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초창기의 기사는 신분이 아니라 단순한 직업의 개념이었음


기사로서 갖춰야 할 기초적인 무장과 말, 갑옷만 잘 챙겼고 다른 기사들이 '어 이새끼 기사 소질 있네' 하고 인정해줄 실력만 갖추면 신분이 귀족이든 평민이든 농노든 간에 상관없이 나 기사요 할 수 있는 전문직이었던 거


그래서 흔히 중세 판타지를 다룬 매체에서 평민 주인공의 신분 상승 뭐 그런 무언가로 묘사되는 기사 서임식도 이 시기에는 그냥 자격증 수여식 정도의 느낌이었음




하지만 시간이 흘러 중세 전성기로 진입하게 되면서, 기사는 군사 전문직에서 하나의 계급으로 변화하게 됨


이전까지는 왕이 영주 중에서 대빵 자리 먹은 놈 수준이었기에 왕국은 국왕의 영지를 포함한 여러 영지의 집합체였고, 각각의 영지에서의 모든 권한은 영주가 독점했기에 기사는 전문직으로서 군무에만 집중할 수 있었음


하지만 점차 국가의 중앙집권화가 시작되며 국가의 모든 영토는 국왕의 것이므로 영주는 자신의 영지에 대해 경제권과 행정권만 행사할 수 있게 됨, 그럼 남은 사법권은 누가 행사하냐? 바로 왕이 임명한 인물이 그 지역으로 가서 사법권을 맡게 되는 거였음


이렇게 생겨난 지방 재판관, 그리고 국왕 직할령 곳곳의 행정관 직위는 국왕 직속의 기사들이 맡게 되었고, 이 때부터 기사의 커트라인이 높아져서 기사 계급에서 탈락하는 자들이 발생하게 됨




안 그래도 기사라는 전문직은 연 5~10파운드를 벌어들여야 필요한 장비의 유지가 가능한 직종이었기에 대부분의 기사들은 부유한 지주층이거나 자기 주군의 집에 식객으로 사는 편이었음


그런데 중앙집권화로 인해 기사의 정의가 '왕의 관료이자 지역 보안관이면서 가끔 전쟁 나갔다 오는 지방 유력자'로 바뀌게 되며 이 유지비가 대폭 늘어남


기존의 장비 관리비 5~10파운드에 더해서 업무 비용이니 뭐니 해서 개인 자금으로 조달해야 하는 항목이 늘어나 연 20~40파운드는 있어야 기사로서 뭔가 해볼 수 있게 된 거


이 때문에 잉글랜드의 경우 13세기 초엽 4000명의 기사(전문직)이 존재했지만 사법행정을 맡은 하급 귀족으로의 계급화가 끝난 13세기 말에는 경제력이 부족한 자들이 개미털기를 당해 떨어져나가서 1200명의 기사(하급 귀족)만이 남게 됨


물론 이 시점부터는 기사 서임식도 귀족의 전유물이 되었고




여기서 의문을 가질 수 있음


기사의 수가 1/3로 줄었는데 왜 백년 전쟁에는 수천 명 단위의 기사들이 나오냐?


그건 바로 그 기사라고 알고 있던 인원이 기사가 아니고, 갑옷과 무기를 갖춘 사람들을 국가에서 고용해온 맨앳암즈(무장군인)이기 때문임


이 맨앳암즈들은 귀족이 아닌 부유한 평민, 부르주아 계층의 사람들이었고, 국가와 전속 계약을 맺어 성채 수비대 등의 상비군, 필요시 소집되는 예비군으로 복무하거나 아니면 용병대와 계약을 맺어 용병대의 고용주 밑에서 싸웠음


간단히 말하면 전문직이던 시절의 기사가 하던 일을 맨앳암즈가 이어받은 것




그러므로 백년전쟁과 그 이후 시기의 돌격기병 병과는 기사가 아니라 맨앳암즈나 중기병이라고 부르는 것이 올바른 호칭이 됨


기사는 전시에 동원되면 맨앳암즈가 되지만 맨앳암즈는 평시에 소집 해제 상태에서도 기사가 되지 못하거든


결론적으로 옛날 중세 판타지에서 종종 나오던 평민이 기사 서임을 받고 귀족으로 신분 상승을 이루는 그런 내용은 중세 초창기의 기사와 중세 전성기의 기사, 그리고 맨앳암즈의 세 개념을 혼동해 뒤섞어버리는 바람에 나타나게 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