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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이고깽 용사다.


 아니, 용사였다.


 어째서 과거형이 되었는가 사정을 설명하자면,


 죽고 일어나보니 마왕 죽이고 오면 소원 하나 들어준다는 여신의 말에 홀라당 넘어가 이세계에서 전형적인 용사 모험물을 찍다가 마왕성에 도달한거까지는 분명 순탄했다.


 근데 마왕성 문 여니까 왠 빤스차림 반나체 남성이 마왕이랑 싸우고 있더라.


 심지어 마왕은 어떻게 내 공격을 전부 피하냐며 진심으로 빡쳤는지 얼굴까지 새빨개져서 전력으로 공격하는데,


 빤스 차림 남성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춤까지 추면서 나뭇가지로 마왕을 패고 있었다.


 순간 이해 못할 광경에 얼이 빠진 파티와 함께 멍때리면서 그걸 보고 있으니까, 빤스남은 한시간도 안되서 마왕을 잡아버렸다.


 "이번 차원은 시시하네."


 마왕을 잡은 직후의 빤스남은 그런 말을 하더니 그대로 사라져버렸고,


 원래대로라면 그 마왕을 잡았어야 할 용사였던 나와 파티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죽은 마왕을 내려다봤다.


 이게 뭐야 x발



***



 그래도 마왕이 죽은건 죽은거라 세상에 평화는 왔고, 그에 따라 이 세상은 평화를 축하하는 성대한 연회를 펼쳤는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뭡니까. 아, 가까이오지 말아주세요."


 "용사라고 부르면서 따르지 않았었냐구요? 아... 그랬던 때도 있었죠."


 "언제 갈거야? 아니, 숙소 말고, 집으로 꺼지라고. 이 차원 말고 너네 차원으로."


 분명 나 좋다고, 용사가 아니라도 따를 거라던 파티 애들이 전부 오물 보는 표정으로 날 매도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아니, 파티만이 아니라 세상 전체가 하루만에 나에 대한 태도가 변해버렸다.


 그에 다급히 신전으로 찾아가 여신을 애타게 찾자, 여신은 당혹스런 목소리로 설명했다.


 "그게, 용사가 마왕을 쓰러트리고 세계에 평화를 가져온다는게 기본적인 시스템 골자거든요?


 그걸 위해, 용사는 굳이 따로 안줘도 마왕 토벌때까지 유지되는 특전같은게 있어요. 호감도 보정이라던가, 경험치 보너스 같은거.


 근데 지금 용사님은, 마왕은 토벌됐는데, 그 마왕 토벌에 어시스트 조차 안넣었다는 예상치 못한 사태에 빠져서인가,


 그 보너스들이 전부 오류가 났는지, 특전으로 얻은 보정들이 전부 마이너스로 오버플로우 나버린거 같아요."


 "...이해 할 수 있게 설명해주실래요?"


 "그냥 마왕 죽을때 딜 안넣어서 세상이 님 경멸하기 시작했다고."


 " 앗 감사."


 아니 그게 뭔데.


 심지어 마왕 토벌로 받았어야할 소원조차, 같은 문제로 들어 줄 수가 없는 상태라고 한다.


 애초에 마왕을 잡아야 소원을 들어주는데, 결론적으론 못잡은거니까 무리라고.


 그래서, 오류난거면 빨리 고쳐달라고 간청하자 여신님은,


 "전 QA팀이지 운영팀이 아니라서 죄송함다."


 라고 발빼버렸다.


 "아니, 해결책을 달라고요!"


 "어... 대충 생각나는 방법은 있는데..."


 "그게 뭐죠?!"


 "마왕 죽인 사람을 죽이면 대충 정상화되지 않을까요...?"


 마왕을 다른 사람이 잡아서 문제라면, 잡은 사람을 마왕 취급하고 잡으면 해결되지 않을까? 라는 논리였다.


 이게 뭔 개논리인가 싶지만,


 생각해보면 '용사가 마왕성에 도착해보니 왠 빤스맨이 티배깅하면서 마왕을 잡고있더라.' 부터가 말도 안되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솔직히 개논리라도 상관은 없다.


 애초에 그 영문모를 놈이 뜬금없이 갑툭튀해서 마왕을 때려잡은게 문제였으니까.


 그 놈을 찾아가서 푹찍해도 합리적인 복수인게 아닐까?


 "여신님."


 "에, 예?"


 "그 놈 있는 곳으로 보내주세요."


 자기가 대충 던진 말로 클레임 걸릴거라 생각했던건지 잔뜩 움츠러졌던 여신님은, 내가 한 말에 당혹스런 표정만 지었다.


 내가 짐싸고 빤스맨이 있다는 곳으로 연결된 차원문으로 뛰어들때 쯤엔 여신님은


 "그냥 한 말인데 진짜 쫓아가네..."


 라는 말만 흘렸다.



***



 라는 전개로 그 빤스맨을 쫓아온건 좋았는데,


 쫓아서 오자마자 본 광경은,


 내가 있던 차원의 마왕을 잡을때와 같이 나뭇가지로 거대한 드래곤을 때려잡고 있는 빤스맨의 모습이었다.


 그 광경은 약 10분 후


 "가, 감히 이 용신에게 그런 차림으로...!"


 거대한 드래곤이 단말마를 흘리며 소멸하는 것으로 끝났다.


 "시시하네."


 빤스맨은 이전과 같이 그런 말을 하더니 또 다시 홀연히 사라졌고,


 말도 안되는 광경에 얼이 빠져있던 나는 급하게 정신 차리며 여신님을 불러 쫓아가기 위한 차원문을 만들어냈다.


 "...최종보스 여기있을거라더니, 어디갔어?"


 차원문에 급하게 뛰어들때 쯤엔 등 뒤로 새로운 피해자의 목소리가 들린 듯 싶었지만 무시했다.



***



 그렇게 한 열댓번인가 비슷하게 빤스맨을 쫓아 차원을 건너다니면서 깨닫게 된 것을 정리하자면,


 -빤스맨은 빠요엔이다. 팬티 차림에 나뭇가지만으로 못 잡는게 없다.


 -차원을 자력으로 건너다닐 줄 안다.


 -일단 싸우면 백퍼 질 자신이 든다.


 정도였다.


 "님은 저 놈 어케 잡을 수 있을지 견적 나와요?"


 "나오겠냐?"


 그리고 차원을 넘나들다보니 비슷한 처지의 동료까지 늘어버렸다.


 빤스맨은 가는 차원마다 최종보스급 존재만 골라다 족쳐버리고 사라져버리곤 했는데,


 하필이면 그게 그 차원의 '마왕'으로 지정된 존재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빤스맨이 왔다간 차원에선 마왕 토벌 업적을 빼앗기고 방황하는 용사가 속출했고,


 그 과정에서 나와 같이 복수심에 불타 빤스맨을 쫓아온 간 큰 용사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전직 용사들은 머리를 맞대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못잡을거 같은데...""""


 그러는 와중에 또다시 빤스맨은 새로운 마왕을 때려 잡고,


 "우앙, 마왕만 없어지면 나랑 결혼해줄거라며...!!!!!"


 "저리 꺼져 추녀야!!!!"


 새로운 피해자가 속출했다.







낮잠 자다가 꿈으로 꾼 내용 적어옴. 다음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