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이베리아의 기사, 돈 후안 퀴사다는 백병전에 돌입하면 첫 번째로 에스터크를 뽑아들어 즉시 약점인 얼굴, 겨드랑이, 사타구니의 갑옷 연결부를 찌르라 조언했어.

그리고, 에스터크를 잃어버릴 경우 아밍소드를 들고 싸우며, 아밍소드마저 잃어버린다면 워해머와 단검을 들라는 기록을 남겼지.


여기서 에스터크란 찌르기에 특화되어 날이 다소 무디지만, 가느다랗고 길이가 긴 롱소드를 말해. 

그런데 뭔가 이상하지 않아? 

애초에 주력무기로 만들어진 에스터크가 대우받는건 그렇다 치겠는데, 어째서 워해머는 단검과 같은 대우를 받은거야?

일단 워해머도 주력 무기가 아니었어?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사들이 보편적으로 선호한 무기는 아니었어.

어째서? 철갑으로 전신을 두른 기사에게 안정적으로 타격을 줄 수 있는 무기는 오직 둔기 뿐일텐데?

오늘은 여기에 대해서 논해보고자 해.


니들 군대에서 뚝빼기쓰고 쇠망치로 참참참 게임 해본적 있냐?

난 있는데, 소리만 크게나지 아무 문제 없더라.

그 이유는 군용 뚝빼기는 벨트로 머리와 뚝빼기 사이에 유격을 두고있기 때문이야.
난 써본적 없지만, 신형 뚝빼기는 아예 완충제까지 들어있지.

그래서 단단한 외피의 충격이 머리로 도달하지 못하는거야.


중세의 군용 뚝빼기도 마찬가지였어.

넉넉한 공간을 만들어 신체와 갑옷간의 유격을 만들어 갑옷이 받은 충격이 신체로 전달되지 못하게 하고, 그 사이에 완충제를 채워넣어 충격을 효율적으로 흡수시켰지.

그걸 전신에 두른게 14세기 이후 판금화된 트렌지셔널 아머와 플레이트 아머야.


그러니 함마질 몇대 가지고는 기사를 무력화시키긴 어려웠고, 기사가 그걸 순순히 맞아주질 않으니 그 난이도는 더 어려웠지.

오히려, 단순 함마질이 아니라 거대한 폴암 찜질이나, 심지어 개인이 휴대 가능한 냉병기 중 가장 큰 운동에너지를 가지는 랜스조차 견디는 경우가 허다했어.

그래서 기사를 상대할 수 있었던건 오직 기사였고, 기사가 아닌 보병들은 수십명이 모여 한 기사를 공격해야 겨우 대적이 가능했지.

하지만, 폴암 세례를 견대내고 역으로 보병들을 다 조지는 경우도 허다한게 기사의 무서움이야.



https://youtu.be/Cob3JMmtctY

그래서 중세 유럽은 캄프링겐이라고도 불리는 소드레슬링으로 적을 제압하고 타격하는 현란한 검술이 탄생한거야.

타격보다 틈새를 노리거나, 적을 무력화시켜 항복시키는게 효율적이었으니까.

오죽하면 당대 검술가들은 검술 못해도 레슬링 잘하면 유리하다 가르칠 정도였지.

이러한 소드레슬링에는 당연히 무게중심이 적절하며, 다양한 용도로 쓸 수 있는 폼멜과 크로스가드가 있고, 적의 틈세를 관통할 예리한 날과 긴 길이를 가진 무기가 압도적으로 유리했어.

바로 검말이야.


그래서 15세기 경의 기록을 보면 대부분 랜스나 검처럼 찌르는 무기를 높이 쳤고, 둔기는 그다지 평이 좋지 않았어.


그래도, 화려한 기술로 틈새를 노리고 적을 제압해야만 유효타를 먹일 수 있는 검보다는 일반인들이 쓰기에는 둔기가 더 좋지 않았을가?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야.


이건 최고수준의 고증으로 중세 무기를 만드는 미국의 암즈&아머사가 만든 메이스야.

길이는 약 51.816cm고, 중량은 약 1.270059kg이지.

생각보다 별로 크지 않지?

맞아. 철물점에서 파는 장도리나 손도끼보다 조금 길이가 길 뿐이지, 중량은 얼추 비슷해.


그러면, 비슷한 중량의 한손검과 비교해볼까?


약 1.129445kg인 이 한손검은 메이스보다 약간 가볍지만, 길이는 약 93.726cm로 거의 두배 가까이 긴 것을 알 수 있어.

이는 곧 나보다 더 먼저 내지르는 적의 공격을 받아내야만 적을 타격할 수 있음을 의미하지.

나는 공격 못하는데, 적은 공격할 수 있다?

이 불리한 상황을 타파하는 이는 고도의 용기와 기술이 필요한데, 일반인에게는 쉽지 않지.


거기다가, 무게중심이 손잡이에 있어 사용자의 부담이 적은 검과 달리, 둔기는 무게중심이 머리에 있기에 사용자의 부담이 매우 커.

당장 이것보다 짧아서 부담이 더 작은 장도리도 몇번 휘두르면 지치는데, 격렬한 전쟁중에는 오죽할까? 



https://youtu.be/-0Qh9KOt1x8



그리고, 플레이트아머는 효율적인 완충구조를 갖춰서 충격이 잘 들어가지 않는다고 했지?

그렇기에 둔기도 검처럼 플레이트아머의 취약점을 노려야 했어.

당연히 쉽지 않지.

오히려, 다채로운 움직임이 가능한 검과는 달리, 움직임이 한정되있고 길이도 더 짧으면서, 무게중심도 병신이라 더 힘들었어. 


그리고, 타격력이 필요한 상황에서도 검을 쓰는게 더 효율적인게 문제야.

검은 무게중심이 손잡이에 몰려있다고 했지?

반대로 생각하면, 검을 반대로 드는 순간, 둔기로 돌변한다는 뜻이야.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

왜냐하면 검은 손잡이 끝에 검을 고정해주고, 무게추 역할을 하는 구조물인 폼멜과 적의 공격을 막아주는 거대한 크로스가드가 부착되어 있거든.

대충 모양만 봐도 둔기처럼 육중하고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아?

그렇기에 기사들은 타격력이 필요한 순간에 이 육중한 구조물로 적을 가격했어.

이 기술을 모르트하우, 또는 머더스트로크라 하지.


폴암을 제외하고는 길이도 가장 길면서, 갑옷의 취약점을 쉽게 공략할 수 있는 무기가 타격력도 제공한다고?

이런 무기를 안 쓸 이유가 있을까?

  

그리고 이러한 도검 선호는 사회, 문화적 요인도 있어.

우선, 검은 단순히 무기에서 그치지 않았다는 점을 알아야해.


검의 목적은 근본적으로 호신용 무기였지만, 동시에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는 요소이기도 했어.

왜냐하면 무를 숭상하고, 치안이 씹창난 중세 사회 특성상 휴대용 무기는 필수품이었는데, 기사의 자존심이며 십자가를 닮은 고귀한 뽀대를 가졌으며, 위에서 언급된 수많은 장점을 가진 최고의 휴대용 무기가 바로 검이었거든.

그렇기에 많은 이들이 검을 선호하였지만, 다들 알다시피 검은 비쌌고 전투 외에는 딱히 쓸모도 없었기에 일정 이상의 경제력이 요구되었지.

따라서 검은 사용자의 신분을 드러내는 고귀한 무기였고, 심지어 검을 소지하는 것 자체를 특권으로 규정하여 시민 이상의 신분만 검을 소지하도록 법제화 하는 도시들도 많았어. 

그래서 일정 이상의 제산과 지위를 가진 이들은 다른 무기가 아닌 검을 소지하였고, 그에 속하지 않는 계층들도 가급적 검 비슷한 것이라도 확보하려 했지. 


이런 사회적 분위기 덕에 검을 소지한 사람들은 매우 많았다는 것을 알겠지?

그러면 이제 검술은 그다지 특별한 기술이 아니라는 것부터 알아둬야 해.


우선, 중세에서 무기술의 기본은 바로 검술, 특히 롱소드 검술이었어.

따라서 병과가 무엇이든 간에 싸우고자 하는 이들은 우선 검술을 연마한 다음, 다른 기술을 연마했지.

이러한 검술을 가르치는 이들이 바로 소드마스터들이야.

말 그대로 검술의 달인인 이들은 유럽 전역을 떠돌아다니며 배우고자 하는 이들에게 대가를 받고 검술을 알려줬지.

근데, 왜 거지꼴이냐고?

왜냐하면 이들은 사람을 죽이는 사악한 기예를 가르친다는 이유로 천대받았거든.

그래서 소드마스터들은 용병을 뛰거나 영주와 계약해 휘하 군대를 훈련시키는 것이 아니라면 그냥 거리를 떠돌며 구걸하다 소수의 학생들에게 검술을 가르쳐주면서 살았지.

그러다보니 벌이가 시원치않아서 굶어 죽는 사람도 많았어.

자연스럽게 약간의 의지와 돈만 있다면 길바닥을 떠도는 대부분의 소드마스터들에게 딱히 비싼 대가를 지불하지 않더라도 검술을 배울 수 있었지.




그리고 중세는 보통 기사와 용병의 시대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전쟁의 주축은 시민 징집병들이었어.

왜냐하면 자유민들은 자유를 비롯한 여러 특권을 누리는 대신,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수호할 의무가 있었거든.

그래서 자유민들은 무기와 장구를 마련해 주기적으로 일정기간 수비대에 복무할 의무가 있었고, 전쟁에 참여할 의무가 있었어.

그러나 인구와 사회가 발달하고 경제가 성장해 감에 따라 자연스럽게 봉건제는 쇠퇴하고, 자유민들은 복무를 기피하기 시작해. 

그래서 대신 복무해줄 이를 고용하기 시작했는데, 이로써 직업군인이 등장하지.

시민들이 방패세를 납부하여 군대를 유지하는 사회가 완성되었지만, 그렇다고 시민들이 검을 들 필요가 없는 사회가 왔다는 것은 아니야.


위에서 말했듯이 치안은 씹창이었고, 예비군으로써의 임무가 사라진 것은 또 아니라, 용병이나 수비대, 무역상처럼 싸울 일이 있는 계층이 아니더라도 검술은 배워두는 것이 좋았어.


물론 이건 무기를 고를 여력이 있는 일정 이상의 경제력을 갖춘 이들 이야기고, 그딴거 없는 부류들은 도끼나 농기구처럼 그냥 손에 잡히는대로 아무거나 들고 싸웠지만 말이야.

스폰지밥에서 비키니시티 주민들이 폭동 일으킬때 항상 횃불과 쇠스랑 들고 오지?

이건 그러한 사회상을 반영한거야.

쇠스랑은 길고 어느정도 살상력을 보유하였으면서 누구나 가지고 있었거든.

그래서 농민 봉기를 일컷는 말로, 횃불과 쇠스랑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야. 


요약하자면, 검은 다른 무기들보다 무난하게 좋았으며, 검술은 생각보다 배울 기회가 많았고, 상당히 유용하였으며 사회적으로도 권장되었기에 의외로 널리 퍼졌다는거야.

따라서 별개의 심화과정을 거쳐야 하는 둔기술보다 검술이 오히려 일반 대중에게 더 익숙할 수 있고, 실제로 유용하기도 하였기에 검은 무기의 왕으로 오랜 세월동안 군림할 수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