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건아가 F-15K와의 교통사고와 같은 우연한 일로 미소녀로 바뀌며, 삶이 엉망진창으로 꼬여버린다. 원래 세계에서 그럴 수도 있고, 더러는 이세계에 떨어지면서 몸까지 바뀐다.


바뀐 것은 자신의 몸 뿐인 게 아니다. 온갖 남정네들이 흘깃 시선을 보내고, 몇몇은 끈적한 시선으로 내 몸을 훑는다. 소름끼치는 경험이지만, 딱히 대항할 방법도 없다. 덩치도, 키도 남자였던 시절보다 한참 모자라기 때문이다.


그것 뿐이라면 다행이다. 이세계에 떨어져 다른 인물이 되었다면 가문 간의 혼사에 휘말려 정말로 누군가에게 박혀야만 하는 처지에 놓일 수 있다. 거부하려고 해봐도 온 세상이 막아선다. 박히느냐 박히지 않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TS의 매력은 여기에 있다. 남자로서의 정체성을 사수하려는 주인공과 그것을 필사적으로 무너뜨리려는 주변인들과의 줄타기. 그리고 정체성의 혼란은 우리에게 희열을 주는 좋은 소재 중 하나다.


주인공이 어떠한 경로로든 도전을 받는다. 주인공은 도전을 해결하거나, 그러지 못한다. 그 결과로 주인공과 그의 가치 또한 변화한다. 재밌는 이야기라면 앞서 언급한 세 가지 사항이 모두 충족되기 마련이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이나 돈키호테, 웹소설 전반에서 관측되는 흔한 패턴이다.


음식을 맛있게 만드는 것이 간이듯, 베이스인 패턴에 읽는 맛을 부여하는 것은 디테일이다. TS된 남자로서 본인의 가치를 지키려는 시도 쯤은 있어야 되는거 아닌가?


하지만 지금의 TS소설은 그렇지 못하다. 자신이 남자인 것은 알되, 남자처럼은 굴지 않는다. 


조회수가 높은 TS소설을 몇 편 읽어봤는데, '남자였고 남자였단 사실은 알지만 남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사수할 생각이 없음' 패턴이 내가 본 소설 전반에서 나타났다. 그러니까 여자로 변하기 전 남자인 것을 기억하고 사회의 위치도 알지만 여성처럼 행동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 


이들에겐 자신이 남자였다는 사실은 살면서 몸으로 익힌 사실이 아니라,'나는 XX하던 남자 누구누구. 갑자기 여자가 됬다.'이 문장 하나 외우고 출고된 여성형 휴머노이드같다. 남성으로써의 삶을 그토록 쉽게 부정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거기다 TS라는 점은 제대로 써먹히지도 않는다. 사람의 정체성을 송두리째 바꾸는 변화를 맞이했는데도 주인공은 별다른 어려움을 겪지 않는 것 같다. 기껏해야 10화 내외로 쓰이고 버려지는 이 특징은, 사실 필요없는 수준이다.


예전에 TS에 관해 깊게 생각해본 적이 있다. 물론 씨발 여자가 되는걸 바라는건 아니고, 급변하는 환경에 적응하려 노력하는 주인공을 보고 싶었다. 같은 이유로 인시디어스나 링, 전기톱 살인마같은 공포영화와 서부전선 이상없다, 헥소 고지같은 전쟁물도 좋아했었다. 그런 작품들에선 모두 주인공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시험대에 오른다. 주인공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가 무너지려 할 때의 희열이 나를 이끌었다.


그러나 최근에의 TS 소설은 주인공의 가치가 시험대에 오르는 것을 두려워하는 눈치다. 혹은 그런 가치가 있는줄도 전혀 모르는 것처럼, 주인공은 있으나마나한 짤막한 언급 이후 곧바로 여자처럼 군다. 이럴거면 왜 TS라는 수식어를 붙이는데? 그냥 빙의물이라 하면 안되나? 그냥 TS를 떼버리면 안됬나? 


어제 본 짧은 단편이 이 모든 사태를 요약한다.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genrenovel&no=1788144 


여기 나오는 주인공이 남자였다는 걸 알 수 있는 유일한 정보는 맨 밑의 "타티아나는 아주 오랜만에, 자신의 남성으로서의 경험을 살려, 집안의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화장실까지 도착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뿐이다. 아예 지워버리지 그랬다. 주인공의 행동 어디에서도 남자였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그렇지만 작가의 고집으로 남자로 설정된 이 캐릭터는, 졸지에 남자였을 적부터 여자처럼 구는 오카마로 전락해버렸다. 


맨 위 짤이 내 심정을 정확히 요약했다. 대한민국 건아 어느 누가 저 소설처럼 행동한단 말인가? 작가의 머릿속에서 '남자'는 모두 저렇단 말인가?


요새 나오는 TS 모두 이런 모양새니, 진정 맛있는 TS물은 도심에서 볼 수있는 별같다. 그 별 대부분은 별처럼 보이는 인공위성마냥 초반 조금지나면 금세 암컷타락하고.


남자가 남자에게 고추를 박히는 건 나도 싫다. 그렇다면 TS된 주인공이 고추를 들이미는 남정네들을 피해 위기를 어떻게 넘기는지를 묘사하려 노력할 것이지, 서술만 남자지 여자랑 다를 바 없이 만들어두면 TS태그가 도대체 무슨 소용일까?


고급스러운 풀코스를 웹소설에서 기대하는 건 아니지만 돈까스를 판다고 했으면 돈까스를 내와야지, 돈까스를 할 줄 모른다고 생선까스를 가져오면 어쩌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