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리 생각해도 네가 원인 같아."


"응?"


"솔직히 말해. 또 무슨 짓을 한 거야?"


"어… 딱히, 아무것도?"


눈을 동그랗게 뜬 가을이가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


역시 수상하다. 이 녀석이 또 이상한 짓을 한 거다.


"다솜이가 아무 이유 없이 사흘이나 학교를 빠질 리 없잖아."


"다솜이가 누구야?"


"말 돌리지 말고."


"다솜이가 누구야?"


"…나한테 고백한 애 말이야. 이틀 전에 얘기했었잖아."


"고백."


"그래, 고백."


"고백이라. 응, 맞아. 기억난다. 내가 분명 거짓말일 거라고 한 것도."


"…그래서 거절할 거라고도 했지. 네가 무슨 이상한 짓 하기 전에."


"그래서 나도 아무것도 안 했는걸?"


이번에는 손가락으로 내 볼을 꾹 누르면서 히죽거린다.

새빨간 눈동자가 조금도 깜빡이지 않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그 얘기는 예란이 때도 똑같았어. 넌 아무것도 안 했다고 그랬지."


"그야 난 예란이를 물지 않았으니까. 예란이를 문 건 나쁜 멍멍이잖아."


"들개 떼한테 사람이 산 채로 뜯어 먹힌 거 말이지."


"우우─ 난 다른 건 몰라도 멍멍이는 질색이랍니다. 따라서 류가을은 무죄 확정! 땅땅땅~."


"마지막으로 예란이를 만난 건 너야. 다솜이한테 들었어. 이것마저 거짓말이라고 하진 않겠지?"


"다솜이가 누구야?"


"우리반, 내 옆자리에 앉았던 녀석. 지금 사흘째 무단 결석 중. 원인은 아마 가을이 너."


"우와아… 나 완전 신뢰받지 못하고 있구나. 살짝 상처받았을지도."


노골적으로 한숨을 푹 쉬면서 비틀거린다.

예전에는 이 연기에 속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 와중에도 계속, 흰색 보도 블록만 밟고 있으니까.


"류가을."


"왜애?"


"예란이는 좋은 애가 아니긴 했어."


"그래?"


"도벽이 있었지. 내 샤프 말고도, 다른 애 물건을 종종 습관처럼 훔친다고. 분명 그건 나쁜 짓이야. 하지만 죽을 이유까지는 아니었어."


"그렇구나. 응. 알려줘서 고마워."


"……."


"죽을 이유까지는 아니다. 응. 그렇지. 하지만 우연한 사고를 완벽하게 피할 이유 역시 성립하지는 않아."


"우연이다."


"우연이야.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그날따라 멍멍이들이 배가 고팠고, 멍멍이 앞에 예란이가 지나간 것뿐이야. 그게 다야. 숨겨진 복선도 치밀한 플롯도 감춰진 의도도 뭣도 아무것도, 없어."


"그래. 그럼 다솜이는."


"다솜이가 누구야?"


발걸음이 멈춘다. 경고음. 건널목에 전철이 지나감을 알리는 신호.

가을이는 여전히 날 바라 보고 있다. 규칙적으로 울리는 경고음과 달리, 새빨간 눈동자는 단 한 번도 깜빡이지 않는다. 다시 차단기가 올라가고 바람이 멎어도 여전히. 변함없이.


"다솜이가 누구냐고."


"응."


"나는 네가 다솜이를 죽였다고 생각해."


"그래?"


"이유는 아마, 걔가 나한테 고백해서."


"그렇구나."


다시 걷기 시작한다.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가을이는 이번에도 흰색을 찾아서 폴짝 뛴다. 


"시체는 어떻게 했어."


"몰라. 내가 안 했으니까."


"이걸로 벌써 다섯명 째야."


"문제아가 이렇게 많다니, 너희 반 담임 선생님도 참 고민이 많겠네."


"그러니까 이제 슬─.""혹시 이것도 담임이 시킨 걸까?""아니야."


"그래?"


"그래."


"어쨌든 난 아니야. 다솜이가 누군지도 모르고, 그 애가 어떻게 됐는지도 몰라. 네가 찾고 싶으면 나도 도와줄게. 친구잖아?"


"좋아. 만약 네가 범인이 아니라고 치자."


"우우, 아니라니까."


"그럼 네가 생각하기에, 다솜이는 지금쯤 어디서 뭘 하고 있을 거 같아?"


"글쎄? 다솜이란 애가 어떤 앤지 알려주는 게 먼저 아닐까?"


"키는 너보다 작아. 단발이고,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나랑 같은 반이야. 성격은 활발한 편이고 친구도 두루두루 많은 편이야."


"가슴은?"


"콜록."


"가슴은 나보다 커? 작아?"


"…너보다 큰 애 찾기가 더 힘들지 않냐. 이 학교에서."


"에헤헤, 그렇게 칭찬하면 나도 모르게 주머니에서 초콜릿이 나오잖아."


"땡큐."


"유어 웰컴."


"어쨌든 다솜이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아앙~."


"뭐 해."


"아아앙."


갑자기 멈춰 서더니 입을 벌린다.


새빨간 혓바닥이 새하얀 이빨을 톡톡 건드리며 무언가를 재촉한다. 반쯤 깨문 초콜릿을 그 위에 얹자 손가락을 빼기도 전에 콱 닫혔다. 살짝 아팠다.


"야, 류가을."


"우물우물우물우물낼름."


"히익."


"잘 먹었습니다~."


"맛있게 드셨다니 다행이네요."


"살짝 달콥 쌉싸름하면서 비릿한 쇠맛이 나는 게 일품이었어요."


"산지 직송이니까요."


헛소리를 대충 하면서 침범벅이 된 손가락에서 흘러 내리는 피를 닦는다.

어지간히 세게 물었는지 속이 훤히 보인다. 아물려면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다. 한동안 샤워는 조금 힘들지도 모르겠다.


"집에 연고랑 밴드 사뒀으니까 가서 붙여."


"…열쇠 내놔."


"싫─ 어─."


"집에는 또 언제 들어간 거야?"


"넌 지금까지 먹은 빵의 숫자를 기억하냐!"


"난 밀가루 알레르기 있으니까 0개야."


"거짓말! 사흘 전에 롯데리아 가서 불고기 버거 잘만 먹었잖아!"


"한국인이라면 자고로 롯데리아를 맛있게 먹어야 하는 법이야."


"그 여자가 공짜로 사준다고 해서 따라간 거면서!"


"그치만 그냥 집에 가면 냉장고에 미네랄 워터밖에 없는걸."


"내가 만든 우리집 특제 마파두부도 있어! 왼쪽 세번째 아랫칸 김치 옆에!"


"가을아."


"아, 참고로 감사의 표시는 마우스 투 마우스로만 받겠습니다!"


"다솜이 지금 어딨어. 롯데리아에서 헤어진 뒤로 연락이 완전히 끊겼는데. 지금 네가 한 말을 봐선 분명 알고 있을 거 같거든."


"응, 몰라."


"내가 다솜이랑 같이 롯데리아에 간 거는 알면서."


"이게 바로 마법인 거야."


빙글빙글 돌면서 활짝 웃는다. 긴 갈색 머리카락이 바닷바람에 나부낀다. 그대로 뒤로 자빠지려고 하길래 어쩔 수 없이 손을 맞잡는다. 흰색 타일, 흰색 안전선, 그리고 흰색 내 신발. 차레차례 밟으며 춤을 춘다.


"좋아. 이제 흰 색이 없네. 어떻게 할 거야?"


"음~ 우선 이렇게 앉습니다."


"예."


"얍 얍."


"꾸엑."


아무렇지도 않게 구두를 벗는다. 참고로 내 운동화도 벗긴다. 안쪽의 흰 양발이 그대로 드러난다. 별로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에잇."


"크아악."


"에헤헤, 류가을는(은) 마법의 구두를 장비했다!"


"양말이잖아. 내 양말."


"자, 대신 내 스타킹을 줄게."


"필요없어."


"쿠웅."


"아니, 애초에 사이즈 안 맞잖아."


"사랑과 우정의 힘으로 극복하는 거야!"


"기합과 근성의 힘으로 그냥 신발 신을게."


"시러시러시러시러시러어!"


"야, 아니, 잠깐, 야, 잠… 하아……."


말릴 틈도 없이 자기 스타킹을 찢어 버린 가을이는 그걸로 내 맨발을 칭칭 감싸 묶었다. 의외로 촉감이 좋은 게 또 아이러니했다. 분명 그럴 리는 없는데 뭔가 좋은 향기도 난다. 미스테리다. SF다. 오컬트다.


"이제 난 어디든 갈 수 있다!"


"적어도 빨아서 돌려주길 바랄게."


"그럼 그럼 물론이지! 자고 일어나면 머리맡에 잘 개서 놓여 있을 거야."


"가능하면 다솜이를 어떻게 한 건지 덤으로 알려주면 고맙겠어."


"정말, 왜 아까부터 걔만 신경쓰는 거야? 내가 바로 여기 있는데. 설마 그 고백 받아들일 생각이었어?"


"아니. 애초에 네 반응을 보려고 한 거였으니까."


"응?"


"요새 네가 좀 잠잠해졌길래. 한 번 시험해 봤어."


"으~음?"


"그런데 정말 사라졌지 뭐야. 사흘 동안. 아직도."


"놀라운 우연이네."


"언제까지 시치미 뗄 생각이야?"


"동사무소에 혼인신고서 제출할 때쯤?"


"어이."


"참고로 서류는 내가 미리 뽑아 놨어!"


"그게 왜 교복 주머니에서 튀어 나오는 건데."


당연하다는 듯이 찍혀 있는 내 도장은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그래도 저대로 있으면 정말 동사무소에 제출할 것 같아 뺏으려 했지만, 마법의 구두(아님)을 신은 가을이는 무적이었다. 아무런 제약 없이 폴짝 폴짝 순식간에 내 손아귀를 벗어난다.


"나 잡아 봐~ 라!"


"저게 진짜…."


한숨을 쉬면서 나도 그 뒤를 따라 달리기 시작한다.

그래 뭐, 오늘 아니면 내일 이어서 물어보자. 어쩌면 예란이처럼 연안부두 어딘가에서 떠다니다 발견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언젠가는 찾을 수 있을 거야.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