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를 위한 혐오의 시대.

21세기 대한민국을 감히 한 줄로 정리하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저렇게 말할 것이다.

온갖 갈등과 혐오가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그야말로 헬반도라는 별명처럼 변해가던 나라.

벌레 충 (蟲).

사람을 지칭함에 있어 뒤에 벌레라는 뜻의 '충'을 거리낌 없이 붙였으며, 이를 당연히 여기는 ㅣ 시대였다.

".....그렇다고 이런 세상을 원한 건 아니었는데."

씁쓸하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모자를 푹 눌러썼다. 인기척 하나 없는 골목을 조심스레 경계하며 나아갔다.

깨진 유리조각이며 나뭇가지와 여기저기 부서진 파편이 걷기 어려울 정도로 가득하다. 이를 건드리지 않으려 부단히도 애를 써야 했다.

'녀석들은 소리에 예민하니까.'

한국은 망했다, 아니.
온 세상이 망해버렸다.

그것도 한 순간에.

혐오와 분노로 가득한 세상에 대한 신의 분노인걸까.

아마 이유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나 역시도, 아마 죽는 순간까지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없겠지.

툭툭.

상념에 너무 빠진 탓일까. 종강이를 찌르는 뾰족한 감촉에 등골이 곤두섰다.

"이런 씹...!"

돌아보지도 않은 채 곧장 발로 걷어찼다. 작고 가벼운 무언가가 발에 치여 한참이나 굴렀다.

"하섹ㅡ!"

기묘한 울음소리.

땅을 구른 녀석이 멀쩡한 모습으로 다시 몸을 일으켰다. 외형으로 따지자면 10살 정도 됐을까? 작은 체구은 여느 초등학생 남자아이와 다른 게 없어 보인다.

"하섹! 하, 하세기! 하섹!! 소리, 소리에게도도돈!"

갈색으로 번들거리는 키틴질의 피부와 여섯 개의 팔다리, 이마에 돋아난 더듬이와 듣기 싫은 울음소리를 뺀다면.

"씨발, 하필이면 야스오충을 만나고 지랄이네..."

야스오충(蟲).
망하기 전의 한국에서 야스오를 자주 했고, 그 때문에 야스오충이 되어버린 녀석이다.

야스오충이 여섯 개의 팔로 뾰족한 장난감 칼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솔직히 녀석의 무력은 형편 없는 수준이다. 단일개체로는 별로 위험하지 않은 녀석이기도 했고.

퍽!

"하세기ㅡ!!"

가벼운 발길질에 야스오충이 허공을 붕 날았다.

동시에.
가장 만나고 싶지 않은 종류의 충(蟲)이기도 했다.

야스오충은 높은 확률로 초등학생 남자아이, 그 주변에는 항상 따라다니는ㅡ

"우, 우리 애한테! 우리 애가 무슨! 우리우리우리 애! 애애애애한테 지금!! 애, 애가 그럴! 수도 있있있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저 멀리서 사이렌처럼 높은 고성이 들려왔다.

맘충(蟲) 이다.
여섯 개의 팔에 뾰족한 네일을 휘두르며, 뱀처럼 길게 늘어진 혀를 낼름거리는 모습으로 달려오고 있다.

야스오충, 혹은 근처의 어린 충을 건드리면 달려오는 악질 중의 악질이다.

"재수 존나 없네 진짜!"

망설일 것도 없이 뒤돌아 달렸다. 맘충은 혼자 다니지 않는다.
맘카페라고 불리는 군집으로 움직이기에 녀석은 위험했다.

골목까지 쉬지 않고 달리다가 구석의 쓰레기통에 몸을 구겨 넣었다. 잠시 숨을 죽이고 있으니, 쓰레기통 옆으로 버팔로 떼가 달려가는 진동이 느껴졌다.

"...갔나?"

한참이나 더 있다가, 녀석들이 사라졌다는 확신이 들 때쯤 쓰레기통에서 나왔다.

재수 없는 하루였다. 하필이면 야스오충이 맘충까지 만나다니.

이게 지금의 한국이었다.
혐오를 위한 혐오로 가득차서, 서로를 벌레라고 부르다가.

벌레로 망해버린.
충의 시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