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사란 무엇일까? 勇士일까? 아니면 用私일까? 이 말은 누군가가 듣는다면 누가 봐도 전자라며 물어본 이를 바보 취급하겠지. 하지만 나는 깨달음이 느렸다. 용맹한 사람이 아닌 사적으로 사용됐다.

 

시골구석 자랑이라곤 푸르른 하늘과 노을빛 바다처럼 넘실거리는 밀밭밖에 없는 벽촌. 나는 그 곳에서 자랐다. 인중이 거뭇해지지도 않았을 무렵번쩍번쩍한 황금 수실로 꾸민 사람들이 나를 찾아와 말했다. “너는 선택된 약속의 아이이니, 우리를 따라와 영광된 길을 걷자꾸나.”라고. 

 

그때 당시 나는 그 사람의 말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주변 사람들의 격앙된 목소리와 부모님의 표정을 보고 아, 이거는 좋은 일이구나 하고 좋아했을 뿐이었다.

 

황실에 오고 나서야 알았다. 내가 선택받은 용사라는 것을. 어린 나는 정말로 뛸 듯이 기뻐했었다. 내가 용사라니! 용사는 동화 속에서 나오는 약한 자들을 위한 영웅 아닌가! 당시의 나는 동화 속 용사를 동경했었기에, 이 상황은 내가 바라마지 않던 상황이었다. 심지어 황실에서는 나에게 검술을 가르치고 도덕을 가르치고 태도를 가르칠 선생님마저 준비되어있었다. 나는 푸르던 나뭇잎이 노래지고 떨어지며 이내 새하얀 눈 속에 파묻히기를 반복하는 시간 동안 황실에서 용사가 되기 위해 준비했다. 

 

볼에 젖살이 거의 다 빠졌을 무렵, 나는 친구들을 소개받았다. 천 리 밖에서도 동전을 맞춘다는 엘프 종족 출신 드렉스와 마탑주의 단 하나뿐인 제자 카자드를. 나는 곧장 그들과 친해지고 싶었다. 하지만 그 둘은 나와 친해지고 싶었지 않았었나 보다. 그 둘은 내 말을 무시하기 일쑤였고 계속해서 자기 할 일을 했다. 아마 황실이 익숙치 않아서겠지. 나는 마음을 다잡고 그들과 친해지기 위해서 며칠동안이나 그들을 쫓아다녔다.

 

어느 날, 나는 새끼 고양이가 나무 위에서 내려오지 못하는 것을 발견하고 곧바로 나무를 타 고양이를 구해주었다. 고양이는 고마웠는지 내게서 잠시동안 떠나지 않았고 그를 본 근처에 있던 드렉스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이 고양이 너꺼야?” 

 

나는 반색했다. 그가 먼저 말을 걸어준 건 처음이었거든. 나는 반가운 마음에 그에게 연신 말을 걸었다. 하지만 그는 대강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내 나는 이유를 알아차렸다. 드렉스의 눈이 고양이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거든. 나는 드렉스에게 물었다. 

 

“고양이 좋아해?”

 

그러자 드렉스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해. 근데 나는 고양이 털 알레르기가 있어서 못 만져.” 

 

드렉스는 그리 말하곤 고양이를 구경만 했다. 기뻐보이지만 침울해하는 드렉스의 표정이 눈에 밟혀 고향에서 가저온 고양이 인형을 내어주었다. 그 때 처음 알았다. 드렉스는 웃으면 보조개가 생기는 구나.

 

드렉스와 친해지자 카자드와 친해지는 것도 시간 문제였다. 그의 여동생과 관련된 화제를 꺼내니까 그의 굳게 닫힌 입도 터진 댐마냥 열렸거든. 그의 여동생 자랑은 멈추지 않았다. 자기의 머리칼과 같이 아름다운 푸른빛이고 마음씨도 곱다며 연신 자랑을 해댔다. 아무래도 그는 그의 여동생을 끔찍히도 사랑하나보다.

 

그렇게 나와 드렉스, 카자드는 날이 가면 갈수록 우의가 돈독해져 어느새 그 누구보다도 친한 사이가 되었다. 그때 즈음 황실에서 공문이 내려왔다. 용사의 첫 출격이었다. 나는 부푼 마음을 안고 가장 친한 둘과 함께 마족과의 전선으로 향했다. 하지만 들뜬 마음이 시궁창에 쳐박히는 것은 금방이었다. 

 

빗발치는 마법과 화살, 끊임없이 들리는 광기 젖은 비명과 파륙음은 마치 지옥에서 열리는 오케스트라 같았다. 나는 한참동안이나 굳어있었다. 얼마나 멍청한 표정이었을까. 보다못한 드렉스가 나의 뺨을 때리며 고함쳤다.

 

 “미하일!! 뭐하는 거냐!! 정신 차려어어!!!”

 

정신이 돌아왔다. 맞아. 나는 용사니까. 내가 정신을 놓으면 다른 사람들은 어떡하겠어. 그리 생각하자, 후들대던 다리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리는 후들거렸지만 똑바로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나는 비명인지 기합인지 모를 괴성을 터트리며 달려나가 검을 휘둘렀고 처음으로 생명을 베었다. 검을 타고 흘러오는 불쾌한 저항감, 하지만 생각보다 쉽게 잘리는 육골, 생기가 빠져나가기 시작하는 눈동자. 거기서부터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군의 함성 소리가 들렸을 때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뒤를 돌아봤다. 드렉스와 카자드의 얼굴은 땀과 흙, 재 등에 더럽혀져있었지만 그것들이 그 둘의 얼굴의 성취감과 뿌듯함을 바래진 못하였다. 그들은 나와 달리 마냥 행복한가 보다.

 

우리는 성공적으로 첫 전투를 끝마쳤다. 압도적인 대승. 사람들은 연신 우리의 이름을 외쳤다. 영웅, 혹은 용사라던가 뭐라나. 그치만 그것들은 우리의 마음을 들뜨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어느새, 전투의 불쾌감은 씻은듯이 사라져있고 다음 출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다음 전장, 또 다음 전장, 전장, 전장, 전장, 전장… 

 

전장은 이제 나에게 익숙한 것이 되어있었다. 그렇다고 전장이 좋았던건 아니었다. 나를 지치고 힘들게 만들 뿐 내가 진정으로 좋아했던건, 그저 돌아왔을 때 환호하며 기뻐하는 사람들의 얼굴이었다. 내가 그들의 평화를 지켜준다는 것이 기뻤던 것이다.

 

아마 스무 번이 넘었었나, 그때 쯤 깨달았다. 내가 가는 곳마다 대승을 이뤘건만, 마족의 기세는 누그러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대로면 전쟁은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나는 곧장 국왕 폐하께 요청을 올렸다. 우리 셋은 강력하고 적 수장의 목을 치기에 충분하다고. 그래서 태평성대가 오면 국왕폐하와 백성들의 크나큰 지복일터이다. 하지만 우리의 요청은 기각되었다. 

 

나는 수긍했다. 아마 폐하께서 우리의 힘이 부족하다 생각하시나보다….하고. 그렇게 3년이 지났다.

 

길어진 전쟁에 마을 여기저기 곡소리가 들리고 많은 백성들이 배를 굶주렸다. 나는 또 폐하께 청을 올렸지만 자연스럽게 기각되었다. 이게 몇 번째 청이더라, 23번째인가. 사실 이쯤되면 알기 싫어도 알게되었다. 국왕은 전쟁을 끝낼 생각이 없다는 것을. 그는 위태로웠던 왕권을 바로세우는데만 신경이 쏠려있고 백성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것을. 그저 내가 믿기 싫었을 뿐이다. 

 

“카자드, 드렉스… 우리는 얼마나 싸워야 할까…?”

 

둘은 침묵했다. 그들도 알고 있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왕의 배를 채우기 위해 영원토록 싸워야 한다는 것을.

 

나는 칼집에서 성검을 뽑았다. 분명 용사의 상징이건만, 성검은 피를 머금은 듯 어느순간부터 붉어져있었다. 붉어진 칼날이 나를 부정하는 것만 같았다. 너는 용사가 아니라고 용병일뿐이라고.

 

나는 용사의 자격을 잃는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칼날이 보이지 않게 성검을 다시 검집에 집어넣었다. 나는 정말 자격이 있는 것일까?

 

나는 생각이 복잡해져 야음을 틈타 몰래 성을 빠져나왔다. 빈민촌을 둘러보니 전체적으로 상태가 좋지않다. 휘양찬란한 성과는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그러다 한 소년이 내게 말을 걸었다. 오물이 묻은 누더기 품 속, 새하얀 인형을 품고 있는 특이한 소년이었다.

 

“저기요… 혹시 용사님이세요…?”

 

나는 깜짝 놀랐다. 후드를 뒤집어 쓰고 있는데도 나를 알아차리다니 나는 곧바로 소년을 조용히 시켰다.

 

“쉿, 혹시 어떻게 알아봤니?”

“검집이 용사님과 똑같아서요. 정말 용사님이세요?”

 

나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러자 소년이 신이 나서는 자신의 인형을 내게 보여주었다.

 

“이거 용사님 인형이에요! 제가 만들었어요.”

“직접 만들었다고? 대단하네!”

“맨날 가지고 다녀요! 용사님이 저흴 지켜주시니까요!”

 

소년은 그리 말하더니 나에게 연신 감사인사를 전했다. 하지만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고개를 미약하게 끄덕일 뿐.

 

“요,용사님..! 항상 우리를 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왕도 언젠가 무찔러주실거죠?”

 

나는 입을 또 열지 못했다. 그야 대답할 수 없으니까. 소년의 순진무구한 감사에 대답할 것은 거짓 용사가 아니니까. 

 

소년은 내가 아무말도 하지 않음에도 환한 미소를 짓고있었다. 그런 소년의 얼굴은 떼와 먼지로 얼룩져 있었지만 그 속에는 무엇으로도 더럽힐 수 없는 희망이 있었다. 나는 무언가를 깨달았다. 그래, 이것이 용사의 존재 이유였다. 당연한 사실이었건만 멍청한 용사는 이제야 깨닫고 말았다.

 

나의 입이 드디어 열렸다.

 

“걱정하지 마렴, 꼬마야. 마왕을 꼭 무찔러줄 테니까.”

 

나는 소년에게 은화를 건네주고 왕궁으로 향했다. 발걸음은 확고했고 눈빛은 더 이상 흐리지 않았다. 나는 더 이상 칼 끝을 혼동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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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드렉스와 카자드와 상의했고 결정을 내렸다. 카자드는 여동생과 짧은 만남을 가졌고 드렉스는 일기의 마지막 장을 썼다. 그리고 나는 그때 만났던 소년을 찾아가 감사인사를 전했다. 

마지막으로 할 일을 마친 우리는 술집에 모였다. 처음 마시는 맥주는 시원했다. 처음이자 마지막 술이 될 수도 있었기에 아쉽기는 했다. 나의 아쉬움과는 별개로 술자리는 즐거웠다. 의외로 드렉스는 술을 잘 못하고 카자드는 취하면 뻗는 타입이더라.

 

다음 날, 나는 국왕에게 언제나와 같은 청을 올렸다. 거절당할 것은 알고 있었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국왕을 믿고 싶었을 뿐이었다. 

 

출정 2일 전, 계시가 내려왔다. 용사 일행이 곧 마왕의 목을 벨 것이라고. 당연히 왕과 귀족들은 난리가 났다. 그들은 온갖 방법으로 나를 회유하고 제안하고 방해하기 시작했다. 용사가 마왕의 목을 벤다면 용사를 차지하는 세력이 왕권을 쥘 수 있을 터이니까. 

 

하지만 동요하지 않았다. 그들이 우리의 재산을 압류하고 금은보화를 제시하였음에도. 우리의 발걸음은 멈출줄을 몰랐다.

 

아쉬워하지 않았다. 그들이 나의 유명세를 원하고 우리의 이름을 휘둘러 자기의 사익에 쓸 것임이 분명하기에. 그리고 그것은 높은 확률로 피를 부를 것이다.

 

명예를 버리고 사익을 버리고 우리들을 옭아메는 속박들을 벗어던졌다. 우리들에게 남은 것은 오직 태양 같은 용기와 강철 같은 의지뿐. 우리는 용기와 강철을 벼려내만든 칼 끝으로 진정한 악을 가리켰다. 이것이 악을 단죄할 것이다.

 

**********

 

마지막 행군이 시작되고 우리는 싸우고 달리고 숨어들고 쓰러트리며 마왕에게 조금씩 나아갔다.

 

그리고 마침내 마왕을 보았다. 

 

그것은 사람과 비슷한 형태였지만 온몸이 까맸다. 빛조차 흡수하는 칠흑같이 그의 몸은 너무나도이질적이고 공포스러웠다. 마치 허공에 구멍이 뚫려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것을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온갖 악의로 똘똘 뭉쳐있는 존재라고. 그리고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임을 직감했지만 우리는 망설이지 않았다.

 

“드렉스! 쏴아!!!!”

 

피-잉!,핑!

 

드렉스는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활에 화살을 매겨 쏘아냈다. 순식간에 시야를 가득 채우는 화살 비가 마왕을 덮어간다. 궁술의 극에 다른 기예였지만 마왕은 화살의 벽 사이를 미끄러지며 피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마왕의 반격. 그의 주먹이 허공을 가르자. 카자드의 보호막들이 쿠키마냥 깨져나갔다. 그리고 순식간에 행해지는 마왕의 반격.

 

나는 바로 성검을 휘둘러 마왕의 후속타를 튕겨냈다. 

 

단 한번의 공방이 오갔음에도 엄청난 심력이 소모되었다. 하지만 무너질 우리가 아니었다. 마왕과의 교전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엄청난 속도로 쏘아지는 마법과 화살들에 마왕도 여유가 사라졌는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마법과 화살의 폭풍을 마왕은 피하고 잡고 쳐냈다. 하지만 전부 쳐내는 것은 마왕에게도 힘들었는지 여기저기 잔상처가 나있었다.

 

나는 마왕을 몰아붙이기 위해 곧바로 마왕에게 접근하여 마왕의 움직임을 봉했다. 숨 쉴 틈 없이 오고 가는 공방. 카자드와 드렉스도 나를 도와 마왕을 몰아붙였다. 하지만 그도 부족했는지 마왕의 주먹은 나의 빈틈을 파고 들고 성검을 틀어막았다. 

 

아차 싶은 순간, 마왕의 어깨로부터 주먹이 쏘아졌다. 어느새 주먹은 나의 코 앞까지 짓쳐들어있었다.

 

‘죽는다.’

 

하지만 나는 죽지 않았다.

 

-콰지지직!

 

“쿨럭-!”

 

그저 나의 얼굴에 피만 튀었을 뿐. 하지만 내 눈 앞의 광경은 충격적이었다. 드렉스의 활대가 부러지고 등에서 마왕의 주먹이 자라나있었다.

 

“드렉스!”

“그냥 찔러!!”

 

하지만 마왕은 우리에게 조금의 시간도 주지 않았다. 그저 계속해서 묵묵히 주먹과 발을 놀려 나를 압박해왔다. 슬퍼할 시간 조차 없었다. 카자드의 보조가 없었으면 진작에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아슬아슬한 공방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마왕의 몸은 성한데가 없었지만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나의 왼팔은 이미 마왕에게 잡혀뜯어졌다. 카자드도 마력이 얼마 남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카자드도 죽었다. 카자드는 혼자는 못 죽겠다는 듯 마지막으로 자폭 마법을 쓰고 죽었다. 그리고 나 혼자만 남았다.

 

마왕과 나. 우리 둘은 만신창이였다. 나는 부족한 피 때문에 흔들리는 시야를 억지로 바로잡으며 칼을 휘둘렀다. 하지만 빈틈이 조금 컸을까. 마왕은 나의 오른 무릎을 발로 밟아 부숴버렸다.

 

격통과 실혈에 숨조차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나아가야했다. 나밖에 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그대로 검을 휘둘러 마왕의 다리를 잘라냈다.

 

사이 좋게 균형을 잃고 쓰러지는 둘.

 

둘 다 외팔, 외다리였지만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마왕은 하나 남은 팔과 다리로 일어나고 용사는 칼을 지팡이 삼아 일어섰다.

 

처절했다. 칼을 휘두르는지 칼에 휘둘리는지 분간조차 되지 않았다. 하지만 숭고했다. 그의 처절함에는 정의가 있었다. 

 

그런 용사를 어여쁘게 여겨서일까. 기적이 일어났다. 마왕이 카자드의 지팡이를 밟고 미끄러졌다. 그리고 용사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성검은 마왕의 목에 꽂혔고 마왕은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하지만 힘을 다하여서 일까. 용사의 자세 또한 무너져 내리더니 그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

 

“ -그렇게 용사는 마왕을 무찔렀단다.”

“원장님, 그래서 용사는 어떻게 됐어요? 죽었어요?”

“음… 글쎄다. 어딘가에서 살아 있을 수도 있겠지.”

“용사님 살아있으면 좋겠다…”

 

노인은 책장을 덮고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윽고 방문을 열고 들어온 중년 여인이 노인을 보고 소리쳤다.

 

“원장님! 애한테 헛바람 넣지 말라니까요!”

“허허, 이거 들켰구나. 칼, 어서 도망치렴.”

“히히히! 도망가!”

 

아이는 웃으면서 방문밖으로 달려나갔다. 아이가 방문을 닫자 얼마 지나지 않아 방의 공기가 착 가라 앉았다. 서로 마주 보는 중년 여인과 노인.

 

“… 무슨일이니?”

“숨길 생각하지 마세요. 갈 생각이죠?”

“… 막을거니?”

“막으면 안 가실거에요?”

 

노인은 그저 껄걸 웃으며 지팡이를 짚고 일어났다. 그는 지팡이를 짚을 정도로 늙어보이지 않았다. 그의 허리는 꼿꼿했고 건장한 체격은 젊은이에 뒤지지 않았다. 그저 한쪽 발이 의족이었을 뿐.

 

“그래도 도움이 필요하다잖니…”

“어휴… 진짜 오빠는 괜히 나한테 귀찮은 사람만 맡기고…”

 

중년 여인이 한숨을 쉬며 잔소리를 해댔지만 노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벽에 걸려있는 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검을 뽑았다. 지팡이는 더 이상 필요없었다. 

 

“늙었어도 비가 오면 삭신이 쑤셔도 어쩔 수 없잖니?”

“예,예. 그러시겠죠.”

 

그리고 둘의 입이 열렸다.

 

“”용사니까.””

 

노인은 검을 허리에 패용하고 문을 나섰다. 문 앞의 자그마한 흙더미 두 개만이 그의 길을 배웅해줄 뿐이었다.

 

용사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