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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입맛이 존나 까다로운 뽀삐에 해당한다

그런 내가 글을 읽을때에 고려하는 부분은 다음과 같다


1. 작품속의 그 어떤 등장인물도 소모품으로 쓰고 버리지지 않을것

2. 주인공을 제외한 타인의 심리 묘사가 확실하게 드러나지 않을것

3. 삼천포로 빠지더라도 이야기의 중심에서 그게 벗어나지 않을것


그리고 이 작품은 그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드물게도 내 입맛에 아주 잘 맞는 글이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을 꼽는다면, 그건 바로 작품의 배경이 2004년 일본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현실에서 그 연도에 한창 유행했던, 이른바 '신전기'라 불리는 장르의 라이트노벨 감성을 그대로 가지고있다


일상 속에 숨어있는 비일상,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사투, 이유있게 오지랖이 넓은 주인공


하지만 이 작품은 이러한 요소들을 모조리 가지고 있으면서, 현대적인 시각으로 이것들을 살짝 비틀어놓았다.

비일상이 숨어있는 일상, 계획적으로 스스로 찾아가는 사투, 오지랖이 넓은 이유가 있는 주인공

일상과 비일상, 현실과 비현실 사이를 오가는 그 중심축에는 언제나 비현실의 몸에 현실의 정신을 가진 주인공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런 현실적인 정신을 가진 주인공을 위한것인지

이 작품에서는 주인공 외의 다른 등장인물의 심리를 시원하게 풀어주는 일도 없다

심지어 주인공 본인의 심리조차, 1인칭 서술임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시원하지 않다


사건의 해결 역시 딱히 시원하지는 않다

어떤 어려움을 넘어서도 항상 그 뒤가 있고, 넘어서기 위해 행동한 주인공에게는 행상 행동의 대가가 따라온다

그 대가는 한번의 지불이 아니라, 미래의 행적으로 계속해서 주인공의 뒤를 따라 점점 커다랗게 굴러온다


그렇다고 이야기의 전개속도가 썩 빠른것도 아니다


이러한 '불분명'하고 '속시원하지 않은' 요소들은 분면 요즘 시대에 끗발날리는 웹소설들과는 상성이 별로 좋지 않다

오래 곱씹어야하고, 깊이 생각해야하고, 시간을 오래 들여야한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 시절.

그 시절에서만 맛볼 수 있었던 답답함, 묘하게 부담스러운 살냄새.

이제와서는 가족에게서도 맡기 힘든 그 조금은 퀴퀴한 냄새가 이 소설에서는 넉넉하게 베어나온다.





나는 이 작품을 높게 평가한다

단순히 그 시절의 감성을 재현했다는것 만으로도 훌륭하다

하지만.


글은 결국 작가의 심상을 비추는 거울과도 다름없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나는 이 글을 쓴 작가가 꽤 지독한 인간찬가 주의자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찬가라고해도 두려움을 인정하는 용기라던지, 괴물을 죽이는건 언제나 인간, 같은 거창한걸 말하는것이 아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삶의 찬가

일상을 곱씹고, 그 안에서 베어나오는 자극적이지 않고, 어쩌면 질릴정도로 맛봐온 그 지긋지긋한 일상의 찬가를 이 작가는 알고있다

아는것을 넘어서 본인이 직접 경험했기에 이런 글로서 나올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누군가는 이 작품을 피폐물이라고 부를지 모르지만, 만약 그렇다면 그 평가는 아주 잘못되었다


이 글은 지독한 인간찬가물이다

위대한 영웅이나 개인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평범한 인간찬가

물론 그걸 실천하는 주인공은 정작 평범한 사람은 아니지만
또 그걸 직접 주장하지는 않지만
이 글을 쓰는 작가가 작품 전체를 할애해서 그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꽤 느슨하고, 구멍도 많고, 올곧지도 단단하지도 않은 인간찬가

그렇지만 분명하게 사람을 위한 이야기



그 작품에서 피폐가 나온다면 그것은 단순히 극복하기 위한 빌드업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중요한것은 어떻게 극복할것인가이며, 그것은 주인공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인간찬가다


애초에 인간은 개인의 힘만으로는 일어설 수 없는 존재다

갓 태어난 아기는 새끼 사슴처럼 태어난지 5분만에 일어서는 존재가 아니기에 더욱 그렇다






3줄요약

1. 옛날 할머니집의 뜨뜻한 아랫목에서

2. 이불 덮어놓고 띄워둔 청국장의

3. 그 꼬리꼬리한 그리운 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