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보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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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방뚜방.


내 눈앞에 있는 은백발 소녀가 이리로 걸어오는 모습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단어다.


"음, 그 정도면 예의바르구나. 요 몇 년 간 우리의 모습만 보면 폐렴에 걸린 것마냥 헉, 허억 대던 놈들을 많이 봐서 그런지, 그 정도면 양호하다 사료되는구나."


헉 허억? 그놈의 농쭉단의 마수가 여기까지 펼쳤구나! 그런데 가만, '여기'? 여기는 어디지?


"이곳은 틈새. 현실과 몽상의 틈새이자, 이승과 저승의 틈새요, 세와 세 그리고 계와 계 사이의 틈새이기도 하니라. 그리고 우리는 틈새에 거하는 자. 너희들의 언어로는 신, 또는 그에 접한 존재일 터."


아하. 어...... 아하는 뭔 아하야 이런 빌어먹을,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지. 그리고 나 분명히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었는데? 설마 내 생각이 다 들리는, 아니 들리시는......?


"말했잖느냐. 현실과 몽상의 틈새라고. 이곳에서는 마음으로써 뜻하는 바가 곧 몸이 뜻하는 바이며, 몸으로써 움직이는 바가 곧 마음이 움직이는 바이니라."


그으으으렇군요. 뭔가 무섭네요. 그런 무서운 곳에 제가 왜 와 있을까요.


"상황판단이 느린 편이구나. 딱한지고. 우리가 조금 도와주겠느니라."


은백색 소녀, 아니, 신의 자그마한 손바닥이 어느새 내 이마에 얹혀진다. 그리고 돌아오는 기억.


아.


나 죽었지. 트럭에 치여서.


트럭에 치여서 사후세계 같은 데 온 뒤 신을 만난다. 그다음은 뭐 이세계 전생인가? 거참, 지구작가 이 양반 이야기 전개가......


아 잠시만요. 그, 신님한테 뭐라 하려는 건 아니고요.


"아아, 신경 쓸 거 없다. 우리는 애초에 '지구작가'가 아니니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너가 죽은 것은 어떤 초월적 운명이 아니라, 인간의 죄업일 뿐이다."


그건 그거대로 기분이 묘하네요. 신은 인간의 일에 간섭하지 않는다, 그런 겁니까.


"잘 알고 있구나. 다만 이곳에 온 다음부터는, 인간의 일이 아니기에 우리가 내려왔을 뿐."


그렇군요. 그러면...... 저 이세계 가는 건 맞나요?


"다른 별의 다른 행성에 다시 태어날 뿐이다. 그저 너희가 현 시점에서 볼 수 없을 정도로 머나먼 곳에 있을 뿐. 너희가 별세계라고 칭하는 그 모든 곳들은 이 우주 안에 있느니라."


그건 신선하네요. 그럼 마법 같은 것도 없겠네.


"만국의 율법이 다르듯이, 충분히 멀리 떨어진 세계라면 물리 또한 다르니라. 너희가 비현실과 비일상이라 부르는 것들이 현실과 일상인 세계들은 많도다."


오. 그러면 그런 데로 보내주세요. 아, 혹시 직접 보내주시지는 않고 제가 직접 길을 개척해야 한다든가?


"우리가 그대들, 어린아이들과 이리 길게 대화한 것은 실로 오랜만이니라. 그로써 우리의 심상은 세 번 고양되었다. 그러니 아이야, 네게 세 개의 선물을 주겠느니라. 첫째는 네 이전 삶을 온전히 기억하는 것이다. 둘째는 이곳 틈새에서 우리와 나눈 담화를 기억하는 것이다. 그리고 셋째는 온전히 너의 새로운 삶을 이롭게 하기 위한 것일지니, 아이야, 너가 원하는 바를 말하라."


...... 죽음, 이요.


"죽음이라. 우리가 아까 네 인생을 살펴본 바, 이른바 상대에게 죽음을 내리는 능력을 말하고 있구나. 좋다. 그리 주겠다."


...... 왜, 이런 걸 요구했는지는, 안 물어보십니까?


"말했잖느냐. 우리는 너의 기억을 살펴보았다. 우리는 너가 향유한 창작물들을 같이 향유했고, 또한 너가 그러한 창작물들에 빠지게 된 연유가 담긴 너의 인생을 살펴보았노라."


그렇, 그렇다면.


"아이야, 우리는 네가 우리를 - '신'을 원망하고 미워하는 것 또한 알고 있느니라."


!


"생과 사를 관장한다는 신은 어째서 사람을 데려가는가. 어째서 악인들을 살려두고, 어째서 선인들을 죽이는가. 어째서 원수를 살려두고, 어째서 은인을 죽이는가. 어째서...... 나의 가족을, 데려가셨나이까."


......


"아무런 줏대도 없는 신 따위에게 생사부를 맡기겠느니, 차라리 내가 그 힘을 가진다면. 그것이 너의 소원 아니더냐."


...... 아무리 그래도, 어릴 적 망상입니다. 이제는 세상만사가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것 정도는 알아요.


"말했잖느냐. 이곳은 현실과 몽상의 틈새요, 우리는 틈새에 거하는 자다. 너의 망상을, 우리가 보았노라. 너의 몽상을, 우리가 보았노라. 너의 아집(我輯)과 아집(兒輯)을, 우리가 보았노라."


신이 한 점의 빛이 되어, 나에게서 점점 멀어지며 위로 올라가고 있다.


아니다.


신은 그 자리에 있을 뿐. 내가 한 톨의 먼지와 한 줌의 핏물이 되어, 점점 떨어지고 있다.


"그러니 아이야, 새로운 세계에서 부디 너가 원하는 바를 거두거라(reap). 빈곤한 아이야, 너는 이제 풍요의 수확자(reaper)가 될지어다."


그렇게 나는 이세계에서 즉사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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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원?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