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만한 크기의 고동색 구렁이가 유창하게 인간의 말을 구사하며 꼬리를 살랑 거렸다. 그가 노인이라고 지칭한 사람은  그 말과는 다르게 팽팽한 근육과 주름살 하나 없는 매끈한 피부, 풍성한 머리숱을 깔끔하게 틀어 올린 훤칠한 청년 이었다. 


노인은 살짝 두려움이 엿보이는 표정으로 무릎을 꿇은 채 뱀에게 말했다


"쉬시는 걸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무얼. 너무 괘념치 말게나. 내 상처를 보듬어준 은인이 아닌가? 괘씸한 제비한테 뜯긴 상처가 오죽 쑤셨을까. 자네에겐 몇 번을 감사해도 모자랄 판이라네."


"하지만 이미 큰 보답을 주시지 않으셨습니까? 팔십 평생을 살고 하늘로 불려가기 전에 다시 한 번 아내와 함께 삶을 살 수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원래 주름살이 자글자글한 노인의 모습이었던 청년은 어느 날 나무를 하러 숲에 들어갔다가 크게 상처를 입은 집채 만한 구렁이를 발견했고, 당장이라도 죽을 것 처럼 미약하게 숨을 쉬는 그 것을 영물이라고 생각한 노인은 도저히 지나 칠 수 없었기에 살아오면서 쌓아 온 지식으로 상처를 꿰매고 약초를 발라 정성껏 돌봐줬다.


노인의 지극한 정성이 통한 것인지 정신을 차린 구렁이는 노인에게 크게 감사를 하며 꼬리로 그를 안아들었다. 

놀란 노인은 발버둥 쳤으나 이내 구렁이의 부드러운 음성에 저도 모르게 긴장을 풀고 말았다.

그렇게 둘이 도착한 곳은 호수 밑바닥이 보일 정도로 한 없이 맑은 호수다.


[이 곳은 대체 어디 입니까?]


[이보게 친구여. 내가 비록 방심한 탓에 괘씸한 제비에게 그런 상처를 입었지만 몇 백년을 살아 온 존재라네. 그러다보니 본의 아니게 자네의 마음 속을 읽어 버렸다네.]


[제 마음을... 말입니까?]


[그렇다네. 자네에겐 아내가 한 명 있으나, 슬하에 자식은 없군. 젊을 적 가난한 생활 탓에 언제나 일을 하기 바빴겠지. 그 덕에 자식을 갖는 건 꿈에도 꾸지 못하고, 결국 하나 뿐인 아내에게도 면목이 없었을게야.]


[...]


정곡에 찔렸다는 듯 노인은 구렁이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지금은 자네 부부의 지극한 노력 덕에 어느정도 재산도 모았고 땅도, 집도 갖게 됐으나 안타깝게도 이미 늙어버린 몸뚱이론 아이를 갖는 것은 불가능 하겠지. 하지만 말일세.]


뱀은 꼬리에 잡아 둔 노인을 땅에 내려놓은 뒤 꼬리 끝으로 그의 등을 살짝 떠밀어 호수 쪽으로 가까이 다가가게 했다.


[만약 다시금 젊어질 수 있다면 어떻게 하겠나?]


노인은 침을 꿀꺽 삼키며 뱀의 말을 경청했다. 그의 말을 유추해 본다면 눈 앞에 있는 호수에 무언가 굉장한 힘이 있단 것을 알 수 있었다.


[자. 그 호수의 물을 한 번 마셔 보게나. 하지만 주의할 것이 있다네. 물을 마실 때 속으로 젊어지는 것을 바라며 마시도록 하게. 절대로 다른 마음을 품어서는 안된다네.]


 구렁이의 눈치를 보던 노인은 조심스럽게 무릎을 꿇어 호수 물 두 손으로 떠 천천히 들이켰다.


아주 시원하고 정신이 맑아지는 맛에 깜짝 놀란 노인은 다시금 물을 양 손으로 떠 들이켰고, 이내 서서히 몸이 젊어지는 것을 바라보며 탄성을 흘렸다.


구렁이는 꼬리로 그를 들어 올린 뒤 호수 위로 내밀어 물 위에 노인의 모습을 비춰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곳에 있는 것은 아까까지 주름살이 자글자글 했던 노인이 아닌 팽팽한 피부와 튼튼한 근육이 돋보이는 훤칠한 청년이었다. 노인이, 아니. 청년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구렁이는 청년을 땅에 내려두고 그의 머리를 꼬리로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이 위치를 잘 기억하고 자네의 아내 또한 이 곳으로 데려오게나. 그리고 말했다시피 아내 또한 다른 생각을 하지 말고 오로직 젊어지는 것을 바라며 마시도록 하게.]


그 말을 끝으로 빙긋 웃어보인 구렁이는 등을 돌려 숲 속으로 사라져갔다. 그 후 청년은 구렁이가 이른대로 아내를 업어 이 곳에 데려와 구렁이가 일러준 대로 말한 뒤 호수 물 먹이자 아내 또한 창창했던 처녀 시절의 외모로 돌아갔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청년의 노인 시절에 만났던 악우의 귀에도 들어가게 되었다.


방법을 알려달라고 온갖 방법으로 부탁하던 악우의 부탁을 외면 할 수 없었던 청년은 결국 구렁이가 일러줬던 방법을 그대로 전해 주었고, 악우는 방법을 듣자마자 곧바로 숲 속으로 뛰쳐 들어갔다.


하지만 본래 나무꾼이었던 노인과 다르게 악우는 평범하기 이를 곳 없는 사람이었기에 다 늙은 몸으로 거친 숲 속을 해매는 것은 너무나 힘에 부치는 일 이었다.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고 목이 찢어질 것 같은 갈증을 느끼던 악우는 몽롱해지는 정신을 간신히 붙잡았다. 그리고 끝끝내 길을 잃지 않고 호숫에 무사히 도착 할 수 있었다.


[물-!! 물이다!!]


그리고 악우는 청년이 해줬던 조언은 까맣게 잊어버린 체 곧바로 호에 고개를 처박고 벌컥벌컥 물을 들이키기 시작했다. 노인이 느꼈던 것 처럼 청량한 느낌과 머리가 맑아지는 맛에 놀란 악우는 고개를 들어 서서히 젊어지는 몸을 보며 희열을 느꼈다.


[...억.]


하지만 그러기도 잠시, 갑자기 무시무시한 갈증이 느껴지며 목을 움켜 쥐었다. 악우는 저도 모르게 다시 한 번 호에 고개를 처박고 끊임없이 물을 들이키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들이켜도 갈증이 해소 되는 일은 없었고 기어이 아무리 몸을 빼도 호에 얼굴이 닿지 않을 정도로 어려져 버린 악우는 서서히 줄어 들어가는 몸을 바라봤다. 


그렇게 아기로 돌아가버린 악우는 그가 걱정되서 이 곳까지 찾아 온 청년에게 주워져 그와 아내의 새아들로 입양되었다. 





"하하하. 득남한 것을 축하한다네."


"...구렁이 님.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무엇인가 친구여."


"내 친우는 빈말로도 좋은 인물이라고 할 수는 없는 인물이었습니다. 욕심이 많고 허영심 덩어리에, 곧 잘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고약한 사람 이었지요."


"과연 과연."


"비록 아기의 모습이 되었다곤 하나, 본래의 심성과 기억은 그대로 가진 상태가 아닙니까? 청년이 된 제가 노인이었을 적의 기억을 온전히 가지고 있는 것 처럼 말이지요."


청년의 물음에 구렁이는 고개를 주억 거렸다.


"그가 저를 원망하고 있을까봐 두렵습니다. 아기를 키워 본 경험이 없는 저희 부부가 이 친구를 변하게 할 수 있을까요? 지금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큭큭큭."


청년의 물음에 구렁이는 실소를 흘리며 꼬리를 살랑거렸다.


"이보게 친구여. 저 호수는 무엇이라 생각 하는가?"


"...젊음을 돌려주는 신묘한 호수가 아닌지요?"


"그 것도 틀린 것은 아니네만, 정확하겐 반만 맞았다고 할 수 있다네."


"저 호수 말이네. 가끔씩 하늘의 선녀들이 찾아와 목욕을 하고 가는 장소라네. 본래라면 누구도 이 곳 까지 올 수 없도록 숨겨져 있으나 자네는 예외로 내가 길을 찾을 수 있도록 했지."


"하지만 이상하지 않나? 이처럼 나같은 존재로 인해 사람에게 들킬 가능성이 있는 장소에서 왜 선녀들이 들킬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하고 이 먼 지상까지 내려와 목욕을 하고 가겠나?"


구렁이는 히죽거리며 혓바닥을 날름 거렸다.


"이 호수는 사실 사람을 젊게 해주는 그런 호수가 아니라네. 그저 그가 원하는 것을 [마신다] 라는 행위를 통해 이뤄주는 신묘한 호수지."


"하지만 모든 일에는 대가가 있는 법. 이 호수는 한 가지 소원을 이루어주려면 그에 합당한 대가를 호수에 지불해야 하지."






"그래 예를 들면... 한 사람을 젊어지게 하기 위해선, 사람 하나 분량의 제물 정도."


"그게 무슨...!!"


"걱정말게나. 자네의 대가는 내 쪽에서 이미 지불 했다네. 자네 몸에는 아무런 이상도 없지 않나?"


"하지만 그렇다면 제 아내는... 아!!"


청년은 본인이 말하고 본인이 그 답을 깨달았다. 구렁이는 그 모습에 유쾌하다는 듯 껄껄거리며 꼬리로 바닥을 두드려댔다.


"다행히 존재를 온전히 빼앗기기 전에 더 이상 호수 들이킬 수 없었기에 그저 아기가 되는 것으로 끝났더군. 여러모로 운이 좋았다네."


"..."


"허나 정신은 온전히 지키지 못했기에 결국 그 곳에 있던 것은 [그대의 악우였던 존재] 였을 뿐, 아기가 된 그는 완전히 다른 생물이란게지."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게나. 그저 자네 부부들이 성심성의 껏 아이를 키운다면 자네들을 똑 닮은 아이로 자랄걸세. 큭큭큭. 그럼 나는 이만 가보도록 하겠네. 같은 장소에 오래 있으면 좋지 못하거든."


구렁이는 그 말을 끝으로 거대한 몸을 움직여 숲 속으로 사라져갔다. 청년은 구렁이가 사라지기 전에 쥐어짜는 듯한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그럼...하늘의 선녀들 또한... 같은 목적으로 이 곳에 오는 것 아닙니까...? 그럼...선녀들이 소원을 이루고 난 뒤에 대가는..."


"아아...그것 말일세."


구렁이는 고갤르 돌려 아까까지 보여줬던 인자한 미소가 아닌 본래 뱀과 같은 섬뜩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하늘의 존재를 너무 믿지 말게나. 선녀들 또한 알고 있다네. 자신들이 아름다운 존재라는 것을. 그리고 그런 자신들을 보기 위해 인간들이 이 호숫가를 찾아오게 된다는 것을."


"..."

"그리고 그에 대한 대가는... 자네도 이젠 잘 알 수 있을걸세."



껄껄껄껄-



청년은 웃음소리와 함께 사라지는 구렁이를 멍하게 바라봤다.


그 모습을 찾아 볼 수 없고 웃음소리가 들려오지 않게 된 뒤에도 오랫동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