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세라스가 지팡이를 높이 들며 말했다.


"글쎄, 난 잘 모르겠는데."

 

이곳은 여신을 모시는 신전.

또한, 강력한 존재를 봉인하는 봉인진이

설치된 장소이기도 했다.

 

“으음, 진짜 모르겠네. 왜 그랬어?”


“역시 이해하지 못하시는군요.”


그녀의 몸이, 목소리가 떨렸다.

저 남자가……진심으로 두려웠다.

 

용사― 빅토르. 

 

다른 세상에서 넘어온,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찾아온 남자.

 

모두가 그를 칭송했고, 마족들은 그와의

전투를 피할 정도로 그를 두려워했다.

 

하지만 인류는, 온 종족은 곧 깨달았다.

 

여신이 데려온 이 남자가 얼마나 위험한

‘괴물’인지를.

 

“좋아요, 하나씩 짚어볼까요.”


비록 괴물일지라도, 그는 분명 마왕을

처단한 영웅이었다.

 

또한, 세라스는 한 때마나 그에게 호감을

느꼈다. 어쩌면 그건 사랑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는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

사랑하기엔, 빅토르는 너무나도 미쳐있었다.

 

“먼저, 저희는 당신을 여기로 소환했어요.”


“아아, 그랬지. 분명 그랬어.”

 

빅토르가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자고 일어났는데 웬 여자가 세상을 구해달라고

해서 놀랐지― 재미있을 것 같아서 곧바로

하겠다고 했어. 그 여자도 놀라더라고?”

 

“재미, 있을 것 같았나요?”


“응. 그야, 저쪽은 지루하기 짝이 없거든.

평범하고 하찮은 사람들이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할 뿐이니까. 참 시시하지 않아?”

 

빅토르가 끌끌 웃으며 계단에 걸터앉았다.

 

“사람이 죽어나가는 전쟁이 재미있을 것 

같았다라…….”

 

“세라스, 전쟁은 고대 때부터 일종의

오락이기도 했다고? 인간은 선천적으로

폭력을 좋아해. 다 그런 거라고.”

 

하지만 빅토르는 선을 넘어버렸다.

그녀가 앞을 똑바로 보았다.

 

“당신은 정말로, 정말로 자기 임무에

충실하셨죠. 그 점만은 존경하고 있어요.

마족이라면 정말 누구든지 죽였으니까요.”

 

“그치? 내가 좀 잘하긴 했어.”

 

세라스는 그 끔찍한 기억을 더듬었다.

 

마족이 사는 마을에 간 빅토르는, 주저하지

않고 모든 마족을 학살하라고 명령했다.

 

저항하지 않는 자, 어린아이, 임산부,

노인, 병자, 장애인― 가리지 않고 모조리

생매장했다. 

 

처형법도 단지 그게 제일 빨리 끝나기

때문에 선택한 것이었다.

 

“죄책감이 들지는 않았나요?”


“내가? 왜? 나는 부탁받아서 한 것뿐이야.

딱히 악감정 같은 건 없다고. 게다가, 덕분에

평화로운 세상이 찾아왔잖아?”

 

“그 대가로 마족은 사실상 멸종했죠.”


“일을 하려면 확실히 해야지.”


마왕 사망 직후, 빅토르는 자신의 권한으로

마족 사냥꾼을 조직해 살아남은 마족을

철저하게 말살하고 다녔다.

 

물론 이번에도 아이나 여자, 노인 가리지

않고 마족의 피가 섞여있는 자들은 모조리

죽였다. 

 

뿐만 아니라 더 효율적인 방식으로 죽여야

한다면서, 살아남은 마족들은 형무소로 보내

노역을 시키다가 죽였다.

 

마족을 증오하던 자들조차 너무한 처사라고

했지만, 빅토르는 멈추지 않았다.

 

“대체 뭐가 불만인 거야? 세라스, 우리

좋았잖아. 다들 날 좋아했고! 안 그래?”

 

“아뇨― 장담컨대 당신을 좋아했던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어요.”

 

그녀 말고도 다른 동료들이 있었다.

 

다양한 종족으로 이뤄진 동료들.

각자 자기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이들이

한데 모여 그를 도왔다.

 

하지만 그들은 보답 받지 못했다.

 

“에우케 씨가 죽었을 때, 당신이 뭐라고

말했는지 기억하시나요?”


“아니.”


“정확히 이렇게 말했어요. 고작 이 정도로

죽다니 참 한심하네……라고요.”

 

에우케뿐만 아니라, 다른 동료들이 하나씩

죽어나갔을 때도 빅토르의 반응은 비슷했다.

 

죽으면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쓸모 있게 죽었으니 된 거다.

 

슬픔도, 분노도, 하다못해 동정심마저

보이지 않았다.

 

그의 관심사는 오직 마족을 죽이는 것뿐이었다.

 

“슬프지 않았나요? 정말 조금이라도, 당신은

그들의 죽음에 무언가를 느끼지 않았나요?”

 

“죽으면 죽은 거지 뭘 느끼라는 거야?

세라스, 그렇게 유약해서야 어디 쓰겠어?

마족을 잡으려면 더 강해져야 한다고 내가

몇 번이나 말했잖아. 안 그래?”

 

“전쟁은 이미 끝났어요! 여기서 마족을

더 죽이는데 아무 의미도 없다고요!”

 

“쯧쯧, 물러. 무르다고, 세라스.”


그가 큭큭 웃으며 말했다.

 

“그것들이 지금은 불쌍해 보이겠지. 하지만

그것들이 재건하면? 그 뒤엔 우리한테

복수하려고 할 거야. 평화를 위해서라면

다소의 희생은 감수해야 하지 않겠어?”

 

“평화? 아뇨, 당신이 바라는 건 평화가

아니에요. 그딴 건 조금도 신경 쓰지

않잖아요, 저한테 거짓말하진 마시죠.”

 

“솔직하게 말해도 믿어주지를 않네.”


빅토르가 눈을 가늘게 떴다.

 

“당신은 그냥, 죽이고 싶은 것뿐이에요.”


“뭐……물론 죽이는 게 재미있어서 하는

것도 있지. 그 부분은 인정할게.”


“그리고 당신이 마족만 죽였다면, 저도

이렇게까진 안 했을 거예요.”

 

마지막 선.

 

세라스가 눈물 흘리며 말했다.

 

“그 마을 주민들을……수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아, 그거? 하지만 어쩔 수 없었잖아.

마족한테 협력하다니 무조건 사형이라고.”

 

“그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협력한 거예요!

죽거나 협력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고요!”


“그럼 죽었어야지. 뻔뻔하게 배신을 하고도

살아남을 생각을 하다니, 바보 아니야?”

 

세라스가 저도 모르게 구역질을 했다.

 

마족의 지배를 받게 된 인간들은, 마족한테

협력했다는 이유만으로 모조리 처형됐다.

 

그 수만 무려 3만 명에 가까웠고, 그들 중

사면 받아 살아남은 이는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그중에는― 세라스의 고향 친구인

라우마르도 있었다.

 

이들 역시 형무소로 끌려가, 모두 불에

태워져 죽었다.

 

“당신은 괴물이에요, 빅토르.”


지잉― 봉인진이 그의 주위에서 빛났다.

 

“마족이 사라지면 당신은 다음 목표를 찾겠죠.

엘프, 드워프― 어느 쪽이건 인류에게 해를

끼칠 존재라면 철저히 말살하려 할 테죠.”


“응, 그럴 거야. 왜냐하면 난 용사니까.”


여신은 ‘인류를 위해 싸울 투사’를 원했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그건 ‘인류’ 외에는

아무도 구하지 않는 존재를 의미했다.

 

“이 봉인은 절대 풀리지 않을 거예요.

당신은 마왕만큼, 아니 그보다 훨씬 위험해요.”


“하아, 그래?”


그가 피식 웃었다.

 

“하지만 네 말처럼 되진 않을 거야. 장담컨대

결국 너희는 나를 다시 필요로 할 테니까.”


“뭐라고요?”


“타협하는 지점이 오겠지. 설령 나를

깨워서라도 막아야 하는 거악이 찾아올 테니.

그리고 미리 말해두자면, 난 그때에도 인류를

위해 싸울 거야. 왜냐하면 나는 용사니까.”

 

인류를 위해 해야 하는 일을 하는 자.

 

그게 바로, 용사다.

 

“아쉬워, 결국 내가 옳았다는 걸 너는

죽을 때까지 모를 테니까.”

 

이윽고, 봉인진이 닫히며―

 

용사, 빅토르는 봉인 당했다.

 

 

 

 

 

덜컹―

 

신전의 문이 열리며, 쌓여있던 먼지가 사방에

피어올랐다.

 

“여기 있군요. 이게 바로 고대의 용사,

마왕 살해자 빅토르…….”

 

“뭐, 뭔가 무서운데요? 정말 깨워도 되는 거

맞나요? 저희를 공격하면 어쩌죠?”

 

“하지만 더는 방법이 없어요. 이대로 가면

인류는 끝장입니다.”

 

마법사가 앞으로 나아가며 말했다.

 

봉인진 너머의 존재가 느껴졌다.

너무나도 거대하고, 위험한 존재의 압박감이.

 

“어떻게 깨우면 되는 거죠?”


“으음, 분명 절차가…….”


쿵!

 

그때, 봉인진의 벽이 깨지며 손이 튀어나왔다.

 

“히익!?”


“뭐, 이게 무슨! 아직 풀지도 않은 봉인이!”

 

“하암, 잘 잤다.”


빅토르가 봉인진의 벽을 발로 차 무너트렸다.

 

봉인 따윈 언제든지, 얼마든지 부술 수 있었다.

다만 그럴 이유가 없었기에 그는 그 안에서

잠들고 깨어나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이 신전에 누군가가 왔다는 것은.

 

누군가가 인류의 구원을, 용사의 귀환을

바라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래, 너희. 인류를 구해주길 바라는 거지?”


“네? 네?”
 
“내가 뭘 하면 되는지나 말하라고.

인류를 위해서, 뭐든지 할 테니까.”

 

인류를 위하여.

 

용사, 빅토르는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었다.

 














인류를 구하기 위해 어떤 미친짓이든 저지르는 용사 이야기...

장챈 정주행하다가 이런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서 대충 갈겼음

난 이런 안티 히어로가 좋드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