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대륙의 최고의 모험가가 될 거야!"


시골 소녀 힐라가 조잡한 목검을 높이 들며 외쳤다.


한참 어린 그녀보다 2살 어린 나도 철 없단 생각이 들, 

어린 소녀가 이루기엔 너무나 커다란 꿈을.



"그럼 내가 도와줄게."


그러나 난 그 꿈을 응원했다.


너무나 큰 꿈을 말하는 가벼운 입과 달리 두 눈동자에 담긴 다짐은 무거웠고,

부모도 친구도 없는 고아원 최고 외톨이인 우리에겐, 서로뿐이었으니까.



그렇게 힐라를 따라 모험가가 됐다.


어른들이 하기에도 거칠고 위험한 일이 모험가였지만, 우린 서로를 의존하며 조금씩 성장해갔고,



[새로 발견된 유적지의 던전 탐사]


어느새 첫 던전 탐사에 도전하게 됐다.



"우리 실력으로 괜찮을까?"


"그럼, 넌 나만 믿으면 돼 잭!"



첫 탐사지만 난 힐라를 믿으며 걱정을 덜었고,

힐라는 날 반드시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제단을 건드린 자, 그에 합당한 대가를 바치고, 힘을 얻게 될 것이다.》


허나 내 걱정은 적중했고,


"미안해 잭, 다 내 잘못이야... 내가 괜히 그 의뢰를... 제발 죽지마..."


힐라의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던전 깊숙한 곳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발록 무리.


군대가 와야 겨우 쓰러뜨릴 A급 몬스터들을 우리 같은 E급이 감당할 수 있을리 없었고, 결국 수십명의 모험가들은 전부 죽고 우리만 남은 상황.


다행히 따돌리고 어느 제단으로 피신했으나 난 공격에 휘말려 중상, 힐라도 날 업고 도망치느라 체력 방전. 


거기다 가까워지는 소리로 보아 곧 우릴 찾아낼 것이다.



"잭... 미안해... 제발, 죽지만 말아줘... 흐으으윽...."


패닉에 빠진 그녀는 날 제단에 눕힌채 출혈부위를 막으며 울었으나, 피는 멈추지 않았다.


'난 틀렸구나.'


이미 흘린 피가 너무 많다.

난 이제 끝이란걸 본능적으로 느꼈다.

하지만 힐라는...



'...만약, 신이 있다면.'


제발 힐라만이라도.... 살려주세요...



믿는 신은 없으나 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부디 그녀만큼은 살아돌아갈수 있길 빌며.


....

....

....{계약을 하겠는가?}



"...?"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


사람의 것이라기엔 어딘가 기괴하고, 소름끼치는 음성.



{네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마. 단, 합당한 대가를 바쳐라.}


저 목소리의 정체는 대체 뭘까.

신이 우릴 구원하는 건가. 아니면 저승사자가 거래라도 하자는 걸까.

하지만 지금 그런것 따윈 중요치 않다.


지금 중요한건... 오직 하나...



'...뭐든지. 힐라만 살 수 있다면... 뭐든지 할게요.'


{대가의 가치를 측정한다.}


{...생각보다 높군. 계약을 조정한다.}


{저 소녀에게 이 곳을 빠져나갈 힘을, 저 밖의 괴물들과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강력한 능력과 육신을 주겠다. 만족하는가?}



'만족...?'


저 발록들을 무찌를 힘이라면... 꿈도 이룰수 있을 거다.



'충분해요.'


다 죽어가는 내 목숨값으로 힐라가 그럴 힘을 얻을 수 있다면, 충분하고도 남지.



{그럼 계약을 시작한다.}



"어...?"


소름끼치는 목소리가 끊김과 동시에, 힐라가 무언가를 올려다보며 놀란다.


《계약을 시작하겠다.》


위를 보니, 재단에 누운 날 누군가 내려다 보고 있다.


그는 분명 사람의 형태를 띄었으나,

사람이라기엔 너무 많은 팔과 불에 탄 듯한 검은 날개가 결코 이 세상의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는듯 했다.



"누, 누구야!"


놀란 힐라가 바닥에 떨어진 뾰족한 돌을 쥐고 경계한다.



《.....》


그걸 본 그는 잠시 생각이라도 하는지 침묵하다,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날 집어들고 수많은 팔로 내 온 몸을 꽉 붙잡았다.



《제단에다 가장 아끼는 것을 제물로 바친 소녀여.》


"제..물..? ...!!!! 아냐! 잭은 제물이 아니라고!!!"


《그 대가에 합당한 힘을 내어주마.》


"그 손 당장 ㄴ.."



그의 말 뜬을 뒤늦게 이해한 힐라가 황급히 저지하려 했으나, 


늦었다.



콰직-


끔찍하고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내 몸이 여리 조각으로 찢어졌다.


신기하게도 고통은 없었고,


"...!!!!!"


마지막으로 본 것은 끔찍한 광경에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털썩 주저앉는 그녀와.


《앞으로 72번의 삶동안, 잘 부탁한다.》


어두운 관 안이었다.


.

.


과연 난 어떻게 되는 것일까.


영원히 그의 노예라도 되는 걸까.


해답은 곧 찾아왔다.



"...어라?"


예상도 못한 형태로.


"여긴...?"


우거진 풀숲, 커다란 나무들.


눈을 떠보니 인적 없는 어느 숲 속이었고,



"...관?"


내가 일어난 곳은 제단에 있던 것과 똑같이 생긴 석관이었다.


그 안에서 부서진 돌조각에 파묻힌채 깨어났다.


"...이게 뭐야. 내, 내 몸이...."


어른이 된 채로.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

여긴 어딘가?

왜 난 저 관에서 깨어난 거야?

몸은 왜 성장했지?

힐라는 괜찮을까?



수많은 의문들이 쏟아졌으나 그에 해답은 찾을수 없었고,


{72번의 삶으로 대륙을 바꿔라. 그리고 집어삼켜라.}


대신 왼쪽 팔뚝에 세겨진 글이 눈에 들어왔다.



"72번의 삶이라니..."


대체 무슨 뜻일까.


일단 숲을 빠져나왔다.


.

.


"여긴 로토마을. 대륙의 그... 북서쪽이었나? 나 원 땅덩어리가 원채 커야지... 아무튼 대륙 끝자락쯤 될 거다."


숲을 빠져나오니 어느 마을 도착


대륙 어딘가란걸 알게 됨


원래 살던 곳은 너무 멀어 일단 일하며 돈 벌고 길을 찾으려 했으나 어느 싸움에 휘말려 사망


.

.


그 뒤로 2번 정도 죽고 부활하길 반복한 결과, 이 현상에 대해 대충 알아냈다.


1.죽으면 석관에서 부활한다.

2.석관은 대륙 곳곳에 있는 듯하다.

3.석관마다 번호가 있다.

4.새로운 석관에 부활할때 전에 부활한 석관에 담겨있던 물건을 지닌채 부활한다.

5.죽을때마다 문신의 숫자가 줄어든다.


"앞으로 67번..."


 0이 되면 어떻게 되는 걸까.


.

.

대충 비 오는 타이밍에 제단 꼭대기에서 부활해 신으로 오해 받음


제물로 바쳐질 소녀를 구하여 신에게 선택 받은 파라오로 만들고 사금으로 된 사막 찾아 나라 부흥



대충 죽었다가 살아날때마다 여러 일에 휘말려 온갖 곳에 다양한 기연 만듬


.

.


"형제여, 부디 당신의 앞날에 발할라의 축복이 있기를!"


"여러분도요. 그럼 이만."


72번째 삶.


어느 해안가에서 부활해 바다괴물을 잡으려는 바이킹들을 도왔다.


"윽...."


덕분에 괴물의 독에 중독됐지만.


"저들은 몰라서 다행이야. 알면 엄청 미안해 했겠지?"



부활했던 관에 짐들을 쑤셔넣고 누웠다.


'이것으로 72번째 삶은 끝...'


이제 난 어떻게 되는 걸까.

그냥 죽는 건가. 아니면 또 부활하려나.



"힐라는 지금쯤 어떻게 지낼까..."


그 일 이후로 10년도 더 지났는데.

꿈을 이뤘을까.


눈이 감기고 의식이 희미해진다.


'...설마 이대로 죽으면 그 녀석의 노예로 사는 건가....'

{아니. 넌 지배당하는 쪽이 아니라 지배하는 쪽이다.}


'뭐...?'


{마지막 삶을 주겠다. 마왕이여, 대륙을 지비해라.}


.

.


대륙의 중심이라 불리는, 신성한 땅의 연합기지.


연합기지의 회의장에는 현재 수십명이 넘는 대륙의 왕과 전사들이 모여있었다.


"다들 바쁘신데 이렇게 모여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늙은 엘프이자 연합의 임시 대표, 바라디스가 그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지금 대륙은 큰 위험에 빠졌습니다. 몇년 전부터 끊임없이 증가하는 마계의 수치... 이는 전설 속 마왕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 틀림없죠. 그렇기에, 여러분들을 부른 겁니다."



열심히 연설하는 엘프와 들은 척도 안 하는 나머지



대충 주인공이 구해주거나 관련된 자들


주인공의 희생으로 얻은 힘 덕분에 대륙 최강의 모험가가 된 소꿉친구


주인공 덕분에 파라오가 된 여왕



"소문은 익히 들었다. 만독불침, 금강불괴, 천지를 뒤흔드는 힘과 무기술... 듣자하니 모험가중엔 따라올 자가 없다지?"


"...."


"...이래도 무시하는 건가? 과연, 동료를 힘과 바꿨다는 소문이 사실인가 보네. 무례하고 비인간적인.."


"그 입 다물어. 영원히 못 열게 하기 전에."


"호오. 일말의 죄책감은 있는 건가? 과연, 그때 일로 독한 술과 약에 찌들어 사는 거란 소문도 사실인가 보ㄱ.."


"입 닥쳐, 사막고양이."


서로에게 적대감을 대놓고 표시하는 둘.


그들을 시작으로 회의장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바뀌었다.



"...힘을 합칠 수 없단건 맞는 말이야, 어떻게 몬스터와 손을 잡으라는 건지..."


"마법사들이 배신할까봐 걱정이야."

"누군 아닌줄 알아? 저 저급한 기사들과 손 잡을걸 생각하니 온 몸에 닭살이 돋는군!"


"뭐라고 영감? 배때지 쑤셔지고 싶어?!"


"자, 다들 진정하고... 우리 평화롭게 가자고 평화롭게. 다들 대륙을 지키고 싶단 뜻은 같.."


"입닥쳐 깐프! 허구한 날 술 먹고 떠돌아다니며 음탕한 짓이나 버리는 족속들 같으니라고!"


"거 다 맞는 말인데, 애새끼들도 죄다 알콜중독자인 난쟁이들한테 들으니 기분이 묘하군....."


"뭐가 어쩌고 저째!"


회의장은 순식간에 싸움터가 됐고, 싸우는 이와 말리는 이로 갈라졌다.



"모험가 힐다... 감히 나의 태양을 모욕하다니, 곱게 죽진 못할줄 알아라...!!!"


"너야말로 오늘 두 팔이랑 이별할 준비 해!"



대륙 최고의 모험가와 황금국의 여왕.

둘의 싸움이 벌어지기 일보 직전의 순간,


쿵-


쿵-



"바닥에서 난 소리 같은데... 우아아아?!"



콰앙!"


회의장의 바닥을 뚫고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큰 뿔과 온 몸을 가린 검은 로브, 몸짓만한 대검....



"설마, 마왕?!"


"아냐, 저건...!"


"...잭...?"



"아이고오... 이번 석관은 지하에 묻혀있나 왜 이리 나오기 힘들... 어...?"



누군가에겐 지키지 못한 첫사랑,

누군가에겐 자신을 구원해준 신,


누군가에겐...


절친한 친구,

용맹한 족장,

전설적인 기사,

지혜로운 조언가,

신이 내린 성자,

살아있는 재앙....


저마다에게 어떤 존재인지는 다르나, 한가지는 같았다.



아주, 중요한 존재라는 것.



"어.... 다들... 오랜만이야...?"


그가 바이킹 모자를 쓴채, 바보 같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

.


실수로 어느 제단의 계약으로 죽게 된 주인공


죽을때마다 존나게 넓은 대륙의 곳곳에 있는 랜덤한 위치에 유물에서 부활하게 됨


부활때마다 상황과 장소에 따라 여러 일에 엮이다보니 온갖 기연이 생김


마왕이 부활할거란 예측과 때마침 부활한 주인공



자신 때문에 주인공을 잃은걸 후피집 찍고 대륙 최고의 모험가가 된 소꿉친구


노예에서 신의 선택을 받은 여왕이 된 파라오


다양한 이야기와 음악, 요리법을 아는 주인공을 명예엘프로 인정한 대유쾌 방랑 엘프민족


주인공을 전설로 여기는 기사의 나라


주인공에게 학살당하고 갱생한 몬스터 종족


주인공을 명예 족장으로 여기는 부족


대충 그런 이들과 갑자기 만나게 되는 이야기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