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의롭다.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 윽... 하아. 하아. 하... 현. "


복부부터 가슴까지 이어지는 자상


그리고, 뻥 뚫린 '심장' 


" ... "


멍하니 그녀를 쳐다봤다.


누가봐도, 곧 온기를 잃을것 같아보이는 

시체였다. 곧 그녀는 죽을것 같아보였다.


" 어째서. "


의문이 든다. 


씨발.

안된다.


여기서 끝나면 안돼.


나는 무릎을 꿇었다.


" 현!!! "


" 용사님... "


머릿속이 부정으로 가득차버린다.


뒤에서 들리는 그들의 목소리를 애써 무시했다. 


그녀의 최후를 감상하기 위해서.


나는.


" 사랑해요. 현. "


" 나도. 린. "


그녀는.


두눈이 보이지않았음에도

두귀가 들리지않았음에도


자신의 대답에


웃으며.


삶을 마감했다.


" ...하아.. 하...하으윽...씨이발!!! "


숨이 가빠왔다.

뇌가 아파온다.


육체와 정신이 초월했음에도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오는것을 멈추지 못했다.  


뚝. 뚜둑.


하나둘씩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그것은 그녀에게 떨어졌고


마치, 그 모습은 자신의 슬픔에 그녀가

눈물을 흘리는것 처럼 보였다.  


" ...후우. 어쩔수없는 사고였어. "


그런 상황속, 뒤에서 차분한 음성이 들려왔다.


자신의 파티원중 하나인 


'현자'였다. 


" 사고가 아니야... 사고가아니라고!!! "


그녀는 자신을위해 대신 죽었다.


사고가 아니다.


나때문이다.


씨발.


" 윽... 하아. 현. 그래도... "


그런 자신의 울분에 현자는 당황했으나.


" 아무리봐도, 그녀는 '악인'이었어. 마녀이자. 범죄자였지. "


악인?

마녀?

범죄자?


" 몇십명을 공양하고, 몇백명을 죽인 철저한 악인이야. "


그럴리가없다.


" ...아니야 닥쳐. "


" ..씨발. 현... 너도 알고있잖아!!! 

  좀 인정하라고... '선악의 눈'으로 그녀를 볼때마다. "


" 아니라고!!! "


" '묵색'으로 보이잖아. "


" ... " 


그의 타당한 말에

자신은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더 더욱 

부정할 수 밖에 없다.


그, 누구보다 자신은 그녀가 악인이 아니라는것을 

알고 있으니까. 


" 아니야. "  


" 하아... 나도알아.. 현. 너가 느끼는 감정. 다 알고있어. " 


뭘 알고있는거야.

하나도 모르잖아. 


" 근데...! 우리는. 우리는 악인을 감싸면 안돼. "


모르잖아. 

그녀가 무엇을 위해서


지금까지 살아온지를 

그녀가 악인인지를...


" 우리는... '정의' 잖아. "


" 맞아요... 용사님. 우리는 선이고. 그녀는 악이였을뿐이에요. "


자신은 그들의 말을 부정할려 했으나.


그후, 들리는 현자의 떨리는 목소리에 

다시한번 침묵할수 밖에 없었다. 


" 그리고. 현 너가 그렇게 부정해버리면.

  우리가.. 너를 믿고 죽인 '악인'들은. 어떻게 해야하는거야. "


세상을 구하기위해.

세계를 구하기위해.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을 건너왔다.


그런, 천칭속에서 우리는 정의를 선택했고


조금이나마 더 나은 정의속에서


'불살'이라는것은 불가능했다. 


물론, 이 '눈' 덕분에 악인과 선인을 가릴수 있었으나.


결과적으로, 

우리는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그리고, 그의 말을 부정하는것은 


이제까지의 '자신'을 부정하는것이었다.


나를 믿고 따라와준 그들도.


" ...그래. " 


현자의 일침에 


자신은 일어나고서


하늘을 바라봤다.


그후, 머리가 깨끗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깨달은것이다. 


그래.

그래야지.


그래야했어.


" ...'마왕'을 쓰러트리러 가자. "


그것이. 자신에게 남은 유일한 정의였다.

그것이. 그녀가 남겨준 유일한 유산이자.

그것이. 자신이 넘겨줄 유일한 염원이다.


정의란것은 그런것이다.


그렇게, 마음속에 느껴지는 의혹과 절망들을 숨긴채...


마왕성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 * *


" ...하악... 하악.. "


몇번씩이나 쓰러졌음에도


" 큭... "


몇번씩이나 정신을잃어도


" ...결국, 쓰러트렸나. "


우리는 마왕을 쓰러트렸다.


그것은, 우리가 정의였기 때문이였을까.


그것은, 마왕이 악이라는 정의때문일까.


그녀가 죽은 이후로 생긴 고민이 깊어져갔다.


" ...현. 현..? 현! "


" 어..어? "


그리고, 그것을 깨트려주는것은ㅡ 


" ...현 괜찮나? 표정이 안좋군 "


나는 주변을 돌아봤다.


세상을 지키기위해 모인 '선'이라는 정의를 가진 친우이자. 

ㅡ수많은 동료들 이었다.


" 드디어 끝난거야. "


" 용사님... 우리가 해냈어요. "


" 형제! 우리가 세계를 구한거라네! "


" 연회를 준비해라! 술도! "


웃고, 떠들고, 기쁨을 나누었다.


그 모습은 너무나도...


" ... "


너무나도, 빛나보였다. 


그들은, 정의였다.


선인이었다.


그렇기에.


그러하기에.


나는 눈이 아파왔다.


" 하아.. "


눈을 감았다 떳다를 반복했다.


찢어질것같았다.

찢어질것같았다.


" 어째서. "


그들이.


" 어째서. "


" ...현? 괜찮아? 눈이... "


아..아아아...


정신을 잃을것같은 고통에


자신은 무심코 옛날을 회상해버렸다.


그래.


5년전, 이 '세계'에 떨어졌을때를 말이다.


#


" ...윽. "


" 용사님... 괜찮으신가요? "


" 메릴다...미안. 걱정안해도 돼, 그저 조금 따끔거릴뿐이야. "


" [치유]라도 걸어드릴까요?.. "


" ...마음은 고맙지만. 기프트로 인한 고통인걸. 아마 불가능할거야. "


" 그렇군요... 그럼 조금만 쉬도록하죠! "


" ...그래. "


자신은 푹신한 의자에 기댔다.


피로했다.


요번 한주간,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이세계에 떨어져버리고서.

용사로 추앙받고...


그후,


현자에게는 마법수련을 받고...

성녀에게는 기프트를 다루는법에


귀족으로써 해야할 왕정법도까지...


이제껏, 자신의 인생중에서 

이리 바쁘게 살아왔던적이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정도였다.


" 하아... "


그래도, 그런 상황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


이전세상과 달리 이번세상은 제대로 살고있다는 기분이 들었으니까.


그리고, 그들이 자신에게 기대해주는만큼...


나또한 기대에 부흥해주고 싶은 마음도 들었고.


그래... 그럴려면 끊임없이 노력해야했다.


" 후우... 다시해볼까? "


" 벌써요? 용사님? 역시... 현자님이 칭찬하신대로 노력가시네요! "


" 현자가? 그 깐깐한놈이... 나를 칭찬할리가 없는데.. "


" 그럴리가요~ 맨날 용사님 애기만하시는데... "


" 흐음... "


의문이 들었으나, 내일 물어보면 되는일이었기에

별 상관안하고서 다시한번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리고서, 여신에게 받은 기프트중 하나인 


'선악의 눈'을 발동시켰다.


" 후우... "


그리고서, 주변 사람들을 돌아봤다.


성녀는... 


굉장히 밝았다.


당연했다.


그럼...


시녀나 시종들은.


성녀만큼 밝지는 않았으나. 

하얀색이라 불릴수있는 일반적인 사람들이었다.


" 뭐... "


솔직히, 선악의 눈을 발동해봤자긴 했다.


이런곳에서 묵색같은 검은색을 가지고있는 사람이 있을리가...


" ..어? "


그런 생각을 하며 복도를 살펴보던 도중.


자신은 이상한 색깔을 가진 사람을 발견했다.


" ...용사님? 누구를.. 그렇게... "


" 저사람은 누구야? "


" ...저분은... "


" 응? "


성녀는 저 멀리 있는 그녀를 쳐다보며 표정을 구겼다.


" 그녀는, 곧 사형될사람이랍니다. 신경쓰지 않으셔도 되요 용사님. "


" ..그래? "


나는, 성녀의 반응을보고서 의문을 품을수 밖에 없었다.


경비대에게 끌려가는 그녀의 색깔은.


하얀색도.


검은색도.


아닌.


완벽한 회색이였으니까.



" ...그래. " 


그때, 자신은 그녀를 만났으면 안되는거였어. 



두번째로, 그녀를 만나는것은 


그로부터 3년뒤


수많은 시간이 흘렀을때였다.


" 하악...학.. 후우.. "


" 으윽! "


그것도, 유독 달빛이 밝던날.


" 하아하아... 그만 돌아가주면 안될까? 용사님? "


" 그건.. 조금 힘들거같은데? "


몇분을 싸웠음에도 끝나지않는 공방속


자신은, 저 흑발의 여자가.  


심상을 초월한 '강적'이라는것과.


끊임없는 노력과 훈련으로 

이제는 상시로 켜지는 선악의 눈 덕분에 


3년 전 옛날에 보았던 그녀라는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 용사님!!! "


물론, 그런 공방도 오래가지는 않았지만.


" [볼트]!... 현! 괜찮나?! "


1대1이 1대3이 되어버린 상황,


아무래도, 현자와 성녀가 그녀의 수하들을 처리한듯 보였다.


그렇게 야밤의 습격전의 승패는 정해진것이었다.


" ...이런. 벌써... "


그리고, 그것을 그녀또한 깨달은것일까.


얼굴을 구겼다. 


" ...제기랄. 항복이야. "


자신과 그녀는 검을 집어넣고서


서로를 쳐다봤다.


" 꽤하는걸. 꼬마용사님. "


...후우.


" 그렇기에 제안하겠어. 이대로 사형당하는건 싫으니까. "


" 무슨말이지? "


" 나를 '파티'에 넣어주지 않겠어? " 

 

" ...그게 무슨. "


갑작스러운, 그녀의 말에 자신은 당황할수 밖에 없었다.


뒤에 달려온 두명도 같이.


" 이 범죄자가 무슨소리를 하는겁니까?! 용사님 그냥 죽여버려요! 으헥 바닥에 돌이..! "


" 후우...후욱.. 하아.. 성녀님.. 괜찮....흐악..후욱 "


둘은, 저 멀리서 숨도 고르지 않은채 달려온것 같았다.

같이 돌에 넘어지는것도... 참.


" 꼬마용사님? 저게 현자랑 성녀가 맞아? "


" ...맞을걸. " 


" ...꽤나 소문이랑은 다른걸. 조금..다시 생각해봐야하나? " 


할말이없다.


그렇게, 어이없는 표정으로 보고있을때.

현자는 자신의 거친숨을 내뱉으며 한가지 단어를 애기했다.


" 아니.. 현... 후우... 그.. 색깔. 색깔... "


...색깔?


그래, 그는 알고있는것이다.


곧장 자신이 항복한 그녀를 죽이지 않는다는것을 말이다.


" ...그래. " 


우리는 모험을 떠난뒤로, 한가지 '정의'라는 규칙을 정했다.


자신의 선악의 눈으로, 범죄자나 적을 만날때.


상대가 '검은색'일시. 즉시 처형.


상대가 '하얀색'일시. 상황에 따라 경과를 두고보기.


라는 규칙을 말이다.


그리고, 자신이 이렇게 행동하는 것은


똑똑한 현자가 보기에는 그녀가 하얀색이라는걸 애기하는것이었다. 


" 그녀는 하얀색이 아니야. "


" 무..무슨소리에요? 용사님?! "


" ...그게 무슨소리지. 현? "


" 그러나, 검은색도 아니야. "


그녀의 색깔은 하얀색도 검은색도 아니다.


" 회색. "


그녀의 색깔은 옛날과 똑같았다.


정확한 중간.


이제껏 수많은 사람을 만났던 자신에게 있어서 


그녀만이 가지고있는 색깔이었다.


" ...그럴리가. "


" 그렇기에, 그녀를 파티에 들어오게 할거야. "


" ...반발이 심할거에요. 용사님. "


" 괜찮아. "


결국, 자신은 보류할수밖에 없다.


그녀를 죽일지 죽이지 않을지.


죽인다면, 자신의 정의를 거스르는 일이고.


이대로 풀어준다면, 그것또한 정의를 거스르는 일이니. 


자신의 곁에서 두고서 그녀의 색깔이 무엇인지 알아보는것뿐.


" ...뭐. 그럼 꼬마용사님? 잘부탁해? 내 이름은 린이야. "


" 그래. 잘부탁해. 나는 강현,

  현으로 불러도 좋아. "


우리는 서로를 마주보며 악수했다.


아까전 혈투를 버리며 싸운것이 어색해질 정도로. 


" ...이해할수없어요. "


" ...그건 나도 동감이군. " 


그렇게, 유난히 밝았던 밤에 


우리는 처음아닌 처음을 만끽했다.



" 아아...아.아. "


그러하기에, 그때를 추억한다.


그녀와의 추억을



6개월전. 


우리는, 1년 반동안의 모험을 거치며 


누구보다 가까워졌다.


물론, 현자와 성녀또한 친우라 불릴수 있는 관계였으나.


[린]은 달랐다.


그녀는 이 외딴 세계로 떨어진 자신에게


처음으로 이곳에 남고싶다고 생각하는 유일한 '의미'가 되어버렸으니까.


" 또 검실력이 늘어버린거 아니야? 현? "


" 그거야, 너가 잘가르쳐줘서 아닌가? "


" 뭐야? 이제 칭찬도 할줄아네? "


그녀를 파티에 데려오고서


제일먼저 한것은, 그녀와 검을 맞대는것이었다.


그녀의검술은 자신을 또 한번 성장시킬수 있었고,


1년반이라는 시간은 그녀의 검술을 온전히 전수받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물론...


" 현. 마왕을 잡은뒤에는 뭐할꺼야? "


" ...생각해본적 없는걸. "


그녀와, 연을 나눈것도.


충분할정도로 


충분한.


시간이었다. 


" 그럼... 나랑 같이 살래? "


" ... "


그녀의 갑작스러운 고백.


그러나, 그녀의 마음을 눈치채지 못할정도로 자신이 멍청하진 않았다.


" ...뭐야 말이라도 해!.. 사람 무안해지게.. "


" 그래. "


" ... "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는것

자신이 그녀를 사랑하는것


이미 둘다 그것을 알고있었으니까.


작은 몇마디에 확신을 가지고.


그저, 조그마한 움직임에도


우리의 연은 깊어져가는것이다.


그렇기에.


그렇기에

그렇기에


그렇기에


그렇기에.


#


씨발.

씨발씨발씨발.


왜. 


" 아프다. "


눈이 아파온다. 


#


1달전.


그녀를 파티에 들인지 2년이 거의 다 될 시기.


절망적이게도, '눈'은.


그녀를 '악'으로 판별했다.


어째서.


어째서.


그럴리가 없었다.


자신의 스승이자.


자신의 친우이자.


이 세상에 유일하게 몸을 기댈수있었던 인연이.


어째서 악이란 말인가.


눈을 파버리고 싶었다.


측정이 잘못된게 아닌가 싶었다.


말도 안된다.


이제까지의 그녀의 행동은 철저하게 선이었다.


그러하기에, 


의문이 들었다.


그녀는 검은색인데도.

'선' 인것일까.


그녀는 진실을 이야기했는데도

'악' 인것일까.


자신은 그때부터, 눈을 믿지 않기 시작했다. 


나는, 그 선택이


지금에 이르러서야 탁월했다고 느낀다.


#


그렇지 않다면,


지금 눈앞에 보이는 마왕의 시체가 


저렇게 밝은 하얀색으로 빛날리가 없다.


" ...현! 정신차려... 지금 대체 이게.. 무슨!!! " 


*푹...푸슈우우욱... 콱! 


나는 두눈을 꺼내들었다.


눈이 아파오지 않았다.


뭐.


상관은 없는것이다.


이젠 필요없으니까. 


" ...용사님? "


" 대체! 무슨..짓을!! "


나는 내공을 끌어올렸다.


그녀에게 배운 심법이었다. 


" ...검은색...?!! 지금 무슨...! "


나는 검을 들어올렸다.


그녀에게 배운 검법이었다.


" ...! 다들! 용사님에게서 떨어져요! "


" 그게대체 무슨소리야! 성녀님! "


" ...현. 너...! "


자신은 깨달아버렸다.


" ...말..도안돼.. 용사님에게서.. "


" 마왕. "


" 지금 현에게서 마왕의 기운이 느껴진다. "


" ...아무래도 영 안좋은 상황이 일어난것 같군. "


나는.


" ...모두 전투준비. "


" 어째서... 우리가 용사님이랑 싸워야하는거에요... "


" 그는 이제, 용사가 아니다. "


" 새로운 마왕일뿐. "


용사다.


" 그럴리가..! 그럼 왜 정의로운자만 들수있다는 성검을... "


" ...그건. "


정의란.


거짓이다. 


자신은 하얀색으로 빛나는 성검을 쳐다봤다.


그리고, 그 검날에 비춰진 자신을 바라보았다.


" 어둡네. "


누구보다 빛나는 용사는 

누구보다 어두워져버렸다.


그러나.


자신이 정의롭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나는 정의로운데. "


그렇기에, 

어두컴컴한 마력을 뽐내고있던 자신은


다시한번 하얀색 빛을 뿜었다.


" 너희들은. 정의롭지 않구나. "


용사는 정의로운데.


그들은 정의롭지 않았다.


이제야, 그들이 검은색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두눈이 보이지 않더라도.


두귀가 들리지 않더라도.


자신은 


웃으며.


삶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