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제국은 소수민족 탄압을 즐겨했다.


수인, 엘프, 마인족 등등.


인간이 아니게 태어난 죄로 핍박받은 그들은 제국 바깥의 황무지에 자신들의 나라를 세우고자 했다.



인간이 타 종족들을 마족으로 묶었기에 생겨난 마족의 왕국.

마왕국의 탄생이었다.

가장 수가 많던 마인족의 지도자가 왕위에 올랐고, 그렇게 마족들의 국가는 가난하지만 그 평화를 이어갔다.




시대는 흐르고, 인간들은 특유의 혐성을 발동하여 또 다시 타종족 억압을 시도했다.

이번엔 꽤 본격적으로, 인류가 비이성과 광기에 휩싸여가는 것을 본 마왕은 신중히 대처해야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결국 마왕국은 제국의 군사력에 나라가 짓밟히는 것을 막기 위해 마왕이 애지중지하는 막내딸을 제국에 인질로 보냈다.



하지만 제국은 겨우 인질 따위로 눈엣가시인 마족들을 살려 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인류주의라는 이념에 사로잡힌 제국에서, 마족은 가축 취급조차 받지 못했다.



제국 정부는 의도적으로 인질을 가혹한 상황에 몰아두고 생활비조차 제대로 지급하지 않은데다 사용인들의 숫자조차 극히 제한을 두었다.


마왕의 막내딸은 14살의 어린 나이로, 마인족의 수명이 인간의 다섯 배임을 고려해 보았을 때 극히 어린 편에 속했다.

인간 기준으로 봐도 어린아이에 해당할 정도다.



그 어린아이가 팔려가서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숙소도 제대로 되지 않아 낡은 집에서 추위에 떤다는 사실은 마왕국의 분노를 일으켰다.


마족 사이에 제국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이 형성되자, 제국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여론 악화에 대한 국경 불안정성을 이유로 군대를 집중 배치했다.


당연히 얼마 안 가서 허술한 자작극이 벌어졌고, 마왕국은 어이없어하며 따졌지만

제국은 '아 아무튼 명분이 우리 거라니까?'

하며 마왕국에 대한 전면적 침공 활동을 시작했다.



독가스와 전차, 화염방사기를 동원한 잔악한 제국군의 마수에, 구시대적 교리와 장비조차 겨우 쓰는 마왕군은 이길 수 없었다.


인류주의에 푹 빠진 제국의 전쟁은, 타종족에 무자비를 선보였다.


그리고 인구의 100%가 타종족으로 구성된 마왕국은 인류의 '절멸 상대'에 불과했다.


민간인조차 몰살하는 베니프 무소틀러 장군의 악랄한 전쟁범죄는

마왕국을 제외한 세계의 모든 국가가 인류의 것이었고, 전부 다 인류주의에 감화되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당연히 해야 할 일' 일 뿐, 범죄라고 여기지도 않았다.



그렇게 마왕국은 멸망했다.

독가스와 군홧발 아래

모든 민간인, 귀족, 왕족을 가리지 않고

한 명의 생존자도 남기지 않은 채.



아니,

생존자 단 하나를 남겨두고.


바로 인질로 파견되었던 마왕의 막내딸이었다.



전 세계에 마지막으로 남은 마족에 대한 처분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인류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박제를 하자.

동물원에 가두고 구경거리로 삼자...


마족에게 들어가는 관리비조차 아까웠던 의회는,  "그냥 죽여버리죠?" 라는 의견에 찬성하여 공개처형을 집행하기로 결심한다.


방식은 교수형.


아무리 멸망한 왕국의 공주라지만

지방의 귀족조차도 당하지 않는, 길거리 시정잡배들에게나 할 법한 교수형을 당한다는 것 자체가 현재의 비이성적인 작태를 여실히 드러냈다.

하지만 그것을 제지할 이성적인 사람들은 인류주의의 광기 앞에 숨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사형 당일.

광장에 교수대가 세워지고 인파가 몰려들었다.

극성 인류주의자들은 언성을 높여 집행을 재촉했고, 군중들 또한 열기에 휩싸여 거친 말들을 쏟아냈다.


엄중한 경비 아래, 사형수를 실은 낡은 호송차가 도착했고, 군중은 환호성을 울렸다.


이 죽음으로 마족은 영원히 사라지리라.

인간에게 대응한다는 것의 말로가 어떤지 드러나리라.


모두가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들이 목 매다는 것이 14살의 어린 소녀라는 사실은 별 이슈가 되지도 않았다.





수갑을 찬 채로 호송차에서 끌려내려와 교수대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소녀의 얼굴엔 마지막 마족으로써 죽는다는 의연함이 보였지만, 멀리서도 느껴지는 몸의 떨림과 경직된 입꼬리는 그녀가 느끼는 막대한 두려움을 군중들에게 알렸다.

마족은 여신교를 믿을 수 없기에 죽는다 해도 천국은커녕 사후세계가 보장되어 있는지조차 불투명했다.

이 또한 소녀의 두려움에 적잖은 힘을 보탰다.



밧줄은 저 멀리 있건만, 소녀는 벌써부터 목이 죄어드는 기분을 느꼈다.


억지로 한 발 한 발을 내딛으며 덜덜 떠는, 그 누구도 그녀를 도와주지 않는 운명에 처한 비참한 소녀는 그 머리 위의 뿔을 포함하더라도 측은함을 불러일으켜, 선동된 군중조차 목소리를 조금 줄일 정도였다.


그렇게 소녀의 무거운 걸음걸음이 이어지고


교수대에 도달하여 발판 위에 올라선 뒤,

마침내 밧줄이 그녀의 가녀린 목에 걸리자

끝까지 의연한 척을 하려 했던 소녀도 눈을 꼭 감으며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살려달라고 말하고 싶다.

죽기 싫다고 애원하고 싶다.

하지만 저들 손에 죽은 가족과 백성들을 생각하면, 소녀는 여기에서 목숨을 구걸할 수가 없었다.

애원하더라도 살아남지 못하니까.


그녀는 절망의 눈물을 흘렸다.


이 눈물이 부서져버린 마음의 파편인지

아니면 울부짖는 영혼의 단말마인지는 그녀 자신도 몰랐다.




밧줄이 걸리자 재판관이 그녀가 사악한 마족으로서 저지른 죄를 말했다.

인질로 갇혀 살았던 그녀가 어떻게 죄를 지었는지 묻는다면

그놈이 분명 첩자일 것이다.



죄목을 전부 읊은 후. 군중의 열기 사이에서 판사가 집행인에게 선고를 명령하자

발판은 꺼지고, 밧줄은 당겨졌다.


운 나쁘게 한 번에 목이 부러지지 않은 소녀는 켁켁대며 발버둥쳤지만 묶인 몸으로는 별로 움직일 수도 없었다.



그렇게 마지막 마족은 교수대에서 목이 졸려 혀를 쭉 내뺀 채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그 시체는 눈도 감지 못하고 일주일 동안 내걸려 있었다 한다.




시체가 어디 묻혔는지는 기록되지 않았다.

묻히긴 했는지도 여러 의문에 쌓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