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업계가 우하향 찍은 건 하루이틀 일이 아님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외국도 마찬가지



▲ 일본 출판과학연구소



덧붙이면 우리나라는 출판산업계를 교육출판사가 선도하는 형태임

▲ 2021 출판산업 실태조사보고서,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단행본을 다 더해도 전체 출판시장의 20%밖에 안 되며 

매출규모로 따지면 7천억 원임


▲ 2021년 출판시장 통계연구 보고서, 대한출판문화협회


여기서도 매출액 상위권을 교육출판사가 싹 쓸었음을 알 수 있음

첨언하면 여기에는 교원(빨간펜)이 없는데 회사 지배구조 변경으로 밑에 따로 빠졌고, 합치면 교원이 총계 1위가 됨

아무튼


▲ ibid.


그 바로 아래로는 전자 플랫폼의 약진이 두드러짐

탑코(탑툰)랑 레진(노벨피아)는 웹툰이랑 병행 서비스하니까 논외라고 쳐도

문피아만 해도 단행본 삼대장인 [북이십일 김영사 창비] 셋을 19년부터 제끼고 있는 상황


도서정가제가 정립된 표면적 이유는 중소서점의 보호이지만, 실제로는 출판사의 이권 확보가 목적이었음


책의 정가 구조를 간략하게 이야기하자면

작가 인세 10% 내외

유통사 마케팅, 기타, 마진 총합 30-40%

출판사 제작비, 마케팅, 물리적 원가, 기타, 마진 총합 50-60%

이 정도 되고


내가 기억하기로 도서정가제 시행 전에는 30% 정도 할인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음

그렇다면 그 30% 할인이 온전히 유통사가 자기 몫을 깎아서 가격을 내렸을까? 그건 아님


대형 유통사들은 할인으로 인한 고통을 분담하자고 어느 정도 강요할 수 있는 협상우위에 있음

30% 할인이 당연시되는 상황에서는

가령 '우리가 마진 40% 남기던 거 15%만 남길 테니까 너희도 공급가 5%만 낮춰라' 라고 유통사가 딜을 걸어도 출판사가 거부하기 어려움

어차피 대형서점은 다 비슷하게 요구할 거고, 그렇지 않으면 판매가 부진해질 테니까


도서정가제 논의가 있을 때마다 업계에서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마냥 '대형 서점의 횡포'를 언급하는 건 이런 맥락에서임

진짜 중소서점을 위한 제도였으면 지금 중소서점 다 죽어가는데도 개정 반대를 외칠 이유가 없겠지

죽은 중소서점은 말이 없다


사실 대형서점은, 할인을 많이 한다고 해도 들여오는 가격보다 높게 파는 구조라 판매부수가 늘어나면 손실이 어느 정도 벌충됨

(ex. 권당 5천 원씩 이윤, 50만 부를 팔아서 총 2.5억원의 매출 > 권당 2500원씩 이윤, 80만 부를 팔아서 총 2억원의 매출)


반면 출판사는 제작원가가 절감되는 건 아니기 때문에 어딘가에서 단가를 줄이지 않으면 그대로 영업이익이 깎여나감

출판사 마진이 책 정가의 10% 정도 되는 걸로 아는데, 공급가를 5%만 깎아도 영업이익이 반타작이 되는 셈임

사실상 어딘가에서 원가절감을 강요받는 건데, 출판업계가 원래 월급을 많이 주는 업계도 아니고


그래서 도서정가제 도입을 놓고 싸움이 한창 있었고

2014년에는 출판사 쪽이 이겼고 지금까지도 방어에 성공하고 있음


출간 12개월이 지난 도서는 정가를 깎을 수 있다고 하지만, 

출판사 입장에서 출간 12개월 지나고도 계속 팔리는 도서는 스테디셀러라서 편집인건비/홍보마케팅비 등이 안 들어가는 부수적 수입이라는 점에서 덜 와닿음(그 정도 급이 안 되는 도서는 서점에서 리콜당함)

정가제 시행 전에는 그쯤 오래된 도서는 반값 이하로도 할인했던 걸 생각하면 지금이 훨씬 출판사 입장에서 유리함

정가를 깎는다는 건 작가를 비롯한 다른 관계자 몫도 같이 깎이는 거라 유통사 입장에서 일방적으로 정가를 깎기 좀 어렵다는 점도 한몫하고



서론이 길었는데

도서정가제에는 저런 배경이 있었고


지금 출판업계가 웹소설에 도서정가제를 도입하자고 떡밥을 뿌리고 다니는 건, 웹 플랫폼이 가격경쟁력에서 가지는 우위를 견제하려는 시도라고 봄


지금 웹소설은 텍스트 퀄리티보다 양이 우선시되는 형태임

작가 수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니라, 

편결 수익구조를 쓰면서 한 편에 3-6천 자 내외로 주당 N회 연재를 하면 당연히 그렇게 될 수밖에 없음


그러나 웹소설 플랫폼이 지금처럼 성장하고 더 안정화되면 몇 년 내로 더 긴 템포의 연재작이 시도될 거라고 생각함

아니 장붕아 텀이 길어지면 독자가 어떻게 기다리니

작품과 작가 수가 늘어나면 됨

웹소설 시장이 성장한다는 건 단순히 기존에 소설 잘 안 보던 세대를 입문시키는 걸 넘어서, 기존 소설의 독자층이나 작가까지도 흡수할 수 있다는 걸 뜻함

수능국어에 나오는 작가들이 예전에 신문에 연재했던 것처럼 좋은 작가가 더 유입되거나 숨어 있던 작가가 발굴될 수도 있음


그리고 시장을 빨아들여서 시장우위를 점하게 되면, 정책이나 문화 같은 다른 영역에도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됨

2014년도에 도입된 도서정가제가 출판사의 지배영향력 행사를 차단하려는 시도였다면, 

지금 웹소설쪽에 도서정가제 떡밥을 뿌리는 건 웹플랫폼이 지배영향력을 가져가는 걸 차단하려는 시도라고 봄


효과가 있을까?

만약에 웹소설에 정가제가 도입된다면 분명 효과가 있을 거임


우리 집에 있는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예로 들자면, 

한 줄에 공백제외 26자, 한 쪽에 22줄 즉 600자 약간 안 되는 글자수가 들어감

본문이 117페이지고, 중간에 장제목 같은 건 없으므로 글자 수는 약 7만 자라고 할 수 있겠음

웹소설에서 7만 자면 한 20편쯤 될까? 30편은 안 넘을 거고, 편당 100원이면 3천원 미만에 볼 수 있는 소설

이 책의 정가는 만원임


도서정가제가 시행된다면 웹소설의 텍스트당 비용과 종이책(혹은 타협해서 e북)의 텍스트당 비용을 대등하게 맞추려고 들 가능성이 높음

예시로 든 책의 편당 비용이 200원이나 300원으로 올라간다고 보면 적절하겠음

그래야 독자가 웹플랫폼으로 빨려들어가는 걸 조금이나마 저지하지

독자 입장에서는 대악재고


둘째로는 작가 쪽 이슈인데, 

일반적으로 웹소설이나 e북 플랫폼이 종이책보다 작가에게 유리함

물리적인 인쇄와 제본, 유통, 창고보관 등이 다 필요없고, 레이아웃도 자주 쓰이는 유형 중에 대충 골라잡고, 심지어는 표지도 선택지로 나열해 줌

e북은 무료출판이 가능한 시대가 왔고, 


꼭 무료출판이 아니더라도 이런저런 제반비용이 절감되므로 싸게 팔면서도 작가에게 더 많은 인세를 줄 수 있음

웹이나 e북 플랫폼도 그걸 강점으로 홍보를 하고 있고


노벨피아도 결제금액의 37%가 수수료로 나가고 나머지 63%가 작가한테 들어가는 걸로 알고 있는데

위에서도 말했다시피 종이책에서 작가의 몫은 10%

판매가는 종이책의 1/3 e북의 1/2 수준이지만 실질 작가에게 들어가는 몫은 두 배가 됨


플랫폼이 활성화될수록 작가도 빨려들어감

물론 지금은 웹소설의 문법/연재방식과 일반소설(꼭 순문이 아니더라도 종이책 장르문학 등)의 문법/연재방식이 꽤 다르지만


검증된 작가의 글은 꼭 종이로 인쇄되지 않더라도 많은 독자를 끌어들일 수 있고, 

노벨피아, 문피아, 아니면 다른 어디가 됐든 

기존 소설/라노벨 등을 웹으로 도입하는 것 이외에 신간을 계약하고 독점연재하는 건 시기와 순서의 문제일 뿐 필연이라고 봄


책의 전자화가 당연시되면, 지금 게임 굿즈로 일러북 같은 게 나오는 것처럼 종이책은 부수적인 굿즈가 될 거임

출판사 일가실직데샷


난 출판계 시장규모가 아직도 과대평가되어 있다고 보고 도서정가제를 비롯해 소비자에게 부담을 전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내년에 또 있을 도서정가제 개정안 회의에서 출판계가 뭐라고 떠들지는 모르겠지만 

웹소설이나 웹툰 쪽에 정가제를 묻히려는 시도는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