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저자에 정체를 모를 뛰어난 해결사가 이름을 날려

정도(正道)로 풀지 못하는 백성의 억울한 원한을 대행해주었다

그는 도깨비 가면을 쓰고, 경극의 배우처럼 치장을 했다 하여

사람들이 귀면무생(鬼面武生)이라 부르며 칭송하고 경외했다

- 유소설, 홍방



"크하하, 그래서 말이야! 이 내가 그 건방진 놈의 면상에 제대로 먹여줬다, 이거지!"


분내와 향내가 진동하는 홍등가의 고급 기루. 


탁자를 두고 둘러앉은 사람들 가운데, 술잔을 치켜든 한 젊은 공자가 유쾌하게 웃으며 이죽거렸다. 그러자 그의 주변을 빼곡히 메우고 있던 사내들도 왁자하게 홍소를 터뜨리며 그를 떠받들어 주었다.


"역시! 금 공자의 무공 실력은 따라갈 자가 없습니다!"


"다음 번에는 오대세가에서 주최하는 비무 대회에도 참여하신다면서요? 금 공자 정도의 실력이면 우승은 따놓은 당상일 겁니다!"


"크크, 빈천한 비렁뱅이가 주제도 모르고 까불더니 꼴 좋게 되었습니다. 이래서 하찮은 것들은 주기적으로 밟아주는 게 맞다니까요?"


"그 놈도 영광인 줄 알아야죠. 그깟 놈이 금 공자의 무공을 구경이나 해봤으니 오히려 큰 은혜를 입은 게 아닙니까?"


금 공자라 불린 사내의 주위에는 질 나쁜 협잡배들밖에 없었다. 


험상궂은 왈패들과 저급 엽색꾼, 무림인을 자처하면서 양민을 노략질하는 칼잡이들. 본디 기루가 성실하거나 선량한 종자들이 모이는 곳은 아니지만, 그걸 감안해도 금 공자의 무리는 유달리 그 부류가 나빴다. 


옛 제나라의 명사인 순우곤 왈, 같은 류의 새들은 끼리끼리 모이기 마련이라 하였으니, 그게 바로 그 유명한 유유상종(類類相從)의 고사였다. 


그리고 금 공자의 패거리만큼 그 고사를 잘 증명하는 놈들도 드물었다. 당장 아랫것들의 충동질에 신이 난 금 공자가 멋대로 떠드는 내용만 들어봐도 명백했다.


"흐흐, 그래도 두들겨 패는 재미가 있는 놈이었는데 아쉽게 됐지. 그렇게 목을 매달아 버렸다니."


"아이고, 그렇습니까? 저희는 처음 듣습니다만."


"꼴에 사내 자식이라고 덤비지 않았더냐? 내가 자기 정혼녀를 빼앗아갔다면서 말이다. 그 엉덩이 가벼운 창년이 먼저 내게 알랑거린 것이거늘."


"쯧쯧, 하여간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인다고 하더니. 여자 단속 하나 못한 놈이 감히 금 공자를 원망하면서 발악을 한답니까?"


"맞습니다. 불만이면 자기도 금 공자처럼 돈 많고 절륜한 사내로 태어나던가, 낄낄낄."


그러자 금 공자가 히죽, 입꼬리를 올리며 소근거렸다.


"뭐, 그 놈이야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었지만, 대신 꽤나 반반한 여동생이 있더구나. 제 오라비를 폭행한 것에 앙심을 품고 내게 따지러 왔는데, 쉬지도 않고 앵앵거리는 게 참으로 짜증이 났지. 그래서......"


"으흐흐, 잘 알아들었습니다요. 그 년은 좀 맛이 어땠습니까?"


"처음에는 좀 앙칼지게 반항을 했지만, 내 실력은 다들 알지 않느냐? 양물 한번 꽂아주고 약을 한번 먹여주니 바로 헐떡거리면서 넘어오더란 말이다."


"역시 금 공자! 앞에서 암만 건방지게 굴어도, 금 공자의 좆맛을 보면 헤어나올 년이 없지요."


"그래, 그렇지. 해서 놈과 나의 격차를 명명백백히 알려줄 겸, 완전히 약에 취한 여동생 년의 모습을 보여주었지. 그랬더니......"


충격에 못 이겨 목을 매달고 자결해버렸다.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이야기의 결론은 뻔했다. 


한 남자의 행복을 파괴한 것도 모자라, 그의 가족마저 욕보이고 이를 과시하기를 주저하지 않은 악질. 정파의 협객이 들었다면 대노하여 검을 휘둘렀을 사안이지만, 그 자리에 모인 그 누구도 금 공자의 악행을 책망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정반대였다. 타인의 정혼자를 강탈하고, 함부로 주먹을 휘두르고, 그의 여동생마저 겁탈한 것이 마치 대단한 무용이라도 되는 양 그를 추켜세울 따름이었다.


"으하하! 금 공자는 정말 대단하십니다! 역시 이 일대에서 금 공자를 건드리고도 무사할 놈은 없지요!"


"어째, 그 여동생이라는 년은 저희도 맛만 좀 보게 안 해주시렵니까? 금 공자 같은 미식가께서 고르신 계집이니, 얼마나 아래가 쫄깃할지 저희도 궁금한 지라."


"푸하하, 멍청한 놈. 금 공자의 좆맛을 본 년이 너 따위 소물한테 반응이나 할까? 발길질로 밀어내면서 금 공자만 찾아대는 거 아닌 지 몰라?"


부끄러운 줄도, 수치스러운 줄도 모르고 이어지는 음담패설. 허나 아무도 이를 제지하지도, 여기 불만을 제기하지도 않았다. 


상대는 일대에서 상당한 위세를 휘두르는 중소 문파 장문인의 외아들. 놈들에게 밉보이면 이 땅에 발붙이고 살기 힘든 건 물론이요, 오대세가나 구파일방과도 긴밀한 연이 닿아있다는 풍문마저 파다하다. 


심지어 피해자는 돈도 권력도 없는 무력한 평민 몇몇일뿐. 


힘의 격차가 이리도 명료할진대, 바보가 아닌 이상 나서줄 사람이 있겠는가? 그 잔인한 부조리를 너무나도 잘 알기에, 저 인면수심을 지닌 짐승들도 자기 멋대로 나불댈 수 있는 것이다. 


아무도 자길 건드릴 수 없다고, 몇 명의 사람을 망가뜨려도 자신의 앞에는 탄탄대로만이 펼쳐져 있을 거라고 믿고 있으니까.


그리고 나는 그 한심한 착각을 처절히 부숴주기 위해 이곳에 와있었다.


"더 들을 것도 없겠군. 더러운 버러지 놈들."


드르륵. 금 공자 패거리의 옆에 앉아있던 내가 몸을 일으키자, 단숨에 놈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쏠렸다. 


"하? 웬 놈이냐?"


"너 방금 우리더러 한 소리냐?"


"복장이 왜 저래? 길거리 경극이라도 하는 광대 놈인가?"


시커먼 무도복과 정갈하게 묶은 머리, 그리고 붉게 칠한 도깨비 형상의 가면. 언뜻 저자거리의 광대를 연상시키는 외모에 놈들이 확실하게 방심하는 게 보였다. 


"금모일. 21세. 백수 한량."


나는 가만히 품에서 낡은 종이 쪼가리를 꺼내 읽는 시늉을 했다. 


"제 아비의 위세만 믿고 뻗대는 황금문 장문인의 외아들이자, 고량촌의 두익이라는 남자의 정혼녀를 강탈하고 그 여동생마저 욕보인 천하제일의 쓰레기."


그러면서 착 가라앉은 어조로 차분하게 물었다.


"네 놈이 맞겠지?"


"뭐가 어째?"


"이 자식이 감히 금 공자를!"


울컥한 졸개들이 무기를 뽑으며 앞다투어 일어섰다. 


삽시간에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놀란 기녀와 손님들이 비명을 지르며 흩어졌다. 일부는 유혈 사태를 예상했는지 관병을 부르러 바깥으로 뛰쳐 나가기도 했다. 


상황이 험악해지자 금 공자, 금모일이 피식 썩어빠진 냉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뭐야, 네 놈은? 설마 그 걸레 같은 계집이 고용한 해결사냐? 생긴 건 그냥 광대 같은데?"


놈의 발언은 일단 절반 정도 맞았다. 나는 틀림없이 '광대놀음'을 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자. 하지만 나의 관객이 기다리는 무대는 평범한 길거리의 공연장 따위가 아니다. 


내가 부채를 펴고 뛰노는 무대의 이름은 오직 하나. 


'앙갚음'이라는, 피와 고름으로 얼룩진 원한의 무대뿐이었다. 


"자신의 악행을 반성하느냐, 라고 묻고는 싶지만. 보아하니 그럴 양심 따위는 남아있지 않은 모양이군."


종이 쪼가리를 도로 말아 품에 넣으며 가만히 빈정거렸다.


"그렇지? 이 쓰레기 자식아."


꿈틀. 놈의 더러운 관자놀이가 경련하는 게 보인다. 잇따라 놈이 날 삿대질하며 사납게 소리쳤다.


"잡아라!"


그의 명에 흥분한 조무래기들이 각자의 병기를 꼬나쥐고 달려들었다. 


금모일을 제외한 상대의 머릿수는 대략 여섯. 척 봐도 맞상대하기 어려운 중과부적의 머릿수 차이였다. 


평범한 검객이었다면 이쯤에서 단념하고 후퇴해도 무방하리라. 


그래, 평범한 검객이었다면 말이다.


촤악!


"어?"


"큿?!"


눈 깜짝할 새 휘둘러진 은빛의 섬광. 언제 뽑혔는지도 모를 서슬 퍼런 검이 내 손에 잡혀있었다. 


잇따라 새빨간 핏방울이 사방으로 튀기고.


"끄아악-!!"


"아악!! 내 손!!!"


여섯 무뢰배들이 한꺼번에 주저앉으며 울부짖었다. 방금 전까지 무기를 지니고 있던 놈들의 손모가지들이 전부 동강 난 것이다. 일부는 눈물까지 찔끔찔끔 짜며 고통을 호소했고, 일부는 현실 파악이 안 되는지 잘린 손을 단면에 갖다 대며 도로 붙이력고 발악을 했다. 


방금 전까지 타인의 불행을 비웃던 자들이, 정작 자신을 덮친 파국에 몸부림치는 꼴이라니. 


그 추한 모습에 욕지기가 치밀어 다시금 검을 휘둘렀다.


서걱!


그리고 깔끔한 초식 한 번에 놈들의 모가지가 마찬가지로 깔끔히 날아갔다.


"흐, 흐익?!"


우당탕 나동그라지는 부하들을 보며 금모일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사색이 된 그가 등을 돌리고 냅다 달아나려고 들었다. 


물론 나는 순순히 보내줄 의향이 없었지만 말이다.


쉬익! 


팍!


"끄아아아-!!!"


처절한 괴성이 피바다가 된 기루에 쩌렁쩌렁 울려퍼진다. 


놈의 도주 경로를 예측하고 던진 단검. 그것이 금모일의 왼손을 관통한 채 벽에 깊이 박혀있었다. 손바닥 밑으로 피가 줄줄 흐르자, 겁을 먹은 금모일은 눈물콧물을 질질 짜며 제 낯짝을 마구 일그러뜨렸다. 


그 모습이 마치 실컷 떼를 쓰는 코흘리개를 연상시켜 더더욱 속이 역해졌다. 


"어이, 쓰레기."


팍! 부들부들 떠는 놈의 정강이를 걷어차 넘어뜨렸다. 자연히 손바닥이 단도에 의해 더 크게 찢어지고, 금모일은 숫제 눈까지 까뒤집으며 소리를 질러댔다.


"으아아악-!!! 아파!! 아프다고!!!"


"어쩌라고."


놈의 뒷머리를 낚아채며 서늘하게 속삭였다.


"타인의 고통을 조금도 신경쓰지 않고 오히려 즐긴 네가, 본인의 고통을 호소할 자격은 있을 거라고 보나?"


반응을 떠보기 위해 넌지시 던진 말이었지만, 역시 쓰레기는 한갓 쓰레기에 불과했다. 놈이 일그러진 낯짝으로 날 노려보며 악을 쓴 것이다.


"너, 너 이 새끼!!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아!!! 우리 아버지가 누군지 알아?! 우리 아버지가 알면 넌 기필코......"


"닥쳐."


뻐억! 더 듣고 있다가는 귀가 썩을 것만 같은 지라, 우선 턱주가리를 세게 쳐서 기절시켰다. 


정신을 잃은 금모일의 몸뚱어리가 축 늘어지자, 곧장 놈의 손에서 단검을 빼내 챙겼다. 그리고는 행여 관병이 당도하기 전, 놈을 들쳐메고 곧바로 현장을 빠져나가 버렸다. 


마음 같아서는 여기서 사지를 갈기갈기 찢어주고 싶지만, 여기는 불필요한 시선이 너무 많다. 


나의 광대놀음을 시작할 안성맞춤인 공연장은 따로 있었다.




()()()()()




이 모든 건 고작 삼일 전에 시작된 일이었다.


"우선 앉으시지요."


내 말에 퀭한 안색의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만히 의자에 몸을 기댔다. 


한때 굉장히 아름다웠을 미모의 소유자이지만, 약과 학대의 여파로 초췌해진 지금은 그 태가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 마치 내일이라도 죽어버릴 중환자처럼 생기 없이 말라 비틀어졌을 따름이다. 


"......대인의 소문을 듣고 여기까지 찾아왔어요."


내가 대접한 오룡차를 마시며 여인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뒷세계의 해결사라고 하셨죠? 그 어떤 원한도 반드시 되갚아 준다는."


"그렇습니다."


즉답을 해주자 비로소 여인의 안색에 약간의 생기가 돌아왔다. 


그러나 그 생기는 결코 밝고 화사한 기운이 아니었다. 분노, 그리고 원념. 드디어 응어리 맺힌 한을 풀 수 있게 되었다는 후련함의 불길이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일단 팔짱을 끼며 시치미를 뚝 떼보았다.


"하지만 잘 아시겠지요? 저는 단순한 이익 쟁탈이나 사소한 분쟁으로 인한 청부업은 수락하지 않습니다. 제가 해결사 의뢰를 수락하는 조건은 오직......"


"알고 있습니다."


사소한 문제로 찾아온 게 아니라고 증명이라도 하듯 그녀가 악독한 살기를 뿜어냈다. 


"대인께서 어떤 의뢰만 받는지......확실하게 숙지하고 찾아왔습니다."


바르르 떨리는 어깨, 찰랑거리는 찻잔 속의 물결이 여실히 알려주고 있었다. 


이 여자는 더 이상 그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어, 최후의 수단으로 내 바짓가랑이를 붙들러 왔다는 걸. 복수만 할 수 있다면 마귀와 손을 잡고 모든 걸 잃어도 좋다는 각오로 여기까지 왔다는 걸. 


이를 기점으로 나의 주저함도 완전히 사라졌다. 


"좋습니다. 소저의 사연을 들어보지요. 무슨 용무로 절 찾아오셨습니까?"


그러자 잘근, 여인이 제 입술을 깨물었다. 생각만 해도 증오가 차오르는지 눈알을 부라리던 그녀가, 잠시 후 어렵사리 입을 열어 본심을 토로했다.


"제 오라버니를 죽게 하고......저까지 욕보인 짐승만도 못한 사내."


주륵. 너무 세게 깨문 입술에서 피가 흘렀다. 그와 동시에 여인의 눈동자에는 핏발이 잔뜩 섰다.


"황금문의 금모일을 끔찍하게 죽여주세요!!"


황금문의 금모일. 그 이름은 익히 들어본 적이 있었다. 비록 규모는 중소 문파에 불과하지만, 지역 토박이로서 나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강대한 문파들과도 연줄이 있는 황금문. 


그 장문인의 삼대독자이자, 아버지의 권력을 앞세워 활개를 치고 다닌다는 몹쓸 천둥벌거숭이 놈이었다. 


우선 금모일과 소저가 정확히 어떤 관계인지를 알기 위해 추가 질문을 던졌다.


"굉장히 원통하신 심정이라는 것만은 알겠습니다. 허면 구체적으로 놈에게 무슨 짓을 당했는지 알려주십시오."


그러자 소저가 제 옷깃을 거머쥐며, 그야말로 쥐어짜내는 소리로 자신의 사연을 털어놓았다.


"저와 제 오라버니, 두익은 작은 상점을 운영하며 단란하게 살아가는 화목한 남매였습니다."


오라버니 두익과 소저, '조혜'는 일찍이 조실부모를 하고 오순도순 자라온 전형적인 소시민들이었다. 


가진 건 많지 않았으나, 남매는 서로에게 의지하며 갖은 인생 굴곡을 이겨냈고, 부모님이 물려주신 잡화점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과정은 순탄치 않았으나 남매는 각자가 있어 든든했고, 마침내 상점이 번창하는 건 물론 두익이 본인의 소꿉친구와 정혼까지 하면서 형편이 확연히 나아졌다. 노력의 결실을 거둔 남매는 부둥켜 안고 눈물을 흘리며 성공을 축하했고, 이제 밝은 미래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그 기대는 한 남자의 악의에 의해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우물가에서 물을 긷고 있던 두익의 약혼녀. 그녀에게 눈독을 들인 금모일의 추잡스러운 욕정에 의해.


"그 자는......오라버니의 정혼자를 빼앗고 오라버니를 모욕했어요. 오라버니가 반항하자 공개적으로 폭력을 가해 망신살이를 시켰고, 불한당들을 동원해서 가게를 때려부쉈죠."


"저런......"


슬며시 추임새를 넣어주자, 조혜 소저가 이를 바득바득 갈며 말을 이어갔다.


"솔직히 거기까지는 저도 참으려고 했어요. 아니, 오히려 잘 됐다고, 차라리 액땜이나 한 셈 치자고 여겼죠. 돈과 위세에 눈이 멀어 오라버니를 버리고 갈아탈 창년이라면, 무사히 혼사를 치뤘어도 언젠가 호되게 당했을 테니까."


말하는 걸 보니 두익 일가의 비극에는 정혼녀의 변심도 어느 정도 지분이 있는 모양이었다. 타인의 조건에 혹해 연인을 버리는 건 생각보다 흔한 일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나 조혜 소저의 고백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문제는......그 여자가 자살을 해버리면서 터졌어요."


"자살 말입니까?"


끄덕. 고갯짓을 하며 조혜가 냉소를 지었다. 


"뻔한 거죠. 금모일 따위의 금수가 진심으로 그 여자를 사랑했을 리가 있나요? 질려버린 즉시 내치고, 입막음 명목으로 부하들을 동원해서 윤간까지 시켰답니다. 해서 수치심을 이기지 못해 목숨을 끊은 거죠."


종전까지 괴로움에 일그러져 있던 얼굴이, 지금만큼은 다소 통쾌하고 즐거워 보였다. 


조혜 소저의 입장에서 그녀는 오라버니를 내치고 다른 남자에게 쪼르르 안긴 배신자. 내심 인과응보라 여기며, 이를 계기로 오라버니도 새출발을 하기를 손꼽아 바랐으리라.


"근데......오라버니가 제 상상 이상으로 그 여자한테 진심이었나 봐요."


정혼자의 비참한 최후를 전해 들은 두익은 분노에 그만 이성을 잃고 말았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금모일에게 복수를 하러 달려갔지만, 이는 일개 잡화상과 일대를 거머쥔 장문인의 외아들 간의 싸움. 


결과야 불 보듯 뻔했고, 그 날 금모일의 수하들에게 당한 폭행과 모독으로 인해 두익은 완전히 사람이 망가지고 말았다.


"저는 너무 분해서 참을 수가 없었어요.......!"


꽈악. 주먹을 부들부들 떨며 조혜 소저가 중얼거렸다.


"잘못을 한 건 오라버니가 아닌데! 전부 그 찢어죽일 남정네들의 잘못인데! 왜 우리 오라버니는 저렇게 폐인이 되어버리고......그 놈들은 멀쩡히 살아서 왁자지껄 걸어다니는지.......!"


"그래서 직접 따지러 가셨다가......."


"네."


끄덕. 고갯짓을 하며 조혜 소저가 맥이 탁 풀린 어조로 대꾸했다.


"제게 춘약을 억지로 먹이고, 밤낮없이 겁탈을 했죠. 거의 나흘에 달하는 기간 동안, 시간 감각도 잃어버리고 내가 누구였는지 기억도 잘 안 날 지경으로."


여태 들은 사연만으로도 충분히 참혹했다. 정상적인 사고방식, 아니 최소한의 양심만 가진 사람이 듣더라도 참을 수 없이 화가 날 이야기였으니까. 


하지만 진정 분노할 곡절은 아직 시작도 안 했다는 듯이 조혜 소저가 섬뜩한 쓴웃음을 지었다. 


"제가 완전히 넋을 놓아버릴 즈음......금모일이 오라버니를 제 앞에 끌고 왔죠. 그리고 그 자식은 실컷 자랑을 해댔어요."


그녀의 눈동자에서 다시금 인간의 것이 아닌 살의가 파도처럼 넘실거렸다.


"네 정혼자를 따먹은 것처럼, 네 여동생도 내가 뺏아버렸다고."


"뭐라고요?"


상상을 초월하는 저열함에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남의 가정을 파탄낸 것도 모자라, 그걸 대놓고 과시하면서 즐기기까지 했다니. 듣기만 하는 나도 당장 검을 뽑고 싶을진대, 조혜 소저의 심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울 지는 차마 가늠할 수도 없었다. 


이후의 고백은 예상한 대로 흘러갔다. 


그런 비참한 꼴을 당한 두익은 더는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을 매달았고......


오라버니와 만나 정신을 차린 소저는 겨우 놈들의 손아귀에서 탈출해 집으로 돌아갔지만, 그녀를 기다리는 건 가족의 시신뿐이었다. 


대들보의 천 끈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혀를 빼물고 싸늘하게 식어버린 두익의 시신 말이다. 


"처음에는 관에 도움을 청하려고 했어요......하지만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더군요. 상대가 바로 그 '금모일'이었으니까."


그렇겠지. 권력은 언제나 힘을 가진 자의 편. 


한갓 잡화점을 운영하는 여인이, 심지어 일가를 몽땅 잃은 여인이 가서 하소연을 한들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을 것이다. 가진 자들이 구축해놓은 질서는 비정하도록 차갑고 자의적이었으니까. 


그리고 권력에 의지해 풀어내지 못한 억울함은 곧 원한이 되었고, 그 원한은 다시금 불타오르는 업화가 되어 조혜 소저를 집어삼켰다. 


모든 걸 내던지고 뒷세계의 은밀한 해결사를 찾아와 복수를 의뢰할 정도로 말이다.


"저는......저는 그 놈을 절대 용서할 수 없어요!! 저를 위해서도, 그리고 오라버니를 위해서도!!"


주르륵. 그녀의 눈가 아래로 붉은 피눈물이 흐른다. 증오를 견디지 못해 터져버린 혈관에서 나오는, 가슴 깊은 곳에 맺힌 제일 원초적인 분노의 감정이었다.


"오라버니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다고!! 한평생 선량하게, 정직하게만 살아온 사람인데!! 날 뒷바라지해주고, 언제나 내가 잘 되기만을 빌어주던 착하디 착한 사람인데!!! 도대체 왜 오라버니가 그런 끔찍한 꼴을 당해야 해!!! 도대체 왜--!!!!"


조혜 소저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러더니 풀썩,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제발 부탁드려요!! 금모일, 그 개자식을 가장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죽여주세요!!! 원하신다면 뭐든 드릴 게요!!! 돈이 되었건, 땅이 되었건!!! 아니면 제 더러운 몸뚱어리라도 기꺼이 바칠 테니까-!!!!"


바락바락 절규하며 조혜 소저가 원통하게 울부짖었다.


"금모일!!! 그 놈에게 천벌을 내려주세요--!!!!"


"소저, 진정하십시오."


분함을 이기지 못해 흐느끼는 조혜 소저를 다독여주었다. 그러면서 속삭였다.


"사정은 잘 알았습니다, 조혜 소저. 그러니 눈물을 거두십시오. 소저의 원한은 제가 반드시 풀어드리겠습니다."


"저, 정말? 정말이신가요?"


제 소맷자락을 붙들며 캐묻는 소저에게, 나는 확신의 표시로 고개를 주억거려 주었다.


"그게 바로 저 같은 해결사가 하는 일이니까요."


소저와 단단히 맹약을 맺은 후, 나는 계획대로 금모일과 그 부하들이 자주 출몰하는 기루에 잠복했고.


관군이 도달하기 전, 재빨리 수하들을 살해한 뒤 금모일을 빼내는데 성공했다.


조혜 소저의 원통함을 풀어주기 위한 최고의 광대놀음을 화려하게 시작하기 위해.




()()()()()




"일어나라, 이 더러운 자식아."


"커헉!! 우웨엑!!"


복부를 걷어차버리자, 장대에 꽁꽁 묶여 있던 금모일이 구역질을 하며 정신을 차렸다. 


눈꺼풀을 끔벅이던 놈이 제 상황을 알아차렸는지, 주변을 휙휙 둘러보며 발악을 했다.


"비, 빌어먹을! 너 누구야! 뭐하는 새끼야!"


"내가 뭐하는 새끼인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고."


금모일의 말에 나는 대답 대신 작은 붓을 들었다. 


그리고는 슥슥, 벌거벗은 놈의 육체에 붉은 선을 하나씩 차근차근 긋기 시작했다. 빨간 물감이 잔뜩 칠해진 금모일의 몸은 마치 칼로 난자를 당한 것처럼 보기 흉하게 바뀌었다. 


조용히 붓질만 하는 나를 노려보며 금모일이 소리쳤다.


"너, 너 이 새끼!!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아?! 우리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아?! 내가 사라진 걸 알면 너는......!"


"거, 진짜."


때마침 작업을 끝낸 나는 휙, 붓을 뒤로 던져버렸다. 동시에 힘을 주어 퍼억, 놈의 복부를 주먹으로 한차례 더 가격했다.


"더럽게 시끄럽네."


"끄어억......!"


오장육부가 뒤집히는 고통에 놈이 몸을 사방으로 뒤틀었다. 어떻게든 포박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는 중이었지만, 이깟 양아치 따위가 단단한 매듭을 풀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자칭 무공이랍시고 거들먹거리는 것도 약자를 일방적으로 핍박하며 얻은 싸움 실력에 불과했으니. 


"우욱, 너......너 이 새끼......!"


금모일이 있는 힘껏 날 노려보며 으름장을 놓았다.


"각오하고 있어......! 너는 내가 꼭 제일 고통스럽게 죽여줄 테니까! 우리 아버지가 내 실종을 알아차리기만 하면......!"


"하아."


뻐억!!


"크어억!!"


턱을 올려치자 순식간에 강냉이가 후드득 날아갔다. 


"으윽, 크흐흑......!"


코피를 잔뜩 흘리며 금모일이 씨부렁거렸다.


"씨발, 그 갈보 년이 시켰지? 두익인지 뭔지, 그 천한 장사꾼 놈 동생 년이!"


"......."


"두고 봐! 그 년 눈깔을 전부 파버리고 사지를 잘라서 돼지 먹이로 줄 테니까! 아니, 그 전에 거지 새끼들 데려다가 전부 돌려 먹게 시키고! 그 다음에 돼지들한테 따먹으라고 던져줄 거야!"


한평생 아버지가 세워준 울타리 속에서 안전하게만 살았던 놈이니 기고만장한 것도 이해는 간다. 


무슨 사고를 치건, 무슨 범죄를 저지르건 늘 황금문의 장문인이 전부 무마를 시켜줬을 테니까. 세상은 그저 본인의 놀이터로 보이고, 사람들은 자신의 장난감으로 보였겠지. 


하지만 지금 놈은 내게 납치 당해 장대에 꽁꽁 묶인 상태. 


완전히 제압을 당하고도 주제 파악을 못한다면 그건 거만하거나 철없는 문제가 아니다. 본인의 낮은 지능 문제이지. 


이런 놈들은 여기서 바로 죽여버려도 살인이 아닌 자연사인 셈이다.


"그래, 말이 나온 김에 말인데."


딱. 손가락을 퉁겨 신호를 주자, 내 뒤편에 숨어있던 누군가가 주춤주춤 걸어나왔다. 그 모습을 본 금모일의 눈동자가 휘둥그레 커졌다.


"너......너!!"


내게 복수를 애걸복걸한 조혜 소저가 손에 단검을 들고 서있었던 것이다.


"이 천한 걸레년!! 개돼지만도 못한 가축 년이 주제도 모르고 이딴 짓을 계획해!!"


조혜 소저를 발견한 금모일이 힘껏 발버둥을 치며 외쳤다. 


"내가, 내가 여길 나가기만 하면 너흰 둘 다 끝장이야!! 어?! 특히 네 년은 죽기 직전까지 강간을 당하도록 해줄 테다!! 아랫도리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범하라고 해줄 거야!! 알아 들어?!!"


일말의 반성도, 조금의 후회도 없이, 아직까지도 본인이 갑인 줄 알고 몸부림을 치는 멍청이였다. 아마 마음껏 유린했던 여인이니 결박을 당한 와중에도 쉽게 보인 모양이다. 


놈에게 겁탈을 당하던 조혜 소저는 겁에 질려 살려달라는 말만 반복하는 전형적인 약자요. 승냥이 앞에서 도무지 기를 못 펴는 순박한 양이었을 테니까.


허나 놈은 알지 못했다.


지금 눈앞에 서있는 여자는 순하디 순한 양이 아닌.


복수에 미쳐 눈이 돌아간 한 마리의 야수라는 것을.


"이 씨발 연놈들!! 이거 풀어!! 당장 풀어!! 안 그러면 너희들을 내 그냥......!!"


푸욱!!


살을 째는 시큰한 소음. 잇따라 고래고래 소란을 피우던 금모일의 낯짝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어......?"


조혜 소저에 들린 작은 칼날. 그것이 놈의 어깻죽지를 꿰뚫은 것이다.


"으, 끄아아아아아--!!!!"


칼에 찔린 놈의 괴성이 요란하게 울려퍼졌다. 


허나 조혜 소저는 이에 움츠러 들기는커녕, 오히려 과감하게 단검을 뽑으며 눈을 부라렸다. 


그리고는 푸욱! 다시금 놈의 추악한 몸뚱어리에 칼날을 박아넣었다. 


내가 붉은 물감으로 표시를 해준. 


급소를 피해 오직 고통만을 안겨줄 수 있는 부위만 골라서 말이다.


"이 개자식아......!!"


"끄, 으흐으......!"


원념으로 희번득이는 조혜 소저의 눈빛. 이를 본 금모일이 드디어 두려움에 질렸다. 


뒤늦게 상황 파악이 되었는지, 뭐라고 입을 열려고 들었지만 소저는 그럴 틈을 내주지 않았다. 곧바로 단도를 다시 뽑은 조혜 소저가 이번에는 놈의 다리에 단도를 박아 넣었다. 


당연히 그것으로 끝도 아니었다. 


"개자식아!! 이 개자식아!!!"


팔, 배, 정강이, 어깨. 내가 골라준 '찔러도 되는 부위'를 따라 미친 듯이 금모일을 난도질하며 조혜 소저가 울음을 터뜨렸다. 


선혈이 사방으로 낭자하고, 울분에 찬 그녀의 절규가 쩌렁쩔렁 울려퍼졌다. 


"개자식아!!! 개자식아!!!! 개자식아!!!!! 개자식아아아--!!!!!!"


"꺼허억......!"


무참히 칼질을 당한 금모일이 숨 넘어가는 소리를 냈다. 


놈의 처참한 몰골을 바라보던 조혜 소저가 씩씩거리며 칼을 들었다. 


그러더니 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놈의 목을 베어 이 모든 걸 끝내려고 들었다. 


"조혜 소저."


내가 그녀를 제지한 건 바로 그 순간이었다.


"어......으어어.......사, 살려......줘......."


엉망진창이 된 금모일이 어렵사리 내게 빌었다. 조혜 소저를 가로막은 내 행동에서 실낱 같은 희망을 엿본 듯했다. 


"벌써 죽이면 안 되지 않습니까?"


허나 나는 곧바로 놈의 헛된 망상을 잔인하게 부숴버렸다.


"아직 본격적인 징벌은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요."


"으으.......시,  싫어......제......발.......제발 목숨만......"


"살려달라고?"


이에 나는 팔짱을 끼며 은근한 표정으로 놈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금모일이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제, 제발......목숨만......목숨만......"


"그럼 네 죄를 인정하고 사죄해라. 너 때문에 목숨을 끊은 두익에게, 그리고 너로 인해 씻을 수 없는 고통을 겪은 조혜 소저에게."


일부러 두익의 정혼녀에 대한 언급은 제외했다. 놈이 그녀에게 저지른 짓도 엄연한 죄악이지만, 조혜 소저 입장에서 그녀는 당해도 싼 배신자. 구태여 지목해서 조혜 소저의 고통을 부풀릴 필요는 없었다. 


내 명령이 떨어지자 금모일이 추하게 눈물콧물을 흘렸다. 그러더니 조혜 쪽으로 얼굴을 돌리며 사력을 다해 빌었다.


"죄, 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제가,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렇지? 잘못했지? 정말 죽어도 싼 죄를 지었지?"


"네, 네.......정말 몹쓸 죄를 지었어요. 뼈저리게 반성하고 있어요......그러니까 한번만......한번만......."


"......"


놈의 대단하신 '반성'을 조혜 소저는 묵묵히 경청하기만 했다. 


그리도 그녀가 듣고 싶었던 가해자의 비참한 사과.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기색은 기쁨이나 통쾌함 따위가 아니었다.


"하......하하......."


허탈하게 웃음을 터뜨린 그녀가 땡그랑, 단검을 떨어뜨렸다.


"이게 뭐야.......이게......이게 대체 뭐야......."


망가질 대로 망가진 금모일을 주시하며 조혜 소저가 힘없이 중얼거렸다.


"오라버니도 나도......고작 이런 놈한테......이깟 한심하고 더러운 놈한테.......우리가......"


풀썩. 그녀가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투명한 눈물 방울이 하염없이 초췌한 뺨을 타고 굴러 떨어졌다. 


곧이어 조혜 소저가 몸을 수그린 채 바닥에 엎드렸다. 그대로 으득으득, 이를 갈고 낙루를 흘리며 그녀가 울부짖었다.


"이게 뭐야!! 이게 뭐냐고--!!!!"


엉엉 어린아이처럼 흐느끼는 그녀를 나는 조용히 바라보기만 했다. 


그녀와 오라버니의 미래를 앗아간 건 범접할 수 없는 절대악도, 무시무시한 마귀도 아니었다. 


그저 평범하고 비루한 인간. 단지 두익과 조혜보다 좀 더 권력이 있었을뿐인 추잡스러운 인간이었다. 


그러니 이 놈을 골백 번 찌르고 분풀이를 한들, 망가진 그녀의 삶은 복구되지 않는다. 두익이 살아서 돌아오지도, 행복하던 과거가 되돌아오지 않는다. 


그 간단하면서도 잔인한 사실이, 복수를 갈망하던 한 여인의 정신을 나락으로 빠뜨리고 말았다.


"......."


내 마음도 지극히 안타까웠지만, 조혜 소저를 위로하는 건 그 다음의 일. 우선은 처리해야 할 급선무가 있었다.


"어이, 정신 차려."


툭툭. 금모일의 관자놀이를 치며 말했다. 그러자 금모일이 최선을 다해 입을 벌렸다.


"이, 이제 살려줘......제발......"


"너도 인정하지? 네가 죽을 죄를 지었다는 걸? 타인에게 씻을 수 없는 아픔을 주었다는 걸?"


"이, 인정.......인정할 게요......인정할 테니까 제발......"


필사적으로 애원하는 놈을 보며 나는 비죽, 차가운 미소를 머금었다.


"그럼 죽어."


"에?"


당황한 금모일이 눈을 크게 뜨자, 나는 도깨비 가면을 쓴 얼굴을 가까이 디밀며 놈을 압박했다. 겁에 질린 놈에게는 마치 자신을 잡으러 온 저승의 야차처럼 보이리라.


"방금 너도 인정했잖아? 죽을 죄를 진 게 맞다고."


"그, 그건......하지만 분명 사죄를......."


"사죄를 하면? 정확히 뭐가 달라지지? 죽은 두익이 살아서 돌아오나? 아니면 네 놈에게 유린을 당한 소저의 악몽이 없던 걸로 되버리나?"


악인들의 행태는 언제나 똑같았다. 자기 좋을 대로 남을 짓밟고 고통을 준 주제에, 자기는 쉽게 용서 받고 새로운 기회를 얻기를 원한다. 


자신 때문에 그 기회를 빼앗긴 이들에 대한 죄책감도 없이, 어떻게든 이 상황만 모면하려고 하는 쥐새끼보다 못한 근성. 


"진짜로 반성을 했고, 그래서 사죄를 하고 싶어?"


바깥 세상에서는 그 근성으로 본인의 죄악으로부터 유유히 빠져나갔을 지도 모르지. 하지만 여긴 바깥 세상이 아니다. 이곳은 나의 광대놀음을 위해 최적화된 앙갚음의 공연장. 


이리 끌려온 놈들에게 마땅한 선고는 오직 하나. 


사형. 그것도 가장 끔찍하고 처절한 사형뿐이었다.


"그럼 저승에 찾아가서 직접 하도록."


그리 말하며 덜컥. 옆의 벽에 나와 있던 장치를 가동시켰다. 


그러자 드르륵, 돌바닥이 옆으로 열리며 숨겨져 있던 내부의 도구를 드러냈다. 


바로 돼지 기름이 펄펄 끓고 있는 거대한 솥이었다. 


이를 본 금모일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그런 놈의 귓바퀴에 대고 내가 말했다.


"네가 조혜 소저를 감금하고 겁탈한 기간. 정확히 나흘이지?"


"그, 그게......."


혀가 꼬였는지 제대로 대꾸도 못하는 놈에게 장난스럽게 일러주었다.


"너도 저 안에서 나흘간 버텨 봐라." 


그리 말하며 놈의 매듭을 풀어주었다. 그리고는 놈의 발목을 잡고 질질, 끓는 가마솥의 입구 쪽으로 데려갔다.


"나흘 후에도 살아있다면 그때는 살려서 내보내 주지. 약속한다."


"으어.....으어아악......!!"


본인의 운명을 직감한 금모일이 또 다시 발버둥을 친다. 하지만 두들겨 맞은 데다 칼로 난자를 당한 놈이 할 수 있는 일 따윈 없었다. 


결국 놈은 쪽도 쓰지 못한 채 미리 설치해둔 쇠사슬에 묶였다. 


준비를 마친 나는 다시금 장치를 가동시켰다. 그러자 철컹, 금모일을 휘감은 쇠사슬이 천천히 기름 솥을 향해 내려가기 시작했다.


"너 같은 쓰레기를 바로 죽게 할 수는 없지."


공포에 질린 금모일을 응시하며 차갑게 쏘아붙였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온몸이 끓어서 죽는 게 어떤 느낌인지를 체감해 봐라."


"시, 싫어! 안 돼!! 살려......!"


놈이 몸부림을 치던 찰나, 그 몸부림 탓에 사슬이 더 빠르게 아래로 내려가고 말았다. 


잇따라 첨벙!


"아아악!!! 끄아아악!!!!"


펄펄 끓는 기름이 놈을 산 채로 튀김으로 만들어갔다.


"말했지? 주어진 기간은 나흘."


노릇노릇 튀겨지는 금모일을 향해 내가 말했다.


"한번 잘 버텨봐라. 누가 아나? 운이 좋아 살아서 나갈 수 있을 지도."


뭐, 불가능한 확률로 나흘을 버틴다 하더라도 내보내줄 생각은 전혀 없지만. 그렇게까지 질긴 놈이라면 오히려 인체실험을 위한 재료로 쓰는 게 세상을 위해 더 유익하지 않겠나? 


어차피 나흘씩 기름에 끓여진다면 살아나도 반신불수가 되었을 테니 말이야.


"끄아아아아-!!! 으하아악--!!!!"


"아아, 시끄럽네."


놈의 처절한 비명성을 무시하며 나는 조혜 소저에게로 다가갔다. 


그녀는 아직도 바닥에 엎드린 채 훌쩍훌쩍 울고 있었다. 일단 그녀의 등을 조심스레 토닥이며 위로의 언사를 건넸다.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 분명 오라버님께서도 저승에서 이를 보며 기뻐하고 계실 겁니다."


"......"


내 말에 조혜 소저가 벌건 눈두덩을 문질러 닦으며 몸을 일으켰다. 오열의 여파로 딸꾹질을 연발하는 그녀에게 일단 냉수를 한 그릇 건넸다. 


"우선 물부터 드시지요. 조금은 진정이......"


"고맙습니다."


"네?"


내가 반문하자, 소저가 또 다시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아까와 똑같은 울음은 아니었다. 적어도 복수를 하기 전보다는 후련해진, 응어리를 일부나마 털어내 야수에서 사람으로 회귀한 여인의 울음이었다. 


그녀가 내 품에 얼굴을 묻었다. 그대로 어깨를 미친 듯이 들썩이며 오직 한 단어만을 반복했다.


"고맙습니다.......고맙습니다......고마워요......."


"......"


고맙다, 라.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감사를 들을 자격이나 있는 놈이었던가?


잠시 과거의 일이 떠올라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허나 이를 내색하지는 않으며, 나는 내 품에서 흐느끼는 조혜 소저를 안아주는 일에만 착수했다. 


금모일의 처절하기 그지없는 비명이, 지금만큼은 그 어느 음악보다 감미롭고 아름답게 들려왔다.





갑자기 금태양 참교육이 마려워서 쓴 해결사물 소재......


NTR은.....취존은 하지만 죄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