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람 골치 아프게 하는 데에는 온 세상이 참 죽이 잘 맞는다니까.”


일은 생각보다도 순조롭게 풀렸다. ‘두더지’라는 이름을 받은 파티는 그 이름에 걸맞게 국경을 넘어 마왕국의 온 산을 헤집고 마왕국의 수도로 향했다. 작전계획일의 딱 절반인 6주가 지났을 때 목표 지점의 8할에 도달했다. 

다만, 다른 용사들이 두 팔 들고 환영할 호재가 적시에 터지며 이 두더지들은 그야말로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 


“마왕성에서 쿠데타가 터졌답니다.”


척후는 바쁘게 갈 길 가던 졸병들이 흘린 신문을 주워모아 보고했다. 

마왕은 마치 그리 될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낌새를 채자마자 패물과 권좌를 내버리고 달아났다고 하였다. 

마왕을 타도한다는 목적을 잃은 여러 마왕군 부대는 왕좌를 놓고 서로 칼을 겨누었다. 도회지와 산골을 가릴 것 없이 인적이 자취를 감추었고 길거리에서는 군인이 수시로 행인의 신분을 확인했다. 여행객으로 위장해 빵을 먹고 여관에서 잠을 청하던 두더지 파티는 산으로 달아났다. 


“본대와 연락은 되나? 사자, 독수리, 아니면 어디라도 좋으니까.”


“사자는 마왕국 남부에서 밀고 올라오는 중이랍니다. 그게 마지막 연락입니다. 독수리와는 중간 전달자들이 각자 안전을 확보하느라 연락이 닿지 않습니다. 당분간은 우리뿐입니다.”


헨델은 잘 웃는 사람이었지만 처음으로 얼굴을 구겼다. 다른 이들도 잠깐 말이 없었다. 

두더지의 계획은 독수리가 포섭해 놓은 내부자와 협력해 마왕의 탈출 루트를 좁혀 두는 것이었다. 정면에서 들이치고 가능한 탈출구에 매복하는 건 사자의 역할이었다. 마왕이 이미 달아난 왕성 껍데기는 두더지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돌아갈 수밖에는 없다. 죄다 장교 출신에 무공과 전략을 갖춘 사자도 아니다. 학식을 갖추고 외국어에 능통해 마왕국 내부에 녹아들 수 있는 독수리도 아니다. 외국어를 좀 할 줄 아는 사수를 제외하면 두더지에게는 오로지 땅바닥에서 살아남는 기술과 끈기밖에는 없었다. 

이대로 돌아가면 두더지에게 떨어질 몫은 없을 게 분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가야 했다. 마왕국의 혼란을 틈타지 않으면 영영 돌아갈 수 없을 땅이다. 


“…너무 상심하지 말도록. 우리 어차피, 다 땅 파먹고 살던 인간들이고, 목숨만 부지하면 다시 국경으로 빠져나가든, 아군이 마왕군을 분쇄하고 구원을 오든, 둘 중 하나는 되겠지.”


조용한 회의는 만족스럽지 못한 결론으로 끝났다. 대단한 보상이나 명예를 바라고 국경을 넘은 건 아니지만, 몇 달을 고생해서 쪽박이나 차게 생겼다는 게, 그리고 다시 왕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길바닥에서 개죽음을 당할 수도 있다는 걱정에 등골이 뻐근했다. 


헨델이 앞장섰다. 헨델은 돌이 없나 땅바닥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내리막을 터벅터벅 걷고 있으니 가을 낙엽 소리가 요란했다. 


“엎드려.”


사수가 뒤에서 어깨를 내리눌렀다. 헨델은 바로 아래 낙엽더미에 폭 파묻혔다. 즉시 엎드렸다. 바위더미 아래 숨은 돌멩이가 옆구리를 찔렀다. 

고개를 들고 앞을 바라보니 저 아래 샛길이 내려다보였다. 이쪽에 수십 명 되는 병사들이 지휘관 하나를 끼고 대오를 갖추었다. 저쪽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웬 마차 하나가 오도 가도 못 하고 갇혀 있다. 


오래 기다리지 않았다. 사수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두 대열이 가까워졌다. 사수는 라이플에 탄알을 한 발 채웠다. 

두 대열이 다섯 걸음 간격으로 가까워지는 동시에 칼이 맞부딪치기 시작했다. 그다지 듣고 싶지 않은 전장의 괴성이 계곡을 아래서부터 차근차근 채웠다. 마차는 미동도 없었다. 여러 병사가 마차를 방패삼아 숨었다가 옆에서 칼침을 맞고 쓰러졌다.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었다. 


사수는 조준경으로 그 광경을 참 자세히도 들여다보고 있었다. 

팡-하는 소리와 함께 지휘관 하나가 나뒹굴었다. 사수는 평소보다 두 배는 신속하게 차탄을 채웠다. 탄피가 낙엽더미 안으로 파묻혔다. 

타앙-하는 소리가 한 번 더. 저쪽 지휘관도 나뒹굴었다. 어딘가 얼이 빠진 인간들 같았다. 

몇 병사의 얼굴이 이쪽을 향하는 것이 보였다. 다만 그뿐, 눈앞에서 칼부림이 나는데 이 산길을 쫓아 올라올 위인은 없었을 테였다. 

마차를 두고 벌어지는 교전은 쉽사리 한쪽으로 기울지 않았다. 움직이는 사람의 형체가 하나씩 줄었다. 


사수는 세 번째 탄을 채웠으나 발사할 기회가 찾아오지 않았다. 최후의 생존자는 벌겋게 물들었다. 과다출혈. 부질없이 쓰러졌다. 

가장 먼저 소감을 발표하게 된 것은 사수였다.


“소음탄약이 다 떨어졌다.”


“혹시 마차에서 사람이 내렸습니까?”


“난 정확히 못 봤다.”


“아무도 안 내렸습니다. 그쪽만 보고 있었죠.”


“애초에 사람이 타고 있기는 했나?”



-2-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던 저 아래 샛길이 조용해진 지 십 분쯤이 지났다. 

두더지 셋은 산속에 처박혀 흙냄새를 잔뜩 맡고 있었다. 


“우리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합니까? 이러다가 땅에 파묻히겠는데요.”


“국경 넘어오고 땅속에 들어가 있던 시간만 다 합쳐서 백 일은 넘을 텐데, 왜 이제 와서 그런 타령을 하나?”


헨델이 엎드린 자리는 큼지막한 돌 덕분에 허리가 쑤셨다. 인내심이 고갈된 헨델은 얼마 없는 유머감각을 쥐어짜서 한 마디를 던졌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사수는 이번에는 총을 거두고 맨눈으로 마차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무 위에 올라 있는 척후가 무슨 신호를 보내는지 올려다볼 수가 없었다. 

보이는 건 마부가 달아나 멈춰선 마차, 그걸 에워싸고 저들끼리 싸우다가 다 죽어나간 두 무리의 병사들뿐이었다. 


“다 죽은 거 아닙니까? 제가 내려가서 살펴볼 테니까 엄호해 주시면…”


“매복이 있을 거다. 누구인지는 몰라도 마차 탈 만한 위인이 호위도 없이 움직였겠나?”


“그렇다기엔 아까 그 개판이 났을 때에도 호위는커녕 지원사격도 없었지 않습니까.”


“…”


사수가 저렇게 입을 다무는 건 대부분 암묵적 동의였다. 몸을 살짝 일으키니 낙엽과 먼지가 부스스하게 쏟아졌다. 

한 걸음을 내딛으려는 찰나에 사수가 손을 들어 주먹을 쥐었다. 

뭡니까, 하고 퉁명스럽게 받으려다 사수가 총을 겨누는 모습을 보고는 헨델도 다시 엉거주춤한 자세로 엎드렸다. 


“누가 내렸다. 귀부인이라기엔 젊어 보이고, 마력은 상당한데. 모르겠군.”


사수는 조준경에 눈을 대고 저쪽을 응시했다. 덤불에 죄 가려 헨델의 눈에는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약간이나마 잘 보이는 쪽을 찾았다. 보자… 

시대에 좀 뒤떨어진 장교 정복을 여성복 스타일에 맞춰 임의로 뜯어고쳤다. 더 길었던 아랫단을 임의로 잘라내 접어 넣었다. 어깨선이 어깨보다 한참 넓고, 계급장도 휘장도 없다. 


“장교 딸인 것 같습니다. 쏘실 겁니까?”


“쏴도 막아낼 것 같은데.”


“이쪽으로 올라옵니다.”


척후의 음성에 다시 눈앞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 나이가 많지 않아 보이는 여자가 길도 없는 산비탈을 천천히 오르고 있었다. 산을 오르는 걸음걸이가 미숙하다. 열 걸음 떼기 전에 두어 번 미끄러졌다. 공교롭게도 셋이 숨어 있는 바로 그 방향이었다. 헨델은 저 앞에 바윗돌이라도 하나 있어서 여자가 비켜 가기를 내심 바랐다. 


“반, 나무 위에 단단히 붙어 있도록. 헨델, 자네는 일어나서 저쪽 낙엽더미로.”


헨델은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잔뜩 내며 낙엽더미 아래로 몸을 숨겼다. 


한동안 조용했다. 멀리서 낙엽 밟는 소리가 약간씩 가까워졌다. 거리를 가늠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서른 걸음, 스물여덟 걸음, 스물여섯 걸음, 스물네 걸음.


“정지. 정지하십시오. 행인은 소속과 성명을 밝히십시오.”


사수의 능숙한 외국어,  걸음은 스물셋에서 멈추었다. 사수가 닦달한 덕에 헨델이 할 줄 아는 딱 네 문장 중 둘이기도 했다. 

낙엽더미 아래와 나무 위에서 사람이 하나씩 튀어나와 여인의 앞뒤를 가로막는다. 잠깐 흔들리는 눈빛.


“당신들은 누구죠? 산적인가요? 돈이라면-”


여자는 우리나라의 말로 답했다. 그 소리를 듣고 사수의 눈빛이 잠깐 바뀌었다. 

단순히 산적 소리를 들었기 때문은 아니었을 터, 산적인 것 같은 이들에게 우리나라 말부터 튀어나온 걸 보고 열이 받은 모양이었다. 

여자는 잠깐 당황하더니 손을 귀 옆으로 올렸다. 먼지투성이 헨델이 잔기침을 하는 동안 사수가 다음 말을 건네었다.


“우리는 엡실론 유격대 소속입니다. 귀하의 소속과 성명을 밝히면 귀하를 안전지대로 인도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저 엡실론 유격대라는 건 사수가 국경을 넘을 때 지어내 스무 번은 넘게 팔아먹은 이름이었다. 꽤나 그럴듯한 이름, 그걸 대면 그런 부대가 실존하지 않는다는 걸 모르는 대부분의 일반인을 손쉽게 낚아먹을 수 있었다. 심지어는 어느 부대 장교도 넘어간 적이 있다. 처음부터 뻔뻔하게 써먹은 걸 보면 사수에게는 그 거짓말이 하루 이틀 일이 아닌 것 같았다. 


“엡실론 유격대라면 국왕 직할의 부대 아닌가요? 지금 누가 작전을 지휘하기에 이런 상황에 이런 구석 산골에 박혀 있는 건가요?”


“죄송합니다. 지휘 체계가 마비되고 피아를 구별할 수 없는 상황이라 분대 생존을 목표로 은거하고 있었습니다.”


여자는 사수의 대본에 없던 방식으로 의구심을 표했다. 존재하지 않는 부대를 대체 뭐라고 알고 있는지, 그러나 사수도 능수능란하게 받아냈다. 항상 시커멓게 굳은 표정으로 먼 산만 바라보고 있더니, 누가 무슨 말을 하면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 미리 대본을 적어 놓기라도 했나 보았다. 


“저는 전임 2사단장 아케론 소장의 장녀입니다. 난리통에 피난을 가다가 습격을 당했어요.”


산골내기인 사수에게 척후가 ‘사단장’의 개념을 적절히 설명했다. 사수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사수가 셋을 대표하여 간략하게 예를 표했다. 


“안전지대로 이동하려면 산을 건너야 합니다. 산행을 견딜 수 있으시겠습니까?”


“괜찮아요.”


“그렇다면 지체 없이 출발하겠습니다. 불편이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3-


대낮에 온 산을 돌아다니며 길을 찾은 보상으로 척후는 푹 잠을 잘 수 있었다. 불침번은 나머지 둘이 한 시간 반 간격으로 맡게 되었다. 

다행히도 밤은 조용했다. 이제는 헨델이 잠에 들 시간. 

사수는 십 분 전에 이미 일어나 있었다. 정말 초인적인 정신력을 가진 인간이 분명했다. 

교대를 앞두고 헨델이 먼저 말을 꺼냈다. 


“우리나라 말을 잘하네요. 어디서 배웠을까요?"


“그야 모르지. 돈 많은 사람들 취미일 수도 있고.”


“저 여인에 대해서는 어떻게 하실 계획입니까?”


“가능하다면 데리고 철수한다. 남겨 두면 누군가의…인질이 되는 것밖에 없는 사람이다.”


방금 사수는 분명히 어떤 한 단어를 삼켰다. 


“우리가 누구를 데리고 이동할 처지가 됩니까?"


저번에 잠깐 민간인을 끼고 산행했을 때에는 하루 걸릴 거리를 이틀 반 걸렸다. 그때 헨델이 지나가는 소리로 불평을 하자 사수는 불 같이 화를 내었다. 

이번에는 화를 내지는 않았다. 오히려 차분한 얼굴이었다. 


“못 할 것도 없지. 하고자한다면 말이다.”


“명심하겠습니다.”


둘은 잠깐 침묵했다. 

그 잠깐을 입을 다물고 있었다고 졸음이 밀려들었다. 헨델은 대충 마련해 놓은 잠자리로 파고들었다. 마왕국 중심부는 가을에도 온화한 게 다행이었다. 얼마 전처럼 비가 쏟아지지도 않았고. 낙엽을 꾹꾹 눌러 천을 대충 펴 놓은 자리는 그럭저럭 누울 만 했다. 



눈을 떴다. 아니, 눈이 뜨였다. 일 분도 지나기 전에 한 시간 반이 날아서 사라졌다. 

헨델의 오늘 잠은 이걸로 끝났다. 이제 한 시간 반이 더 지나면 더 안전한 장소로 출발해야 할 테니까. 

그래야 내일은 취침 시간을 더 늘려 잡을 수 있다. 


“일어나세요.”


칠흑에서 겨우 한 끗 푸른 하늘빛을 등지고 있는 얼굴은 사수가 아니었다. 그 여인이다. 

왜 여인이 자기를 깨우는지는 몰라도 일단 헨델은 일어났다. 


“어…어쩐 일이십니까?”


“피곤해 보이기에 조금 일찍 자리로 들여보냈어요.”


“아, 그렇군요.”


사수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게 분명했다. 그렇게 군인 행세를 하던 사람이, 평소였다면 단연코 이런 일면식도 없는 여인에게 잠깐이라도 자기 일을 맡기지 않았을 텐데. 


“엡실론 유격대라는 이름은 어디에서 들었죠?”


헨델은 잔기침을 두어 번 했다. 질문의 초점이 빗나갔다. 사수가 둘러댄 내용을 믿는 사람이라면 하지 않을 질문이었다. 여인은 아까 헨델을 쳐다보는 것도 같았다. 그때부터 ‘거짓말 못하는 사람’이라고 대놓고 쓰여 있는 이 얼굴에게 무언가를 물어보려고 벼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헨델은 상황파악이 약간 늦었다. 이미 끝장난 거짓말을 수습할 방도가 있는지 잠깐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재차 질문.


“당신이 만들어낸 이름인가요?”


“…아, 아닙니다.”


그렇게 대답하는 것으로 헨델은 엡실론 유격대라는 것이 가짜라는 것을 실토하고 말았다. 그래, 어차피 시간의 문제였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했다. 

여인의 조용한 눈빛을 보니 이미 대강 눈치를 채고 있는 게 분명했다. 머리 나쁜 자신이 머리 좋은 사람을 당해낼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건 척후병 반도, 그리고 아마 사수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었다. 


“저는 들어 본 적도 없었습니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믿을게요.”


믿어 주니 고맙다고 해야 할지. 지금은 그걸로 달라질 것이 없다. 


“하나만 더 질문해도 될까요?”


“곤란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우리는 초면이지 않습니까.”


“저도 당신이 궁금해할 만한 걸 말씀드릴 테니까, 대답해 주세요. 당신들도 마왕을 처치하러 왔나요?”


여인은 대뜸 밀어붙였다. 헨델이 아무리 줏대 없는 사람이라고 하여도 두 걸음이나 물러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헨델은 새벽 날씨에 약간 움츠러들었던 허리를 바로잡았다.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나중에 안전이 확보되면 천천히 대답해 드리죠.”


“맨입에는 말 못 하겠다는 거군요. 좋아요. 제가 먼저 말해 드리겠어요. 제가 이 나라의 국왕, 다시 말해 마왕입니다. 만약 제 말이 사실이라면, 당신은 지금 저를 벨 건가요?”


“아뇨.” 


확 밀고 들어왔다. 첫 대답은 판단이 아니라 반사였다. 


“이유가 있나요?”


“당신이 마왕이건 아니건, 혹은 죄인이건 아니건, 죄에 따른 벌은 법봉 앞에서 정해져야 마땅합니다.”


찬바람에 낙엽이 몇 잎 뒹굴었다. 주변은 적막하다. 헨델은 스스로가 어디에서 그렇게 그럴듯한 말을 주워들어서 늘어놓았는지 좀 부끄러워졌다.


“얼굴만 봤을 때엔 얼빠진 사람인 줄로만 알았는데, 생각보다 마음에 드네요. 여기 오기 전에는 무슨 일을 했죠? 법학도?”


“아뇨, 재단사였습니다…옷 만드는 사람이요.”


“재단사? 칼은 좀 잘 쓰나요?”


“전혀요, 젬병입니다.”


“그러면 큰일 났네요.”


여자는 조용히 말하며 눈길로 사방을 훑고 있었다. 헨델도 그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지만 보이는 것은 분별할 수 없는 나무 그림자뿐, 저 여인도 눈으로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고양이가 귀를 기울이는 것, 개가 향을 쫓는 것처럼 헨델로서는 정말 감각이 아닌 상상에 불과한 어떤 감각이었다. 


“다른 사람들 깨워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