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 https://arca.live/b/novelchannel/66655436








쏴아아-----




“이런 빗 속에서 저 한테 할 얘기라니. 당신치고는 드무네요.” 

마법사 카렌. 

그녀에 대한 사전조사는 대충이나마 해두었었지. 

마왕이 일으킨 전쟁에 휘말려 인간과 마족의 최전방에서 전투를 치르느라 고향의 숲도 불타 잿더미가 되어 사라져버리고, 

사랑했던 가족이나 친구도 전부 잃어버리고 생존한 아직 젊은 엘프였다. 

조금 불행하다고 생각하지만, 불쌍하거나 가엾은 자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그녀와는 적대 관계에 있는 내가 뭔 자격으로 동정을 해주겠어. 

그리고 조금 냉정하게 말하자면 어차피 전쟁이란 그런 것일 테니까. 

고통의 무게를 비교하는 짓에 의미는 없겠지만, 그녀보다 더한 비극을 겪은자가 과연 한 둘이겠는가 싶었다. 


그리고 반대로 최전방에 있었던 만큼 그녀의 손에 의해서도 수많은 마족이 고통받았겠지. 

같은 마족으로서 느끼기에는… 내가 일으킨 전쟁도 아니고. 

마왕 혼자 멋대로 결정하고 일으킨 전쟁이니까. 

그녀에게 딱히 적대감 같은 건 없었다. 

생각해봤자 답이 나오지 않는 생각을 하는 건 진작에 그만 두었다. 

아무튼 최전방에서 머물던 카렌은 지금은 모종의 이유로 전선에서 조금 물러나 마법사로서 용사 파티의 후위를 맡고 있다. 

외부인이 보기에는 그냥 저냥 평범한 후위직이겠지만, 관계자인 사람들이 보기에는 실질적인 용사 무리의 중심격인 인물이었다. 

전투 외에 아직 미숙한 부분이 많은 용사를 대신해 파티 내외적으로 사무적인 일은 대부분 그녀 담당이었다. 

나라나 길드에 의뢰 완료 보고라던가, 

의뢰금 협상이나 파티의 정산금 관리라던가, 

필수적인 소모품이나 보존식의 준비 등등 그녀 없이는 용사 파티는 그냥 전투가 좀 능숙한 용병 집단 그 이상도 아니었겠지. 

하지만, 내가 합류한 지금에서는 그런 잡일은 전부 내가 뺏어오듯이 담당하고 있으니, 

현재 그녀는 순수하게 마법사로서의 일에만 집중하는 중이었다. 

전 처럼 잠도 못자가며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거의 울면서 기뻐하는 그녀를 보며 조금 부럽기도 했었다. 



“하아... 마음에 안 들어.” 

그녀는 조용하면서도, 적대감이 묻어 나오는 말투로 깊은 한숨을 쉬었다.

앞에 누가 있던 해야 할 말은 그 자리에서 바로바로 내뱉는 그런 거친 엘프였지만, 

어째서인지 지금은 굉장히 긴장된 체로 고민하면서 우물 쭈물 거릴 뿐이었다. 

덤으로 날 조금 노려보면서 말이다. 

평소에 가벼우면서, 때로는 밤 깊게 대화까지 나눈 사이였는데. 

그래서 서로 사이가 나쁜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나?



“네? 뭐가요?” 

사람을 이런 빗 속에 세워둔 체 할 소린가 싶은데 말이지... 

적어도 실내에서 부르지 말이다. 

방수 마법을 걸어놓은 로브를 뒤집에 쓰고 있긴 하지만 찝찝한 기분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런 말을 꺼내야 한다는 것 자체가 … 아 씨- 망할.” 

습기 때문인지 자꾸 옷에 달라붙는 옅은 은색을 띄는 허리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을 거칠게 손으로 정리하면서 불만 스러운듯이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자칭 고상한 엘프 치고는 드문 행동이긴하지만, 그녀는 언제나 이런 느낌이었다.  

음침하고, 

조금 사교성이 결핍되어있고, 

처음 보는 그 누구와도 항상 싸울 준비가 되어있는. 

엘프족 치고는 조금 특이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였지만, 파티의 모두는 그녀를 좋게 평가하고 있었다. 


그럴만도 한게. 

종교에 몸 담은 신관으로서 잔뜩 쌓여있는 세리나의 고민을 들어주고, 

잔뜩 취한 아스피다 노인의 푸념도 같이 취해 맞장구 쳐주고, 

마법이라고는 초심자에 가까운 용사에게 대 마법 지도를 해주고, 

입으로는 욕지거리는 내뱉으면서도 챙겨줄 건 다 챙겨주는 그녀를, 

파티의 그 누가 싫어하겠는가. 

마냥 거칠기만한 괴짜가 아니라 내심 자잘한 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본인은 티가 안나는 줄 알고 있겠지만 파티의 모두는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봐왔던 엘프들이라고는 고지식하고 오만한 것들이라는 것이 내 인상이었는데. 

카렌을 만나고 나서 그런 시선이 조금은 바뀌었다. 

물론 좋은 의미로 말이지. 

뭐, 그녀 말고 내가 봤었던 엘프들이란 죄다 처리 대상이었으니까, 좋은 인상을 남겼을리가 없나.



“… 그 바보같이 헤실대는 표정은 뭐야.” 



“아무것도 아니에요.” 

나도 모르게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나.



“… 좋아.” 

그런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엇인가 결심한 듯 말을 이었다.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말해두지.”



“대놓고 네 속 사정을 파고들 생각은 없었어. 파티의 암묵적인 룰도 있고, 널 만난지는 고작 1년 조금 넘었지만 일단은 동료니까 말이야.”



“그리고 아직은 제멋대로한 짐작정도니까. 굳이 말을 할 필요를 지금까지는 못 느꼈기도 하고… 그래서 그냥 넘어갈라 했는데 말이야… 이제 전 처럼 아무런 말 안하고 아무것도 모른 다는 듯이 굴며 내일로 넘어 갈수가 없어서 말이야.” 

아직 아무런 말도 듣지 않았지만, 굉장히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니, 나 혼자 일방적으로 떠들기만 할 테니까. 하고싶은 말이 있어도 넌 잠자코 듣기만 해.” 

반박 같은 건 나중에 하란 소리겠지. 

입을 다문 체 고개를 조금 끄덕여 알겠다는 뜻을 전하자 다시금 깊은 한숨과 함께 카렌의 말이 이어졌다.

 

 




“요즘. 우리 파티가 참 안정적으로 좋게 성장하고 있어. 용사는 하루가 다르게 강해지고 있고, 세리아의 치유능력은이제 이 나라에서도 손 꼽을 정도고, 아스피다 영감은 회춘이라도 한 건지 이제는 방패로 막아 낼 수 없는 것까지도 막아내는 베테랑이 되어버렸지, 나도 개인적인 연구가 수월하게 진척되고 있어서, 기분이 참 좋아. 아마 이대로만 간다면 마왕의 토벌도… 무리는 아닐지도 모르겠네.”



“그것 참 다행이네요.” 

대체 이런 빗속에서 할말이란 게 고작 이런 거였을까. 

날 선 눈빛을 보니 그럴리가 없겠지. 

혹시 내 정체를 눈치라도 챈 걸까? 

아니면 의도적으로 용사파티를 배불리고 있다는 걸 들켰나? 

해왔던 짓들이 있으니 짚히는 부분이 많아 조금 짐작을 할 수가 없었지만, 그래도 별 일 아닐 거라고 생각했었다. 

언제나 처럼 대충 둘러대면서 넘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불길한 기분은 틀리지 않았다는 듯이-



“그렇게 좋은 일들만 있냐 하면… 그거 알아? 요즘. 이 거리에서…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어. 정확히 말하자면 연쇄 살인 사건이지.” 

가장 들키고 싶지 않았던 부분이 드러나자, 얻어맞은 듯이 한순간 숨이 멈췄다. 



“시간과 장소를 따지지 않고. 귀족이던 평민이던. 노인이던 아이던. 남자던 여자던 상관 없이 아무것도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습격당해서 죽은 체로 발견된다고 하나봐.” 

지팡이를 잡고 있는 카렌의 손에 조금 힘이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품 안쪽에 넣은 손은 아마 단검 손잡이를 잡고 있을 것이다. 

마법사 답게 주무기는 지팡이였지만, 카렌은 지팡이 말고도 단검이며 석궁에, 소형 폭탄까지 전부 사용하는 마법사였다. 

마법사라기보다는 오히려 도적에 가깝지 않을까 싶었다. 

마법사라고 마법에만 의존하는 놈들은 죄다 금방 죽기 마련이라면서, 싸울 수 있는 수단은 많을수록 좋다며 그녀는 항상 입버릇 처럼 말해왔었다. 

단순한 빈 말이 아니라는 것은 그녀와 같이 싸워 오면서 느낄 수 있었다. 

언제나 전투에서 항상 증명해 왔으니까. 

만약 이 거리에서 그녀와 싸우게 된다면, 서로 치명상을 피하기는 어려울 정도겠지. 



“그… 그, 런가요…” 

부자연스럽게 굳어버린 입에서 간신히 기어가는소리가 나왔다.



“뭐. 별로 놀랄 일은 아니지? 어차피 지금은 마왕과의 전쟁중이기도 하고, 사람 한 둘 죽는 게 뭐 대수라고 말이야. 그치?” 

별로 놀라지 않을 걸 이미 알고 있듯이 무미건조한 반응이었다.



“... 그렇네요.” 



“아무튼,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죽어나가니까. 길드에서 의뢰를 미친듯이 뿌려대고 있어서 말이야. 나도 좀 조사해봤지. 그랬더니, 신기한 점이 하나 있더라고.”



“아까는 무차별적인 살인이라고 했지만, 딱 하나. 죽은 놈들에게 딱 하나 공통점이 있더라고.” 

그렇게 말하곤 다시금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 모두 우리 용사 파티와 접점이 있었다는 점. 그것도 좋지 않은 쪽으로만.” 

주머니에서 꺼낸 이름이 빽빽하게 적혀 있는 명단을 보며 그녀가 말했다.


“…” 

거기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아무것도 없었다.



“대충이나마 말해주자면… 처음으로 죽은 귀족은 용사제도에 반대하며 용사에게 누명을 뒤집에 씌워 평판을 떨어트리려 했던 놈. 22일 전에 죽은 신관은 세리아를 모욕하며 기부금을 갈취하던 놈. 12일 전에 죽은 상인은 말도 안되는 가격으로 바가지를 씌우며 저급 상품을 속여 판매하려던 놈. 5일전에 죽은 불량배들은 아스피다 영감한테 푼돈이나 뜯어내려던 놈들. 그리고---“ 

여전히 멈출 기미가 보이질 않는 빗속에서 이미 세상에 없는 사람들의 이름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 그리고 바로 어제 밤에 온 몸이 난도질 당한 체로 발견 된 몇 명의 취객들…”



“자랑은 아니지만, 난 내가 봐왔던 모든 사람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어. 그 놈들. 너와 만났던 날, 술집에서 시비걸던 그 쓰레기들이잖아.” 



“어느 미치광이가 저질렀는 몰라도 이 정도의 연관성만 있어도 길드에서 알아채기라도 한다면 우리 용사님에게 무슨 짓을 할지… 알고 있는지나 모르겠네.”



“하지만… 일단 모든 문제를 다 떠나서. 솜씨 하나는 굉장하네. 도시의 사람들이 의심의 눈초리를 돌릴 틈도 없이 전부 제거 당했으니까. 모두들 단순히 미치광이 살인마 정도로 알고 있어.”



“그것 참… 무섭네요.”



“그리고 시체가 발견 되는 날은… 언제나 네가 의뢰에 참여하지 않은 다음날이더라.” 

그녀의 지팡이에 마력을 집중하듯이 푸른 일렁임이 모여들고 있었다.  



“비번인 날에 무슨 일은 하던지 굳이 신경쓰지 않는 게 암묵적인 규칙이긴 하지만, 언젠가부터 늦은 밤마다 몰래 숙소로 돌아온다던가, 우리들중 아마 나 밖에 맡지 못했을 피비린내를 풍기며 평소대로 웃으며 걷거나, 인간들은 취급하지 않는 특수한… 마력이 담긴 나이프를 사용한다던가. 뭐 여러가지 있지만 다 떠나서… 내가 무슨 각오로 이딴 소리나 하고 있는지는, 눈치 빠른 너라면 이미 알고 있겠지.” 



“그렇… 네요.” 

나 역시 조용하게 마법 영창을 중얼 거리며 로브속에서 단검을 움켜쥐었다. 



“…”



“…” 



“… 하아…” 

그렇게 잠시동안 이어진 침묵 끝에 그녀가 먼저 지팡이를 땅에 내려 놓았다. 

아니, 내던졌다.



“됐어. 굳이 싸우려고 이렇게 따로 불러낸게 아니니까. 무기는 안 꺼내도 좋을 걸.” 

팽팽하게 있었던 긴장의 끈이 갑자기 느슨하게 풀려버렸다.



“어, 어라?”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조금 얼이 빠진 목소리가 나왔다.



“왜 그런 표정이냐? 처음부터 말했잖아. 그냥 내 어림짐작일 뿐이라고. 그리고 난 지는 싸움은 안하는 주의라서 말이지.” 

내앞에는 평소대로의 카렌이 있을 뿐이었다.



“… 그럼 왜 제게 그… ‘어림짐작’을 말해주신거죠?” 

실제로 길드로의 의뢰도 들어왔으니, 증거는 충분히 있었을터였다. 

굳이 내게 말하지 않고 바로 보고했는게 옳은 판단 아니었을까.



“글쎄? 왜 일까?” 

진심으로 재밌어하는 듯 히죽대며 놀리기만 할뿐 말할 생각은 없어보였다.



“아무튼, 여기서부터는 내 혼잣말이라고 생각해. 나도 이딴 충고나 할 만큼 마냥 사람 착하거나 꺠끗한 놈이 아니란 건 내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어. 오히려 그 반대라면 또 모를까. 그래도 이거 한 마디만큼은 해주고 싶었어.” 

당사자에게 이런 소리를 하는 것 부터가 사람좋은 행동이라는 걸 모르는 걸까.



“그만 두는 게 좋을거야. 여러가지 의미로 말이지.” 

아까처럼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어 웃음기가 사라진 진지한 눈빛으로 내게 그렇게 말했다.



“… 죽은 놈들 대부분은, 용사에게 해만 끼칠뿐인 놈들, 최대한 안 좋게 말하면, 죽어 없어지는 게 우리에겐 더 좋은 놈들뿐. 그들이 죽어서 결과적으로 우리 파티에게 시비를 걸거나 뒷공작을 하는 것들은 모두 사라졌지. 그래도 말이지… 너무 많이 죽였어.”



“누구 누구씨는 아직도 들키지 않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결국 시간의 차이일 뿐이지. 언젠간 모두가 알게 될거다. 그 사람 착한 용사가 진실을 알아버리면, 과연 어떻게 될까. 그때는 지금처럼 이렇게 사악하고 인성 파탄난 마녀가 눈 감아주는 걸로는 끝나지 않을테니까.”



“지금은. 말하지 않겠다는 건가요.” 

이렇게 까지 말해놓고 이해 할 수 없었다.



“뭐… 처음 만났을 때의 너라면 주저없이 폭로해버렸겠지만…”



“지금은 너도 내 몇 안되는 진짜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믿어주도록 하지.”



“친구… 인가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기까지야.” 

그렇게 일방적으로 말하고는 땅에 떨어진 지팡이를 다시 주워 돌아갈 준비를 했다.



“… 한가지. 말해도 될까요.



“뭔데?”



“… 고작 이런 말 한 마디 따위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거에요.”



“… 지금 니 표정을 너도 좀 봐야 할텐데.”



---쏴아아

하는 처음보다  몇 배는 더 거세진 물줄기가 빗발치는 소음속에 파묻힌 체로. 더 이상 마른 곳조차 없어졌지만 가만히 머리 위로 받아내면서, 카렌이 돌아간 뒤에도 한동안 조용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오늘도 저랑 카밀라씨가 모닥불 담당이네요.” 

타닥 타닥 소리를 내며 불꽃에 핥아지는 장작을 앞에 두고 용사 크리시아가 웃었다.



“그러게요~ 제비뽑기에 연속으로 2번 걸릴 줄은 몰랐어요.” 

나 역시 용사 옆에 앉아 날름거리는 화염속으로 장작을 몇 개 집어 넣으며 맞장구 쳐주었다.



“오늘은 전투도 거의 혼자서 다 치루셨으니까, 먼저 들어가 쉬셔도---"



“전에도 그랬다가 카렌에게 혼났잖아요.”



“아… 아하하. 그랬었죠.” 



“됐으니까 오늘도 같이 밤이나 지내자구요.” 

그렇게, 마왕성 근처 인근 숲에서 밤은 깊어져만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