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대로 열심히 썼습니다


보고 즐겼으면 댓글만이라도 좀 남겨줍쇼


관심 좋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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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찬란했던 마법사들의 마법이 적을 향해 흩날리고, 빛을 흩뿌리는 검사들의 검이 피와 살점을 탐하는 곳, 와일드랜드. 이곳은 과거 ‘마족’이라고 부르는 몬스터들이 존재했었다. 그것들은 인간들과 수없이 많은 전쟁과 다툼을 일으켜왔다. 그러나 그것들은 바로 나, 용사에 의해 멸망까지 갈 뻔했었다. 마왕성, 이곳에서 가장 많은 피가 흘러 졌었다. 몬스터들 중 최고의 전사이자 그것들의 왕인 마왕마저 나와의 전투를 통해 쓰러졌었다. 물론 그 치열했던 전투로 인해 나조차 치명상을 입을 뻔했다. 그러나 내가 누구인가? 최강의 인간. 용맹한 자들 가운데 최고의 용기를 지닌 자. 가장 정의로운 자. 인간의 대표. 그런 나를 죽이기에 마왕은 성에 차지 않았다. 내가 거짓을 말하는 것으로 여길지도 모르겠지만 실제로 나는 그런 존재였다. 인간들의 희망. 몬스터들에 의해 위험에 빠진 세태를 구원해 줄 자. 나는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고 싶었다. 인간을 사악한 몬스터들로부터 구원하고 싶었다. 그리고 실제로 성공했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내가 봉인에서 깨어난 뒤, 본 세계는 내가 생각한 미래와는 완전히 달랐다. 몬스터와 인간의 공존! 엄청난 충격이었다. 마왕과의 전투로 인한 부상을 회복하기 위해 봉인에 들었던 나는 깨어나자마자 그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인정할 수 없었다. 그것들에 대해서는 제거해야 하는 악 그 자체로서 배웠고 그것들도 실제로 그렇게 행동했었다. 그것들이 인간과 함께 어울려 있는 모습은 내게는 빛과 어둠이 서로 섞인 것처럼 실제로 존재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내가 취한 행동은 나에게는 매우 당연하다면 당연한 행동이었다. 그들을 향해 칼을 빼어드는 것. 그들을 베어넘기는 것. 그것이 몇 백 년전부터 내가 해오던 일이자 숙명이었다. 그러나 나의 행동은 이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지금 구속되어 있다. 지금 내 앞에서 떠들어대고 있는 이 사람부터 시작해서 아마 이 사회 대부분의 일원은 나의 행동을, 몬스터에 대한 이 불타오르는 증오를 못 받아들일 것 같다. 내 앞에 있는 그는 손에 든 종잇조각을 감출 생각도 않고 그것을 쳐다보면서 내게 질문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의 질문에 나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난 용사다.”


“예? 용사?! 용사님이란 말씀입니까?”


심드렁한 채로 날 바라보던 그는 내 한 마디에 놀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의 반응으로 보건대 이 사회는 그나마 과거 용사의 업적은 인정해주는 것 같은 사회인 것 같았다. 덕분에 나는 몬스터들을 학살한 학살자보다는 한때 인류를 구원한 구원자로서 인식되었다. 초기에는 매스컴과 여러 언론이 나의 존재에 떠들썩거렸다. 


봉인에서 깨어난 과거 인류의 구원자. 과거 몬스터와 인간 사이의 전쟁 가운데서 큰 역할을 한 주축.


나는 그런 이름으로 새롭게 불리었다. 나에 대한 매우 사소한 정보 하나조차 매우 큰 정보로 커졌고, 내가 살던 당시의 정보들을 큰 이야깃거리로 즐겼다. 이런 종류의 관심에 나는 피곤하고 힘들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긍정적인 종류의 관심을 즐긴지 오래되기도 한지라 나에 대해 갖는 이런 종류의 관심에 대해 나 또한 반응해주었다. 


하지만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었다. 나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몬스터들과 그들을 옹호하는 집단들 가운데서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상당히 언짢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쓸어버린다거나 하는 그런 짓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 세상에서는 그것들 또한 사람과 같은 존재로서 취급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도 이 사회에 녹아들기 위해서 그것들을 하나의 가치있는 존재로서 인정해야만 했다. 처음은 어려웠다. 그러나 나에게 주어지는 관심이 서서히 사라지고 생계를 걱정하기 시작할 무렵부터는 나름대로 쉬웠다. 같은 눈높이로 그들을 바라보니 그들 또한 사람들처럼 아이를 낳고, 감정을 갖고, 생계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들도 사람과 같이 보였다. 난 그들을 존중하고 인정하기로 결심했다. 과거는 과거. 지금은 내가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는 길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못했다. 비록 과거의 찬란한 용사의 영광이 지금은 한낱 용역이나 막노동의 삶으로 떨어져 버린것만 같아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이란 내가 이전에 가지지 못했던 또 하나의 새로운 가치있는 관점으로 많은 것을 바라볼 수 있게 해 준 것일지도 모른다. 비록 이전의 삶에서는 나의 숙적이었지만 난 점차 몬스터들과도 잘 어울릴 수 있게 되어갔다. 그들도 대다수는 자신의 이전 조상을 멸종시킬뻔했던 존재로서 날 혐오하고 두려워하기도 했지만 나와 같이 나를 이해해보고 나를 공감하려고 하기도 했다. 난 나를 혐오하는 자들을 이해했고 나에 대해 이해와 공감을 시도하는 자들을 존중하고 존경하며 나의 새로운 인생을 살아갔다. 용사의 검을 내 반지하 방 구석에 모셔두고 쓸 일이 없기를 바라며 난 오늘도 집 밖을 나섰다.


“여, 형씨. 오늘도 활기차구만 그래?”


“하하하. 오늘도 끝나고 한 잔 할 생각뿐이라 그렇지, 뭐.”


“오, 그거 참 끝내주는 생각이야. 캬캬캬.”


내 몇 번째 직장일지 모르는 직장. 지금은 무슨 빌딩을 세우는 중이다. 내 옆의 리자드맨 도마는 오늘도 나한테 인사를 해주었다. 내가 용사인 거는 싹 알려져 이 공사판에 있는 대다수의 몬스터들은 내게 인사는커녕 아는체도 잘 하지 않는 거에 비하면 도마는 내가 존경하는 녀석이다. 벽돌을 어깨에 이고 있을 때, 어느샌가 녀석이 사사삭 거리며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아따, 형님. 이거 근육 보소. 아주 그냥 울끈불끈거려.”


“뭘, 이런걸 가지고 그러나. 하하하. 진짜 힘 주는 거 보여주면 눈 돌아가겠네 그냥.”


“아이고, 그 나이 먹고 주책이야. 형님. 그거나 빨리 이고 올라와.”


옆에서 김씨가 말을 걸었다. 김씨는 공사판에서 가장 잔뼈가 굵은 친구 중 하나지만 고작 나이 차이 하나 가지고 나한테 꼬박꼬박 형님이라고 불러주는 사람이다. 그를 보다보면 내 오랜 친구들 중 한 명이 떠오르는 것 같아 반가운 느낌이 들기도 하면서도 어째선지 그리운 기분이다. 


“알았다. 곧 간다. 도마야, 가자.”


“예, 형님. 잠만 기다려 보셔요. 이거 무게가 좀 나가는 거 같은데. 읏차. 갑시다.”


도마는 벽돌 더미를 잠시 힘들이다가 금세 들어올렸다. 나와 도마는 김씨를 따라서 공사장 위로 올라갔다. 그 위에는 벌써 한 감독관이 있었다.


“한 감독관님, 언제 오셨대요? 내 보지를 못했는데.”


“아, 온지는 얼마 안됐습니다. 그보다 잘 계셨습니까? 용사님.”


“한 감독관님, 굳이 안 오셨어도 됐는데요.”


“뭘요. 용사님을 뵈러 오는 걸 제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아세요?”


나는 그가 딱히 반갑지 않았다. 그는 입에 발린 말은 잘하지만 실제로 내 뒤나 캐고 다니는 사람이다. 어딜 돌아다닐 때마다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감시당하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인물에게 딱히 좋은 기분을 가지기란 쉽지가 않다. 그는 내가 다니는 직장들을 모두 따라다니며 내 상사로서 취직한다. 심지어 그는 모두 신분과 성별을 모두 넘나들며 나를 따라다닌다. 내가 미친 것이 아닐까 심히 걱정도 됐다. 하지만 딱히 나와 내 주변인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이해를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나는 병기와도 같은 존재이긴 하니까. 나의 위험성을 인지못한 것은 아니니까. 그런 식으로 나는 나에 대한 그들의 감시를 이해했다. 


하지만 동료들끼리 함께 한 잔 하러 가는 그 순간마저 감시하러 따라오는 것은 기분이 상당히 언짢다. 나 때문에 나의 동료들마저 덩달아 감시를 당하게 된다. 그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함께 가기로 한 약속은 약속이다. 멋대로 빠지기도 그렇다. 그런 변명을 내심 삼키며 그들과 함께 간다. 동료들에 대한 감사와 미안함을 일부만 입 밖으로 내보내고 나머지는 술과 함께 속으로 삼킨다. 전부 말하고 싶어서 가끔 헛구역질이 올라오지만 그걸 다시 밀어내고자 한 잔 더 들이킨다. 


그렇게 어느샌가 취한 상태로 집에 돌아오게 된다. 취기에 휩싸이고 싶지만 용사의 몸은 그런 것도 잘 용납해주지 않는다. 분명 온 몸에 취기가 도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만취했었다. 그러나 몸 상태가 점점 나아지고 걸음걸이가 똑바로 돌아오는 것이 느껴진다. 정신이 맑아지고 내 뒤를 밟는 한 감독관 또한 느껴진다. 한숨을 내쉬면서 집으로 발걸음을 내딛는다. 은근슬쩍 뒤를 밟히는 것도 짜증이 나 따돌리려고 골목 사이사이를 누빈다. 필사적으로 나를 따라오는 것이 느껴진다. 어딜 감히 쫓아오려고. 이쪽은 한참이나 전부터 추격하고 추격당하는 삶을 겪었다. 그런 나를 추적하려고 하다니… 일 백 년은 이르다, 이녀석! 얼마나 돌아다녔을까. 녀석의 발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은근슬쩍 입꼬리가 올라간다. 실소가 새어나온다. 아직 감이 죽진 않았네. 예전처럼 다시 용사짓해도 될지도 모르겠다. 이딴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아. 아. 여러분, 다 모이신거죠?”


옆에 있는 조그마한 체육관인지 창고 같은 건물에서 소리가 흘러나왔다. 무슨 일인지 궁금증이 생겨 조심스레 다가갔다. 구석에 조그맣게 난 철창으로 안을 바라봤다. 안에는 수많은 몬스터들과 한쪽에 강단처럼 드럼통을 두고 연설을 하는 몬스터가 보였다.


“여러분, 저희의 삶이 얼마나 힘든지 저도 압니다. 과거부터 저희의 고통, 시련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용사의 시대, 아니 그 이전부터 저희는 수많은 고통에 시달려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지배의 종족으로 점차 올라갔습니다. 식물들을, 자원을, 동물들을, 끝내는 인간을! 저희는 인간마저 지배에 두었었습니다. 그런 우리가 어느샌가 인간과 어깨를 나란히 둔다면서 그들의 아래에 깔려 살아가는 존재들이 되었습니다. 어쩌다가 우리가 한낱 인간들의 지배에 굴복하는 존재가 되었을까요? 그것은 용사입니다. 용사가 우리의 힘을 앗아가고 우리를 멸망으로 몰아갔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용사가 등장하기 이전에는 우리의 왕, 마왕이 존재했었다고 합니다. 비록 그와의 전투로 인해 치명상을 입긴 했었지만 그 또한 용사와 같이 어디엔가 봉인된 상태로 존재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그를 봉인에서 해제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이전과 같이 지배의 종족으로서 인간들을, 이 세상을 지배할 수 있을것입니다! 여러분, 저희와 함께 합시다!”


마왕도… 봉인? 아니 그 이전에 저 녀석들 뭐야. 너무… 너무 머리가 어지럽다. 지금까지 이 사회에서 과거의 일로 인간들을, 특히 나를 싫어하는 몬스터들을 보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저 싫어하기만 할 뿐이었다. 죽이겠다거나 실제로 행하겠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녀석들은… 다르다. 실제로 행할 생각인 것이다. 인간을 없애려고 드는 것이다. 과거와 같이… 그런 일에는 내가 나서야한다. 녀석들의 말처럼. 다시 한 번 나는 인류의 용사가 되겠다. 오직 인류를 지키기 위해서. 나는 당장 내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 발걸음은 가벼웠다. 너무나도 가벼운 나머지, 어느샌가 옥상들을 넘어서 뛰어다니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굳이 힘을 쓸 필요가 없어 사용하지 않았던 힘들이 용사의 일을 한다는 이유로 솟아난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뒤를 따라오는 발길이 다시 느껴지기 시작했지만 개의치않았다. 인간들을 위한 정의가 실현되는 것을 그들에게 보여주는 것 또한 나쁘지 않을 것이다. 바람이 내 온 몸을 타고 흐르는 것을 느끼며 나는 내 집 현관 앞에 도착했다. 문을 벌컥 열어제끼고 구석에서 썩어가는 듯이 보이는 나의 가장 오랜 동료, 나의 검을 집어들었다. 마치 그 자체만으로 머리가 깨끗해지는 기분이었다. 즐거워지는 것 같기도 했다. 내가 건물 밖으로 나오자 나를 둘러싸고 여러 사람이 서 있었다. 그들은 내게 지팡이를 겨누고 있었다. 


“용사님, 손에 든 것 내려놓고 대화로 해결하시죠.”


“그대들은 그저 보기만 하게. 보고 있으면 우리의 적은 사라져 있을 것이야.”


“용사님! 지금은 용사님이 계시던 그 시기가 아닙니다. 폭력으로 해결되는 때가 아니란 말입니다. 제발 그 검을 내려놓고 대화를 해보도록 합시다.”


“말이 통하지 않는군…”


“용사님… 저희가 용사님을 제압하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길 바랬습니다.”


“걱정하지 말게. 자네들은 단 한 번도 나를 제압할 수 없을테니까.”


그들이 내게 마법을 날렸다. 기절 마법 종류인 것 같았다. 저 정도는 몸을 틀어서 피하면 될테니까 피해준다. 그리고 속도가 생명이다. 피하자마자 저들 가운데로 돌파한다. 포위망을 뚫는다. 추격은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그저 따라오기만 해도 충분하다. 내가 왔던 길을 밟아서 돌아간다. 한시라도 빨리 몬스터들을 제거해야 한다. 녀석들이 마왕을 부활시키기라도 한다면 수많은 인명이 희생될 터였다. 과거에는 녀석과 나의 싸움이 인적이 드문 와일드랜드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인명 피해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몬스터들은 인간과 같이 살아가는 사회. 녀석들은 분명 이곳에서 봉인을 해제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싸움을 통해 과연 몇 명이나 살아날 수 있을까. 당장에라도 녀석들을 막아야한다. 생각을 하고 있던 사이, 내 앞에 그 창고가 보였다. 당장 그 앞으로 달려가 문을 발로 후려쳐 열었다. 많은 몬스터가 있어야했다. 작당 모의를 꾸미던 몬스터들이. 그러나 녀석들은 단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드럼통 위치와 놈들이 깔고 앉던 깔개마저 그대로 있었는데. 녀석들의 모습만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잘못 본 걸까 싶어서 눈을 잠시 비볐다. 그러나 아무것도 내 눈 앞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 내 뒤를 따라 마법사 부대와 거기에 이어 검사 부대, 궁수 부대마저 도착했다. 그들은 나를 둘러싸고 포위망을 형성했다. 나는 말하고 싶었다. 여기에… 녀석들이 있었다고. 너희를 해치려던 놈들이 있었다고. 그러나 말할 수가 없었다. 그 말을 생각하는 나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용사님…. 마지막 경고입니다. 제발 검을 내려놓고 투항해주십시오.”


내가 정신이 이상한 것일지도 모른다. 검을 손에 잡은지 너무 오래되는 바람에, 봉인이 너무 오래 지속되는 바람에, 몬스터들과 마왕과의 전투 때문에 내가 정신이 이상해져버린 것일 수도 있다. 그 누구도 내가 본 것을 증언해 줄 수 있는 이는 없었다. 나는 나조차도 나를 믿을 수 없는 상황에 검을 손에서 떨어뜨려 버리고 말았다. 분명 내 뒤의 저 상황은 내가 본 그대로 이건만 어째서 몬스터들만 없는 것일까. 나는 마법사들에 의해 구속되면서도 그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이 일을 통해 언론은 하루종일 나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쏟아냈고, 결국 나에 대한 재봉인이 결정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해가 되었다. 이것으로 사회에 안정을 줄 수 있다면 이것 또한 나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생각이 깨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를 봉인하러 한 몬스터 마법사가 들어왔다. 그러고보니 나를 추격하는 추적대에서도 마법사를 본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사이, 녀석은 나의 봉인을 시작했다. 봉인을 진행하던 중에 녀석은 내 귀에다대고 속삭였다.


“감히 네녀석이 마왕님을 시해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거다. 네가 우리를 그때 보지만 않았어도 너는 살아남을 수 있었을 것이다. 전부 네 탓에 네가 지금 이런 일을 겪는거다. 봉인이라는 억겁의 굴레 속에서 분노에 휩싸여라. 용사여.”


내가 그때 본 것이 거짓이 아니었다. 환상도 아니었다. 전부 진실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나니 처음으로 기쁨이 몰려왔다. 그 다음으로는 분노가 순식간에 들어찼다. 난 녀석들을 인간과 같이 대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녀석들은 나를 봉인시키고 있다. 분노가 끓어올랐다. 말 그대로 나의 분노가 끓어올랐다. 비록 봉인이 진행 중인지라 움직일 수는 없었지만 봉인을 진행시키던 인물도, 참관하러 온 자들도 그 누구도 새파랗게 질리지 않는 이가 없었다. 


“....난 다시 깨어날 것이다. 이전처럼. 그리고 그날에 날 지금 이 자리에 놓이게 만든 녀석들은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나의 검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검이 목전에 놓였을 때에 울부짖고 애걸하여도 그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최후를 기대하라.”


그렇게 나는 봉인되었다. 나의 분노 덕분인지 과거의 봉인처럼 의식까지 잃지는 않았고 그저 몸만 봉인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면이라고 생각되었다. 난 용사로서의 공을 인정받아 꺼림칙해하긴 했지만 도시 한복판에 동상으로서 나의 검과 함께 있게 되었다. 


참 보기가 힘들었다. 결국에 몬스터들이 마왕을 부활시키는 꼴, 그 마왕과 몬스터들을 막으려 별 짓거리를 다 하는 사람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몰살당하는 사람들. 의식이 날아가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하긴 했었지만 아무리 봐도 그 광경을 그대로 보는 것은 딱히 기분 좋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부터 바뀔 것이다. 다시 인간의 때가 도래할 것이다. 나, 용사가 다시 깨어난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