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어쩌겠느냐. 이곳에 더 이상의 망령은 없다."


마왕이란 이런 존재였다.

눈을 지그시 내려까는 것만으로
인간을 떨게 하는 존재였다.

일찍이 강자를 만나고 싶다며 노래를 부르던 드워프의 전사도
탑의 현자를 자처하며 파티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던 대마법사도
간혹 헛소리를 내뱉기는 하지만 '용기' 만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던 용사도
마왕의 위엄과 힘 앞에서 그저 떨 뿐이었다.


"짐이 어찌하여 마왕성에서 너희를 기다리지 않았는지 알겠느냐.
짐이 어찌하여 너희를 아직까지 죽이지 않는지 알겠느냐."


마왕의 망토가 바람에 나부꼈다.

바람을 타고 꽃내음이 풍겨왔다.

생명의 여신이 잠들었다고 전해지는 이곳은 [활력의 꽃밭].

죽은 자조차 되살리는, 생명의 기운으로 가득 찬 곳이었다.


"이곳이라면 사령술사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날 높이도 평가해주셨는데그래."

"다른 아이들에 대한 대책은 이미 다 강구해 두었기 때문이니라."


실제로, 마왕의 책략은 거의 들어맞았다.

용사와 그 동료들은 죽지 않는 선에서 제압 당하였다.

하나 사령술사는 이 상황에서도 썩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네크로맨서란 건 결국 영혼을 되살리는 일이지."

"?"

"영혼의 파편만 남아있다면 어떻게 죽었든 상관 없다. 그 영혼에게 새로운 육체를 줄 수 있어."


사령술사가 바닥에 손을 대었다.

사령술사의 축적된 마나가 땅을 가르기 시작했다.

조각나 부숴지는 지면 아래에서부터 사령술사의 보라색 마나가 빛을 발했다.


"시간은 다 채웠다. 지금부터 레저렉션을 시행한다."

"허세는! 누구를 살리겠단 말이냐! 이 땅은 태초에 생명의 여신이 잠든 이래 그 누구도 죽지 못한 땅이다!"


"대상은-."


네크로맨서가 마왕의 말허리를 끊었다.

그 기세에는 확신이 넘쳐흘렀다.


"신앙을 잃고 죽은 고대의 여신.
이 땅에 잠든 생명의 여신."


마왕이 순간 멍해져서 네크로맨서를 바라보았다.

뭘 살린다고? 신을?

신은 시체도 남기지 않는데?


"영혼 조각이 없으면 부활은 불가능할 터. 네놈은 뭘 매개체로 쓸 셈이더냐?"

"매개체는 이곳, 활력의 꽃밭 전체로 삼는다. 일어나시오 여신이여!"


네크로맨서의 말에 부응하여 땅이 흔들렸다.

이어서 용사파티의 눈에는 거대한 여인이, 아주 거대하고 상서로운 기운의 여인이 들어왔다.


"누구냐... 나를 위한... 새로운 사제가 된 아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