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실 TRPG를 잘 모른다.


유튜브나 트위치 같은 플랫폼에서 사람들이 모여 하는 것은 본 적이 있지만, 이 바닥에 대해서 잘 안다고는 못하는 인간이다.


세션이라던가, 플레이어라던가.

TRPG에서 나오는 단어도 이 소설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판타지를 좋아한다.

더 정확히는 사람의 상상력을 건드리고, 미지의 영역을 자신만의 생각으로 채워 넣는 것을 좋아한다.


이 소설은 작가의 "상상력"에 빠져들게 만든다.


모든 TRPG는 세세한 설정과 미친 플레이어, 그것보다 더 미친 GM이 짝을 이루어 재밌는 것이 만들어지는 법이다.(그래도 TRPG를 본 적이 있기에 안다. 실제로 소설에 나오는 것도 비슷하다.)


작가가 TRPG에 독자가 과몰입을 하도록 세세한 설정을 주고, 독특한 캐릭터를 만들어줬으며, 좋은 필력으로 글이라는 매개체 안에서 TRPG를 하고 있는 것 처럼 느끼게 만들어 준다.

자세한 건 스포일러라서 말하기 힘들겠지만, 나는 독백- 첫 TRPG 부분에서 이 작가에게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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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를 내려다보면.

경사가 높아서, 한 번 삐끗하면 크게 다칠 것 같이 빽빽한 계단.

마구잡이로 낙서가 되어 있는 낡은 벽면.

지저분하게 널브러진 담배꽁초들과 쓰레기.

위를 올려다보면.

방금전까지 보았던 불편하고 더러운 지상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한데 모여 손에 손 잡고 노래를 부르는 별들과,

어둠 속을 비추는 따스한 달이 매달려 있었다.


나는 달동네에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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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목을 보고 나는 이 소설이 재미있을 거라고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달동네-그러니까 판자가 아슬아슬하게 지붕을 떠받치며 올라가 있고, 도시를 환하게 비추는 가로등 불빛조차 들어오지 않으며, 오로지 달만이 휘영천 떠올라 있는 동네의 묘사를 이렇게 했다.

윗대목과 아랫대목을 보면 알다싶이, 여기서 작가가 TRPG를 사랑하는 사람인 걸 이 대목에서 알 수 있었다.

사람이 흔히 상상하는 달동네를 시적으로 표현했다. (사실 이 뒤의 독백이 더 진국이다.)

상상력으로 싸우고, 생각하며,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고 마음속에서 와닿았다.

이렇듯 소설 중간중간을 보다보면 묘사가 참 매력적이다.

그리고 한가지 이야기 안한 부분이 있는데, 나는 뻔한 사랑이야기도 좋아한다.


보이 미츠 걸, 너는 그때 그 왕재수?! 같은 뻔한 클리셰도 좋아하는 누렁이다. 

그래서 처음으로 TRPG속 인물에게 반한 등장인물이 나왔을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렇게 간질간질하고 부드러운 감정선이 나와서 그런가. 이정도면 순?애가 아닌가 하고 생각도 들었으니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이 소설은 TRPG를 좋아하던 주인공이 이세계에 떨어져서- 환각마법으로 실제처럼 TRPG를 구현하고, 그걸로 이세계인들에게 오해받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간단히 줄이고도 줄인 스토리긴한데, 이것보단 사실 조금 더 심오하게 들어가긴 한다.

실제로 이것을 차원이동이라고 착각하는 등장인물도 있으니까.

이 소설은 TRPG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일단 읽어보면 빠져들게 된다.

마치 내가 GM앞에 서있는 플레이어가 된 기분이 든다고 해야하나.

실제 나오는 독백도 TRPG식으로 바뀌고, 중간중간 몰입을 할 수 있도록 세세한 설정을 주는 편이다.


신선한 시도이기도 하고, 작가의 필력도 준수한 편이기 때문에 안 읽어봤다면 한번 쯔음은 찍먹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은 무엇보다 글을 쓰는 작가가 TRPG를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나는 참고로 황자 에피 일찍 본 걸 후회중이다. 더 쌓아두고 볼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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