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뭘 떠올렸다는 게 아니라 책 제목이

이거다.


표지도 무슨 못 그린 여성향 로판 표지에 남주로 나올 것 같은 비주얼에 정작 배경은 어두칙칙해서 누가 봐도 로판은 아니거니와 여성향도 아니다. 신성로마제국 같은 책이다.


그래서 이게 뭐하는 책이냐 하면 추리소설이다. 본인은 어린 시절에 추리소설을 두고 이상한 책이라고 말한 생판 모르는 여자애를 죽일 듯이 노려본 적이 있을 만큼 추리소설에 애정이 넘친다. 그런 의미에서 이 반(反)추리소설적인 작품에 관심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작품의 주인공은 으레 그렇듯 탐정이다. 탐정은 탐정인데 기적을 증명한다는 탐정이다. 이게 이 작품의 아이덴티티인데 바로 이 탐정이 주장하는 기적의 증명법이다.


모든 가능성을 제외하고 남은 하나는 반드시 진실이라는 유명한 구절에 입각해서, 인간의 의지로 가능한 모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있다면 남은 그것이 기적이라는 논리다. 말하길, 고작 60억 번만 부정할 수 있으면 가능하다고 한다.


이 작품은 모 사이비 교단에서 벌어진 몰살사건에서 살아남은 생존자가 품은 의문에 기적이라는 결론을 내린 탐정을 상대로, 개소리 하지 마라! 고 주장하는 다른 탐정역 캐릭터들이 도전하는 일종의 배틀물적인 구성을 띈다. 


배틀물이라고 하면 소년점프고 소년점프는 만화잡지다. 이 작품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만화적인 캐릭터들이 만화적인 상황에서 대단히 진지하게 말싸움을 하는 소설이다. 문제는 이 말싸움의 퀄리티다.


탐정을 상대하는 측은 '만에 하나'라는 일종의 관용적인 표현을 정말로 '만 번에 한 번이라도 가능하다면'으로 해석할 수 있다면서 탐정을 공격한다. 그럼 탐정은 만에 하나 따위의 가정 없이 그것이 논리적으로 반드시 불가능하다는 걸 증명해야 한다. 그리고 작품은 이걸 정말로 해버린다. 


주인공이 공격 받을 때마다 입에 올리는 작품의 제목 '그 가능성은 이미 떠올렸다'에서 이 작품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분명히 한다. 흡사 대화편에서 소크라테스가 법정에서 고퀄리티의 키배를 뜨는 모습을 지켜보는 기분이다.


아쉬운 점은 구성인데, 구성이 다소 획일적이라 매번 다른 논리에 매번 다른 논리로 맞서는데도 같은 장면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말싸움 하는 거 구경만 해도 재밌어서 지루하지는 않지만, 비유하자면 캐릭터는 엄청나게 예쁘장하게 그려놓고 배경은 크레파스로 대충대충 칠해놓은 그림을 보는 기분이다.


그리고 그 구성적인 획일성에서 발생하는 심심함은 후속작인



성녀의 독배에서 대부분 해소되는 느낌이니, 혹시나 읽는다면 두 권 다 읽도록 하자. 변태적인 논리는 한층 강화돼서 '뭐 이런 것까지 '나 '뭘 이렇게까지'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편집증적이라는 느낌마저 든다. 


정통파 추리소설만이 추리소설이라고 말한다면 이 책은 비추다. 일단 만화적인 구성이라 것부터가 그들에게는 맞지 않는다. 다만 그런 라이트함이 있기에 외려 일반독자, 추리소설에 관심이 없는 장붕이에게도 추천할 수 있는 작품이지 않을까 싶다. 이는 2천년대 중후반쯤부터 등장한 소위 '현대본격추리소설'에는 대부분 해당하니 이 작품으로 흥미가 생겼다면 다른 추리소설을 찾아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3줄 요약 같은 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