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 예정인 소설 속 엑스트라에 빙의했다.


이 세계의 멸망을 막기 위해, 소설 설정과 미래 지식을 이용해서 재앙을 막아야한다.



"…라고, 나한테 빙의했던 그 빙의자 새끼가 계속 말했었는데."



씨발.


네가 뒤져버리면 나보고 뭘 어떻게 하라고.


.

.

.


그 이상한 일이 생긴 것은 아카데미의 입학식 날이었다.


처음에는 가위라도 눌린줄 알았다. 분명 잠에서 깨어났음에도 어째선지 몸이 움직이지 않았으니까.


입학식이 기대되어서 잠을 좀 설쳤더니 그게 문제였나. 그런 태평한 생각이나 하고있었다.



"어, 씹. 해 떴잖아?! 지금 몇 시지? 알람은?!"



내 입이 제멋대로 주절거리기 전까지는, 그런줄 알았다.



"…어? 여긴 대체 어디야?"

「뭐야, 씨발?」


"여기가 '리버스 그래비티'의 세계라고? 이거 꿈인가?"

「대체 왜 몸이 말을 안 듣는 건데!」


"상태창?"

「아니, 그보다도….」


"하, 하하."

「내 몸을 차지한 이 새끼는 대체 누구야?!」


"메르헨 폰 미르헨이라니. 초반에 뒤지는 엑스트라잖아…."

「…내가 죽는다고?」



내 몸을 차지한 '빙의자'의 눈에는 나에게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보이는 것 같았다. 빙의자는 그걸 '상태창'이라고 불렀다.


쓸 데 없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빙의자 녀석 덕분에, 나는 꽤 많은 정보를 알 수 있었다. 이 세계가 '리버스 그래비티'라는 소설 속의 세계라는 것. 그 소설의 결말은 세계의 멸망이라는 것. '나'는 원래대로였으면 실습에서 테러에 휘말리며 죽었을 거라는 것.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지만….


모든 일들이 빙의자가 예상한 그대로 흘러갔다. 그리고, 빙의자는 어느새 아카데미의 학생 영웅이 되어있었다.



「…차라리 잘 된 걸지도 모르겠네.」



처음에는 몸을 되찾기 위해 이런저런 시도를 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모든 시도를 그만두게 되었다.


도저히 불가능해서 지쳐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아니, 물론 그런 이유도 있었겠지만.


그 이상으로 '빙의자'가 이 세계를 구할 영웅이라는 걸 이해해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빙의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엑스트라였을 뿐이다.


나는 세계를 구할 수 없다. 나는 이 눈치 없는 '빙의자' 새끼한테 반해버린 히로인들을 구해주지 못한다. 나는 제 한몸조차 지키지 못해 결국 죽을 예정이었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나니 오히려 편해졌다. 이렇게, 세계를 구하는 여정을 지켜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고 여겼다.


특등석에서 영웅의 일대기를 지켜보는 것은 오히려 행운이 아닌가.



"이번 빌런은 좀 위험한데…. 하지만 해볼만 해."

「또 그거냐.」



이 녀석의 '해볼만 해'는 사기라니까.


아무리봐도 불가능한 일인데, 실낱같은 가능성에 머리를 들이밀고는 어떻게든 해내버리고야 만다. 나였으면 두려움에 어떻게든 회피하려고만 했을 텐데.


역시, 이 자리는 나보다 저 빙의자에게 어울린다.


이번에도 빙의자는 어떻게든….



"어, 어? 으윽, 머리가 - ."



해줄 거라고 생각했다.



"말도 안 돼. 정신 계통 능력이 아니었다고? 부동심 특성이 통하지 않는…."

"흐응, 어디서 나에 대해 들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운이 없었네. 내가 다루는 건 정신이 아니야. 영혼이지. 너, 육신과 영혼의 연결이 느슨한데…. 아하, 그거, 네 몸이 아니구나?"


「어, 어?」


"큭, 쿨럭 - . 웁."

"남의 몸을 멋대로 사용하는 나쁜 아이에게는 벌을 줘야겠네~."



결과만 보자면 '빙의자'가 패배한 것은 아니었다.


최후의 최후까지 몰린 순간에도 어떻게든 빌런에게 최후의 일격을 꽂아넣는 것에 성공했으니까.


하지만 그 승리는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결과로 이어졌다. 빌런이 죽으면서 남긴 마지막 저주가.



"…나. 돌아왔어? 내 몸으로?"



빙의자의 '영혼'만을 없애버렸으니까.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간단했다.


나는 이제 멸망으로 치닫게 될 이 세계를 구해야만 한다. 한낱 엑스트라에 불과했던 내가 말이다.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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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이런 느낌으로 좋지 않을까.


'빙의자'한테 구원당한 히로인들이 자신을 좋아해도 "이 녀석들을 구한 것도, 이 녀석들이 좋아하는 것도, 내가 아니라 그 빙의자다."라고 생각하고


망설이다가 일 잘못될 때마다 '빙의자'라면 분명 망설임 없이 뛰어들었을 거라며 자책하고


빌런한테 정신 조작 당했다고 의심받으면 "내가 진짜야. 그 빙의자가 아니라, 내가 '진짜' 메르헨 폰 미르헨이라고…."라며 멘탈에 데미지 들어가고


누가 이런 역?빙의물 안 써주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