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용사... 옆에 있어요?”

“여기 있어.”

“손, 손 좀 붙잡아 주세요. 어두워서, 그... 무서워서.”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용사, 나 그... 화장실, 가고 싶은데...”

“잠시만.”

“미안, 걸을 수만 있었어도...”

 

어째서, 우리들이 보답 받지 못했는지.

 

어째서 우리들이 이런 처지로 병들어 죽어가야 하는지.

 

“버, 벌레가 기어다녀요... 벌레가.”

“정신 차려 프리데! 진정해, 심호흡 하고...”

 

이제는 모르겠다.

 

“쿨럭, 케흑, 크... 하아, 하아...”

“아리아.”

“있지, 나 죽으면 고향에다 묻어주라.”

“그런 말 하지 마.”

 

왜 우리가 이 꼴이 나면서까지, 인류를 위해 싸웠는지.

 

도대체 왜, 마왕을 죽인 우리가 허름한 판자 집에서 하루하루 병 들어 죽어가야 하는지.

 

나는 시발, 도저히 모르겠다고.

 

 

*

 

 

평범한 마을 꼬마로 태어났다.

 

농사나 지으며 살 것 같았는데 어느 날 성검에게 선택받았다.

 

소꿉친구 마법사와 함께 여정에 올라섰다.

 

마왕과 마수들의 군세는 상상 이상이었다.

 

피비린내가 끊이지 않는 전장, 휘황찬란했어야 할 여정은 더럽고 질척이는 암흑 속에서 진행되었다.

 

도저히 성한 몸으로 여정을 끝낼 수 없을 정도로.

 

일곱 개의 용사 파티와 일곱 명의 용사.

 

그 중 몸이 멀쩡하지 않은 파티는 우리뿐이었다.

 

다른 용사들이 어디 마을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혹은 다른 병사들과 합심해 최전선도 아닌 곳에서 싸울 때.

 

오직 우리만이 극소수정예로 전선을 뚫고 들어가, 마왕성에 도달했다.

 

하루 빨리 이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 말이다.

 

“크하하하, 고작 다섯으로 이 몸을 막겠다고!? 그것도, 용사 일곱이 동시에 쳐들어온 것도 아닌 한 명이서 말이냐?”

 

빌어먹을 정도로 강한 마왕이 우릴 반겼다,

 

나는 마왕보다 도저히 앞서는 점이 없었다.

 

속도는 녀석이 두 배는 더 빨랐고, 방어력 또한 뚫지 못할 정도였으며.

마법은 가히 신의 경지에 올랐고, 심지어 죽음의 저주까지 다루고 있었다.

 

사상 최강이자 최악, 최흉의 마왕.

 

지금까지 나타난 모든 역사 속 마왕보다 녀석이 강하다는 소문은 거짓이 아니었다.

 

하지만 난 혼자가 아니었다.

 

이곳까지 함께해 준 동료들이 있었으니.

 

“거룩한 빛이 함께하기를.”

 

여사제가 눈을 감고 기도를 올렸다.

 

성녀도 아니고 평범한 사제에 불과한 그녀였지만, 여정 끝에 행하는 신성력은 이미 기적이었다.

 

그 누가 여사제를 성녀라 부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소용없다, 고작 인간의 정신력으로 버틸 수 있는 저주가 아니다!”

 

마왕이 외쳤지만, 여사제는 담담히 말할 뿐이었다.

 

“그렇다면, 버티지 않으면 그만이지요.”

 

여사제는 자신의 정신력마저 소모해가며 기적을 행사했다.

 

마침내 저주가 해주되어 만반의 컨디션을 지니게 된 우리는 마하의 속도로 움직이는 마왕을 마주해야 했다.

 

심지어 그 마왕은 절대 수호의 결계를 온 몸에 두르고 있었으니.

 

원래라면 그의 피부에 닿는 것조차 불가능했으리라.

 

“더 빠르게, 더 빠르게...”

 

하지만 도적은 달렸다.

 

그 누구보다 뛰는 걸 좋아했던, 자유를 찾아 우리에게 합류했던 그 날의 소녀처럼.

 

그녀는 자유분방하게, 그러나 누구보다 빠르게 달렸다.

 

그 속도는 마왕을 잠시나마 따라잡을 수 있을 정도였다.

 

“내 다리를 바치는 한이 있더라도!”

 

그녀의 다리 근육이 찢어지고 비명을 질러도, 달리기는커녕 걷는 것조차 불가능한 경지에 이르더라도.

 

이번 한 번만, 도적은 자신의 자유를 바쳐 마침내 마왕의 앞길을 가로 막았다.

 

“꺼져!”

 

그리고 발차기를 날렸다.

 

결계에 가로막혀 통하지도 않은데다가,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양 다리가 뜯어져 나갔지만.

 

단 한 순간, 마왕의 움직임을 멈출 수는 있었다.

 

우리의 엘프 궁수의 눈은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이 일격을 허락해준 도적에게 감사를.”

 

그녀가 가할 수 있는 가장 거룩하고도 위대한 일격.

 

용의 마정석으로 제작된 화살은 이미 궁수의 활을 떠나간 이후였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거대한 섬광과 함께 공간을 일그러뜨릴 정도의 일격이 마왕의 결계에 명중했다.

 

내가 눈을 뜨고 있었다면 분명 실명해버리고 말았겠지.

 

“명중했어, 용사!!!”

 

들려오는 목소리에 감은 눈을 떴다.

 

볼 수 있었던 것은, 망가진 활과 뜯겨진 궁수의 손가락.

 

“루나!”

“난 신경 쓰지 말고 마왕에게 집중해!”

 

저 성실한 엘프는 표적에 명중했는지를 보기 위해 눈을 감고 있지도 않았다.

 

그녀의 눈이 타들어가고 있었지만, 그곳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마침내 기회가 찾아왔다.

 

“크아아아악!!!”

 

마왕의 결계는 그 일격을 버티지 못해 박살났고,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눈을 부여잡고 있었다.

 

나는 성검을 들어 그에게 질주했다.

 

“이, 이 하찮은 필멸자 따위들이!”

 

그 말과 함께, 마왕을 중심으로 72개의 암흑 마법진이 펼쳐졌다.

 

하나하나가 강렬한 대마법. 

 

애초부터 전력을 발휘하고 있지 않았다는 걸 반증하는 듯, 그 마법진은 전부 나를 겨누며 죽음을 선고하고 있었다.

 

“어딜!”

 

그러나 그의 마법은 사전에 파악해둔 후였다.

 

마법사가 인생 최후의 마법을 선언한다.

 

디스펠, 마법을 무효화하는 마법.

 

“소용없다, 계집! 내 마법을 전부 멈출 수는...”

“대가로서 내 모든 서클과 마력회로를 바친다.”

“이런, 썩을!”

 

마법 하나를 익힐 때마다 날 듯이 좋아하던 그녀였는데.

더 이상 그런 모습을 볼 수는 없겠구나.

 

마법사는 온 몸의 마력회로와 8개의 서클을 불태워, 72번의 디스펠 마법을 동시에 발동했다.

 

마법진이 하나하나 깨져간다. 

 

그 여파로 온 몸에 피를 흘리며 쓰러진 마법사를 뒤로 한 채, 마침내 마왕의 앞에 도달했다.

 

만약 녀석이 방심하고 있지만 않았더라면.

 

그녀들이 조금이라도 망설이며 온 몸을 희생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절대 녀석의 발끝에도 미칠 수 없었겠지.

 

모두에게 감사를.

 

“마왕!!!”

“부름에 응하라, 마검 다인...”

“둘까보냐!”

 

마검조차 소환하고 있지 않았던 마왕보다, 내가 조금 더 빨랐다.


내 검은 마왕의 목에 도달했지만 녀석의 피부를 뚫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나 역시 희생할 수 있는 게 남아있다.

 

성검을 바친다.

 

내게 깃든 용사의 힘의 원천. 내가 가진 모든 경지.

 

그녀들은 정신을 희생하고, 자유를 희생하고, 미래를 희생하고 꿈을 희생했다.

 

나 역시 내 힘을 모조리 희생시켜, 성검을 폭발시켰다.

 

브로큰 판타즘.

 

“뒤져!!!”

 

성검에 잠재된 여신의 힘은 폭파하여 거대한 신성을 이루었고.

 

―콰앙

 

그것이 일순간에 터져 무적이라 불렸던 마왕의 피부를 뚫고 들어가 그의 머리를 날려버렸다.

 

마왕이 전력을 내기도 전에, 속전속결로 몰아붙인다.

 

그것이 우리의 전략이었다.

 

박살난 성검 조각들은 마왕의 사체와 함께 바닥에 널부러졌다.

 

그의 몸이 가루가 되어 흩날려 소멸하고, 마찬가지로 마왕의 권능으로 움직이던 세계의 모든 마수들 또한 소멸한다.

 

이겼다.

 

세상에는 평화가 찾아올 것이다.

 

나는 방긋 웃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드, 드디어...”

“이겼어! 이겼다고!”

 

모두가 바닥에 쓰러져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지만, 입꼬리는 내려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앞으로 세상에 찾아올 아름다운 평화를 상상하며, 우리는 아이처럼 활발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어리석게도 말이다.

 

 

*

 

 

“프리데, 정신은 어때.”

“조금 소곤거리는 말이 들리긴 한데, 아직은 괜찮아요.”

 

귀환 마법을 통해 왕도로 돌아왔다.

 

이제 왕에게 가서 마왕을 처치했다는 보고를 올리고, 평화로워진 세상에서 한적한 여생을 보낼 일만이 남았다.

 

다친 그녀들 또한, 왕성과 교단의 도움을 받는다면 치료는 충분히 가능하겠지.

 

“다들 조금만 참아.”

“네.”

“으응.”

 

그렇게 난장판이 된 몸 상태를 겨우 이끌고, 왕성 앞에 도달한 우릴 기다리는 것은.

 

-여섯 용사의 마왕 토벌의 위업을 축하하며.

 

축복도, 감사도 아닌 절망이었다.

 

“저기 봐, 도망자 케인이다.”

“마왕과의 전투가 무서워 도망갔다지?”

 

...뭐?

 

성 안의 모두가 우릴 보며 웅성이고 있었다.

 

“겁쟁이 용사파티.”

“하긴, 견습 마법사나 노예 출신 엘프 궁수를 데리고 다닐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어.”

“성녀도 아니고 여사제라며?”

“도적은 무슨, 천한 출신 녀석이 뭘 할 수가 있겠어. 저것 봐, 다리도 병신이 됐네 하하.”

 

내 품에 안긴 도적이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다.

 

“어, 용사? 이게 무슨...”

 

마법사 또한 우리의 처지에 이상함을 느낀다.

 

“뭐야 이게.”

 

우리는 서둘러 왕성의 알현실로 향했다.

 

그곳에는 나를 제외한 여섯 명의 용사가 무릎을 꿇고 앉아, 왕에게 찬사를 받고 있었다.

 

“허허, 수고했다. 역시 용사들이야. 마왕을 토벌해 내다니.”

“네, 케인이 도중에 도망쳐서 큰일 날 뻔했지만요.”

 

그게 무슨 소리야.

 

인기척에 등을 돌린 용사들과, 왕, 그리고 다른 왕족이나 제국의 귀족들이 모조리 시선을 돌린다.

 

용사들의 비웃음 섞인 표정을 보니, 나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깨달았다.

 

배신당했다.

 

공적을 빼앗겼다.

 

왜?

 

“지, 지랄하지마! 마왕은 우리가 쓰러뜨렸어! 최전선도 아닌 곳에서 떵떵대는 너희가 무슨 수로!”

“저것 보세요, 왕이시여. 자신의 어리숙함을 인정하지 못하고 거짓말을 쳐대는 것이.”

“그게 무슨...”

 

저 녀석들.

사전에 입을 맞춰둔 후였다.

 

우리의 입은 다섯, 녀석들은 여섯.

 

하지만 우린 하나같이 다친데다가 출신도 천했다.

 

평범한 마을 청년.

신원불명인 도적.

노예 출신 엘프.

교단의 4대 성녀도 아닌 일개 사제.

견습 출신 마법사까지.

 

하나같이 인맥으로만 짜여진 다른 용사파티와는 딴 판이었다.

 

왕이 빈 내 허리춤을 보며 질문한다.

 

“케인, 자네의 성검은 어디 있지?”

“마왕을 쓰러뜨리는데 소모했습니다.”

“지랄. 잃어버린 거겠지. 여신의 은총이 담긴 그 검을 말이야.”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화가 난 도적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

 

다른 파티원들 또한, 하나하나 반박하기 시작했다.

 

허나 그들은 이미 다른 용사들의 감언이설에 넘어가, 귀를 틀어막은 후였다.

 

왜일까.

 

마왕을 처치만 하면 인정받을 수 있을 줄 알았다.

 

사랑스러운 이 세상의 평화를 위해서.

솔직히 보상을 크게 바란 것도 아니었다.

 

그냥 우리 고생했으니 알아만 줬으면 좋겠다고.

 

세상의 평화에 이바지했으니까, 이런 몸만 치료하게 해달라고.

 

우리는 사람들의 웃음만 볼 수 있다면 괜찮다고.

 

강행길을 걸었다.

 

오로지 마수들을 베고, 사천왕을 죽이고, 어둠의 계곡을 넘어 성에 도달할 생각만 했다.

 

다른 녀석들이 휴식을 취하거나 이미지에 신경 쓸 때, 우리는 수련하고 적을 베고 또 수련하며 마침내 마왕을 잡았단 말이다.

 

녀석들이, 용사랍시고 꺼드럭대며 시민들의 고혈을 빨아 먹을 때.

 

우리는 빌어먹을 마수들의 피를 뒤집어쓰며 그들의 고기를 먹고 살았단 말이다.

 

1년에 마수와 마족들에게 죽는 사람의 수가 10만 명을 넘어간다.

 

그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이고자 노력했는데, 왜.

 

우리가 천하다는 이유로.

 

왜.

 

“자네가 마왕을 잡았다는... 증거라도 있나?”

 

마왕의 사체는 머지않아 재가 되어 흩날렸으니 회수할 수 없었다.

 

아마 성검의 빛에 쬐였기 때문이리라.

 

“증거! 저희 몸 상태가 안 보이십니까? 마왕을 잡았는데도 멀쩡한 녀석들보다 저희가...”

“케인과 그의 파티는 도망치는 와중 사천왕에게 붙잡혀 저리 됐습니다.”

“그 말이 확실한가?”

“저희 측의 성녀가 두 눈으로 목격했으니 확실합니다. 여신님께 맹세코 라는 말도 덧붙여 달라는 군요.”

“애초에 마왕이 그렇게까지 쎄지도 않았고 말이죠.”

 

마왕이 약했다고?

 

어림없는 소리.

 

녀석은 오만할지언정 절대 약하지 않았다.

 

아마 모든 용사파티가 동시에 달려들어도 패배가 명확했을 것이다.

 

처음부터 전력을 발휘했다간 우리 인간계는 이미 멸망하고도 남았겠지.

 

우리가 마왕을 쓰러뜨릴 수 있었던 건 순전히 그의 방심과 나태함 덕분이었다.

 

“그러게 케인, 도망가지만 않았어도 너도 여기서 영광을 누릴 수 있었을 텐데.”

“이 개새끼들이!”

 

나는 격분하여 주먹을 휘두르고자 그들에게 달렸다.

 

허나 용사의 힘을 잃은 나완 다르게 녀석들은 멀쩡했다.

 

“감히, 폐하의 어전에서 이게 뭐하는 짓이냐!”

 

성검만, 성검만 멀쩡했더라면.

 

나를 순식간에 제압한 청발의 용사.

그를 사랑스럽게 쳐다보던 왕국의 공주가 소리친다.

 

“처형하셔야 합니다! 저런 가짜 용사 따윈!”

“죽여! 죽여 버려!”

“우우우우우!”

 

성난 군중들이 우릴 둘러싸고 처형을 외치기 시작했다.

 

파티원들이 겁에 질린 표정을 짓는다.

 

왕이 싸늘한 눈동자로 입을 열려 할 때, 여용사 한 명이 나서서 왕에게 간청했다.

 

“그것은 너무나 가혹한 처사이옵니다. 저희는 동료 용사의 피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한 때는 등을 맞댄 벗이니까요.

처형은 너무 하니, 마왕 토벌에 대한 폐하의 보상을 철회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건 어떨련지요.”

“이 어찌나 자비로운가. 좋다, 그러하도록 하마.”

 

모두가 용사들의 인성에 감동의 물결에 빠져든다.

 

잘못한 건 우리고 자비를 내린 것은 저들이다.

이미 그렇게 판이 짜여 있었다.

 

“병사들이여, 저들을 당장 쫒아내도록 하세요!”

 

공주의 외침에 병사들이 하나 둘 우리 파티원을 끌어내려 접근한다.

 

다리가 없어 바닥에 앉아만 있는 도적에게 한 병사가 손을 뻗었을 때.

 

내 안의 무언가가 팽 끊어지는 기분이었다.

 

“손대지 마, 시발 새끼들아!”

 

파랑머리 용사를 뿌리치고, 여자들에게 접근하는 병사를 밀쳐냈다.

 

그 모습에 관중들의 눈살이 찌푸러졌다.

 

나는 왕의 생각이 바뀌기 전에, 재빨리 말을 이었다.

 

“우리 발로 나갈 테니까.”

“멋진 척은 다 하는 군. 도망자 주제에.”

 

이번에는 갈색 머리의 용사 놈이 내게 뚜벅뚜벅 걸어와, 내 어깨를 붙잡고 귀에 속삭인다.

 

그러길래, 너무 까불었잖아, 천한 것.

 

 

 

*

 

 

 

나는 세상의 평화가 좋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웃으며 보내는 것을 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 용사가 됐다.

 

그러기 위해 동료들을 모았고.

 

결국 세상을 구원했다.

 

허나 돌아오는 것은 비난.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희생.

 

있잖아요 여신님.

 

저희는 세상을 구했는데, 왜 세상은 저희를 구해주지 않을까요.

 

저희는 정의로운데, 왜 세상은 정의롭지 않을까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여신님.

 

그로부터 1년이 지났어요.

 

저희는 고향에 돌아가지도 못하고, 겨우 주어진 헛간에서 시름시름 앓으며 죽어갔어요.

 

도적은 다리의 상처가 감염되어 죽었어요.

 

사제는 미쳐서 자살했어요.

 

궁수의 죽음은 비참했어요. 그녀는 넘어져서 머리가 깨져 죽었어요.

 

그리고 어제는 마법사가 제 품에서 수명을 다했어요.

 

여신님.

 

그런데도 아직 어린 아이들의 미소가 사랑스러워요.

 

그런데도 푸른 하늘이 아름답게 느껴지며.

 

그런데도 도시 사람들의 미소를 보니 가슴이 풀어지네요.

 

세상을 지킨 게 후회되지가 않습니다.

 

여신님,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질척거리는 마음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 까요.

 

어째서 당신은.

 

―우우웅...

 

제 앞에 다시금 성검을 내려주신 건가요.

 

또 다시 세상에 위험이 찾아오나요.

 

또 다시 저는 평화를 지키러 떠나야 하나요.

 

―푸욱

 

마왕의 십분지 일도 안 되는 이런 피라미가 인류의 위협이라고 하신 건가요.

 

왜 다른 용사들이 절 못 믿겠다는 시선으로 올려다보고 있는지 이해가 안 되네요.

 

정말 이 피라미가 그들에겐 강적이었던 걸까요?

 

만약 그렇다면 저는 또다시 평화를 지켜냈내요.

 

“흐흐.”

 

다음 적은 누구인가요.

 

백성들을 수탈하며 사치와 향락을 누리는 왕?

 

용사라는 이름을 거들먹거리며 온 도시의 미녀들에게 강제로 손을 대는 파랑 머리 용사?

 

전쟁에 필요하다는 이유로 마을 자원을 전부 빼앗아가 굶어 죽게 만들고, 뺏은 자산들을 개인 금고에 넣는 붉은 머리 용사?

 

아니면 다른 용사들일까요.

 

세상에 쓰레기들이 많네요.

 

평화에 도움이 안 돼.

 

세상이 평화롭지 않아.

 

세상은 반드시 평화로워야 해.

 

이건 제 개인적인 복수 따위가 아니에요.

 

세상의 평화를 위협하는 더러운 마족보다도 못한 쓰레기들을 청소하는, 그런 자원봉사일 뿐이죠.

 

“오, 오지 마!”

“우리가 잘못 했...”

 

용사들.

 

쓰레기.

 

―콰직

 

부패한 왕성.

 

쓰레기.

 

―콰직

 

노예상. 그리고 그들을 구매하는 귀족들.

 

쓰레기.

 

―콰직

 

교단. 여신의 이름을 파는 성자와 성녀들.

 

쓰레기.

 

―콰직

 

뒷골목. 시민들의 자유를 억제하는 더러운 버러지들.

 

쓰레기.

 

―콰직

 

마탑. 마법 실력이 아닌 신분을 중시하는 타락한 장소.

 

쓰레기.

 

―콰직

 

쓰레기. 쓰레기. 쓰레기. 쓰레기. 쓰레기. 쓰레기. 쓰레기. 쓰레기. 쓰레기. 쓰레기. 쓰레기. 쓰레기. 쓰레기. 쓰레기. 쓰레기. 쓰레기. 쓰레기. 쓰레기. 쓰레기. 쓰레기. 쓰레기. 쓰레기. 쓰레기. 쓰레기. 쓰레기. 쓰레기. 쓰레기. 쓰레기. 쓰레기. 쓰레기. 쓰레기. 쓰레기. 쓰레기. 쓰레기. 쓰레기. 쓰레기. 쓰레기. 쓰레기. 쓰레기. 쓰레기. 쓰레기. 쓰레기. 쓰레기. 쓰레기. 쓰레기. 쓰레기. 쓰레기. 쓰레기. 쓰레기. 쓰레기. 쓰레기. 쓰레기. 쓰레기. 쓰레기. 쓰레기. 쓰레기. 쓰레기. 쓰레기. 쓰레기.

 

―콰직


불타는 세상을 바라보았다.

 

평화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