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합니다. 사후세계에."


공허한, 온통 순백색 뿐인 세상.

그렇게밖에 설명할 길이 없는 공간이었다.

그 한가운데에 둥둥 떠있는 이질적인 검은 구체에 시선이 쏠렸다.

그리고 이 희한하리만큼 정감이 가는 목소리는 저 구체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럼. 저는 죽었나 보네요."

"맞습니다."


놀랄 것은 없었다.

죽은 뒤의 세계가 어떤 형태로든 존재하리라는 것쯤이야 어느 정도 예상에 있었으니까.

그저 하느님의 심부름꾼이 저런 형태를 띄고 있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을 뿐이었다.

아무래도 나의 정신 보호 차원에서 저런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일반인이 천사의 본모습을 보면 미쳐버린다고들 하니까.


"당신을 여기 모시게 돼서 굉장히 영광입니다. 제가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세상 모든 어린이들의 우상? 미국의 진정한 영웅?"

"불운의 2인자만 아니면 뭐든 좋겠군요."

"네, 그렇네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모시게 돼서 영광입니다. 버즈 올드린 씨."


버즈 올드린.

역사상 두번째로 달을 밟은 남자.

그게 바로 내 이름이었다.


"이제 저는 뭐, 천국으로 갈지 지옥으로 갈지 심판을 받게 되는 건가요?"

"전혀 아닙니다. 저는 이승에서 위대한 업적을 이룬 분들께······ 뭐라고 해야 할까요. 그렇네요. 애프터서비스! 사후 서비스 제공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사후 서비스라니. 그게 무슨······."

"일종의 포상이죠. 원하는 것이 있다면 말씀해보세요. 무엇이든지요."


무엇이든.

그 목소리는 꽤나 확고했다.

내가 다 당혹스러울 지경이었다.


"무엇이든이라 하면······. 무엇이든지요? 정말로요?"

"예, 그렇습니다."

"범위나 한계같은 건 없을까요?"

"엄밀히 말하자면 없지만, 부디 물리법칙을 바꾸는 건 지양해달라고 부탁하고 싶네요. 굉장히 귀찮은 작업이거든요. 한번은 어떤 물리학자 분께서 양자 얽힘이랬나 뭐랬나 하는 걸 가능하게 해달라길래 그게 대체 뭔지 공부하느라 한세월이 걸렸다니까요. 덕분에 저도, 인간들도 이해하지 못하는 현상이 나타나고야 말았어요. 하지만 참 고마운 일이죠. 물리학자들은 이해할 수 없는 현상도 그럭저럭 잘 받아들이는 모양입니다."

"허······."


헛웃음이 절로 터져 나왔다.

물리법칙을 바꾼다니.

그러면 정말로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소리 아닌가.

처음 이곳에 들어왔을 때에만 해도 그저 무감각하던 나는 기대를 품고 말았다.

어쩌면 내가 한평생 숙원하던 일을 이룰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그렇다면 저를 과거로 돌려보내주는 것도 가능합니까?"

"과거로 돌려보낸다 함은······."

"지금은 기억을 온전히 가지고 몸만 과거로 돌아가는 걸 말하는 겁니다."

"물론 가능합니다. 다만 그다지 추천하고 싶은 건 아니군요."

"뭐가 문제입니까?"

"과거로 돌아가기를 택한 사람들이 말하기를, 대부분 아이들이 문제였습니다. 같은 여자를 만나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사랑을 나누어도 그 결실이 이전 생과 같으리라는 보장은 없거든요. 다들 아이를 잃어버렸다는 죄책감에 빠지고는······"

"그런 거라면 됐습니다."


내가 돌아가기 희망하는 시간대는 아이들이 전부 태어난 뒤니까.

그런 후회를 할 걱정은 없다.

하지만 아이들이 그 사건 이후로 태어났다 한들 내 선택은 같았을 거다.

내 아이들을 잃어버리더라도 이 일은 꼭 해내야만 하니까.

미국을 위해서.

아니 인류를 위해서.


"그래도 다시 한번 생각해주실 수 있을까요? 이건 정말, 정말 추천하지 않는 방법이거든요. 대체로 만족도가 엄청나게 낮았답니다."

"원래 이렇게 질질 끄는 편인가요?"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이니 주의를 많이 기울이는 편이죠. 꼭 다 끝이 나고 오열을 하며 항의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이렇게 이용약관을 면전에 들이밀듯이 전부 읊어드리는 것이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됐으니 그냥 보내주기나······"

"그러지 말고 들어보시죠. 히틀러. 아돌프 히틀러. 아실 겁니다."


당연히 알지.

그 악마같은 놈을 모를 리가 있나.

갑자기 그놈 얘기가 왜 나온 건지 의문일 따름이었다.


"사실은 그 사람도 한번 과거로 돌아간 적이 있답니다."

"히틀러가요? 그 인간이 뭐를 잘했다고 포상을 줍니까?"

"그야 역사가 바뀌기 전의 세계에서 히틀러는 영웅으로 추앙받았거든요. 더 들으시렵니까?"

"말해보쇼."


웃기지도 않는 이야기였다.

착한 나치는 죽은 나치밖에 없거늘.

어처구니가 없는 이야기였지만, 일단 귀를 기울일 가치는 있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터무니없는 이야기라도 일단 믿을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 세계에서는 말이죠, 히틀러는 전차와 공성포를 동원하여 마지노선을 뚫기 위해 고군분투를 하고 있었습니다. 알고 계시던 역사랑은 조금 다르죠? 아무튼간에 병력을 굉장히 많이 잃어가면서도 겨우겨우 마지노선을 뚫는 데에는 성공했습니다. 그 다음에 펼쳐지는 건 오직 평야 그리고 또 평야였습니다. 이제 프랑스의 항복은 식은 죽 먹기처럼 보였어요. 영국군이 덩케르크에서 철수하는 척 기만작전을 펼쳐 독일군 주력을 포위섬멸하기 전까지는요. 그 뒤로 소련까지 불가침조약을 어기고 참전하며 독일이라는 나라는 역사의 뒤안길 속으로 사라졌죠."

"그러면 히틀러가 미래를 다 알고 과거로 돌아가서 바꾼 게 지금의 역사란 말입니까?"

"맞습니다. 꽤나 무능해 보이죠? 미래를 다 아는데도 왜 이 정도밖에 못했을까요. 그건 미래를 다 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랍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과거로 돌아가도 당신의 뜻대로 일이 풀릴 가능성은 매우 적다는 거예요."

"상관 없습니다. 가능성이 얼마나 적든간에 저는 돌아가야 합니다."

"다들 같은 말을 하시는군요."


기분 탓이었을까.

방금 희미한 웃음소리 비슷한 게 들린 것 같았는데.

천사의 온화한 미소라기보다는 악마의 사악한 웃음소리라고 부르는 것과 보다 닮은 그런 소리였다.

그런데 내 귀가 오락가락한 게 하루이틀 일인가.

잘못 들었나보다 하고 넘기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더이상 지루한 약관은 읊지 않고 바로 보내드리도록 하죠. 원하는 시간대가 어디입니까?"

"서기 1969년 7월 16일. 미합중국 플로리다 주 시각 기준 오전 6시 20으로 보내주십시오."

"꽤나 구체적이네요."

"이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으니까요."


몇번이나 망상했는지 모르겠다.

이 날을, 이런 기회를.

그날로 돌려보내달라며 몇번을 하늘에 기도했는지 모른다.

그 기도가 하늘에 닿았다.

소원은, 이루어진다.


"뭐 당부의 말씀같은 건 없나요?"

"당부의 말씀이라뇨?"

"아니 천사가 마땅히 해야 하는 말 있잖아요. 부디 인류를 위해 힘써달라같은······."

"하하하. 그런 건 없습니다. 그저 원하시는 대로 뜻을 이루시면 됩니다. 곧 보내드릴 테니 마음의 준비를 해주세요."


그때 검은 구체로부터 검은 빛이 퍼져나오기 시작했다.

사방이 온통 검게 물들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저 칠흑같은 어둠으로 시야가 가득 메워졌다.

허나 그 경악스러운 광경에도 나는 전혀 동요하고 있지 않았다.

신기한 일이지.


"그런데 말이죠, 선생님. 한가지 착각하고 계신 것이 있습니다. 이건 말씀드리고 가셔야겠네요."

"그게 뭡니까?"

"저는 한번도 저 자신을 천사라고 소개한 적이 없습니다."

"그게 무슨······."


팟.

그래. 팟이라는 효과음이 어울리겠다.

팟하고 내 시야가 급변했다.

끝이 없는 어둠에서 살짝 희미한 빛이 새어들어오는 그런 어둠으로.

내가 눈을 감고 있는 상태라는 사실을 눈치챈 건, 바로 다음 순간의 일이었다.


"후······."


눈을 뜨자 눈에 익은 풍경이 펼쳐졌다.

탈의실이었다.

조금 특별한 탈의실.

수영복이나 운동복 따위로 갈아입기 위한 탈의실이 아니라, 훨씬 더 두껍고 요란하게 생긴 옷을 입기 위한 탈의실이었다.


"버즈. 긴장했나?"

"······."


내 어깨를 툭 치는 감각과 함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직도 또렷이 생각나는 목소리였다.

조금은 그립기까지 한 정열적인 남성의 목소리.


"왜 그래, 친구. 정말 긴장했나보네?"

"······."


닐 암스트롱.

역사상 첫번째로 달을 밟은 남자.

내가 과거로 돌아온 이유 그 자체.

닐만 없었다면······.

그랬다면 세상은 훨씬 나아졌을 텐데.

그래. 나는 닐 암스트롱을 죽이기 위해 돌아왔다.


"떨리는 건 나도 이해하지! 하하! 곧 달에 가는데!"

"······."

"거기 가면 뭐가 있을까? 다들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일 거라고 말하는데, 내 생각은 조금 달라. 탐사선이 찍은 사진이 모든 걸 말해주나? 그건 아닐 거란 말이지. 혹시 알아? 바위를 들춰봤더니 그 뒤에서 뭔가가 꼬물꼬물하고 기어나올지! 하하하!"

"······."


닐은 여전했다.

그래. 이대로 놔두면 모든 건 내가 살던 세계의 역사와 똑같이 흘러가겠지.

똑같이 닐이 달을 밟고, 똑같이······.


"닐."

"왜 그래?"

"내가 먼저 내린다."

"뭐라고? 이거 이미 다 얘기된 거 아니었냐?"

"내가 먼저 내린다고 분명히 말했어."

"······."


똑같이 그 외계생명체를 데리고 지구에 들어오겠지.

훗날 마크 저커버그라고 불리게 되는 빌어먹을 파충류 새끼.

그 인간을 흉내내는 랩틸리언을 몰래 데리고 들어온단 말이다.

그리고 인류는 놈이 만든 칩을 모두 머리에 심고 외계인의 노예를 자처하게 되겠지.

그것만큼은 막아야 한다.

필요하다면 닐을 죽여서라도.

그러기 위해, 나는 돌아왔다.

좀 미안한 소리긴 한데 진쟈 봐도 봐도 무섭게 생김 이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