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사는 마침내 마왕을 토벌할 파티를 꾸렸다.


"자! 이제 준비가 다 되었으니 마왕을 잡으러 가자!"


힘찬 출정의 선언이다.

그러자 마법사가 지도를 펼쳤다.


"마계로 가기 위해서는 우선 여기 A성으로 가야해요."


"좋아! 출발!"


"그런데 A성으로 어떻게 가지? 이 지도만으로는 가기 힘들 텐데?"


그 고민은 금방 해결되었다.

A성으로 가는 상단의 상단주가 애타게 용병을 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A성까지 상단을 호위해 줄 용병 구해요. 숙식 제공합니다. 가는길에 몬스터가 너무 많아서 갈 수가 없어요."


용사는 눈을 빛냈다.


"저거다!"


그렇게 A성을 향한 용사의 힘찬 발걸음이 시작되었다.


...


"드.. 드디어 도착.."


상행이라는 것이 늘 그렇듯 목적지로 익스프레스로 달려가는 것이 아니다.

이득을 볼 기회가 있다면 어디든 가서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이를 위해 상인은..


"이번에는 저 마을에서 1주일만 지내다 가죠."


이런 소리를 지나는 마을마다 입에 올렸다.


문제는 그 뿐만이 아니었다.

수레를 끄는 마소는 느렸으며,

짐을 끄는 동물들은 빠르게 지쳤기에 중간중간 쉴 필요도 있었고,

견물생심이라 지나는 산마다 산적들이 달려들었으며,

상인이 말한 그대로 몬스터도 끝내주게 많이 나왔다.

그 결과..


"나.. 근육이 좀 붙은 것 같아.."


마법사의 한탄이었다.

이미 미모 관리는 관둔지 오래였다.

싸울 때마다 마력이 쪽쪽 빠져나가서 그런지 얼굴이 급격하게 삭아 있었다.

분명히 처음 파티 가입할 때는 풋풋했던것 같은데?

요즘 보면 시장통 아줌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저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유혹..

유.."


사제는 머리에 낀 마구니를 몰아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기도하는 중이었다.


"다른 사제도 있는데 왜 하필 내가 이 파티에 끼어서 으아아악.. 아버지! 저를 버리셨나이까?"


이런 비명을 매일같이 질러 대다가 정신 차리고 참회의 기도를 올리는 것을 반복하는 중인 것이다.


그리고.. 용사는..


"으아아아앙 엄마아! 저 아저씨 무서워!"


"쉿! 조용히 해야지."


여리여리한 미청년에서 존재만으로 아이를 울릴 수 있는 용병왕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그나마 소득이 있다면..


"마왕한테 지지는 않겠군.."


모두의 레벨이 폭등해 있다는 점이었다.


"그래요. 반드시 이길 수 있어요 우리."


"신앙의 적에게 성스러운 심판을!"


...


신이 말했다.


"여기까지다 마왕. 이제 네 턴이다. 슬슬 외통순데 포기하지?"


마왕은 지상의 판도를 내려다 보며 끄으응.. 하는 신음 소리를 냈다.

정말 답이 없었다.

다음에 저것들 직접 공격 오면 라이프 제론데?

하지만 이렇게 질 수는 없었다.

이번에도 지면 5연패기 때문이다.

마왕의 자존심에 큰 스크래치가 날 것이 분명하다.


"아직.. 아직이다. 난 지지 않았어. 이번 드로우에 모든 것을 걸겠다. 데~에스티니 드~로!"


마왕은 뽑은 카드를 손에 쥐고 살짝 들춰봤다.

카드의 이름은..


"으하하하하하 내가 뽑은 카드는 블레이즈 데몬. 마법카드 인트루전 게이트를 발동! 블레이즈 데몬을 인간계 방어선을 무시하고 왕국 수도에 공격 배치!"


신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인트루전 게이트를 지금까지 아껴두고 있었다고? 이런.."


"어쩔거냐? 왕국이 떨어질지도 모른다고?"


"씁.."


...


마침내 마계로 진입하는 날이다.

이 날을 얼마나 기다려 왔던가?

고행의 종착역이 얼마 남지 않았다.


"준비 됐지?"


용사가 물었으나 마법사와 사제는 아무 말도 없었다.

다만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끝낼 때가 왔다. 가자!"


그렇게 마계를 향해 용사파티가 성문을 나서려는 순간..


"용사는 잠시 멈추시오!"


왕국의 친위대 문양을 새긴 멋들어진 풀 플레이트 아머를 입은 기사가 말을 달려 용사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무슨 일이신지요?"


"왕국의 수도에 갑자기 상위 악마가 나타났소. 왕국 멸망의 위기요."


"수도에 말입니까?"


"네! 그렇소. 그러니 용사님은 저와 같이 돌아가 왕국을 위기에서 구해주셔야 하겠소."


"네? 하지만 왕국 수도는 여기서 먼데.."


"걱정하실 필요 없소. 제가 텔레포트 스크롤을 가져왔으니까?"


용사는 그 말을 듣고 잠시 벙쪄 버렸다.


"... 텔.. 텔레포트 스크롤이 있었단 말입니까? 왕국에서는.. 우리에게 마왕 퇴치를 명해 놓고 그걸 지원하지 않았단 말입니까?"


"사소한건 신경쓰지 마시오. 용사란 인류를 구하는 자. 자! 왕국을 위기에서 구하러 같이 갑시다. 스크롤을 찢겠습니다."


"아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잠깐만.."


-푸슝


그렇게 용사와 친위대 기사가 왕국 수도로 사라졌다.


"..."


"..."


그 모습을 입을 헤 벌리고 구경하고 있던 사제와 마법사는 잠시 석상처럼 굳어 있다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서로를 마주 보았다.


"이제 어쩌죠?"


"저도 모르겠네요 마법사님. 하하.. 이것도 시련이겠죠? 아아! 하늘에 계신 아버지. 당신을 미치도록 패고 싶습니다. 부디 이런 저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마왕군에 가입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제발!"


언제쯤 마왕성에 도달할 수 있을까?

그것은 용사파티 그 누구도 대답할 수 없는 문제였다.


...


신은 판도를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바라보다가 결국 비장의 카드를 쓰기로 결정했다.


"... 함정카드 발동.. 텔레포테이션 네트워크."


"텔레포테이션 네트워크라.. 유닛 중 하나를 이동속도를 무시하고 즉시 재배치하는 함정카드. 깔려 있는 줄은 알았지. 근데 용사파티는 찢어지면 전투력이 급감할 텐데?"


"... 그래도 블레이즈 데몬 따위를 처리하는데는 충분하다."


마왕이 깐족거렸다.


"아. 충분은 하겠지 충분은. 그래도 문앞에서 용사파티 치워버리니 속이 다 시원하네."


"아직 게임이 끝난 거 아니거든?"


"이번에야말로 내가 이긴다."


마왕과 신의 유희는 당분간 계속될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