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한 장붕이가 했던 말이다.


당연히 아무도 믿지 않았다.

아니, 어떤 장붕이들은 오히려 낄낄거리며 댓글로 맞받아쳐 주기도 하였다.

하루에도 수십에서 수백 개의 뻘글이 올라오는 장르소설 채널에서, 저 정도의 뻘글은 약한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말이 사실이었다는 것을.

그 말이 현실이 될 줄, 내가 어떻게 알았겠는가.



* * *



-[장르소설 채널]


[얼리버드 취침][3]

[자러 감 잘자콘 달아줘][5]

[근데 사실 BL 좀 꼴리지 않냐][69]

[다들 잘자][3]

[장챈 문 닫습니다][8]

[완장 갔냐? 할머니 달린다 ㅋㅋ][13]



"...저 괘씸한 완장 놈들... 또 챈 버리고 자러 가네."


새벽 2시.

평화롭게 챈질을 하던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채널에 언제 어떤 핵폭탄이 떨어질지 모르는데, 그걸 무시하고 그냥 자러 가?

이거 괘씸하거든요.


살짝 인상을 구기며 빠른 손놀림으로 글을 작성했다.



[소신발언) 완장은 자면 안 된다고 생각함]


감히 할매 지우개가 잠을 자?

학용품은 잠 따위 자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만?

(아카콘)


[댓글]


-(아카콘)

-완장도 사람이야... 잠 좀 자자

ㄴ 뎃?완장이 언제부터 사람이었죠?

ㄴ ㄹㅇㅋㅋ

ㄴ (아카콘)



"어휴... 하여간..."


한숨을 푹 내쉬며 다시 채널을 하염없이 새로고침하기 시작했다.

대다수의 장붕이들이 꿈나라로 떠난 탓일까. 채널은 무척이나 조용했다.

그 흔한 뻘글조차도 올라오지 않는, 정적 그 자체.


그러길 한참.


나라도 채널을 살려야겠다는 생각에,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글쓰기 버튼을 눌렀다.



[장챈 사망 시즌 19721121호]


장붕이들... 챈이 죽고 있잖야, 챈이!!

챈을 살려야 할 것 아니야!!

(아카콘)



"......"


의미없는 뻘글을 올리고 나니, 빠르게 달리는 댓글들.

나처럼 새 글이 올라오기만을 기다리던 장붕이들이 있었단 얘기다.


피식 웃으며 답글을 달아 주었다.

그러고 나니 극심한 현타가 밀려왔다.


"댓글만 달지 말고 뻘글이라도 좀 써... 이 자식들아..."


미쳐 버릴 노릇이다. 대체 왜 글을 안 쓰는 거야 이 자식들은?

그렇게 다시 챈을 새로고침하기만 반복하고 있는데.



[잠잠한 챈에 전술핵 투하]



"...떴다!"


거의 30분 만에 올라온 새로운 글에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제목으로 손을 옮겼다.


뭐, 전술핵이라고는 하지만 매번 어그로 아닌가.

또 들어가면 귀여운 고양이 짤 같은 거나 나오겠지.


그런 생각으로 글을 딱 클릭한 순간.



[사진]


ㅋㅋ 이왜진?



"......!"


어. 잠깐만. 시발.

이게... 왜... 진짜냐?


"와, 완장...!"


내가 완장을 부르기 위해 황급히 신문고로 향하려던 찰나.


돌연.


―화아아악!


새하얀 빛이 화면을 뚫고 내 눈을 관통함과 동시에,


나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 * *



"커헉, 콜록, 콜록... 어후, 씨바알..."


뒤지겠네, 진짜.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눈앞이 흐릿하다. 시야를 뒤덮은 뿌연 황사를 손을 휘둘러 걷어냈다.


시발, 누가 여기서 이불 털기라도 한 거냐. 무슨 공기가 이렇게 탁해?


욕지거리를 뇌까리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몸 곳곳에서 느껴지기 시작하는 통각.


"아악!!"


존나 아프네... 어디 다리라도 하나 부러진 건 아니겠지.


그나저나.


"여긴 어디야?"


눈을 깜박이며 찬찬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이내.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이게... 무슨..."


여기, 저기. 그 어딜 보아도 정상인 곳을 찾기 힘든, 말 그대로 황폐한 광경.

무너진 건물들,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파편들과 검게 물든 하늘.


그리고.


그 잔해들에 깔려 시체가 되어 버린 수많은 장붕이들.


"이럴... 수가..."


너무나도 충격적인 광경에,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어안이 벙벙해져 멍하니 눈만 깜빡거리던 찰나, 찢겨진 현수막이 바람에 날려 눈앞을 스쳐간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곳에 적힌 글자를 읽었다.



[우리 채널 정상영업 합니다]



그때, 나는 한 장붕이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장챈의 죽음은, 곧 세상의 멸망을 일컫는다.



"크윽...! 손나!!"


장챈이 죽어서... 세상이 멸망했다고?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그럴 리가 없다고!!


"큿소...!"


애써 현실을 부정하려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땅을 주먹으로 내리쳐도 봤다.

하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크흡... 씨발..."


눈물이 앞을 가린다.

현실이... 웹소설에서나 보던 아포칼립스 세계로 변했다는 말이냐!


그렇게 한참을 주저앉아 눈물을 훔치고 있을 때였다.


"저기... 괜찮으신가요?"


앞쪽에서 들려오는 가녀린 목소리.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니.


"...응?"


웬 주황 머리의 귀엽게 생긴 여인이 나를 빤히 응시하고 있었다.

아니, 나 말고도 살아 있는 이가 있었다는 말인가!


내가 놀란 표정을 짓자 생긋 미소 지으며 다가오는 그녀.


"괜찮으세요? 많이 아파 보이시던데..."

"아, 예... 괜찮습니다. ...그런데, 누구...?"


영문을 모르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그녀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팔짱을 낀 채 천천히 입을 연다.


"흐응... 저, 몰라보시겠어요? 장챈 좀 하던 장붕이시라면 잘 아실 텐데..."

"음?"


아니, 잠깐. 뭐라고?

그 말을 들은 나는 황급히 그녀의 차림을 살폈다.


'그러고 보니...'


자신을 어필하는 듯한 짙은 주황색의 머리.

머리핀을 포함해 옷 곳곳을 장식하고 있는 주황색 체크 모양의 뱃지들.


설마......


"다, 당신은... 장챈의 주딱?!"

"쉿."


자신의 입술에 검지를 가져다 대며 옅게 눈웃음치는 그녀.

왠지 모를 색기가 묻어나와 심장이 두근거린다.


'주딱이 TS미소녀라는 설이 사실이었다니...'


여신급의 미모를 눈앞에서 직관하고 있자니 당장 죽어도 소원이 없을 정도다.

...아, 참. 이럴 때가 아니지.


나는 서둘러 궁금했던 정보를 질문했다.


"아, 그럼 다른 장붕이들은 어떻게 됐나요?"

"...그들은 모두... 죽었어요."

"......아."


역시나.

내가 고개를 푹, 떨구자 살며시 옆으로 와 어깨를 토닥여 주는 그녀.


"괜찮아요. 그 장붕이들은, 모두... 챈을 살리지 못한 죗값을 치른 거니까. 너무 슬퍼하지 말아요."


그렇게 말한 그녀가, 갑자기 내 등 뒤로 가 나를 끌어안기 시작했다.


"우리 둘만 있어도... 충분히 좋잖아요? 그렇죠?"


내 귓가에 얼굴을 바짝 들이댄 채, 야릇한 목소리로 속삭이는 그녀.

따뜻한 숨결이 볼을 간지럽힌다.


...어어, 이거 뭔가 위험한데.


정신이 점점 몽롱해지는 듯한 느낌과 함께, 서서히 의식이 흐릿해져 간다.


"자, 잠깐..."


저항하기도 전에 머리를 통해 묵직한 충격이 전해졌고.

내가 의식을 잃기 전 마지막으로 본 장면은,


그 누구보다 환한 표정으로 생글생글 웃고 있던 주딱의 얼굴이었다.



* * *



"으, 으음..."

"일어났어요?"


상큼한 목소리에 저절로 정신이 든다.

눈을 비비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손을 들어올린 나는, 어째서인지 몸이 잘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여, 여긴?"


그제서야 주위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금방이라도 빛을 잃을 것만 같은 미미한 불빛의 조명 하나만이 주변을 밝히고 있는, 어두운 방 안.

거기에 묶여 있는 내 팔과 다리.


그리고, 내 앞에서 여전히 생글생글 웃고 있는 주딱.


"헤에... 당황한 모습마저 이렇게 귀여우면 어쩌자는 거예요?"


순간적으로 엄습하는 공포감.

뭐, 뭐야 이 여자.


"나, 나한테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흐응... 그건 당신도 잘 알 텐데요...?"


말을 마친 그녀의 눈의 생기가, 일순간 사라졌다.

그리고는 내게 얼굴을 들이미는 그녀.


가까운 거리에서, 입술이 작게 열린다.


"'감금 순애'... 말이에요."



-



새벽챈질을 하다가 떠올린 소재임...

이거 한 편 쓰려고 3시간 동안 지랄한 내 인생이 레전드...


죽은 챈을 보다 보니 마치 아포칼립스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써 봤음.

그러니까 다들 챈 좀 살려!

이게 실제로 일어날 수도 있다는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