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미한 기억만 남아있습니다.

 

어머니의 비명소리와 아버지의 고함소리가 가득했던 집은 제가 기억하는 유년시절의 보금자리입니다.

 

아버지의 별명은 조라이어었습니다. 조셉이 본명이지만 아버지는 이미 마을에서 거짓말 쟁이로 유명했습니다.

 

아버지가 술자리에서 무시를 당하면 다른 마을 아저씨 들에게는 아무런 욕도 하지 않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런 아버지더러 거짓말 쟁이이지만 심성은 착한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술을 진탕 마시고 들어오면 그 날은 물건을 던지고 난동을 피웠으며 혹여 어린제가 다칠까 걱정한 어머니가 저를 감싸안고 아버지의 난동이 끝나기를 가슴졸이며 기다려야 했었습니다.

 

아주 어린시절의 기억이지만 제게는 아주 선명한 기억이고 잊을 수 없던 기억입니다.

 

밖에서 무시를 당하고 들어오면 그 화를 가족들에게 풀어버리는 비겁한 아버지는 결국 어머니를 죽였습니다.

 

저는 눈 앞에서 머리가 도끼에 찍혀 비명도 못지르시고 땅으로 돌아가야 했던 어머니의 기억이 납니다.

 

얼굴에 튀었던 어머니의 뜨거운 피, 혈향 그날의 기억은 언제나 저를 떠나지 않습니다.

 

사실 아버지가 밤새도록 술을 마실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가 밤낮으로 일해서 번 돈 이었습니다. 어머니를 죽인 아버지는 어머니를 뒷마당에 묻으시고 일주일 만에 돈을 탕진하셨습니다.

 

집에 남은 어머니가 만들었던 마지막 건조된 빵 한 개는 자신을 흘깃 바라보며 배를 곪는 제 앞에서 홀로 아버지가 먹었습니다.

 

일곱 살의 저에게 마지막 어머니의 빵을 나누어 먹지 않고 혼자서 먹어치운 아버지는 아주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그 비겁한 눈은 절대 잊을 수 없는 끔찍한 눈입니다.

 

그날 아버지는 그 마지막 빵 한조각을 먹고서 외출을 나가셨습니다. 저녁이 되어 돌아온 아버지는 손 한 가득 빵과 우유를 가져 왔습니다.

 

어머니가 살아있을 때도 이렇게 많은 음식은 본적 없기에 놀란 눈으로 아버지를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공교롭게도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아버지에 대한 원망보다 앞서 아버지가 사온 그 빵에 손을 대게 만들었습니다.

 

원래라면 빵 한 개를 다 먹는다는 것은 허락 되지 않는 일이지만 눈치를 보며 먹는 저의 눈을 피하며 아버지는 방을 떠났습니다.

 

배부른 느낌을 태어나 처음으로 느껴 본 것 같던 그 다음 날, 저는 눈물을 쏟아내는 아버지를 바라보아야 했습니다.

 

제 목에는 집에서 키우는 개 들에게 채워지는 목줄이 채워졌고, 제 옆에는 두 사람의 무서운 아저씨 들이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는 저를 노예상인에게 팔았습니다. 어머니 마저 죽이고 어머니가 마든 마지막 빵 마저 혼자 몰래 먹은 비겁한 아버지가 비겁하게 저를 버렸습니다. 

 

너무 어렸던 저는 노예가 무엇인지 자신이 왜 아저씨들을 따라 가야했던 것인지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일년이 지나고 이년이 지나며 저는 그날 제가 아버지에게 버려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를 구매하기 위해 오시는 분들은 제 표정을 보면 모두 구매를 꺼렸습니다. 어린아이가 기분이 나쁜 표정을 한다며 커서 남편 죽일 년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할 만큼 제 표정이 좋지 않았었나 봅니다.

 

아니 지금도 여전히 저는 남자를 볼 때면 그런 표정을 짓습니다. 저에게 있어 남자란 아버지와 그날 노예로 살아가며 때리고 겁박하던 사람들 밖에 없거든요.

 

제 일상은 낮에는 잠을 자고 밤이 되면 쇠창살 안에서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노예인 저는 알고 싶지 않은 법률을 몇 가지 알게 되었습니다. 가령 14살이 되기 전의 노예는 성노예로 팔 수 없다라는 것과 성노예로 판매가 가능한 상품은 처녀여야 한다라는 것 이였습니다.

 

정말 알고 싶지 않은 법률이었지만 저를 사겠다는 사람이 몇 차례 나왔음에도 일부러 팔지 않았다는 노예상 직원들의 말을 이해 하기 위해서 필요한 지식 이었습니다.

 

저는 담담하게 받아 들였습니다. 성 노예로 저를 구매하고자 하는 귀족들이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고, 저는 14살이 되는 생일 파티날 귀족들처럼 큰 연회를 열어 경매에 부쳐져 팔릴 거라는 계획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덕분일까요. 고위급 귀족가의 어떤 분들이 경매 참여 의사를 알린 뒤부터 저의 대접은 달라졌습니다.

 

매일 저녁잠에서 깨면 미용사들이 대기하며 저에게 드레스를 입히고 머리를 손질해 줍니다. 피부를 관리하는 분들이 와서 피부를 꼼꼼히 살피며 소중하게 관리해 줍니다.

 

매일같이 꾸며지고 쇠창살 안에서 거리에 지나다니는 사람들과 눈이 마주치며 제 외모에 반한 권력가와 귀족가의 남성분들의 관심을 끌어야 했습니다.

 

제가 알게 된 유일한 삶의 방식이고 저에게 주어진 유일한 생존 방식이었습니다.

 

아니 선택권조차도 없는 어머니가 아버지의 손에 죽던 순간처럼, 저는 이들의 결정에 따라 살아가는 어머니와 다름 없는 존재였습니다.

 

매일 같이 반복되던 일상에서 한 가지 바뀐게 있다면 쇠창살 안에 무릎꿇고 앉아 있던 자리가 마치 귀족이 앉을 법한 고급스러운 의자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예쁜 드레스는 값비싼 드레스로 바뀌었고, 제가 앉아 있던 자리에 붙은 상품 이름은 이사벨라에서 엘리스로 바뀌었습니다.

 

제 마음은 어머니를 죽인 아버지의 그 잔혹함과 어머니의 마지막 빵 한조각 마저 비겁하게 먹는 아버지의 눈동자와 자신을 노예로 팔아버리고 후회하던 아버지의 역겨운 눈물이 그리고 자신을 성노예로 팔기 위해 통제하는 노예상인이 자신을 끈적하고 더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행인들에게 완전히 망가졌습니다.

 

희망을 잃은 저에게 어느 날, 어떤 여자가 찾아 왔습니다. 웨이브진 금발에 투명한 피부, 그리고 파랗게 빛나는 눈동자 파란색과 백색이 조화를 이루는 금장이 화려하게 장식된 드레스. 그리고 하얀색 구두. 

 

마치 거울 속에 비춰진 자시의 모습이 아닐까 싶을 만큼 너무나 닮은 사람이 쇠창살 건너, 행인들 사이에서 가만히 서 있었습니다. 

 

“그대도 엘리스 인가요?”

 

정말 비현실 적인 우리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 되었습니다. 엘리스 인지 물어보는 그녀의 물음에 저는 고개를 가로 저었습니다.

 

“이름을 말씀해 주시겠어요?”

 

단 한 번도 자신과 닮은 사람은 본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지나가던 행인과 대화를 나눈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름을 말해달라는 그녀의 말은 거절 할 수 가 없었습니다. 

 

그녀의 눈은 다른 이들처럼 끈적하지도 않았고 더럽지도 않았으며 아버질처럼 비겁하지도 않았씁니다. 노예상인처럼 음흉하지도 않았고 그저 수면에 떨어지는 물방울이 퍼지는 파동처럼 매혹적으로 당겼습니다.

 

“이사벨라”

 

왜 자신과 같은 모습의 소녀가 쇠창살 밖에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는지는 몰랐지만 마치 홀린 듯 그녀에게 제 이름을 말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마음에 파동을 일으키던 그녀는 이름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

 

자신을 닮은 그녀의 모습을 본 지 두 달이 지났습니다. 맑은 눈으로 바라보던 그녀를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강렬한 기억 이여서 매일 같이 그녀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했습니다.

 

노예 시장의 새벽은 너무나 고요하고 조용합니다, 술과 마약으로 가득한 밤과 달리 새벽은 세상 어느곳 보다 평온하고 조용합니다. 

 

그리고 이 시간은 제가 잠에드는 시간입니다. 현실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시간이며 저에게 주어진 유일한 자유였습니다.

 

하지만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쇠창살에서 빠져나오는 저를 기다리는 건 노예상인이 아니라 갑옷을 입은 기사님 이었기 떄문입니다.

 

“이사벨라님 이신가요?”

 

기사님은 몹시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노예인 자신에게 님자를 붙여 신원을 확인했습니다.

 

“...”

 

너무나 당황스러운 상황에 저는 아무런 답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멀리서 손을 좌우로 흔들며 작별 인사인 듯한 제스쳐를 취하는 노예상인을 보며 자신이 팔렸따는 사실을 인지할 뿐입니다.

 

분명 성노예로 팔릴 것이라 생각했는데 갑작스럽게 그저 어린 노예로 팔렸다는 사실이 새삼 심각하게 다가왔습니다. 마음의 준비가 하나도 되지 않았기 떄문입니다.

 

“엘리스공주님께서 성에서 이사벨라 공주님을 기다리십니다. 공주님께서 안전하게 모셔오라 지시하셨습니다.”

 

아무리 어린나이에 노예로 팔렸다고 해서 공주님이 어떤 존재인지 모르지 않습니다. 저는 공주님이 모셔오라 했다 말 하는 앞의 남성분의 말을 이해 할 수 없었습니다.

 

“...”

 

하지만 노예의 신분 이 분들이 정말 새로운 주인이라면 그리고 이들이 원하는게 그런 것 이라면 어울려 주어야 합니다. 그게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이니까요. 

 

어머니처럼 머리가 도끼로 갈라져 죽고 싶지 않았고, 노예 시장에서 술주정을 부리다가 목이잘려 죽는 행인들처럼 죽고 싶지 않았습니다.

 

마치 지금까지 귀족 영애처럼 꾸며 쇠창살 안에서 전시되었던 것처럼 공주님 연기를 해달라는 기사님의 요구에 따라 연기를 해 주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저는 시키는 대로 사는 것이 유일한 삶의 방식이 되는 신분인 노예 이기 떄문입니다.

 

“네...기사님”

 

하지만 처음 보는 분의 연기에 맞춰 주는 것은 너무나 어색한 일이고 불안한 목소리로 대답해 버렸습니다. 

 

십여 명 정도 되는 기사님과 이십여 명 정도 되는 병사분들과 그리고 1명의 하녀분이 마차 주변에 서 있었습니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자연스럽게 이어 안내 하는 하녀분의 몸짓에 따라 공주님처럼 마차에 올라 탔습니다.

 

깊게 가라앉은 침묵. 가짜로 꾸며진 쇠창살 안의 고급스러운 의자보다 더 고급스러운 가죽과 장식으로 된 의자, 그리고 장식들 눈 앞의 하녀분 저의 머릿속이 온갖 혼란으로 가득해 집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엘리스 공주님의 전속 하녀 소피아입니다.”

 

하지만 그런 혼란도 잠시 눈 앞에 앉은 하녀분이 갑작 스럽게 엘리스 공주님의 하녀라고 소개했습니다. 짧은 침묵이 깨져서 다행이긴 하였으나 어째서 이들이 엘리스 공주님의 하녀이고 기사분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가난한 농부의 딸로 태어나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에게 버려져 노예가 된 자신이 공주님과 인연이 생긴다는 것은 정말로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바깥에 있는 병사분들은 모두 이사벨라님을 진짜 엘리스 공주님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가면서 설명 드리겠습니다.”

 

마차가 출발하며 성에 가는 내내 저는 하녀분의 설명을 들어야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