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이란 것은 의외로 묻히기 쉽다


자기 재능이 뭔지 처음부터 알 수 있는 것도 아닌 데다가 재능을 알만한 일을 자주 할 수 있는 게 아니니 말이다.


그림에 재능이 있는지 알려면 일단 뭘 그려야 하고

요리에 재능이 있는지 알려면 고기라도 한번 구워봐야 한다.


그나마 앞에 든 예시처럼 평소 자기생활에서 경험해보는 것들과 관련이 있는 재능이라면 알기라도 쉽지 매니악한 재능이면 평생 모르고 사는 경우도 있다.


막말로 비행기 조종 재능을 평범한 이가 확인할 방법이 있을까? 

99%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재능이 뭐가 있는지 알 수 있다.

딱히 초능력 같은 건 아니다.


그저 이 망할 꿈의 세계에서 몇천년이고 축적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통찰력.

한 마디로 짬이 드럽게 많이 쌓인 거다.


"하 진짜 얻고 싶어서 얻은 게 아닌데. 에휴...이제 와서 불평해봤자 뭐하냐."


이 망할 꿈의 세계에 빠진지도 3900년 정도.


어느 날 갑자기 이곳에 끌려온 나는 

탈출하기 위해 이 세계가 주는 미션을 깨고 있었다.


이 꿈의 세계가 주는 미션은 단 하나.

[지금 육체의 정점을 찍어라.]

이게 전부다.


근데 문제는 이것이 반복미션이라는 점이다.


"이번이 107번째...정말 참 길었어."


꿈의 세계에서 난 몇번이고 신체가 바뀌었다.


처음 여기서 눈을 때부터 원래 내 몸이 아니었고 정점을 찍을 때마다 새 신체로 교체됐다.


나와 비슷한 남성 신체부터 시작해 인종, 나이, 심지어 성별까지 다른 신체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신체에 따라 재능도 다 달랐다.


학자, 마법사, 연금술사, 성직자 등등

별의 별 게 다 있었다.

그리고 그 신체의 재능이 뭐가 있는지 알아가는 건 전적으로 내 몫이었다.


'진짜 처음엔 개고생했지.'


그나마 맞는 방향으로 가면 정답이라고 알려주는 시스템이 있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지


아니었다면 107번은 커녕 50번도 못했을 게 분명했다.


"이번이 마지막."


하지만 앞에서 얘기했던 모든 이야기는 이제 아무래도 좋은 얘기였다.


이 꿈의 세계에서

처음 107이라고 쓰였던 저 공중에 불투명하게 떠있는 게임 상태창 같은 것.

지금 거기에는 1이라는 숫자가 표시되고 있었다.


내가 신체의 정점을 찍을 때마다 1씩 감소했던 저 상태창.


그래, 이번이 마지막.

이 신체가 정점으로 오르는 순간 드디어 저 숫자는 0 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 1분 뒤면 난 대마법사. 10서클을 뛰어넘는 존재가 되는 거지.'


그리고 정점에 도달한다.

오래된 경험에서 우러러 나온 감으로 알 수 있었다. 


'근데 불안한 점이 있다면...'


저것이 0이 된다고 해서 내가 현실 세계로 돌아갈 수 있냐는 점이었다.




일단 내가 이곳을 다른 이세계도 아닌 꿈의 세계라고 부르는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이곳으로 오기 직전 한 일이 수면이라는 점.


그리고 꿈의 세계로 오기 일주일 전부터 세간을 뜨겁게 달궜던 어느 기이한 사건이 지금 내 상황과 너무 닮았다는 점이었다.


'솔직히 이곳이 꿈이 아닐 수도 있지만...정황상 아무리 봐도 그 뇌사사건들과 연관이 있단 말이지.'


원인불명의 뇌사.

어제까지 멀쩡했던 사람이 하룻밤 사이에 뇌가 죽는 일이 일어났다는 소식은 전국을 뜨겁게 달궜었다.


사실 숫자만 따지면 그 사건은 그리 뜨겁게 화제가 될 일은 아니었다.


애초에 원인불명의 사건사고는 매년 일어나고 하루가 멀다하고 몬스터나 교통사고 등으로 죽는 사람이 나오고 있는데 고작 17명의 죽음이 그렇게 눈에 띌리가 있을리가.


하지만 그 17명 중에 한명이 이 나라 대통령이라는 점, 그리고 그 완벽하게 뇌가 죽기 전 그들이 보인 기이한 행동은 전국민의 이목을 잡기 충분했다.


- 단련!단련!단련!단련!단련!!!!

- 유체의밀도와점도를계산해봤을때터뷸런트플로우...


그들은 뇌가 완벽하게 죽기 전까지 무언가를 계속 하려고 했다.

그것도 그들이 이전에 해본 적이 아예 없거나 별로 관심이 없었던 것을.


미친듯이.

자신의 신체가 망가지든 말든

죽을 듯이 맹목적으로


그 꺼림찍한 일을 찍은 영상이 와튜브 조회수 1억이상을 달성했으니 이게 얼마나 심각했는지는 말 다한 셈이다.


'그리고 특별수사관에서 그 피해자들의 기억을 읽었었지.'


수사관이 발표한 그들의 마지막 기억.


그것은 어느 새하얀 공간. 

이것저것 갑자기 생겨나고 사라지는 기이한 곳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는 모습.


그래. 지금 이 꿈의 세계와 너무 흡사했다.


'생각해보면 난 어떻게 안 미치고 여기까지 왔는지 몰라.'


흔해빠진 s급 헌터를 동경하는 고2학생인 내가 어떻게 미치지 않고 여기까지 왔는지.

정말 기적같은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하 뭐래. 괜한 생각은 이제 그만하고..."


집중하자.


그래 이제 1분 동안의 마나서클 조정만 끝난다면 난 마법계 헌터들의 꿈인 10서클마저 뛰어넘는 존재로 거듭날 것이다.


마나 하나하나.

세포 하나하나


잡념을 떨치고 머리속을 한번 비웠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그러면서도 빠르게 마나와 몸을 융합시켰다.


고통은 없었다.

그저 편안하고 졸렸다. 마치 이대로 흩어져 사라질 것처럼.


우주가 내게 노래했고

별빛이 내게 속삭였다.


그렇게 잎사귀에 붙은 물이 바닥에 떨이지는 찰나의 시간이 지났고


다시 눈을 떴을때 나는 달라진 신체와 함께 그토록 꿈에 그리던 광경을 보게 되었다.


[0]


그래. 이걸로 끝.

드디어 내 3천년이 넘는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함성이 저절로 나왔다.

세상 저편까지 들리도록 쩌렁쩌렁하게 목소리를 높였다.


이제 자유다.

이제 자유-


[수고했다.]

"어..?"


갑자기 눈 앞에 게임 상태창 같은 것이 나타났다.


[네 덕분에 그들이 얼마나 자랄 수 있는지 알 수 있었어. 다행히 문제없이 잘 크겠구나.]


"...뭐?"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그런 의문이 머릿속을 뒤덮었다.


"지금 뭐라는...아니지 당신 누구야?"


[수호자. 생명의 수호자다. 하지만 잊어도 좋다. 난 이제 얼마안가 사라질테니까.]


"뭐? 아니아니. 제대로 설명해. 수호자고 자시고 날 여기에 왜 가둬둔거야?"


솔직히 다른 건 아무래도 좋았다.

그저 왜 내가 이딴 곳에 떨어진 건지, 이에 대한 억울함을 풀고 싶었을 뿐이었다.


[수호자는 마나가 생겨날 때까지 생명체를 보호하는 존재다. 그리고 마나가 세상에 생기기 시작하면 사라지는 존재지.]


[나는 생명체 중 가장 발전 가능성이 높은 현 인류가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언제라도 다른 세계의 존재가 침공할 수 있으니까 그들이 잘 해쳐나갈 수 있는지 알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사라져가는 내에겐 큰 힘이 없었다. 그렇기에 너를 비롯한 이들을 불러 현재 가장 뛰어난 인류가 얼마나 강해질 수 있는지 확인했다.]


[여러번 실패가 있긴 했지만 너 덕분에 성공했구나.]


"...그러니까."


너는 마나 나올때까지 생명체 남기는 놈인데

사라지기 직전 

인류가 얼마나 발전할 수 있는지 궁금해서 


나를 아무 이유없이 그 지랄을 시켰다는 거야?


[맞다. 자랑스럽게 생각해라.]


"하..씨발. 어이가 없네."


너무나 터무니 없는 이유

그냥 궁금해서 아무나 뽑았어요라니


"하..그래 수호자님아. 그래서 열심히 일한 나한테 보상은 있는 거지?"


[보상? 무슨 소리인가. 인류의 발전 가능성을 보여준 영광만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뭐?"


[107명 중 24명은 네가 이 일에 적응할 수 있도록 자네에게 맞춘 이들며 난이도 또한 계속 조절해주었지.]


그래, 맞는 말이긴 했다.

실제로 처음 10댓명 정도는 방향성만 잘 잡으면 10년안에 정점을 찍었었다.


그리고 정점을 찍는 난이도 또한 뒤로 갈수록 힘들어지는 구조였다.


[너는 시간의 속박을 벗어나 지식을 쌓았고 다양한 경험을 했지. 덜떨어진 자네한텐 꿈도 꾸지 못할 일들을 말이야.]


"...씨발. 웃기지마."


부정적인 감정이 터질듯이 폭발했다.

3천년동안 쌓이고 쌓인 분노와 억울함, 절망.


참아왔던 것들이 봇물 터지듯이 솟구쳤다.


"...야. 씨발 새끼야. 당장 보상 해주고 나 돌려보내. 너 같은 놈한테 욕하는 시간도 아까우니까."


[그런가. 관점이 다른가보군.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에겐 이제 아무런 힘이 없다. 그리고 곧 사라지지.]


"뭐 씨발?"


[내가 사라지는 순간 넌 무사히 깨어날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야 잠깐만. 이 개새끼야. 거기서 거기서라고!!!!"


[뭐 너도 하나---


상태창은 그 다음 글을 표시하지 못하고 사라졌다.

그리고 곧 어둠이 세상을 덮쳤다.


새하얗던 공간은 순식간에 검게 물들었고

얼마안가 어둠이 내 몸까지 뒤덮기 시작했다.


분노와 억울함, 그리고 허무함이 담긴 비명을 지르며 난 그대로 점점 정신을 잃었다.


.

.

.

.


"씨바아아아알~!!!!"


분노에 찬 외침과 함께 나는 정신을 차렸다.


"하.하..여긴 내...방?"


고1때부터 쓴 1인용 침대와 이불

필기구와 책이 놓여져 있는 책상

그리고 구석탱이에서 충전중인 휴대폰까지


거의 4천년동안 보지 못했던 이젠 조금 낯선 내 방이었다.


"꿈?...그게? 아니야."


혼란스러웠다.

머릿속이 하나도 정리가 안됐다.


"하...진정하자. 그래...일단. 오늘 며칠이지?"


현재 상황을 파악하고자 나는 몸을 일으켜 휴대폰을 챙기려고 했다.


하지만 몸을 움직인 순간


나는...순간적으로 지금 몸을 평가하고 말았다.


"...쓰레기."


근육도, 

마나회로도, 

두뇌도.


어디 하나 뛰어난 곳이 없다.

처음 꿈의 세계때 썼던 육체보다도 더.


- 덜떨어진 자네한텐..

"..."


순간 그 망할 수호자라는 놈의 말이 머리를 스쳤다.


덜떨어진...

그래, 생각해보면 그놈도 자기 짓이 인간한테 얼마나 고된 일인지는 알았을 거다.


그렇기에 그놈은 자기 궁금증 해소에 쓸 인간의 기준을 어느정도 정했을 것이다.


인류의 발전에 그닥 도움이 안되거나 해가 되는 놈들.


확실한 건 절대 아니다.

이건 단순한 내 망상이다.


그런데...너무나도 합리적이고 사실처럼 느껴졌다.


"개쓰레기였네.. 나."


옛날부터 자기 주제는 안다고 생각했는데 택도 없는 소리였다.


지금 내 신체는 잘해봐야 c급.

아니 앞으로 상향평준화 될 걸 생각하면 d급이 한계였다.

마법계열이든 신성계열이든 전사계열이든 말이다.


그렇다고 학자같은 쪽을 노린다?


지식은 있다.

하지만 두뇌회전이 느리다. 

기억력은 수준급인게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게 끝. 


잠깐은 대성할지도 모르지만 금방 평범한 수준으로 떨어질게 분명했다


"하..씨발 뒤지고 싶다."


자괴감이 들었다.

인류 최고의 재능을 가진 이들의 신체에 비해 나는 길거리 돌맹이만도 못했다.


차라리 그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몰랐다면 

아마 먹지 못하는 포도를 신포도라고 자기 합리화를 하는 여우처럼 멍청하게 자기 삶을 살았을 텐데.


안타깝게도 난 그 포도 맛을 알았다.

정상을 알았다.


그리고 다시는 그 맛을, 그 정상의 경치를 보지 못한다.


"..."


그 망할 수호자 놈은 양심도 없었을 뿐더러 멍청했다.


그 4천년의 세월 자체가 포상이라고?

좋게 쓸 수 있는 힘이 된다고?


그건 빙산의 일각. 

아주 작은 장점일 뿐.


앞으로 평생 짊어질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과 열등감을 생각한다면...

이건 끔찍한 저주였다.


.

.

.

.


피폐물 소재 쓰려고 했는데 쓰다보니 너무 싱거워 졌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