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나드, 나의 상인 친구! 도시는 잘 갔다 왔어? 무슨 소식은 없고?"


"좋은 거 하나랑 나쁜 거 하나 있는데 뭐부터 들을래?"


"당연히 좋은 거부터지."


"이번 콜로세움 경기는 당나귀 머리한테 걸었는데, 덕분에 재미 좀 봤어. 당나귀가 챔피언을 꺾었거든."


"염병할 그건 너한테 좋은 거고."


"나쁜 소식은 뭐야?"


"평민들 세금을 더 거둘 거래. 거기에 무슨무슨 법을 새로 만들어서 모든 농민들은 가진 재산과 소유한 땅을 복잡한 서류 써서 신고해야 한다나 뭐라나. 안 그러면 전부 압류라나 봐. 원인은 뭐... 알지? 또 왕이래."


"빌어먹을 노인네."

"썪을 양궁둥이."

"망할 미치광이."


상인의 얘기에 테이블에 둘러앉은 모두가 썪은 표정으로 욕설을 뱉었다.



램스버텀 오브 소버린.


형들이 용 잡다가 모두 죽어 운 좋게 왕이 된 이 늙은이는, 왕국 역사상 최악의 왕이다.


나라 경제나 치안을 개판내는 건 기본에 외교도 몇십년째 동맹으로 잘 지내던 국가를 적으로 돌릴 만큼 답이 없는데다, 사생활도 문란하기 짝이 없어 사생아도 여럿.


거기에 평민 혐오가 심해 매번 평민들의 고혈을 쥐어짜내는데,


특히 몇년 전 평민 어머니를 둔 막내 공주가 쿠데타를 시도하다 실패한 이후론 그 정도가 더 극심해져, 온갖 법과 제도로 평민들, 특히 농민들의 삶을 더 힘겹게 만들고 있다.



덕분에 농사로 먹고 사는 우리 마을은 입에 간신히 풀칠만 하는 상황이고, 


"그러고보니 쉬브르, 너 밭을 기사단에게 뺏겼다며? 괜찮냐?"

"벌금도 물었다, 시발."


난 풀칠도 못하게 생겼다.


"그 뭐시기냐, 토지 회수단이랬나? 왕국 땅은 전부 왕실의 것인데 왜 평민 같은 것들이 소유한 땅이 있는 거냐면서 요새 닥치는대로 뺏고 있다던데."


"거기다 지금껏 부당하게 땅을 소유한 대가로 벌금도 내야 한댄다."


"그거 서류 내면 된다던데 안 냈어?"


"시발, 글자를 알아야지 쓰든가 말든가하지. 내가 쓸 줄 아는 단어는 이게 전부라고."



테이블에 흘린 스튜를 포크로 끄적여 아는 단어를 전부 썼다.


[쉬브르, 엄마, 아빠, 빵, 채소, 골드... 머저리, 거시기]


"엄마, 아빠, 빵, 거시기는 알겠는데 나머진 뭐라 쓴 거냐."


"난 채소랑 거시기만."


"난 머저리랑 거시기 밖에 모르겠다."


"에휴, 이 거시기 까막눈 새끼들."


농민들은 먹고 살기 바쁘다. 그렇기에 대부분 글은 개뿔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최소한의 단어만 알거나 까막눈이니, 서류 쓰란건 닥치고 뺏겠다는걸 돌려 말한 것에 불과하다.



"엿 같은 양궁둥이. 그 새끼 엉덩이 한번만 걷어차면 소원이 없겠네."


"나도 그 놈 면상 한번을 팰 수만 있으면 창관 평생 끊을 자신 있다."


"자, 자. 다들 술이나 마시자고. 오늘은 내가 쏠테니. 늘 하던 거나 외칠까?"


버나드가 친구들의 빈 잔에 맥주를 따르며 잔을 들어올리자, 다들 따라서 잔을 올리며 늘 하던 건배사를 외쳤다.


"""양궁둥이 왕 망해라!"""


.

.


"망할... 세상... 다 뒤져르아아..."


알코올에 절여진 몸을 이끌고 침대에 머릴 박았다.


'이제 어쩌지.'


당분간은 비상금으로 사먹고 이웃에게 빌린다 해도 금방 빈털터리가 될테고, 밭을 뺏겼으니 농사를 지을 수도 없다.


버나드 따라 상인이나 할까? 아니면 여관 청소?

그것도 아니면 이웃집에서 일할까. 

참, 남작의 땅 빼고 다 뺏겼지.



"빌어먹을 귀족들... 대체 뭘 잘못했다고 못 괴롭혀 안달인 거야..."


왕을 따라 귀족들의 횡포도 점점 심해졌고, 왕을 위한 감사의 표현이라며 세금을 더 거두는 놈부터 하인들을 이용해 집집마다 왕이나 귀족들 욕하는 자가 있는지 감시하는 놈들까지 있다고 한다.


당장 우리 마을을 다스리는 남작도 왕을 향한 감사함을 표하라며 작물들을 더 거둔다. 물론 실제로 왕에게 보내는 건 일부도 대부분 본인이 꿀꺽하지만.



"사촌 따라 옆나라도 튈까... 아 씨, 그러기엔 여행비가 없는.."


똑, 똑-


"거, 누구 없소!"


어두컴컴한 밤, 늙고 거친 목소리가 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이 시간에 누구야..."


알코올에 깨질듯한 머리를 잡고 문을 열자, 누더기를 걸친 노인이 서있었다.


"지나가던 길에 묵을 곳이 없어서 그런데 하루만 신세져도 되겠나?"


딱 봐도 허름한 차림의 나이가 지긋한 노인은 묘하게 당당하고 건방진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노인께서 이 한밤중에 왜..."


"수도승으로서 순례중이었네. 그럼 들어가지."


아직 들어오라고 하지 않았는데도 노인은 날 지나쳐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곤 잠시 둘러보다 내 방의 침대를 보더니 대뜸 누더기를 이불 삼아 침대에 누웠다.


"딱딱하고 냄새나지만 나쁘진 않군."


"...."


시발 뭐야 이 미친 노인네는.

순례중인 수도승이랬나? 아니, 수도승이 저래도 되는 거야?


노인의 어이없는 행동과 술기운에 뇌가 완전히 정지하자, 노인은 어느새 눈을 감으며 말을 걸었다.


"정말이지... 오늘 너무 피곤했네. 설마 모두가... 왕을 쓰레기라고 여길 줄이야."


"...예?"


"이 ㅁ.. 아니, 램스버텀 오브 소버린말일세. 가장 뛰.. 아니 쓰레기라고 소문이 자자하지. 안 그런가?"


갑자기 왕에 대한 모욕을 시작하는 노인.



'진짜 뭐지. ...가만.'


지금 보니, 누더기 안에 입은 옷은 생각보다 괜찮아 보인다. 수도승이 입을 옷은 절대 아니고, 귀족이나 쓸 고급진 천으로 된 옷.


거기다 발은 또 어떤가.


'시발 신발 신고 침대에 누웠네.'


딱 봐도 비싼 가죽으로 만든 샌들이 분명하다.



'비싼 옷 입은 수도승이 대뜸 남의 집에 찾아와 왕을 욕한다? 설마...'


귀족이 하인을 보내 시험한다는 소문이 사실이었구나.


'혹여나 같이 왕을 욕하면 그걸 빌미 삼아 벌금 뜯고 막노동 굴릴려는 거겠지.'


밭 뺏긴것도 서러운데 시험까지 하다니, 술에 취해 이성이 마비된 머리는 분노로 차올랐고, 통쾌한 복수를 원했으며, 즉시 시행했다.


"이봐 할배, 방금 뭐라 했어?"


"..왕이 쓰레기라고. 모두가 아는 쓰레기. 그래,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역시, 모두가.."


"이런 버러지 같은 놈!"


노인이 왕의 욕을 하기 무섭게 냅다 들어 방바닥에 집어던졌다.


"감히 왕을 모욕하다니!"


"무,무,뭣?!"


"나라를 위해 힘 쓰고, 국민들을 위해 매일 같이 노력하시는 위대한 램스버텀을 모욕하다니 이런 100번 죽어 마땅할 놈!"


일어서려는 정강이를 걷어차 다시 넘어뜨린뒤, 그동안 왕과 귀족들 때문에 쌓인 울분을 담아 사정없이 짓밟고 걷어찼다.


왕을 모욕했기에 때린다. 이러면 귀족들이 뭘 할 수 있을까? 사형되도 모자를 것들을 팬 것뿐인데 뭘 할 수 있냐고!


"ㅈ,잠만! 자네도 왕을 싫어하지 않는가?"


"역겨운 놈! 왕을 싫어하는 머저리가 어찌 왕국의 국민이란 말이냐!"


"그,그렇단건 정말 왕을...?"


"오냐, 그 더러운 귓구멍에 똑똑히 들려주마."


놀란 표정을 지은 노인의 두 귀를 쭈욱 잡아당기자 노인은 비명을 지르며 따라왔다.


"난, 램스버터 오브 소버린 폐하를 그 누구보다 존경하며,"


창문을 열고,


"그 분을 위해선 내 밭 뿐만 아니라 집과 전재산, 목숨까지 바칠 각오가 됐다,"


귀를 잡은 팔에 힘을 제대로 준 뒤,


"이 망할 노인네야!!!"


그대로 있는 힘껏 창 밖으로 집어던졌다.



"으아아아...!"


힘 없이 날아간 노인은 거칠게 땅바닥에 몸을 박은 뒤 몇번 구르다 바위에 부딫히곤, 그대로 축 늘어졌다.




너무 세게 던졌나? 설마 죽은 걸까?


"썪을 감시자... 또 오기만 해 봐..."


불행히도 그런 걱정을 하기엔 만취한 뇌에 한계가 찾아왔고, 난 바로 그 자리에서 골아떨어져 다음날 낮이 되서야 깨어났다.



"네 놈이 폐하를 집어던지 평민이냐?"


그리고 아침 해 대신 기사단장의 칼을 맞이했다.


"네 놈을 국왕 폐하 살인미수로 체포한다."


시발...?


.

.


"폐하, 너무 위험합니.."


"그만! 내가 내 나라의 국민들 좀 보자는데 뭔 말이 그리 많느냐!!!"


왕국의 57대 왕이자, 최악의 왕 램스버텀 오브 소버린.


태생적으로 멍청하고 불안전한 사고가 노화로 더욱 악화된 이 노인은, 어느날 갑자기 국민들을 보기 위해 정체를 숨기고 왕국을 돌아다녔다.


"램스버텀? 그 개자식은 선대 왕들한테 감사해야 해! 그들이 쌓아온게 없었으면 왕국은 이미 5번은 멸망했을 거야!"

"그 새끼만 없어도 사는게 덜 힘들텐데... 에휴, 갑자기 드래곤이 나타나 왕만 불태우면 소원이 없겠네."


그리고 자신을 향한 평민들의 솔직한 반응을 보게 됐다.


평민들의 반응엔 그러려니 했다. 미개한 것들이 건방지게 구는 건 늘 있는 일이라면서.


"국왕? 아이고, 말도 말아라. 암만 생각해도 왕국은 그 놈 세대에서 망할 거야."


허나 믿었던 귀족들의 반응엔 큰 충격을 받았고,


"하하하, 맞는 말이야! 그 새낀 등신중에서도 등신이지!"

"이야, 수도승님께서 뭘 좀 아시네. 여기, 서비스로 스튜 한 그릇 더 드릴게요."

"뭘 당연한 소릴 당연하게 하십니까?"


왕을 헐뜯고 모욕해도 모두가 동의할땐 80이 넘는 나이가 부끄럽게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내가... 진짜 그 정돈가?"


자신감과 자존감이 떨어질때로 떨어져 바닥을 긴 왕은 어느 평민의 집에 머물렀고,


"이 타락한 수도승!!!"


처음으로 자신을 욕하지 않는 이를 만났다.

아니, 욕하지 않는 것을 넘어 자신의 부모가 모욕당한 것처럼 화내기까지.


'내 자식들도 저러진 않을텐데...!'


왕은 평민의 손길에 날아가며 진짜 충신을 드디어 만났다고 생각했다.


.

.


"그대가 날 위해 분노한 그 모습, 정말 인상 깊었다. 모든 평민이 자네 같다면 좋을 것을..."


'모든 평민이 나처럼 굴면 뒤질텐데.'


목끝까지 올라온 말을 다시 삼키며 고개를 수그렸다.


"ㅈ,ㅈ,ㅈ,정말, 죄,죄송합니다 폐하. 제가 죽을 죄를..."


"하하, 아닐세, 아니야. 오히려 고마울 따름이지. 이 상처도 상처보단 자네가 내게 주는 훈장같군. 허허."


왕이 부러진 정강이를 가리키며 웃었다.


"오늘 자네를 부른 건 다름이 아니라 상을 주려는 거네. 자네에게 남작의 자리와 약간의 금, 그리고... 여봐라."


"네, 폐하."


왕이 손짓하자 하인이 사슬에 묵인 여인을 한명을,


"쯧, 아비를 보는 눈이 그게 뭐냐. 이 배은망덕한 것."


쿠데타에 실패한 막내 공주를 끌고 왔다.


"친자식임에도 자네의 손톱만큼도 못한 성품을 가진 쓰레기 같은 내 딸일세. 비록 성품은 고약하나, 아는 것이 많고 생긴 것도 봐줄만하니 여러모로 유용할 걸세. 자네 맘대로 하게."


"...."


"뭐하느냐! 빨리 네 주인에게 인사하지 못할까!"


"..안녕, 하십니까... 새로운 주인이시여..."


공주가 오물을 보는 듯한 눈으로 날 노려봤다.

사슬만 풀리면 당장이라도 왕과 함께 날 죽일듯한 살기.


'...시발.'


아무리 생각해도 좆된 거 같다.


.

.


대충 왕 싫은 주인공

우연히 왕 욕하는 노인을 귀족이 보낸 하인으로 생각하고 화풀이


알고보니 진짜 왕



멍청한 쓰레기 왕

램스버텀(숫양의 궁둥이) 오브 소버린(금화의 일종)

자기를 향한 국민들의 존경심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 정체 숨기고 평민들 만나고 다니는데 왕 욕을 해도 옳다구나 맞장구치는 이들에게 큰 충격 받음


그러던중 왕을 향한 모욕에 진심으로 화낸 주인공을 보고 감격

자기 최측근으로 삼음


대충 주인공은 왕에게서 벗어나려고 하지만 그럴수록 왕을 욕하는 이들이나 반란군을 붙잡게 되고 도움됨

왕은 매번 감격하며 더더욱 주인공을 옆에 두고 제대로 된 왕이 되자고 다지며 점점 좋은 왕 됨


공주와 협력해 쿠데타도 꾸며보지만 매번 실패하고 왕을 성군으로 만들게 됨


어딘가 자꾸 이상하게 꼬이는 코미디 착각물


대충 이런 거 써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