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안에는 시신이 되지 못한 작은 소년이 누워 있었다.
나의 모습이다.
로엔 룬실버. 대장군의 아들이자 황실 제 2비의 남매. 제 1 군녀의 약혼자. 전쟁 속의 지혜라 불렸던 7살의 어린아이.
어린 나이에 암살 시도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황실의 일원이 되어 황제의 권력을 공고히 했을 천재라는 평가를 받던 아이였다.
그러나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한 채 10년의 세월이 뚫고간 지금은 작은 방 안에 얌전히 누워 있는 창백한 목각인형이다.
욕심이 있는 자들의 눈에서 멀어지고,
의심이 많은 자들의 귀에서 멀어지고,
큰 뜻을 품은 자들의 꿈에서 멀어진 나약한 소년은
이제 소수의 사람만 아주 가끔 방문하는 살아 있는 장식품 같은 것이 되어 있었다.
아버지는 진작에 나를 포기하셨고, 어머니는 가끔 나를 보며 눈물만 흘리셨다.
누나는 황제의 비로 도망쳐 버렸다.
마지막에 한마디를 남기고는.
‘미안해.’
아마 내가 죽기를 바랬을 거다. 꼴사나운 모습으로 침대에 누워 있을 바엔 그게 더 명예롭다고 생각했겠지. 가문의 명예를 더럽히는 애물단지 같은 존재였다.
가끔 약혼녀이자 소꿉친구인 그녀만이 찾아와 닦아주고 위로해주던.
그런 자기 처지는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폐만 들어 올렸다 내렸다 반복하는 흐리멍텅한 두 눈의 소년을 보며 구역질이 올라오는 걸 참는 일상을 반복했다.
10년째 밤인 오늘까지는 말이다.
고요하던 날. 밖에는 간간이 시녀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오고, 그러나 아무도 내 방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지는 않던 평범하던 하루. 올빼미 소리도 잦아지는 깊은 밤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순찰을 돌거나 화장실을 가는 사람이지 않을까 짐작하던 그때. 어두운 정적의 복도를 조용히 걷던 걸음은 문득 내 방문 앞에서 소리가 멈췄다.
그러나 누구신가요라고 물어볼 수 있는 이는 방 안에 없었다. 문답 없이 문을 사이로 대치하는 기묘한 정적이 몇 분이나 흘렀을까.
방문은 끼익하고 열렸다. 어둠 너머엔 사람의 실루엣이 보였다. 그 사람의 얼굴엔 달빛이 걸리지 않아 이목구비가 잘 보이지 않았지만, 내가 아는 인물은 아니었다. 이곳에 올 만한 인물 같아 보이지도 않았다. 말도 못 하는 인간에게 목적이 있을 사람은 드물었으니까.
하지만 그자는 목적이 있는 듯했다. 방에 들어온 순간부터 나를 응시하던 눈길은 다른 곳으로 옮겨지지 않았고, 적어도 그가 도둑은 아님을 짐작케 했다. 내가 목적이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공포감이 몸을 감쌌다. 나에게 목적이 있는 사람이 밤에 찾아왔다면, 그건 필시 좋은 것은 아니리라.
당장에라도 경비를 부르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돌처럼 닥딱하게 굳은 입은 그것을 허락해주지 않았다. 손가락을 필사적으로 움직여보려는 사이, 그 자의 발이 땅에서 떨어졌다.
조심스럽게 달빛을 피해 가며 나를 향해 천천히 걸어오던 사람의 실루엣은 어느 정도 가까히 다가오자 남자의 것임이 확실했다. 어느새 그 자와의 거리는 고요한 밤 숨소리가 들릴 만큼 가까워졌다.
“미안하군.”
말소리가 정적을 깼다.
“오늘 자네에게 사과하러 왔건만, 얼굴을 드러낼 용기는 없었네. 나를 용서하게.”
부드럽고 흔들리지 않는 조용한 목소리. 감정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자의 목소리는 소름 끼칠 정도로 비개성적이었다. 이 자가 누군지 짐작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반응없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남자는 말을 이어갔다.
“10년 전의 일을 사과하겠네. 로엔.”
10년 전의 일? 무엇을 말하는 걸까. 7살 때의 일들을 지금까지 잊어 버리지 않았지만 이런 사내에 대한 기억은 없었다. 먼 친척일까? 아니면 황가의 사람? 공작가의 자식은 어릴 때부터 많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일상이라 그 수많은 사람 중에 지나친 인물일 수도 있었다.
정체를 알기 위해선 정보가 더 필요하다. 다음 말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독을 탄 사람은 나였네.”
그 말을 듣자마자 순간 사고가 정지하고 내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말의 의미는 명확하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소름 끼쳤다.
10년 전, 아무 징조도 없이 저녁을 먹고 쓰러진 그날. 난 잊을 수가 없다. 내 인생이 산산이 부서지고 내가 누릴 인생을 강탈당한 지옥 같은 순간. 온몸의 세포가 찢어지는 고통. 뇌세포를 바늘로 하나하나 찌르는 감각. 육체로부터 통제 권한을 빼앗기는 느낌. 7살의 어린아이가 겪기에는 너무나 잔인했던 현실이었다. 몸이 불타는 듯한 감각이 사라지기까지, 내가 기어코 식물인간이 되기 직전까지 나는 관절을 꺾고 사지를 비틀며 살려달라는 말을 몇 번이나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나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 내가 신경학적으로 불타 죽는 꼴을 지켜볼뿐.
꼴사납게 바들바들 몸을 떠는 7살 소년을 강 건너 바라보듯 구경하는 관중. 기괴하고 매스꺼운 장면이었다.
나는 모두가 지켜보는 자리의 중심에 서서 가장 고독하게 사회적 죽음을 맞이했다.
그 남자의 말에서 모든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심장은 찢어질 듯 피를 뿜어댔고, 흥분한 나의 뇌가 동공을 확장시켰다.
이 자가 범인이란 말인가?
목을 조르고 사지를 찢고 싶은 충동이 몇 번이나 뇌를 두드렸다. 무엇이 당당해 여기 왔단 말인가? 정체도 밝히지 않고 사과하기위해? 입술도 까딱 못 하는 나를 조롱하기 위해?
10년째 정신만 멀쩡한 채로 갇혀사는 기분을 이해할 수 있는가? 벌레가 몸을, 목을, 눈 위를 기어 다녀도 꼼짝 못 하는 기분을?
처음엔 동정, 그다음엔 귀찮음, 그러고는 언제 죽나하는 눈빛을 사람으로부터 받을 때 느끼는 정신적 파멸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떠나가고, 슬픔을 겪을 때 위로조차 해주지 못 하는 죄책감을 이해하는가?
이 자를 찢어 죽이고 싶다. 그렇게 생각했다. 증오로 온몸의 신경이 몸부림 쳤으나, 내 팔은 끝끝내 남자의 목을 조르지 못한다. 그저 색색거리는 숨소리만 고통스럽게 입 밖으로 낼 뿐이었다.
남자는 그런 나의 모습을 아무 말없이 조용히 지켜봤다.
“속죄의 의미로 이 자리에서 한 가지 진실을 알려주겠네. 물론 자네가 이걸 들을 수 있는 상태인지는 모르지만…”
격해지는 신체반응에도, 그저 고통 때문에 생기는 반응이라 생각했는지 남자는 자기 할 말을 이어서했다.
“그날 자네가 희생된 것은, 경고의 의미였네.”
무엇에 대한, 누구를 향한 경고인가
“룬실버에 대한, 그리고 자네의 약혼녀에 대한, 자네의 누이에 대한, 자네와 관련된 모든 자들에 대한 경고.”
그렇다면 누구의?
“가장 높은 자.”
숨이 순간 멈췄다. 누구를 말하는지 확고했다.
“황제께서는, 천재를 원하지 않으시네. 충성을 원하지. 복종을 바라고, 재능은 온전히 그분의 것이 되어야 하네. 그러나 자네의 아비는 심기를 거스렸어. 본보기가 필요했네.”
아버지가 제국의 가장 영향력있는 가문의 가주이자, 제국군의 대장군이라는 사실만으로, 나는 항상 호의와 견제를 동시에 받아왔다. 7살에 느끼기에도 충분할 정도로.
이 자의 말은 그날 그 어린 소년의 추락이 늙은 자들의 정치 싸움의 결과였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늙은 왕, 영원한 태양, 제국의 황제와 제국의 검 사이의 기 싸움. 그사이에서 작은 아이 하나가 희생당했다. 아이의 의지는 애초에 중요하지 않았다. 노인들의 장기판에 말 하나가 사라진 것뿐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진실이란 그러한 것이지. 316년의 지혜와 권력을 위해 7살의 작은 아이 하나의 희생은 그리 큰 것이 아니라네. 황제는 그 자체로 제국이지만, 유지를 위해선 무고한 이의 피도 마셔야 하는 법이지.”
그렇다. 이 자는 내가 그저 거인의 연료가 되었을 뿐이라 말한다. 레비아탄의 먹이였다고. 인간이 늙어 죽지 않는 세계의 권력은 젊은 이를 재료로 이어진다고. 당연하게 여겨졌던 법칙을 얘기하는 것이다.
그 대가는 순수한 이의 파괴. 고통. 처절한 몸부림이다. 316세의 늙은 황제를 위해 7살의 아이는 몸부림치며 죽어야만 했다.
아이의 부모는 울어야 했다. 죽지 않는 자식을 원망해야 했다. 아비는 외면해야 했다. 누이는 황제에게 몸을 팔아야 했다. 약혼자는 숨죽여야 했다.
이제야 모든 게 맞춰진다.
내 잘못이 아니었다. 애초에 내 잘못은 없었다. 발 길에 돌멩이가 채인 것뿐이다. 돌멩이는 나였고, 발은 권력이었다.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얼마나 많은 날을 스스로 원망하면서 살았는가. 자책하면서 살았는가.
어머니의 얼굴에 주름이 늘 때마다, 아버지의 눈에 어둠이 깔릴 때마다, 누이의 목소리에 경멸이 깔릴 때마다. 그녀의 뺨에 눈물 자국이 짙어질 때마다.
내 잘못이라고, 왜 움직이지 않느냐고 몸뚱어리를 재촉하면서 살았다. 하하. 속으로 실소가 나오지만 그걸 보여 줄 얼굴 근육이 없어서 아쉽다. 얼마나 표정이 뒤틀려 있을지 보고 싶었는데.
망울망울 맺힌 눈물만이 건조했던 내 눈을 적셔온다.
억울했다.
미친 듯이 억울했다.
어린 애처럼 신에게 울부짖었다. 왜 하필 나였냐고.
달빛에 반사되는 눈물을 눈치채지 못했는지 사내는 자기 할 말을 마치고 다시 나가는 문을 향했다. 올 때처럼 달빛을 밟지 않으면서.
그 자의 태도에 더 이상 분노는 생기지 않았다. 애초에 그럴 대상이 아니었으니까.
남자는 문고리를 잡으며 말했다.
“부디, 나를 용서하게.”
그럴 필요 없다.
나는 대답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사내는 뒤를 돌아봤고,
목에 단검이 꽂혔다.
“죽은 자를 용서할 수는 없으니까요.”
아주 오랜 잠에서 깨어난 느낌이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지독했던 악몽.
나는 사내의 목에 손을 가져다 댔다. 잊었던 감각이 되살아난다.
피비린내. 어릴 때 아버지와 사냥을 가면, 항상 이 냄새를 무서워하곤 했다. 기묘한 쇠 냄새가 낯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그럴 필요 없다.
황실에서 마르지 않도록 맡게 될 냄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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