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바닥이 조금씩, 조금씩 진동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진짜인지조차 했갈리던 진동은 점점 커지고 커져, 수백마리의 군마가 행진하는듯한 굉음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드드드드드드


뭐, 실제로도 거의 비슷한 상황이니


지평선 너머로부터 밤이 다가오듯, 검은색이 범람하기 시작한다


차라리 그냥 밤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언제나처럼 단원들 칼질 좀 가르치고, 술 좀 마시고, 단원들이랑 낄낄대다가 집에 가서 애 재우고 아내랑 질펀하게 놀다 잤을텐데


아쉽게도 그 검은색은 밤의 어둠이 아니라, 셀 수없는 숫자에 마물이었다.


병사들 사이에서 긴장감은 더욱 팽팽해지기 시작한다.



창을 든 자들의 창끝은 두려움에 떨리고


칼을 든 자는 공포에 칼 손잡이를 부서지도록 움켜쥐고


활을 든 자는 손아귀에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순간


어느때보다도 굳건히 잠겨야 할 성벽은 아이러니하게도 열리고 있다.


씨발....


이건 아무리 봐도 미친짓이야


도저히 말도 안되는 미친짓이라고!


뭐? 


이게 대체 뭔짓이냐고?


그리고, 애초에 넌 누구냐고?


젠장. 자기소개도 안했었군


"나는 로빈이다. 이 용병단의 주인이지"


"그리고 이 미친짓은, 우리 용사님의 작품이지."


로빈은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본다


그곳에는 용사, 케빈이 있었다.


케빈은 누가 봐도 용사라는 듯 펄럭이는 붉은 망토를 걸치고, 멋진 황금색 갑옷으로 중무장하고, 푸른색으로 빛나는 성검을 들고 있었다.


로빈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저....용사님, 이거 정말 괜찮은거 맞습니까?"


"생각해둔 작전이 있으니 절 믿어주세요!"


케빈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로빈씨, 용병단의 출전 준비는 다 되었나요?"


"예...지금 바로 나갈수 있습니다"


"자! 그럼 출발하죠!"


로빈은 여전히 혼란에 담긴 채 답한다


"작전이라도 설명해주시면...."


"로빈씨, 제가 누군지 잊으신건 아니죠?"


"에이 설마요! 정의의 용사 케빈님이시잖아요?"


"네! 이 정의의 용사인 절 믿어주세요! 우린 이 역경을 반드시 이겨낼겁니다!"


케빈은 푸른색 성검을 높게 들어올리며 외쳤다


"용병 여러분! 저를 따라오십시오!! 오늘 우리는 저 악의 무리들을 쓰러트리고 정의를 구현할겁니다!!"


-와아아아아아아!!!!


그 모습을 보며, 로빈은 의심을 마음 한구석으로 치운다.


"짜식들 신났네 신났어, 그래. 한번 해보자!!!"


용병들은 정의의 용사를 믿어 의심치 않고, 각오를 다지며 성문을 나가고 마물들을 향해 돌격을 시작했다.


그리고, 성문은 다시 닫히기 시작했다


---


"죽어라! 이 사악한 놈들!!!"


[오러 블레이드]

대륙 내에서도 손꼽히는 실력자들만이 쓸 수 있다는 비기가 이제 막 스무살을 넘긴 청년의 검에서 펼쳐진다


-끼에에엑!!!


선두에 선 용사가 휘두른 검에서 뻗어나온 검기가 한순간에 수십이 넘는 마물들을 토막난 고깃덩어리로 만들어버린다.


"짜식들아, 가자아아!!!!!"


용병단도 본격적으로 전투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창을 다루는 용병인 루크가 내지른 창이 마물의 머리를 관통한다


"하아아압!!"


-콰직!


철퇴를 다루는 용병인 존이 휘두른 철퇴에 마물이 으깨진다


"으랴아아아아앗!!"


-콰지직!


그러나 100명이라는 숫자에 비해서, 마물들의 수는 너무나도 많았다 


그들이 아무리 베고, 찌르고, 후려쳐 마물을 쓰러트려도, 1마리를 잡으면 2마리가, 2마리를 잡으면 3마리가 몰려왔다.

그 순간, 루크의 창이 그의 손에서 미끄러졌다


루크가 창을 놓치자, 늑대형 마물이 순식간에 그의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커억!!"


"루크으으!!! 안돼!!!!'


그 모습을 본 존이 마물을 향해 돌진했다


"존!! 멈춰!!"


로빈이 뒤늦게 존을 불렀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으아아악!!!"


마물들은 진형을 벗어난 존에게 달려들어 순식간에 그를 고깃덩어리로 찢어버렸다.


"젠장!!"


루크는 촉수형 마물을 베어넘기며 외쳤다


"다들 함부로 진형을 이탈하지 마라!!"


그 때를 기점으로 마물들의 공세에 진형이 점점 무너지기 시작했다


1명이 죽고


2명이 죽고


3명이 죽고


진형은 점점 엉망진창이 되어가며 전장은 붉게 물들어간다


그 순간


"[홀리 쇼크웨이브]!!!"


-콰괴과과과광!


용사가 성검을 땅에 꽂자, 막대한 신성력이 뿜어져나오며 일대의 마물들을 정화시켰다.


그리고는 외쳤다


"여러분!! 포기하지 마십시오!! 우린 정의를 지켜낼 것입니다!!!"


그 모습에, 용병들은 다시 한번 용기를 얻는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가즈아아아아아라!!!"


로빈은 저 멀리 다시 다가오는 마물들을 보며 외쳤다


"짜식들아!! 지금 이틈에 빨리 진형 복구해!!"


이제 2차전을 치룰 때가 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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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의 검이 마물의 목을 꿰뚫는다


"젠장!!"


어제까지만 새것처럼 반짝이던 갑옷은 여기저기 우그러지고 때가 묻어 볼품없는 모양새가 되었다.


"용사님!! 이렇게 버티면 되는게 맞습니까?!"


케빈은 확신에 가득한 눈으로 말했다


"괜찮습니다!! 좀만 더 버텨주십시오!!!"


"씨이잇....팔...!!!"


로빈의 검이 마물을 밀쳐낸다


그때, 케빈이 외쳤다


"여러분!!! 3분만 버텨주세요!!! 곧 제 동료들의 마법이 준비됩니다!!!"


"우린 오늘 반드시 승리할겁니다!!!!"


그 말에, 용병들은 마지막으로 남은 체력을 쥐어짜기 시작했다"


"우오오오오오오!!!"


"뒈져라 이 마물들아!!!!"


용병들의 병장기는 더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사방에 마물들의 푸른색 피가 튀고


붉은색 선혈이 뿌려지며


전장은 둘이 섞여 보랏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수십의 마물을 죽여도 마물들은 그들을 계속해서 덮쳐왔고, 기사단이 마침내 한계에 도달하려는 그 순간



마침내, 3분이 지났다


케빈이 외쳤다


"마리아! 라일라!! 지금이야!!!"


"알았어!"

"오케이!"


마물들의 머리 위로 성녀와 대마법사의 연계 공격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8위계 마법, [메테오 스트라이크]!!!"

"[홀리 앰플러파이]!!!"

""9위계 마법, [홀리 메테오]!!!""


본래도 강력하던 마법인 8위계 대마법사의 마법인 [메테오 스트라이크]에, 성녀의 신성력 버프인 [홀리 엠플리파이]가 겹쳐지자 그 결과물은 엄청났다


지상의 모든 것을 지워버리려는 듯한, 하얗게 빛나는 메테오가 하늘로부터 떨어지기 시작했다


용병들은 드디어 성공했다는 마음에 기쁨에 환호성을 지른다


"해냈다!!!!!!"


"우아아아아아아아아!!!!"


그러나 그때, 로빈은 무언가 이상함을 눈치챘다


"근데 저거...우리쪽으로 떨어지는거 아닌가...?"


로빈이 진형에서 벗어나 케빈에게 달려가며 외쳤다


"용사님!!! 지금 튀어야 하는거 아닙니까?!!!"


케빈은 침묵으로 대답했다


"용사님...?"


케빈이 참담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여러분의 희생은...잊지 않겠습니다...크흑!"


"뭐....? 그게 무슨 개소리야...?"


로빈은 당황한 목소리로 외쳤다


"이봐 용사ㄴ, 아니 케빈!! 작전이 있다 하지 않았나!!!!?


"그래도, 마지막 순간은 여러분들과 함께해드리죠"


"무슨 개소리냐 케빈!! 여기 있는 사람들을 다 죽일 셈이냐!?"


"대체...대체 왜?!"


"그게 제 정의고, 저는 정의를 실천하는, 정의의 용사니까요"


"성 안에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처음부터 우리 100명을 죽게 할 생각이었냐...?"


용사는 고민없이 곧바로 답했다

"예"


"정말...다른 방법은 없었나...이게 최선이냐고!!"


"마물들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잡고 사람들의 희생을 최소로 하기 위해서는 딱 지금의 100명이 최선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로빈은 진심으로 미안함이 담긴 케빈의 표정을 보며 할 말을 잃었다.


어느덧 피부가 뜨끈할 정도로 다가운 메테오를 보며 로빈은 말했다


"하지만...그러면 당신도 죽잖아...?"


용사는 자기 갑옷을 가르켰다


"아"


"템빨 씹새끼야...."


로빈은 주마등을 느끼기 시작한다


정의의 용사?


정의란게...이런 것이었나?


사람들을 마음대로 전장으로 내몰고 죽게 만드는


이런게 정녕 정의라고...?


그 순간, 로빈은 집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아내와 자식을 떠올린다


'잘 살아야 한다....안나....'


모든 것이 슬로우모션으로 보인다


지금 이 순간조차 아무것도 모른 채 해냈다 환호하는 용병단원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그것이 로빈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땅에 떨어진 메테오는 엄청난 굉음과 하얀 섬광을 일으키며 지상에 있는 모든것을 쓸어버렸다


그렇게 수천마리의 마물, 100명의 용병단은 그렇게 한줌의 먼지로 돌아갔다.


---


메테오가 휩쓸어버린 전장에서, 한명의 인물이 먼지를 뚫고 나타났다


"역시 여신님이 주신 갑옷이야. 성능 확실하네!"


먼지를 툭툭 털어내자, 황금빛 갑옷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광택을 되찾았다.


곧장 성으로 간 케빈은 검을 들어올리며, 성 안의 사람들에게 외쳤다


"여러분!!! 이제 안심하십시요!!! 우리들은 살아남았습니다!!! 정의는 지켜졌습니다!!"


사람들은 기쁨에 환호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용사님 만세!!! 용사님 만세!!!!"


"살았다아아아!!!!!"


"케빈!! 케빈!! 케빈!!"


마리아와 라일라가 성문에서 달려나와 케빈을 반겼다


"다친데는 없지?"


"응! 멀쩡해!"


"다행이다..."


케빈은 그 둘을 꼭 안아주면서 말했다


"오늘도 우린 정의를 지켰어!"


"만악의 근원인 마왕을 쓰러트릴때 까지 이대로 쭉 나아가자!"


"응!"

"그래!"


용사는, 오늘도 정의로웠다



성에서는 기쁨의 환호성이 들려왔고, 사람들은 승리에 취했다.


전장에서 재로 바스라진 어느 외지의 용병단은 까맣게 잊은채로


---


그 무렵, 한 여인은 승전 소식을 듣고 안도한다


"다행이네....."


그녀의 품 안에는 아기가 안겨있었다


안나는 고요한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로빈은 언제쯤 오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