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부 양반이 좀 고약한 양반이긴 했어도 그렇게까지 처참하게 갈만한 인물은 아니었을진데."


"..."


눈 앞의 사내의 얘기를 듣는 흥부는 아무런 대꾸 없이 그저 술잔을 비웠다. 3일 전 그가 사는 마을 입구에 놓여진 장승에 사람 한 명이 피를 흘리며 걸쳐져 있었다. 마치 벌레라도 파먹은 듯이 온 몸에 움푹 들어간 상처 투성이었고, 그의 얼굴 또한 간신히 형체만 알아 볼 수준으로 무참하게 파헤져져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전부 끔찍한 그의 최후에 신령이 노하셨다니, 귀신에게 당한 것이라니 소리칠 때 흥부 한 명 만이 묵묵하게 형의 시체를 끌어 내리고 직접 멍석을 말아 그의 가족들에게 짊어지고 갔다. 놀부의 아내는 끔찍한 남편의 최후에 기절하고 말았으며 자식들 또한 아비의 모습에 겁을 덜컥 집어 먹었다.


평소 자신의 남편과 아비의 잣대를 익히 알고 있던 그 들은 혹여나 그 끔찍한 몰골을 만든 존재가 자신들이 그의 가족이란 이유로 똑같이 해악을 끼칠 것을 염려해 꼭두 새벽 귀중한 것들만 챙긴 채 범죄자 처럼 야반도주를 해버렸다.


그리 될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흥부는 가족들과 함께 손수 삼일장을 치뤄 형의 저승길을 배웅해 주었다. 삼일장이 끝나고 형님의 매장을 끝낸 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친우와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회포를 풀고 있었다.


"자네도 욕봤네. 아우가 잘 된 것에도 배 아파하며 온갖 패악을 부리던 양반을 형님이란 이유 하나로 이렇게까지 챙겨주는 인물도 없을걸세. 이번 일은 안타깝게 됐으이..."


"고맙네."


"그럼 이만 쉬게나. 밤도 늦었고 하니 이만 가보겠네."


마지막 잔을 비운 뒤 친우는 벗어뒀던 갓을 쓰고 흥부의 방에서 빠져나가려는 참 이었으나, 뒤에서 들려오는 흥부의 목소리에 발걸음을 늦출 수 밖에 없었다.


"...형님은... 그런 일을 당할만한 인물 이었기에 그런 꼴이 된거라네."


"...자네?"


"나도 믿었지. 비록 욕심 많고 성격 또한 좋다 할만한 사람은 아니었으나, 최소한 사람으로서의 선은 넘지 않을 사람이라고."


"..."


친우는 침을 삼키며 등을 돌리고 흥부를 바라봤다. 호롱불에 비춰진 흥부의 얼굴은 형님을 떠나보냈단 일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 흥부는 비어진 잔에 술을 한번 더 따라내며 입을 열었다.


"내가 부자가 된 경위를 들었을 걸세. 제비를 구해주게 되어 그 보답으로 박씨를 받았고, 그 박씨 속에서 온갖 재물과 금은보화가 쏟아졌단 것을."


"..."


"동네 사람들도 믿지 않았지. 심지어 가족들조차 믿지 못했다네. 결국 그 들의 눈 앞에서 박을 하나 가져와 잘라낸 다음에야 간신히 거짓이 아니란 것을 납득 시킬 수 있었네."


"...그러했지."


흥부가 술잔을 비운다.


"처음 그 것을 봤을 땐 기쁨보다 두려웠네. 당장에라도 아궁이에 집어 던져버리고 싶을 만큼."


"어째서? 자네가 그렇게 진절머리 치던 가난과도 작별 할 수 있었을 진데."


"생각해보게. 모든 일에는 총량이란게 정해져 있네. 나무 하나를 벨 노력을 했다면 나무 하나만을 벨 수 있고, 풀 한 포기를 뽑아 낼 힘을 쓴다면 풀 한 포기 만을 뽑을 수 있지."


"..."


"나는 고작 손바닥만한 제비 한 마리의 다리를 좀 치료해줬을 뿐이었어. 그런데 내 자식의 자식까지 놀고 먹을 재물을 줬다? 이게 무슨 의미겠나?"


술잔을 든 흥부의 손이 떨려왔다.


"초과된 만큼의 거스름 돈을 차후 다른 방법으로 징수해 가는 줄 알았네. 하지만 몇 달이 지나도록 그런 기미는 보이지 않았네. 그렇다면 가능성은 하나 뿐이겠지."


"그게 대체 무엇이길래?"


"내가 구해줬던 제비가, [제비의 탈을 쓴 무언가] 였단 것 일세. 고작 다리 하나를 치료해 준 은혜를 베풂에도 불구하고 그런 금은보화를 잔뜩 안겨줘야 할만큼 귀한..."


흥부의 말에 사내는 저도 모르게 자리에 주저 앉았다.


"그렇기에 그 후로 얻은 재산도 사리사욕에 쓰지 않았다네. 나와 비슷한 빈민 이웃을 구하고, 신령님께 감사의 제사를 올리고, 내 아내와 자식에게 좋은 것을 먹이고 좋은 것을 입히고... 그러다 형님의 귀에 들어가게 됐지. 내가 겪은 일 말일세."


"..."


"형님은 믿지 않았다네. 믿을 수가 없겠지. 쌀 한 되가 없어서 자신보다 어린 형수에게 구걸을 하던 동생이 하루 아침에 자신보다 월등한 부자가 됐다? 순순히 납득하기엔 자존심이 상했겠지."


"...한동안 귀찮았겠군."


"그렇다네. 한 밤중에 멋대로 집에 찾아와 방 안을 헤집어 놓는다던가, 내 자식들에게 관아에 신고를 하겠다고 겁을 줬다던가, 실제로 신고도 했던 것 같지만 말일세."


"뭣이? 하지만 관아에선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잖나."


"..."


친우의 물음에 이번 만큼은 대답하기 곤란하다는 듯 흥부는 침묵으로 대꾸했다. 처음으로 흥부가 보인 표정의 변화에 무언가를 납득했다는 듯 친우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의 표정을 보고 흥부 또한 고맙다는 듯 눈을 잠시 감았다 뜬 뒤 말을 이어갔다.


"결국 몇 달 동안 진전이 없었으니 형님도 포기하셨지. 물론 완전히 포기 한 것은 아니었네. 어디까지나 내 주변을 뒤지는 것을 포기 한 것 뿐이지 방법을 찾는 것은 여전했지."


"처음은 마당에 내려앉은 제비를 잡은 것에서 시작했네. 다치지도 않은 제비의 다리에 붕대를 감아 보냈다고 했지. 물론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았지."


"그 다음은 새 덫을 설치해 잡힌 제비를 치료해서 보내 주었네. 그 또한 치료해준 행위이니 괜찮을 것이다 하고 혼자 납득 했을터지. 하지만 물론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지."


"그 다음은 아예 새총으로 제비를 잡아 다친 것을 치료하고 보내는 것을 반복 했네. 자네도 봤지 않은가? 놀부 형님에게 고용 된 사내들이 여기 저기서 새총을 쏘아대던 것을. 하지만 이 또한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았지."


"...허면 왜..."


흥부는 술병이 비어진 것을 깨닫고 새로운 병의 뚜껑을 연 뒤 친우에게 내밀었다. 친우는 어느센가 목에서 느껴지는 갈증을 깨닫고 결국 자리로 복귀해 술잔을 받았다. 잔을 받은 친우는 본인 또한 흥부의 잔을 채워줬다.


"그러다 형님은 생각을 달리 했다네. 아, 어쩌면 내가 이미 치료해서 보낸 제비에게 씨앗이 있던 것이 아니었을까. 흥부처럼 자연스럽게 다친 제비를 치료한 것이 아니라 그런 것이 아닐까."


"그렇게 마지막으로 택한 방법은 기존의 것과 처음은 별 차이가 없었네. 우선 제비를 잡는다."








"그리고 잡아 낸 제비의 배를 갈라 씨앗의 존재를 확인한다."




"...!!!"


"몇 십, 몇 백 마리의 제비를 잡아 그 거죽을 벗기고 부리를 찢고 배를 가르는 것을 반복 했네. 그 과정에서 잡힌 다른 새들은 곧바로 태워 없엤지. 나중에는 사람에게만 맡기는 것이 답답했는지 결국 자기 스스로가 나서서 제비를 사냥하고 죽이는 것을 반복했네."


"그동안 새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던게..."


"처음엔 말리고 싶었네. 말리려고 했네. 하지만 형님이 하는 일을 뒤늦게 눈치채고 찾아 갔을 땐 이미 내가 아는 놀부 형님은 없었네."



"온 몸에 피칠갑을 한 채 비릿한 내장 냄새를 풍기면서 광기로 번들 거리는 눈빛으로 칼을 들고 날 바라보는 형님의 모습은 이미 내가 어찌 할 단계를 한참 전에 지나쳐버린 후 였다네."



"그러다 나는 보았네. 하늘에서 날아와 내 머리 위를 날아 다니던 한 마리의 제비를."


"설마."


"...어찌 된 영문인지, 난 그 제비를 보자마자 알 수 있었네. 아, 저 제비는 내가 구해줬던 그 제비로구나. 하고 말일세."


흥부는 아까보다 더욱 떨리는 손으로 술잔을 집어 들이켰다.


"본능적으로 느꼈다네. 이 곳에 나는 더 이상 있으면 안된다는 것을. 저 제비가 나타났다는 건 이미 모든 게 늦어버린 뒤란걸. 그렇게 난 산에서 내려왔고... 형님의 소식이 끊긴 것은 그 뒤였다네."


"..."


"말해주게 친우여. 내가 구한 것은 진짜로 제비인가? 나는 무엇을 만나고, 무엇을 구한 것이지? 제발...제발 알려주게...."


이내 흐느끼기 시작한 흥부를 보고 친우는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술잔 위에 비친 빛이 묘하게 새의 모양으로 보이는 것 같았기에 그 이상 쳐다보지 못한 친우는 눈을 질끈 감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