.
그럼 당신은 어디에 있을까요?”
 
“……”
 
“아무 데도 없습니다. 히어로도 빌런도 아닌 회색분자. 단 한 방울만 떨어뜨리면 변할 수 있는 도화지.”
 
닥쳐, 더 이상 말하지 마.
 
“사이드킥을 선택한 이유도 그렇겠지요? 빛을 동경하지만 그렇게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
 
개 같은 혓바닥으로 나를 흔들지 마.
 
“정말 아쉽습니다. 당신이란 존재를 일찍 만났었다면, 제 곁을 걷는 유일한 친우가 됐을 텐데요.”
 
절대 그럴 일 없어.
스스로 되뇌이며 천천히 팔을 들어 올렸다.
머리를 겨냥해서. 과녁을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즐거웠습니다. 로버스트.”
 
뻗어낸 주먹이 낸 격발음이, 폐허가 된 건물 사이에서 메아리친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새벽은, 한 사이드킥에 의해 막을 내리게 되었다.
 
마냥 기쁘게 다가오진 않았다.
한 명의 영웅을 잃었다는 거니까.
 
이를 되새기듯, 그가 밀어낸 새벽에
여명이 올라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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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히어로란 뭘까?

행복과 희망 주는 존재라 요약할 수 있겠다.
그런 의미에서, 가정의 부모님들은 각 가정의 히어로인 셈이다.
 
허나 히어로는 모두의 아버지, 어머니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영웅!! 소드 마스터를 만나다.】


그렇기에 듣는 이들의 감정을 톡톡 건드릴 만한 말을 준비해야 한다.따로 수첩에 적거나 강연을 듣는 히어로들도 있다.
 
-안녕하십니까! ㅇㅇㅇ기자입니다!
 
요약하자면, 이 업계는 뻔뻔함이 꽤 많이 중요하다.
 
여러분들이 주시는 관심과 응원이, 저를 지키는 방패가 되고 검이 됩니다.
 
하지만 10년차 히어로란 이미지를 한 꺼풀 벗겨낸, 인간 한수진으로선 감당하기 꽤 벅찬 일이었다.
 
아무리 어둠이 짙어도, 정의를 향한 제 신념의 빛은 꺼지지 않을 겁니다.
 
“내가 미쳤지 미쳤어..!!”
 
기자의 질문에 대답하는 자신을 보니, 얼굴이 달아오른다.
 
보도국장의 머리가 딱따구리처럼 바닥을 때리길래 어쩔 수 없이 수락했더니.
 
-그냥 걷어차 버릴걸 그랬어.
 
후회하기엔 늦었다, 이미 자기 팬카페에 클립이 따져 수십 개가 올라와 있었고.
 
‘와! 소드 마스터 아시는구나!....’
같은 글들에 추천이 수십 개씩 박히고 있었다.
 
-소드 마스터의 활약을 설명하려면, 역시 OOC의 수도 테러를 설명해야겠죠!
 
Out Of Control. 통칭 OOC
 
2천 명의 순수 능력자들이 뭉친 빌련연합.
 
빌런의 수는 각 나라마다 평균적으로 5~6천 명 정도 안팎이다.
그중에서 조직을 이루는 수는 많아야 100에서 200명. 기네스북에 올라온 멕시코 갱단이 400명 정도였을 것이다.
 
-1년 전, OOC의 총군세가 서울을 공격했었죠. 수천 명의 빌런이 서울에 나타났는데, 협회는 어째서 그걸 알아차리지 못했나요?
 
기자의 질문에 TV 속 내가 입을 열었다.
 
-그의 능력 중 하나였습니다. 협회도 최대한 대응하려 해 보았으나, 한 번에 수천 명을 텔레포트시키는 능력이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않았으니까요.
 
-그.. 라는 것은 언터처블을 말하는 것이죠?
TV 속 내가 끄덕였다.
 
직접 말한 이름은 아니다.
그는 자신을 설명하지 않았다. 인간이라 부를 수 없는 힘을 보고 느꼈던 감정을 뱉은 것이다.
 
언터처블.
그는 범접할 수 없는 존재였다. 무와 지력, 통솔력까지 뛰어났던 완벽한 재앙.
 
-하지만! 그런 절망 속에서 피어난 희망! 소드 마스터가 있었습니다 치열하고 치열한 접전 끝에, 언터처블에 가슴에 칼을 꽂아 넣...!
 
-틀렸어.
 
TV 속 나와 나. 짜고친 듯 얼굴이 구겨졌다.
 
내가 아니야.
내 검은 그에게 닿지 않았다. 아마 기억을 가지고 수백, 수천 번 다시해도 실패할 것이다.
 
-예?
-아...아니.. 저는 마지막을 장식했을 뿐, 모든 이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시도조차 못했을 겁니다. 모두가 언터처블과 맞서 싸운 것이라..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오오옷!!!! 정말 멋진 대답이었습니다.!
그러면 이어서 다음 코너! 언터처블 이상형 월..
 
틱- 또도도..
 
리모컨의 전원 버튼을 눌렀다.
더 이상 봐버렸다간 보도국이 온전한 모습으로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후우....
 
이런저런 생각하다, 2년 전 계약했던 사이드킥이 떠올랐다.
 
하두 협회에서 쪼아대서 적당히 잘생긴 남자로 골랐었다.
 
OOC가 들이닥칠 때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걱정되는 마음이 있었으나, 이내 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사이드킥이 갑자기 사라지는 건 업계에선 비일비재한 일이었다.
말이 좋아 사이드킥이지, 히어로 전용 매니저, 좋게 말하면 시다바리에 불과했다.
 
빌런이 언제 나타날까 노심초사하는 히어로들에게 전투력이 전무한 이들의 존재는, 편히 쓸 수 있는 감정 쓰레기통에 불과했다.
 
물론 나는 그렇게 대하지 않았다고 맹세할 수 있다.
 
“잘생겼었는데....”
 
떠나간 썸남을 추억하듯, 살짝 애틋한 감정이 올라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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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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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구석에 있는 작은사무실.
 
늘어진 나시에 몸빼바지를 입은 남자.
 
“흥~흥흥~흥흥흥~”

 -씰룩 씰룩

리듬을 타며 좌우로 흔들리는 엉덩이.


이름 강현
24세
 
믿기지 않겠지만, 1년 전 수도를 잠식했던 괴물, 언터처블을 쓰러뜨린 장본인이다.
 
그랬던 그는 지금....
 
“짜라짜라짜짜짜~”
 
짜파게티 요리사가 되어 있었다.


처음써보는데 ㅅㅂ 존나 어렵다. ㅈㄴ 존경스럽다 작가행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