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발. 


[그래도 하겠다고 한 거는 다 하고 그런 말을 해. 넌 애가 그렇게 의지가 없어서 어떡하니?]


저게 엄마는 맞는건가. 

학원 선생님도 저렇게까지 말하지는 않는다. 

아니지. 그랬던 선생님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부모라면 날 응원해 주어야 하는 게 아닌가?


서로 쌓인 것이 많다는 건 이해한다. 

싸운 날이 안 싸운 날보다 많다는 것도 기억한다. 

둘 다 예민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안다. 


"씨발..."


고삼. 

길고 긴 12년의 학창시절의 끝.

어쩌면 그 끄트머리에서 공부를 하고 있지 않은 내가.

그런 나 때문일지도 모른다. 


[공부에 시간 좀 들여.]


복창이 다 터져나간다. 

나라고 지잡대를 가고 싶은 것은 아니다. 

아니, 나는 공부가 하고 싶다. 


지식을 탐구하고 내 것으로 만드는 것. 

나는 그런 공부가 하고 싶다. 

아득하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경쟁이 아니라. 


[옛날처럼, 좀 하면 안 되겠니?]


초등학교는 명문이였다. 

그런 학교에서 손가락에 꼽는 상위권이였다. 

중학교에서도 그건 변하지 않았다. 

내 가내신은 200점. 만점에 가까운 수치이다. 


[하면 성적이 느는 건 너도 잘 알잖아. 머리가 나쁜 거였으면 엄마도 기대 안 해.]


기대. 

기대는 관성이 된다. 

그리고 관성은 미래에 탄탄대로를 그린다. 

그게 싫었다. 


"후우..."


버좁은 입에서 나오지 못한 감정들은 하얀 김이 되어 내 시야를 채웠다. 

탄탄대로. 

아득하게 펼쳐진 순백의 찬란한 길. 


그 길 위에서 나는 대학을 갔다. 

분명 서울의 좋은 대학이였으리라. 

자격증공부를 하여, 자격증도 따 내었다. 

직장에 가고, 결혼을 하고. 

그럴수록 자괴감은 심해져 갔다. 


"죽고싶다."


나는 나를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한다. 

지금 공부를 하여, 좋은 대학을 간다면 저렇게 살 것이다. 

그게 미치도록 싫었다. 


"싫어?"


"많이."


"그래도 행복하지 않을까?"


"그걸 물어보기 전에, 자기소개부터 해야하는 거 아닐까?"


"나? 난 생각을 읽어."


"아니아니, 그거는 알겠고. 이름이 뭐라고?"


길게 늘어진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둘밖에 없는 교실에서 그녀는 지나칠 정도로 눈부셨다. 


"설예원. 예원이라고 해."


"다시 물을게, 행복하지 않을까?"


그날, 내가 무슨 생각을 했더라. 

아마 내가 내 생각을 기억하지 못하는 건. 그 다음에 온 말이 너무 충격적이였기 때문이리라. 


"그래? 그럼... 같이 죽을래?"


"음... 그러니까. 단 하루. 세상 모두의 기억 속에서 널 없애줄게."


"죽고싶을 정도로 싫다면, 죽어서 네가 가진 모든 시간을 버릴 거라면."


"그러면, 단 하루 정도는 나한테 빌려주지 않을래?"


수능 D - 11.

내 인생 최고의 24시간은 그렇게 시작했다. 



*



이상하다. 

생각을 읽는 게 아니였나?

사람이 너무 많아서 읽지 못하는 건가?
어디로 나를 끌고가는 거지?

귓바퀴가 살쪄서 못 듣는 건가?


"듣고 있거든!"


버럭 외치며 돌아본더니, 다시 내 손을 끌고 어디론가 데려간다. 

주변의 시선은 덤이였다. 


것보다, 살에 민감하구나. 

마치, 예전에 살쪘던 기억이 있는 것처럼...

아니면 오늘따라 몸무게가 늘었다던가...


"아야야.."


미안. 미안. 손 세게 잡지 말아줘. 안할게. 

뭔 여자애가 힘이..

아, 살이 아니라 근육이였나. 


"아니라고!!"


의식하는지 나를 때리기는 하는데, 솜방망이처럼 약했다.


"아니라고!"


사람 때리는 것이 매우 능숙해 보였다. 

명치만을 집요하고 정확하게 때리는 점에서 그러했다. 


"디진다 진짜!"


열받은 것 치곤 쓸데없이 목소리가 밝았다. 


"흠흠. 그래서, 여기가 어딘지는 기억나?"


집 근처 하천 위의 다리. 

봄이면 벚꽃이 아지라히 만개하는 곳. 


"어릴 적, 부모님과 사진을 찍었던 곳이네."


"그거 말고."


"피씨방 가려고 최대한 빨리 달렸던 건 기억나는데."


"그... 뭔가 더 있지 않아?"


애초에 감성이 많은 성격도 아니고, 기억 속에 남은 장면도 더 없었다.


"어떤 여자애랑 만났던 기억이라거나...?"


"없는데?"


"어라.. 이럴 리가 없는데."


시계를 보니 1시간이 지나 있었다. 


"일단 일로 와봐."


버스정거장?


"여기서 가장 빨리 오는 버스를 타고, 종착역까지 갈거야."


할 게 없지 않을까?


"나랑 놀면 되잖아."


대화를 그리 즐기지는 않는다. 


"아니면 그냥 풍경이라도 보고 있자. 생각보다 좋더라고."


간편하네. 생각을 읽는다는 거. 


끼익 - 


버스가 왔다. 

내가 한 번도 타보지 않은 버스. 

심지어 붉은색에 살짝 겁에 질렸다. 


"행선지 보지 마시구요~ 이리 오세요."


"두 명으로 주세요."


삐빅- 


"남자친구가 참 훤칠하네. 아가씨."


"헤헤. 감사합니다."


난 칭찬이 참 싫더라. 

무언가를 나에게 기대한다는 게. 

내가 어떠한 무언가가 되기를 바란다는 게. 

미치도록 싫어서 견딜 수가 없더라.


"가자."


집에서 키우던 개가 저랬었던 것 같다.

내 맘도 모르고 나를 이리저리 끌고 가던 게.

차이점은 설예원은 내 속을 안다는 점이다.


"개처럼 귀엽지?"


"뭐래냐 가시나야."


맞춰주니까 귀여운 줄 알아. 


"입꼬리나 내리고 말하세요."


올라간 적 없는데?


"아, 너 저기 가봤냐?"


어디를 말하는 거지. 

저기..? 저기가 뭐하는 데였더라.

추어탕이였나.


"안 가봤지?"


그런 것 같아서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는? 저기도 가봤어? 오.. 고속도로. 안양으로 가는 것 같은데, 안양에 놀이공원 있던데?"


에너지 넘치는 모습이 애를 보는 것 같았다.

멀리서 보기에는 순수해 보이고 좋았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대답하게 되자, 정신이 없었다. 


"아니, 똑바로 대답 안 해? 독심술사라고 무시하냐?"


그리고 한참이 지나, 공기가 가라앉고 태양마저도 꺼져가는 창문을 보다가. 

문득, 질문이 하나 생각났다.


"근데 넌 오늘 할 거 없어?"


왜 오늘 나한테 온 거야?

툭- 던진 질문. 

깊게 생각할 것도 없었고 이유는 없다고 해도 그냥 넘어갔을 것이다.


"나... 는."


흠흠. 헛기침을 하더니. 


"난 오늘 잠이나 잘까 했는데."


생각에는 대답하지 않으려나 보다. 아니면 능력에 제한이 있는걸까. 

뭐, 우연찮게 내가 설예원 앞에 있었나보다. 

우울한 생각을 너무 하니까, 못 본 척 하기도 어려웠을 테고. 


노을진 유리 위로 녀석이 턱을 괴었다. 

그러더니, 감성이라도 젖은 듯 나에게 질문을 해 왔다.


"공부말고 다른 거 하고싶은 건 있어?"


음악이나, 프라모델이나, 잠이나 늘어지게 잔다거나.

아니면 노다가라도 하던가. 


"노다가같은 생각하지 말고."


그녀는 골똘히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잠... 여기 기댈래?"


자신의 어깨를 가리킨다. 

내가 기대기에는 너무 작은 것 같다.


"그럼 니 어깨 대던가."


"그려."

 

뭐, 닳는 것도 아니고.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었다.

버스값이라고 치자. 


"으흐흐음.."


왜 이렇게 볼을 비비고 그러냐.


"잘 자라."


"니나 자."


호기롭게 말한 것 치고는 그녀는 금방 잠에 들었다. 


"이동민..."


왜 자면서까지 내 이름을 부르는 지는 모르겠지만. 

게다가 쓸데없이 몸에 열이 많았다. 

그것이 따뜻해서, 나는 금방 잠에 들고 말았다. 


"남자친구분, 일어나시죠?"


희미하게 웃음기가 도는 목소리. 거친 손. 


"에...? 예...?"


저는 남친이 아닌데요...

눈을 떠 보니, 버스기사 아저씨가 나를 푸근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종착역이야, 친구."


"아.. 예 감사합니다.."


"아, 그렇지. 이거 받아."


아저씨가 꺼내든 것은 표였다. 


"여기까지 왔으니까, 이 아저씨는 쓸 데가 없거든."


놀이공원의 표였다. 


"아이는 커서 집을 나갔고, 여편네는 등산이나 가자 하더라고."


투덜투덜 거리면서도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가족을 만든다는 건, 저렇게나 보람찬 일인걸까. 


"여기 근처니까, 불꽃놀이라도 보고 가."


"예... 감사합니다.."


어깨에서 떨어져 어느새 무릎에 머리를 붙이고 있는 설예원을 툭툭 쳤다. 


"가자."


"5분만..."


"가자니까."


"조금만. 제발. 조금만 더.."


이미 일어난 게 아닐까.

인상을 쓰면서까지 필사적으로 잠기운을 붙들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거든..."


뭐가 그렇게 아닌 걸까. 

이 녀석 입에서 맞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나도 독심술이 있었으면 조금 달랐을까.


"응 아니야... 있어도 못맞춰..."


볼을 조금 꼬집다가. 그녀가 차마 일어나려 하지 않아서. 

버스는 점검해야 되니까. 

어쩔 수 없으니까. 


"커어..."


침을 흘리는 건 아니겠지?

설예원을 업게 되었다. 


"그래! 잘 들어가고!"


"에. 감사합니다."


참 기운이 넘치신다. 


"얌마. 일어나."


"시러..."


"니가 나 대신 살아주는 거 아니였어?"


"그 반대야.. 반대라고..."


뭐래는 거야.


"놀이공원. 갈래?"


"웅...스흡..."


"침 흘렸냐?"


"아니거든..."


축축했다. 

놀이공원은 바로 앞이였다. 

설예원이 키가 작아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가벼웠다. 

그래서 놀이공원까지 업고 올 수 있었다. 


"표로 계산할게요."


"좋은 시간 보내세요."


형식적으로 인사를 하고 들어온 놀이공원은 적당히 북적거렸다. 

불꽃놀이는 아름다웠다. 

그럼에도 그녀는 내 등에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늘이 몇번이고 번쩍이고. 

환호성과 행복의 탄성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온다. 

그리고 모든 소리가 내리앉아, 사람들이 여운에 잠겨 가만히 서 있는다. 


그리고 조용하게. 

그녀가 말을 걸어왔다. 

처음 그랬던 것처럼 갑작스럽게. 


"나 사실 독심술사 아니다."


"그거 알아? 너 표정에 다 드러나."


"보나마나, 버스에서 봤던 곳도 추어탕집 아닌가 생각했겠지."


"다리 아래에서 만났던 것도 기억하지 못했겠지."


"오늘 내가 하루를 빌린 이유?"


"큰 이유는 없어."


희미하게 그녀가 웃었다. 


"내가 중학교부터 지금까지 널 찾아온 것처럼."


"니가 내 삶에 목표가 되어준 것처럼."


"하루만이라도, 내가 너의 목표가 되어주고 싶었어."











못썼는데, 쓴 게 아까워서 마저 썼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