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현대 지구문명이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설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물론 ‘여러 가지 역사적 흐름에 의해 이렇게 되었다’라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정작 ‘어째서?’라고 물을 때, 대답이 궁할 수밖에 없는 문제들이 수없이 많은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역사가 수학이나 과학 같은 학문과 본질적으로 다른 이유다. 


 역사에는 1+1=2 같은 절대불변의 법칙 따위는 없다. 


 마찬가지로 질량불변의 법칙 같은 역사 불변의 법칙 따위도 없다.


 이렇듯 역사는 이전 과정과 이후 과정에 필연적인 인과관계가 없어서, 훗날 이를 되돌아보면 “어째서 일이 이렇게 흘러갔는가?”라는 의문을 가지게 하는 경우가 많다.


 어째서 우리가 철기를 사용하기까지 수십만 년이나 걸렸는가?


 어째서 인류는 달에 발을 딛게 되었나?


 어째서 현대의 국가 대부분은 민주주의를 따르는가?


 같은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의문 말이다.


 어찌되었든 간에 우리들에게는 역사적으로 반드시 이렇게 흘러야만 했다는 당위성은 없으며, 얼마든지 다른 길을 걸어올 수가 있었다. 수없이 산적한 길 사이로 난 한 갈래 길을 따라온 것이다.


 그러나 <만약에>우리가 다른 길로 걸어왔다면 어땠을까?


 그리고 다른 길로 걸어온 이들끼리 서로 마주하게 된다면 어땠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렇듯, <만약에>라는 소재는 매우 흥미로운 것이다.


 그러한 의문을 바탕으로 제작된 게임이 바로 <차원대전>이었다. 


 차원대전은 4x 게임인데, 그 소재는 서로 다른 문명간의 충돌이었다.


 판타지와 스팀펑크, 디젤펑크와 사이버펑크, 아톰펑크와 SF 등, 수많은 평행세계들간의 충돌을 다룬 것이다.


 차원대전의 스토리는 매우 간단했다. 


 <어느 날 기반기술도, 정치체제도 다른 수많은 평행세계의 국가들이 영문도 모르고 갑자기 이세계로 차원이동했다> 라는 매우 간단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여기서 벌어지는 각양각색의 정치와 전쟁, 모략등이 이 게임이 인기를 끌게 된 요인 중 하나였다. 


 마음에 드는 국가를 만들어 온갖 막장 행각을 실시간으로 벌일 수 있다는 점도 인기 요소 중 하나였다.


 플레이어는 사전에 <기반기술>, <정치체제> 등을 선택하게 되어있다. 


 그 이외에 부차적인 사항들도 꽤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저 두 가지다. 


 참고로 차원대전의 설정상 플레이어의 설정과 들어맞는 팩션이 우연히 차원이동했다는 시나리오다.


 <기반기술>이란 그 팩션이 어떤 기술을 기반으로 발전했는지에 대한 항목이다. 


 증기기관을 기반으로 발전했다면 <스팀펑크>, 마법을 기반으로 발전했다면 <판타지>, 디젤엔진을 기반으로 발전했다면 <디젤펑크> 등이다. 


 <정치체제>란 매우 당연하게도 그 나라의 정치체제를 의미한다. <간접민주정>이냐, <전제군주정>이냐 같은. 그리고 엄청나게 막장인 사실은, 여기서 <무정부상태>를 선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무정부상태>는 하드코어 플레이를 원하는 플레이어가 아니면 거의 선택하지 않는다.


 이때 서로 다른 기술력으로 인한 밸런스 파괴는 인구수나 국력, 경제력 등으로 조정한다. 


 예를 들면 스팀펑크 팩션은 증기기관 기반이라서 우주 진출이 불가능하다거나, SF 팩션은 불시착한 우주이민선이라는 설정상 초기 인구가 절대로 100만을 넘을 수 없는 것 등이다.


 아무튼 이런 요소로 인해 인기를 끌게 된 이 게임에서는 당연하게도 하루가 멀다 하고 밸런스 문제로 말이 많았다.


 “SF 팩션은 인구가 너무 적어잖아” 라던지, “중세 판타지는 왜 이렇게 기술력이 딸리냐 ” 같은 것 말이다.


 그래서 각 팩션의 플레이어들끼리는 한 시간이 멀다 하고 서로를 미친 듯이 씹어대고 있었다. 


 아무튼 이런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게임을 굳이 플레이하는 길을 걸어가는 인간들 여럿이 있었고, 세상에 가득 찬 악의와 기회주의적인 전개 및 라이트노벨적인 클리셰에 따라 이 플레이어들은 게임 속 세상에 빙의되었다. 


* * *


 사실 대부분의 4x게임에 적용되는 사안이었지만, 차원대전에서 역시 아직 접촉하지 못한 플레이어와는 거래를 할 수 없었다. 


 거래뿐만이 아니라 게임에서 허용되는 어떠한 상호작용도 원칙적으로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여기에 ‘채팅’이라는 변수가 끼어들게 되면 많은 것이 달라진다.


 멀티플레이에서, 유저들은 채팅을 통해 온갖 밀약들을 주고받았다.


 그로 인해 아직 접촉조차 하지 못한 상대방과 미래의 국경선을 합의한다거나, 훗날 접촉했을 때의 무역을 합의하는 일이 가능했던 것이다.


 이런 현실성을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리는 행태에 유저들은 <핫라인>이라며 비아냥거렸다.


 이 때문에 멀티플레이에서의 채팅 폐지 청원도 가끔 등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핫라인>에는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채팅으로 나눈 밀약은 게임 내적으로 맺은 조약이 아니기 때문에, 이를 무시하고 상대방의 뒤통수를 때려도 패널티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뒤통수를 맞는 플레이어들이 한 둘이 아니며, 이런 채팅의 기능이 이 게임 특유의 권모술수에 이바지 한다는 이유로 핫라인의 폐지에는 반대 의견도 결코 적지 않았다.


 그게 이런 사태를 예언하고서 한 일은 아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선견지명이 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차원전쟁의 세계에 빙의했다는 사태에 직면하고 나서, 채팅을 이용해 비공식적인 세계회의가 열리게 된 것이다.


 이들중 자국 이외의 국가를 확인한 플레이어는 거의 없었다.


 * * *


 플레이어들의 이름과 그들이 주장하는 내용들이 글씨가 되어 푸른 인터페이스 앞에 떠올랐다. 


 지금 이들은 게임 속에 빙의되었다는 사실과, 이 게임의 클리어 조건에 대한 내용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내용인즉슨, 이 게임을 클리어한다면 현실세계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플레이어들끼리 나눈 대화에서는 일단 모든 이들은 게임을 클리어하기 위해 평화적인 방법을 동원할 것이라고 천명하였으나, 이런 개소리를 믿는 이들은 별로 없었다. 이런 요직겜이나 하다보면 원래 의심암귀가 싹트는 법이다.


 게다가 더욱 이런 생각을 부추기는 것은, 이 밀약을 깨뜨려봤자 어떠한 영향도 가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서로를 향해 웃는 낯으로 회의를 마쳤으나, 그들의 얼굴 뒤에는 ‘어떻게 하면 뒤통수를 때릴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그 중에서도 가류국의 황제 고연하의 경우는 더욱 그러했다. 


 고연하는 자신이 게임 속에 빙의했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지만, 빙의한지도 며칠이 지난 지금은 그런 충격에서 벗어나 더없이 냉정한 정신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냉철한 정신으로 어떻게 하면 ‘진’의 뒤통수를 때릴 수 있을지 고민했다.


 고연하는 통일된 중원이 얼마나 위협적인지를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아직 저들의 기술력은 철기시대에 불과한 듯 했다. 


그렇다면 이길 수 있는 순간은 지금밖에 없지 않을까? 


만약 저들의 기술력이 발전한다면, 저 십억이 넘을 인구를 도대체 무슨 수로 정복할 수 있단 말인가?


 따라서 고연하를 망설이게 만든 것은 도덕심과 같은 무언가가 아니었다. 


지금 공격한다고 해서 승산이 있을지 없을지 확신할 수 없었던 까닭이다.


 만약 진나라가 단순한 NPC 국가에 불과했다면 고연하는 망설이지 않고 뒤통수를 때렸을 것이다. 


그러나 진나라는 엄연히 플레이어가 통치하는 국가였다. 이런 철기시대 국가로 시작했다는 것 자체가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는 일이었다.


 지금 쳐들어간다고 해도 어쩌면 역으로 휘말릴지 몰랐다.


 하지만 그러면 더더욱 지금 쳐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만약 저들이 15세기 수준의 기술력만 갖게 되어도 정복의 날은 요원해질 것이며, 클리어는 아득히 날아갈 것이다.


 도대체 어찌 해야 한단 말인가?


 * * * 


 윈스턴 오브라이언은 3척의 우주선으로 구성된 이민선단의 책임자로, 그의 휘하에 있는 시민들은 76만명이다. 


 이민선단이 시공간 왜곡에 휘말려 어딘지 모를 곳으로 워프하는 사고만 없었다면, 그는 지금쯤 목표했던 행성에 도달했을 것이다.


 그러나 원인 모를 시공간 왜곡이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그들은 지금 지구와 흡사하게 생긴 행성의 궤도권에서 공전하고 있었으며, 사람들은 오브라이언이 경악하며 온갖 욕을 퍼부어대고 방에서 나오지 않는 이유가 그 때문이라 여겼다.


 이런 상황에 직면하면 누구나 보일 당연한 반응이었기에, 사람들은 그가 미쳤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허나 오브라이언이 당황했던 것은 워프 폭풍에 휘말려서가 아니라, 자신이 게임에 빙의했다는 것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도 당황하는 일을 그만두었다. 


 특히 비공식 정상회담 이후로는 더더욱.


 그렇기에 지금은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노력하였고, AI 비서의 도움을 얻은 결과 영원히 궤도권에 떠다닐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3척의 우주선으로는 자급자족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원래대로라면 그 3척의 우주선은 다른 보급선이 지원해야 했지만, 이민선단의 무리에서 3척의 우주선이 떨어져 나감에 따라 보급선의 지원을 기대하기는 요원해졌다.


 그렇다고 사람이 살 수 있는 행성을 놔두고 다른 행성을 찾아 떠나기에는 보급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천만다행으로 사람이 살 수 있는 행성이, 말하자면 게임의 무대가 그의 옆에 놓여있었지만.


 그러므로 지금 그들에게 남은 것은 대기권으로 강하해서 자원을 확보하는 길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을 터였다.


 오브라이언에게는 다행히도, SF 문명의 특성상 그는 시작할 위치를 고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어디로 강하할 것인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