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봐라 니가 쓴 글이다. 그렇지 엘루아 플레어?“


”아… 아니, 그… 그게… 제가… 아니고…“


쾅, 하고 테이블이 울린다. 나도 모르게 고개가 움츠려들고 자신을 친위대라고 말하며 끌고 온 여자. 그 여자의 건틀릿 아래 무수한 종이들.


아카데미 인트라넷. 아카데미 재학생만 이용할 수 있는 익명 게시판에서 작성 된 글들을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이걸 보고도 발뺌을 해?!”


“그… 그러니까, 제, 제가 했다는 증거… 그래!

 증거가 없잖아요!“


”증거?”


갑주를 입은, 친위대 여자는 자신이 내려찍듯이 테이블에 올려 둔 종이 한 장을 내게 들이민다.

아니, 들이민다기 보다는 거의 얼굴을 덮는 고문이 아닐까 싶은데 이거?!


“읽어 봐라”


“우웁… 부붑…!”


“니 입으로 읽어 보라고!”


“푸하… 이, 읽을게요! 읽을게요!”



젠장.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야.

어디보자…




“에…”



나는 첫 번째 문자를 보자마자, 고개를 들어 내 어깨를 쥐고서 종이를 들이민 금발 여자에게 눈을 돌린다.

그녀는 웃으며, 턱을 들어 계속하라고…



“어…”



“으…”



“뭐하고 있지? 읽어라.”



“제, 제목…이… 이번… 궁중 마법사 To 줄어든 거 시… 실화냐…

내, 내용은…나라꼴 개판… 인데, 이럴거면 대머리말고 내가… 황제한다… 이, 인정…?”



“다음, 다음 걸 읽어라.“



”엑…“



그 아래. 시덥잖은 이야기들.

그냥 익명이니까 농담조로 시시콜콜 주고 받은 이야기일 뿐인데…


나는 다시 한 번 금발의 친위대 여성에게 시선을 옮긴다.



“왜 그러지? 마저 읽어라”



“니, 닉네임… 빠…빠…빤딱빤딱… 푸흡…. 화, 황제머리…

님… 천재임?“


”그 댓글 밑에 니가 쓴 답글도 읽어라.“


“제, 제가 안 썼…”


“닥치고 읽어!”



“니… 닉네임…황녀…보, 보지락털…국수…

하, 하아… 이 기회에 마법사를 위한 나라 함 달려?

대머리… 수,숙청 함 가야지…”





대놓고, 황실 모독에 얼핏 보기엔 반역 모의로까지 보이는 글. 내가 말을 끝마치자마자 눈 앞의 종이가 다시 테이블로 날아간다. 그리고 건틀렛이 그 위로 쾅.




“엘루아 플레어!!! 황실 모독도 모자라서 반역모의까지 해?!”



“제, 제가 아니에요! 이걸 어떻게…!“



”시끄럽다!!!“



친위대 여자는 몇 번이나 테이블을 내려친다. 아, 안다. 위협하려고 하는 거다. 그야 진심으로 황실 친위대 기사가 힘을 발휘하면…


지금 내가 끌려 온 이 암실. 벽돌로 만들어진 공간 정도는 박살 낼 수준의 실력자일테니까. 나는 내가 안 했다고 몇 번이나 고개를 흔들며 애원하지만 이 친위대 여자는 윽박 지르기만 할 뿐이다.



”엘루아 플레어… 귀여운 얼굴을 하고서 아주 무서운 놈이군. 안 그래?“


”아, 아니에요. 제가 안 그랬어요…!“


”그래? 그럼 내가 다른 걸 더 보여 줘?“



여자는 종이 더미를 한 손에 쥐더니 테이블 위로 하체를 올린다. 그와 동시에 철제 그리브로 내가 묶인 의자를 살짝 뒤로 넘긴다. 으아아아 넘어 간다. 넘어 가.



“태양신교가 왜 필요함?

 이미 황제 빡빡이 새끼가 저번 기사 수훈식 때 보니 태양이던데?

3황녀 말랑뷰지에 싼다!

평민 아기씨에 뷰르릇뷰르릇 임신 수태 가능?

자꾸 모첩들 기어들어오는데

모험가 핫바지 새끼들은 얼른 알중으로 쇼크사 해야하면 개추

솔직히 황태자도 벗겨질 거 같으면 개추

기사충 새끼들 결국 못 배워먹은 야가다꾼 아님?

꺼드럭 대봤자 큭 죽여라 강간 마렵네…



“…”



”모험자도 기사도 이 제국을 구성하고 지탱하는 하나의 축이다. 그래. 그럴 수 있지. 거기까진 그렇다고 치자고…“



친위대 여자가 금발을 쓸어내리며 종이들을 내 던진다. 그런 뒤에 내 의자를 까딱까딱 밀던 그리브를 되돌리고 테이블 위에서 일어선다. 척, 하고 선 키. 170 정도 되려나. 동시에 갑주가 주는 위압감. 나를 내려다보는 푸른색 눈동자는 일렁이는 등에 비춰져서 불지옥같은 색이다. 


뭐 하려는거지.




”허나!!! 황실을 모독하고, 아직 10살도 채 안 되신 제3황녀의…! 뭐…?! 뭐…! 마, 마마마마마마말랑…?! 뭐라고?! 이 자식이!!!“



정신 차리니 목 앞에 칼.



”아, 아니에요! 제가 아니라까요?! 미, 미쳤다고 이런 걸 썼겠어요?!“



”닥쳐라!!! 아카데미 내부에서도 이미 조사를 마쳤어!!!“


”애, 애초에 이상하잖아요! 마력 인트라넷… 특히나 아카데미 쯤 되면 익명을 조사할래야 할 수도 없고..!

게다가 이게 저라는…!“


그래. 마왕을 용사가 물리친 이후. 제국에 급속도로 퍼져나간 마족들의 기술. 마력으로 서로를 이어, 공간의 제약 없이 불특정 다수가 소통할 수 있는 시스템.

매직 넷. 이용자는 대부분 소형화 된 마력 수신기를 쓰거나 혹은 자체적으로 마력을 가진 사람들 뿐.


당연히 수신기는 조금 값이 나가니, 마력을 가진 사람들. 아카데미에서 좀 더 활발히 쓰이긴 한다.

그리고 아카데미에서 마개조 되어 마력의 짜임을 읽어내지 못하도록 완벽한 익명 커뮤니티를 자체적으로도 운용하고 있다. 처음에는 학론과 지위여하를 막론하고, 정보와 지식의 교류를 위함이었으나 지금에 이르서야…

보다시피 개판이다.



하지만 거기서 누가 이 글을 썼는지는 알아 낼 수 없다. 특히 ‘오디세우스‘라 불리는 마력을 잘게 쪼개어 다른 걸로 덧대고 덧대어서 본질 마저 바꾸는 기술마저 썼다면…!




“하, 이래도?”


“증거가 없다?”



“애, 애초에… 친위대가 무슨 수로 아카데미 커뮤니티까지 들어 온 거죠? 일부 모험자들 아니면 취득 권한이…”



그래. 접근 하더라도 알 수가 없다.



“후우, 좋다. 엘루아 플레어”



친위대 여자는 한숨과 함께 검을 검집에 되돌린다.

뭐야, 억지 부리더니 이제 풀어주려고?

기대에 찬 내 눈을 뒤로 한 채 집어 던진 종이 더미에서 한 장을 꺼내더니 들어 올린다.



”엘루아 플레어 18세.

남쪽 손•노리령 마요르카섬 출신. 꽤나 깡촌이군.“



가, 갑자기 내 정보를 말하기 시작했잖아?

깡촌 출신이라서 뭐 어쩌라고




”13세 때 마력 제어에 큰 소질을 보였고

 15세 때 구호 활동차 방문 했던 태양신교 사제들의 추천을 받았군. 운이 좋았어. 제도의 아카데미에 들어오다니 어지간히 그 사제의 힘이 좋았거나. 혹은 네 실력이 좋았거나 겠군?“


”아… 그건… 운이 좋아서…“


실제로 그렇다.

어쩌다보니 섬에 방문 한 사제가 아카데미 출신이었고, 학술과 후학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 어머니를 설득했다. 어머니는 거부했지만 아버지가 받아 들여서 아카데미 추천장과 함께 시험을 볼 수 있게 됐었지 참…



“닥쳐.”



“으악!”




회상에 잠긴 내 정신을 단숨에 들게 하는 의자 밀기.

낡은 나무 의자가 당장에라도 넘어가려고, 아니… 넘어지기 전에 박살 날 것 같은 소리를 내며 삐걱삐걱. 내 몸도 휘청휘청.


친위대는 어느새 걸어와 한 손으로 내 의자를 뒤로 밀듯 말듯 하며 계속해서 종이를 읽어내려간다.


“우수한 성적으로 아카데미를 입학해서… 16세.”



“지금 이 예쁘장한 외모 때문에 따돌림을 받고 성적도 같이 수직하락. 지금에야, 1년 유급에 기숙사마저 퇴출… 앞으로 낙제점 한 번 더면 퇴학이라…”



“아… 아아…”



“이런 글. 쓰기에는 딱 걸맞은 인재상으로 보이는데?“



어, 어떻게 아카데미 내부 일까지 다 아는거지?

암만 황실 친위대라고해도…


그리고 이 이쁜 얼굴은 나도 싫어!

이 이름도 컴플렉스다.


엄마는 딸이 갖고 싶었지만 태어난 건 전부해서 4형제. 그 막내인 나에게 엘루아같은 여자 이름을 붙이질 않나.

어릴 때는 여장 수준이 아니라 그냥 여자로 컸다.


아카데미에 올 때에도 다른 건 몰라도 긴 머리만은 자르지 말고 이쁘게 묶고 다니라고 했었으니…


다 아는 사람인 작은 섬의  특성과 형들과는 나이차이가 커서 그냥 이쁜 동생으로 받아주는 탓에 잘 몰랐던 사실. 제도에서는 그냥 이상한 사람이었던 거다. 


동기인 여자 생도가 “기분 나빠. 여자보다 더 여자 같이 생겼어” 하고 내 앞에서 코를 가리던 모습은 아직도 트라우마…



”어때? 틀린가?“



”아니, 그, 그렇다고 제가 했다는 증거는…!“



”그래, 넌 그렇게 말하겠지. 그래서 네 우수한 실력과 처한 상황을 미루어서…“



그 때, 철문이 다소 급하게 열리며 전신 갑주를 착용한 남자가 들어 온다.


”대장님 큰일입니다!!! 제도 아래 마족 거주구에서 폭동이…!“


“그런 건 일반 기사들한테나 대응하라고 하면…”


“지금 제2 황자님이 교외의 사냥을 나가시는 바람에 일반 기사도 친위대도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라…!”



제2 황자라. 그러고보니 자주 매직넷에 올라왔었지. 그야말로 유흥의 화신. 어느 날은 귀족가의 창관에 질렸는지 변장을 하고 아랫마을의 창관까지 내려 와서 무책임 질싸를 하고 갔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 소문을 낸 사람은 이튿날 황실모독으로 레바테인 광장에서 목이 날아갔었지. 


그나저나 제도 아랫마을의 마족 거주구면… 큰 일이다! 싼값에 구한다고 내가 살고 있는 집은 그 곳의 3층.

억지로 끌려 와 사회 하층민이 된 마족들은 요새 들어 꽤나 빈번히 폭동을 일으킨다. 그럴 때마다 방화, 살인이 이어지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학살 할 수도 없다.


애초에 폭동의 세기가 클 뿐이지, 윗 사람 입장에서야 고작 아랫마을이 조금 불 탈 뿐. 제도 콘스텔리움의 일반 시민 거리나 귀족가에는 큰 문제 될 게 없다.


그게 황실 친위대까지 요청이 올 정도면…

내 집 끝났을 수도…



”큭, 어쩔 수 없군. 클라우드 너는 이 자를 데려가 잠시 가둬라. 소동이 끝나고 나서 심문을 내가 이어나가겠다.“


”앗, 예!“








.

.

.




”그건 그렇고 진짜 이쁘장하게 생겼네. 이게 그 황실모독범이라 이거지? 이 정도면 황실 음해말고 저어기 고급 창관에서 남창으로나 일하지. 뭐하려고 그런 짓을 한 대?”


”…“


“자, 들어가라. 허튼 짓 할 생각 말고.”



클라우드라고 불린 친위대 남자가 내 몸을 잡고 헐레벌떡 뛰어서 던지듯이 어느 기사에게 인계하자 끌려 왔던 곳보다 더 아래. 지하의 감옥까지 왔다. 친위대처럼 전신 갑주도 아니고 치장 된 것도 없는 걸 보면 일반 기사겠지. 

그러니 나더러 뭐? 남창? 저 자식이…!



“으악!”


“오 확실히 야들야들해?”


축축한 땅바닥에 턱을 부딪혀서 신음하고 있으니까 뒤로 쇠가 우는소리. 황급하게 뒤 돌아보니 기사가 웃으면서 철창을 닫고 있다. 저, 저 자식이 사람을 걷어 차?!



“아니야! 난 그런 글 쓴적 없다고!”


“그거야 나야 모르는 일이고? 응? 널 붙잡아 온 그 대단하신 친위대님들한테나 말하시구요? 네?“


“그러니까 내가 아니라니까?!“



”하하하, 네에네에. 아니시겠죠? 저도 당직이 제가 아니었음 좋겠네요~”



철창 앞에서 무릎을 꿂고 외쳐봐도 기사는 멀어질 뿐.

젠장. 진짜 아닌데…



”자, 잠깐만요 기사님??? 진짜라니까?!“



내가 아니야.

아무리 아카데미 매직 넷이 ”오디세우스“가 있다고 해서 그런 글은 쓴적 없다.


제3황녀 말랑 어쩌고를 쓸 정도로 어린 여자애한테 욕정하는 변태는 아냐.


게다가 반역이라니, 그럴 깜냥도 없다고…!

난 맹세코 매직넷에 그런 글을 쓴 적이 없다. 

그냥… 그냥…










“내 닉네임은 빤딱빤딱황제머리… 라고…”







내 닉네임이 그럴 뿐이지. 단 한번도 그런 걸 쓴 적은 없다고오오오!!! 그리고 대머리 맞잖아! 빤딱빤딱 하잖아!!!

난 황제 머리만 팩트로 가지고 닉네임으로 했을 뿐이야. 그거 말고는 걸릴 만한 글이나 댓글은 안 썼다고!!!







“어? 니가 그 황실 모독에 반역까지 모의했다는 놈이야?”


등 뒤에서 들려오는 남자 목소리에 나는 흠칫하고 몸을 일으킨다.



”이쁘게 생겨가지고, 정신나간 짓을 하네. 푸하하하하“



등 뒤에는 사슬에 묶인 남자.

새까만 흑발을 곱게 뒤로 묶었다. 굳이 따지자면

여자같은 스타일의 헤어. 그와 반대로 얼굴은 남자답게 각지고 날카로운 인상이다. 굳이 따지자면 늑대처럼 콧대가 매력적인 것 같이 느껴진다.



“내, 내가 아니라니까?!”



“아아, 응 그래그래. 다들 그렇게 말하지.”



뭐라는거야. 진짜 아니라고.

범죄자 주제에. 부어오른 얼굴과 묶여있는 걸 봐서는

싸움질 하다가 기사한테까지 손 댄 모양인데.


윽, 입 열 때마다 이 고약한 냄새는…



“알콜 중독자 주제에 어디서 거들먹거려?”


“오…? 아냐아냐. 음… 술은 마신 건 사실이지.”


“것 봐 알콜 중독자잖아.”


“아냐아냐. 오해가 있나본데? 난 그냥 아랫마을에 있는 수도 기관이 또 고장나서 말이야…”


남자는 한 손을 내저으며 꺼억하고 트림. 윽 더러워.

수도 기관 고장이라. 아 그건가. 어제 아침에 마력기관이 고장나서 마족 거주구까지 똥물바다가 된 사건.

듣자니 아랫마을 사는 사람들이 한푼 두푼 모아 수리를 맡기고 난 뒤에도 또 터진 모양이다. 


“수리해주신 귀족 마법사님한테 찾아갔더니, 없더라고?”


“없어?”


“카스티온이라는 작자였는데, 귀족가에 있는 저택은 텅 비어있더라고? 건물은 멀쩡한데 안에는 사용인도 하나 없었다 이거지“


응? 카스티온? 들어 본 적 없다. 하지만 이 제도. 더군다나 귀족가에서 하루만에 저택이 빌 수가 있나?


”바보네. 딱봐도 다른 사람 저택에 몰래 들어갔다가 이렇게 잡혀들어 온 도둑놈이잖아?“


”아냐아냐. 카스티온 그 놈 맞아. 그래 아무튼 이야기를 들어 봐“



어차피 별 영양가 없는 소리겠지만, 할 것도 없다.

감옥 내에서 소리치는 것도 지치니까.



”저택 안을 둘러보는데 이상한? 묘한 공간이 있어서 보니까… 지하실이 있고 뒤주 안에 아이가 있더라고?“


”뒤주 안에 아이?“


그건…



“그래. 먼 동쪽의 땅. 마왕이 태어난 나라. 거기서 왕이

자신의 왕세자를 뒤주에 가둬 벌인 금단의 지식 소환술…!”


금단의 지식 소환술.

지금은 용사가 물리치고 마왕국은 해체. 

점점 제국에게 흡수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본래는 아치메라는 나라였다. 


그 나라의 왕이 왕세자를 제물로 받쳐 금단의 지식을 소환할 때 사용한 것이 그 의식.


그 의식에서 얻은 기술을 토대로 마족들은 무장하여 인간들을 공격해왔다. 그것이 인마전쟁의 기초.


당연히 용사가 물리친 지금에는 그런 인신공양 같은 위험한 의식은 발견 즉시 참수인데… 귀족가의 저택에서?



”그…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된 건데? 그 카스티온이라는 마도사는 도대체…“



”몰라.“



”뭐?“



”얘가 울고 있길래 아 이거 골치 아프겠다. 싶었는데 그 방 찬장에 꽤나 고급 술이 남아 있더라고? 오 이건 섹스지 하고, 집어서 마시다 보니까 기사가 와서 날 잡아갔어. 꺼억”




“…”



이 주정뱅이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은 내가 바보지.



”이딴 꽐라 아저씨 말을 들은 내가 바보야…“


”아저씨라니?! 형이라고 해! 이쁘장하게 생겨 갖곤… 따먹어 버린다?!“


남자는 혀를 낼름 거리며 위협하듯이 소리친다.

어우 씨발 술냄새야.


”닥쳐 이 변태새끼야! 하으… 진짜, 이번 실험만 잘 되면 다시 아카데미 기숙사로 돌아갈 수 있었는데… 도대체 뭐야 이거… 내 인생…“


진짜 좆됐네. 이거.

아카데미 퇴학도 모자라서 범죄자라고? 엄마나 형, 아빠는 뭐라고 생각할까. 그래도 막내 아들이 재능을 인정 받아서 제도 아카데미까지 갔는데…

떨군 고개, 그 아래의 울퉁불퉁한 벽돌 바닥에 기뻐하던 가족들의 얼굴이 번지고 있다. 


“그나저나 여~ 전히 대충대충 일하네 기사님들은…”


철컥


“그러니까…! 하… 진짜 내가 쓴 거 아니라고…”


“어라…?”


고개를 돌리니, 남자는 자신의 한쪽 팔과 다리를 묶고 있던 사슬에서 벗어나 일어서있는 모습.

180은 훨씬 넘어보이는 큰 키. 새까만 튜닉 위에 어울리지 않는 긴 코트. 토사물인지 뭔지 잔뜩 더러워진 흰색 바지에 갈색 부츠를 입은 남자는 손목을 돌리며 흐아암.

하품을 하고 있다.



“어, 어떻게 푼 거야?!”


“다 알지. 나 원래는 기사였거든. 때려쳤지만.“


뭔 개소리야.

하는 행실이 기사가 아닌데.


“똥물 파티 중인 아래마을이 신경 쓰여서 안 되겠어서 잠시 보고 오려고.”


“보고 온다고? 탈옥한다는 거야?”


“탈옥이라니? 어차피 지금 당직 서는 놈. 곯아떨어져 있을 걸? 잠시 갔다가 잠시 보고 오는거지. 무단침입으로 일주일 동안 어떻게 여기에 있냐?”


“그게 탈옥이잖아! 그리고 보고 온 다는게…”


“아… 그 뭐야. 카스티온의 저택에 아예 아무것도 없진 않았거든. 꽤 값나가는 마석도 있으니, 대충 아랫마을 행크스 할배한테 던져주면 그 돈으로 뭐든 대책을 마련하겠지.”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내 앞으로 걸어간다. 철창을 이리저리 만져 보더니 흐음 흐음 하고 신음하고 있다.


“오 역시 관리를 안 해. 우리 기사님들 참 대단해. 그러게 제때 제때 구리스 발라두라니까”


기사? 도둑놈이잖아.

감옥 철창을 이렇게 단시간에 여는게 도둑놈이지.


“…아, 맞다. 그래서 미안한데 나 올 때까지만 내 역할로 저기에 묶여서 나인 척 좀 해주라? 알았지?”


“되겠냐 그게?! 체격 차이를 보라고!

 그리고 내가 왜?!“


남자는 날 내려다보더니 고개를 갸우뚱.


”너 아카데미 학생이라며? 마법으로 어떻게 안 되냐?“


되겠냐. 인마대전 때면 모를까. 10년이 지난 지금의 아카데미에서는 각종 학부에서 특화 된 마법을 배운다고.

물론 교양차원이나 뛰어난 학생들은 여러종류의 마법을 다루기야 하겠지만, 난…


”아아아~ 그렇지 참. 말하는 태도가 잘못됐네.

큼큼…“


”뭐야…?“




“에베베~ 아카데미 학생인데~~~ 에베베베~

환각 마법도 못 쓴대요~~~ 왜 사냐~~~

쌀벌레래요~~~~”



남자는 혀를 내밀어 천박하게 뒤흔들며 양다리로 내 앞을 왔다갔다. 양손을 펼쳐서 엄지를 자기 뺨에 댄 채로 쥐었다폈다하는 건 덤이다.

이… 이… 알콜 중독자 버러지가?!



”하고 싶어도 못한다고!!! 이 수갑 때문에!!!“


”에베베베~~~ … 아, 그거?”


남자는 내 말에 갑자기 놀리는 걸 그만두더니

내게 다가온다. 윽 술냄새.

두 손을 뻗어서 내 수갑을 쥐더니…


“엇! 뭐 하려고…!“


찰칵. 어처구니 없이 간단하게 떨어져 나가는 수갑.

지면에 부딪히며 챙하고 떨어진다.


”어… 어떻게 한 거야?!“


”그 마법사용 수갑은 내부가 복잡하거든. 그래서 대충 만든 게 많아. 불량품이라도 신고 안하고 계속 돌려쓰는게 기사단이갈랑. 왜냐? 애초에 한 탕 해먹으려고 불량률 높은 대장간에서 떼오니까~


” 마법은 못 쓰게 하는데 힌지 부분을 당기면서, 살짝 충격을 주면 자동으로 풀려. 아 뭐, 두 손이 묶여있으면 못 쓰는 방법이긴 하지만…“


“… 너 도둑놈이지”


겨우 풀려난 손. 해방 된 손목끼리 어루만지며 일어선다. 이것만으로도 뭔가, 마음이 착하고 가라앉는게 역시 자유란 좋은거야.


”아니 글쎄 전에 기사였다니까?!”


“아무튼, 이제 됐지? 수갑도 풀어줬으니까 잠시만 나인 척하고 있…”




그 때, 쾅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이 터져나가고, 그 아래로 모든게 쏟아진다. 바닥? 여기 지하가 아니었나?

그런 걸 생각할 틈도 없이 굉음이 모든 것을 빼앗아간다. 모든 것이 무너져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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