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2030] 청년들이 빠진 회귀·빙의·환생




중학생 때부터 무협지를 좋아했다. 검기(劍氣)가 난무하는 생사결(生死決) 장면만 나오면 설렜다. 학창 시절 무협지 빌려 볼 책 대여점이 사라져 가는 게 아쉬웠고, 최근 그 장소가 웹 소설 플랫폼으로 부활한 게 반가웠다.






그런데 변한 건 무협지 읽을 공간만이 아니었다. ‘회·빙·환’. 회귀, 빙의, 환생의 앞 글자를 딴 이 단어 없인 요즘 인기 무협 줄거리를 설명할 수가 없다. 무협만이 아니다. 남녀 간 사랑을 그린 로맨스물 등 다양한 웹 소설 인기작 주제가 회·빙·환이다. 과거로 돌아가고, 다른 사람 몸에 내 혼을 덧씌우고, 다른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이 주제가 어찌나 화제인지 최근에는 ‘환혼’(빙의) ‘재벌 집 막내아들’(회귀) 같은 방송 드라마 주제로 옮겨붙었다. 일상에도 침범 중이다. “방구석 집순이였던 내가 이 세계에서는 정규직?” 등 자신의 일상에 일어났으면 하는 바람을 웹 소설 제목에 빗대서 적는 밈(meme)이 소셜미디어에 자주 등장한다. 나로 친다면 “방구석 집순이였던 내가 이 세계에서는 매일 특종 기자?”라 적는 식이다. ‘회귀·빙의·환생’의 인기 요인은 각 단어의 차이점보다 공통점에 있을 것이다. ‘회·빙·환’은 각각 방식은 다르지만 목적만큼은 “인생을 바꾼다”로 같다. 인생을 다시 바꿀 기회를 그린 작품들이 사랑받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작품을 사랑하는 주 고객층 연령대는 공교롭게도 젊다. 총이용자가 120만명에 이르는 웹 소설 플랫폼 문피아는 지난해 2월 기준 가입자 61%가 10~20대였다. 얼핏 “젊은 층이 현실 회피 목적으로 인생을 바꾸는 작품을 통해 대리 만족을 얻는다”는 해석이 먼저 나올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인기 줄거리 면면을 보면 이런 해석이 꼭 들어맞는다고 보긴 어렵다. 회피보다는 적극적 풍자에 가깝게 읽힌다. 회·빙·환 소설에는 황가(皇家)의 자식으로 환생하는 등 현실을 완전히 벗어난 설정만 있는 게 아니다. 부동산과 비트코인 등 실제 현실에 있던 사건을 예측해 부를 쌓는 설정도 많다. 현실에 존재하긴 하지만, 자신들에겐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행운들을 콕 집어 쓴 것이다. 그 부의 대부분이 자신에게 성공할 기회를 주지 않았던 불합리한 제도나 정치권을 바꾸는 데 쓰이기도 한다.



회·빙·환 주제에 짝꿍처럼 따라오는 인기 주제가 ‘악녀’ ‘마왕’이란 점도 흥미롭다. 알고 보면 누구보다 정의롭고 똑똑한 주인공이 정보다는 실리를 추구하다 보니 무지하고 악랄한 정적들에게 ‘악녀’ ‘마왕’으로 폄하당한다는 설정이다. 정적들은 특히 주인공을 악녀로 몰아가는 데 ‘거짓 뉴스’를 애용한다. 이런 거짓 뉴스를 반대로 뒤집어 주인공이 정적들을 혼내줄 때 독자들은 “사이다 전개”라며 환호한다.



어쩌면 요즘 젊은 층은 무수히 많은 회·빙·환 작품을 통해, 살면서 느낀 팍팍함의 원인을 곱씹어 보는 게 아닐까. 그렇기에 요즘 젊은 층의 바람을 읽고 싶다면 제목의 유치함을 꾹 참고 인기 회·빙·환 웹 소설 한번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초자연적인 힘을 빌려서라도 고치고 싶은 현실이 무엇인지 담겨 있을지도

https://www.chosun.com/opinion/cafe_2040/2022/12/02/R6UPWLAJSJDQ3F2SAV2RF5IFD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