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게임하던 블붕이 1이 어느날 갑자기 개같이 선생으로 빙의하는거지


빙의당한 블붕이는 실제 게임 내 선생처럼 고결하지도 않고 모든 학생들을 평등하게 사랑하지도 않음. 평범하게 최애캐도 있고 시미코 관련 글이 올라오면 "검증되지 않은 괴학생"같은 댓글이나 달고 아이리짤같은거 올라오면 "사람이 왜 치약을 먹음;" 같은 댓글이나 달던 놈임.


아무튼 프롤로그 시점에 빙의한 블붕이 1은 '오 시발 블아 스토리 직관? 학생들이랑 연애? 못참지 이거~.' 하면서 싱글벙글하면서 프롤로그를 진행함. 말을 걸어오는 린한테 농담도 걸어보고 프롤로그에 나오는 유우카 하스미 치나츠 스즈미 4인방 보면서 진짜 내가 블아에 빙의했구나, 하고 남몰래 감동도 느끼고 하는거지.


그러고 총알 퓽퓽 날아다니는 전장에 섰다가 '시발 스토리 직관이고 나발이고 직관하다 골로가는거 아냐?'하고 현실을 깨닫는거임~


뭐 아무튼 프롤로그는 베리이지 난이도니까 상처나는 일도 없이 무사히 샬레로 진입. 와카모도 쫓아내주고 무사히 싯딤의 상자까지 획득함.


그리고 싯딤의 상자를 키고 패스워드를 입력하는거지.


"우리는 원한다. 일곱 개의 통곡을. 우리는 기억한다. 예리코의 화두를."


?


근데 안 켜짐. 시발 머지? 머임? 하고 갈고리를 존나 박음. 잘못 기억하고 있나? 그럴싸해서 멘트를 몇개 바꿔서 입력 해봄.


"우리는 원한다. 예리코의 통곡을. 우리는 기억한다. 일곱 개의 화두를."


오, 대충 몇개 바꿔서 던져봤는데 다행히 로그인 됨. 익숙한 파란 배경의 교실이 나오고, 한 책상에 엎드려 자고있는 하늘색 머리의 아로나가... 아로나가...


시발 왜 은발임? 왜 옷이 까맘? 왜 프라나임?


블붕이는 좆됨을 감지함. 그러니까... 본편인줄 알았더니 프테라노돈 센세 세계라는거지? 막 색채도 오고 그러는? 씨발 좆됐네?


패닉에 빠진 블붕이었지만 이내 침착하고 스스로에게 속삭임. 내가 누구? 한섭 오픈 스타트 할배이자 총력전 순혈 플레 오우너. 프테라노돈 센세 세계선이고 나발이고 내가 열심히 잘 하면 프뭐시 센세 엔딩은 회피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왜, 2차 창작같은거 보면 스토리도 휙휙 바꾸고 하드만.


어찌어찌 자신을 진정시키고 그렇게 '예정된 결말 회피'를 목표로 잡은 블붕이는 착실하게 스토리를 진행해 나감.


아비도스 편은 조금 위태위태 했지만 어떻게든 넘겼고, 파반느야 애초에 선생이 딱히 위험할 일이 별로 없었음. 그리고, 그러다, 에덴조약 편에서 폭격을 맞고 사망하게 됨.


...


폭약이 살갗을 불태우는 작열통, 건물의 잔해가 전신을 짓누르는 격통에 블붕이는 정신을 차리게 됨. 더듬더듬 몸을 만져본 블붕이는 제 몸이 상처하나 없이 멀쩡하단걸 깨닫고 주변을 둘러봄. 린이 약간 당황한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음.


"잠시 기다려달라고 말씀드렸는데, 피곤하셨던 모양이네요. 악몽이라도 꾸신 건가요?"


악몽? 악몽... 인가? 그 아픔이?


패닉에 빠진 블붕이는 횡설수설하다가 결국 자리에서 도망침. 린이 미처 뭐라 할 새도 없이 총학생회 건물을 빠져나갔다가... 스케반끼리의 총격전에 휘말려 사망함.


그리고 다시 눈을 뜨니 다시 총학생회 건물. 총에 맞은 격통과 함께 린의 목소리가 들려옴.


"잠시 기다려달라고 말씀드렸는데, 피곤하셨던 모양이네요. 악몽이라도 꾸신 건가요?"


...아. 시발. 루프물인가?


블붕이는 직감함. 그리고 어째선지 이 루프를 탈출할 방법까지도 깨닫게 됨. 그건 바로 프레나파테스로서 엔딩을 맞는 것.


하지만 빙의하기 전에도 그냥 평범한 소시민 1이었던 블붕이는 당연히 그런 엔딩을 반기지 않음. 프리파라 센세가 대단해보이는거랑 별개로 내가 그런 엔딩을 맞는다? 절대 싫지.


대신 루프물이라는 것을 이용해서 학생들이랑 연애나 하자고 마음먹음. 뒤질때마다 아파서 돌아버릴거 같은데 그런 보상이라도 있어야지?


그렇게 그냥 방탕하게 살기로 마음먹은 블붕이. 최애캐부터 시작해서 한 명 한 명하고 연애를 하기 시작함. 루프라는 이점도 있겠다, 선생이라는 지위 덕에 연애도 딱히 어렵진 않았음. 어쨌든 루프박으면서 천천히 공략하면 성공했거든.


순애도 해보고 하렘도 차려보고... 뭐, 당연히 스토리는 연애하던 애들이 관련된 스토리만 신경썼기 때문에 막판가면 키보토스는 대부분 개판나고 최후는 블붕이가 사망하며 회차가 끝남.


그렇게 최애캐라 할만한 애들이랑 연애는 대충 다 해봤고, 적당히 맘에 들었던 애들과의 연애도 해봤지. 연애도 질리고 슬슬 업적작이라도 해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그동안 신경 끄고 살았던 애들과의 연애도 눈독들이게 됨.


그렇게 처음 업적작의 대상으로 선택한 것은 시미코. 블붕이로서는 단순하게도 그냥 매도 먼저 맞는다는 감각으로 선택한 것 뿐임.


시미코와의 연애는 예상대로 그다지 어렵지도 않았고 재밌지도 않았음. 특별한 서사가 부여됐던 캐릭터도 아니고 캐릭터성도 밋밋함. 그렇다고 뭐 엄청 예쁜것도 아니고?


다만... 압도적으로 평온했음. 뭐, 빡빡한 서사가 있던 애들은 둘째치고 그냥 평범하게 예쁜 애들만 하더라도 소위 말하는 블평ㅋㅋ에 해당하는 외모였던 블붕이로서는 내심 자격지심이 있었거든. 그런데 그냥 빙의 전엔 못생겼다고 생각했던 시미코와의 연애에서는 그런 자격지심을 느끼지 못한지라 상대적으로 평온한 나날을 보낼 수 있었음.


하루하루 트리니티에 방문해 사서일을 돕고 밤이 되면 문 닫힌 도서관에서 푹신한 자리를 만들어 둘이서 같이 좋아하는 책을 읽고, 그 내용에 대해 얘기하며 보내는 일상. 키보토스에 온 뒤로 사실상 처음으로 내면의 평화를 가지게 된 나날. 어느새 시미코와의 연애가 업적작이란 생각은 사라지고, 회차를 반복해도 시미코와 연애를 하며 도서관에 방문하는 하루하루. 당연히 샬레 업무따위는 내팽개친지 오래임.


그러다 문득 시미코가 묻는거지.


"선생님. 해야 할 일이 있으시지 않으세요?"


그 질문을 듣고 블붕이는 몸을 굳힘. 당연히 시미코가 루프에 대해 알 리는 없었음. 미래에 어떤일이 벌어지는지도. 그냥, 매일같이 자기에게 방문하길래 궁금해져서 던진 질문에 불과하지.


하지만 선생으로서의 의무를 방기하고 방탕하게 살아왔던 블붕이에게는 전혀 다르게 들려옴. 왜 그러고 살고 있냐고. 다른 할 일이 있지 않냐고. 일종의 역린이었지.


부끄러운 부분을 찔린 블붕이는 미친듯이 화냄. 그러는 와중에 온갖 못 할 말을 내뱉게 되지.


"못 생긴데다가 좆경까지 껴서 인기도 없던 년이 놀아주니까 나랑 맞먹으러 들어?"


폭언. 시미코는 상처받은 표정으로 울면서 자리를 떠남. 블붕이는 그 모습을 보면서 아차 싶긴 했지만, 감정적인 흥분이 가라앉지 않아 도서관을 떠나게 됨.


근처 공원에 앉아서 시발시발하며 머리를 식히는 블붕이. 그러다 누군가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림.


"어라, 선생님...?"


민초 애호파, 쿠리무라 아이리가 블붕이 앞에 서있었음. 어느정도 머리가 식었기에 막말은 하지 않았지만, 나오는 거라곤 "아이리냐..."라는 쥐어짜는 소리정도였지.


블붕이의 요상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아이리는 블붕이 옆에 앉으며 "무슨 일 있으세요?" 하고 질문해옴.


시미코와의 평온했던 일상 때문에 심경에 변화라도 있었던건지, 블붕이는 주절주절 지리멸렬하게 자기 얘기를 늘어놓음. 아이리로서는 알아듣기도 어려웠을, 신세한탄에 가까운 이야기들. 아이리는 블붕이의 이야기를 잠자코 듣더니 "음..."하고 잠시 고민해. 그러고 "어려운 얘기는, 저는 잘 모르겠지만."하고 운을 떼는 아이리.


"그럼, 결국 지금 선생님은 무얼 하고싶으신건가요?"


그 질문을 듣고 블붕이는 입을 잠시 뗐다가, 붙여. 그런 선생님의 모습을 보고 아이리는 무언가 느낀게 있던 것인지 블붕이를 꼭 끌어안아주며 위로해줌.


"선생님도 저희처럼 여러가지 일에 대해 평범하게 고민하고 계시는군요. 괜찮아요. 틀리고, 잘못하고, 실수해도. 고치고, 사과하고, 바로잡으면 되는거에요. 그러다가 힘들면, 가끔 저희에게 의지해주세요. 학생이더라도, 선생님께 도움되지 말라는 법은 없잖아요?"


포옹정도야 루프를 반복하며 수 없이 많이 해왔음. 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플레이어와 캐릭터로서. 연애 대상으로 본 캐릭터로서였지. 지금처럼 인간 대 인간으로서 위로받으며 포옹을 한 경험은 없었음.


그 따스함을 느끼고, 본인이 지금까지 해온 일들에 대해 자각하면서 블붕이는 눈물을 흘림. 아이리는 의지해달라는 본인의 말을 지키는 것처럼 블붕이가 다 울때까지 기다려주지. 한참을 운 후에야 정신을 차린 블붕이. 할 일이 있다며 일어서는 블붕이를 잠시 붙잡고 아이리가 뭔가를 건네줌.


"민트 초코에요. 우는건 의외로 에너지를 쓰는데다가, 단거를 먹으면 기운이 나니까 좋을거에요."


얼마 전이었다면 사람이 무슨 치약을 먹냐고 타박하면서 몰래 내다버렸겠지. 하지만 이번엔 평범하게 받아서 까먹음.


입 안 가득 퍼지는 달콤함과 상반되는 화한 기분. 상황때문인지, 아니면 그저 오래 전 기억만으로 혐오했던 것 뿐인지 민트 초코는 생각보다 블붕이 입에 잘 맞았음. 아이리에게 고맙단 인사를 건네고, 시미코를 찾기 위해 공원을 떠남.


그리고 저 멀리 익숙해진 트리니티 도서관이 보이는 순간... 쾅!


폭격에 의해 도서관이 통째로 박살남.


날짜를 헤아려본 블붕이는 얼굴을 새파랗게 물들임. 오늘이 바로 에덴조약이 있던 날임. 그리고 에덴 조약은 블붕이가 제대로 해야 할 일을 안했으니 아주 개판이 났겠지? 도서관이 날아간건 그 여파임.


물론 그런 세세한 것을 따질 겨를은 없었음. 도서관 안엔 높은 확률로 시미코가 있었을 테니. 키보토스 학생들이 튼튼하긴 하지만 무적은 아니고, 에덴조약 사건에서 사용된 미사일은 히나나 츠루기같은 키보토스 최상위권 강자도 너덜너덜하게 만들었으니 시미코같은 평범한 학생들은 훅갔을수도 있는 일임.


그렇게 도서관이 무너져 내린 잔해를 맨손으로 치우기 시작하는 블붕이. 시미코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며 그녀의 흔적을 찾기를 한참. 결국 블붕이의 노력이 빛을 발해 잔해에 깔린 채 움직이지 못하는 시미코를 발견할 수 있었음.


피투성이가 된 모습으로 평소 쓰던 안경은 온데간데 없이 잃어버린 채 선생을 보며 희미하게 미소짓는 시미코. 그런 시미코의 옆에 꿇어앉은 선생을 보며 시미코는 힘겹게 입을 열어.


"죄송... 해요, 선생님. 제가, 선생님의... 콜록... 기분을, 상하게... 만든거죠?"


설마 사과를 들을줄은 몰랐기에, 멍해지는 블붕이. 그런 블붕이를 아랑곳 않은 채 시미코는 말을 이어감.


"알고... 있었어요. 제가,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다는 걸... 저도... 콜록... 평범한 미적 감각을, 가지고 있다구요? 안경이, 남성분들에게, 호불호가 갈린다는 것도, 책을 보면서... 알았어요."


힘겹게 말을 이어가다, 시미코는 무언가를 눈치 챈 듯 피투성이가 된 손으로 얼굴을 더듬음.


"아... 안경... 지금은, 없네요... 어떤가요, 선생님. 저는 지금, 예쁜, 가요?"


"...응. 예뻐, 시미코. 다시 첫눈에 반할 정도야."


"아핫, 거짓말. 그래도... 처음으로, 콜록... 선생님께, 예쁘다는 말을, 들었네요. 기뻐요."


시미코는 자신의 마지막을 직감한 듯, 블붕이에게 손을 잡아달라 요청함. 블붕이는 떨리는 손으로 시미코의 손을 붙잡음. 회차의 마지막을 양손으로 세어보지도 못할정도로 겪으면서 타인의 죽음에도 익숙해 졌다 생각했는데 왜 이렇게 떨리는 것인지, 블붕이도 알 수 없음. 다만 떨리는 목소리로, 미안해, 시미코. 미안해... 하고 계속 사과할 뿐이었음.


"괜찮아요, 선생님. 콜록, 그래도, 혹시, 저같은 걸 신경쓰시다, 하지 않으신 일들이 있으시다면... 해야 할 일을, 해주세요. 책에 담긴 이야기는, 책을 펼치지 않으면, 시작되지, 않아..."


채 시미코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어디선가 날아온 미사일이 착탄함.


...


끔찍한 작열통. 그리고, 그 이상으로 아픈 가슴. 심장 어림을 감싸며, 블붕이는 천천히 눈을 뜸.


"잠시 기다려달라고 말씀드렸는데, 피곤하셨던 모양이네요. 악몽이라도 꾸신 건가요?"


익숙한 린의 대사. 그것을 들으며, 블붕이는 "응. 악몽을, 꿨지."하고 대답함.


다시 시작된 회차와 함께, 블붕이는 마음 속으로 결심함. 학생들 한 명 한 명과 제대로 마주보자고. 블붕이가 아니라 선생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하자고. 의무를, 다하자고.


그렇게 학생 한 명 한 명을 제대로 마주보고, 이해하기 위해 선생은 루프를 반복함.


그리고 혹시라도 프리파라 센세 엔딩을 안맞는 방법이 없나 동분서주하지. 하지만 그렇게 발버둥치면 발버둥칠수록 모두를 구할 수 없단 사실을 절감함.


왜냐하면 이 세계에는 총학생회장이 없으니까. '모두'를 구한다는건 애시당초 불가능한 일이었던 거임.


따라서 선생은 프레나파테스가 된다는 결말을 받아들이고 대신 다른 방법을 강구하게 됨.


마침내 색채가 도래하고 이야기는 원작의 흐름에 편승함. 선생은 안타까움을 느끼면서도 어딘가 안도하며 색채를 받아들이지.


그리고 마침내 최종전. 선생은 원작과 마찬가지로 우트나피티쉼의 주포를 맞고, 학생들을 전부 퇴각시킨 다른 세계선의 자신을 향해 학생들을 잘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소멸함.


청휘석과 자신이 인연을 맺은 모든 학생들의 영혼 - 엘레프가 담긴 어른의 카드와 시미코에게 몇 번이고 처음으로 선물 받았던 책, 가장 좋아하는 디저트가 된 민트 초코를 남겨둔 채, 블붕이에서 선생이 됐던 이의 이야기는 막을 내림...





같은 패러디 없냐?


없으면 써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