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글은 약간의 영화적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


영화를 즐겨보는 것이 취미였던 장붕이는 요근래 나온 영화 '파묘'의 리뷰 영상을 올린 유튜버의 댓글란에 소신발언 한마디를 남겼다.


'아니 솔직히 줄거리가 말이 안되잖아. 일제시절에 민족정기를 끊는다고 산 곳곳에 말뚝 박은게 그런일이 일어난 원인이라고? 그거 진즉에 역사적으로 일제가 토지측량을 하던 것으로 밝혀진지가 언제인데 진즉에 반박된 미신을 영화 설정이라고 집어넣은거임? 이건 그냥 반일팔이 흥행 할려고 억지로 집어넣은 설정이지'


장붕이의 댓글 하나에 무수히 많은 답변이 달렸다. 


더러는 장붕이의 의견에 동조를 하기도 했을뿐더러 또 다른 사람들은 그게 뭐가 문제냐, 재미만 있으면 되는거 아니냐는 의견도 달렸다.  


이윽고 장붕이가 올린 댓글란은 일뽕이랑 국뽕들까지 몰려와 토착왜구, 조센징 같은 저열한 토론과 욕설이 오가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난장판이 된 댓글란에 문득 장붕이의 눈에 띄는 대댓글 하나


'사실 일제가 박아놓은 말뚝은  한반도에 있던 뱀파이어들을 봉인하기 위한게 아닐까요?'


누가봐도 코웃음이 절로 피식 나올정도로 생뚱맞은 질문, 그러나 국뽕과 일뽕의 개싸움으로 얼룩져진 난장판에서 그나마 가장 정상적이고 유머러스한 댓글이였다 .


'아니ㅋㅋ 상식적으로 뱀파이어가 존재한다는 건 둘째치고 뱀파이어가 조선에 왜 있겠음?'


'다른 나라도 아니고 마늘과 쑥 먹고 단련된 웅녀의 자손들이 세운 나라한테서 뱀파이어? 뱀파이어도 무서워서 여기는 안온다ㅋㅋㅋ' 


'애초에 뱀파이어가 있었다고 해도 사람피 빨다가 걸려서 능지형 당하느니 선지국밥 먹으면서 조선인이랑 동화되었을 덧'


그 댓글 하나에 반은 농담, 반은 비꼬는 식으로 수많은 대댓이 달렸다. 


그러나 한낱 유머로 여기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뱀파이어 댓글을 단 사람은 사뭇 진지해보였다.


'아니 생각을 해봐요. 일제강점기 이전만 해도 조선에는 수많은 괴변(怪變)들이 많이 있었어요. 이는 실록과 야사에도 기록되어있던 엄연한 팩트죠. 그런데 일제가 산 곳곳에 말뚝을 박고 난 뒤 그런 괴변이 현저히 줄어들었어요'


'뿐만 아니라 일제가 산에 말뚝을 박던 시점이랑 해수구제사업을 하던 시기가 정확히 일치해요. 그 뒤로 아까 말한 괴변의 수가 현저히 줄었고요. '


'그리고 개화기 이후 조선에는 유독 주변국들에 비해 수많은 기독교 선교사들이 왔었고 한반도에서 기독교 세력을 늘렸죠. 당장 평양 부터가 동양의 예루살렘이라 불릴만큼 수많은 기독교 신자가 있었잖아요? 사실 그들은 단순한 선교사가 아니라 조선에 있는 뱀파이어들을 소탕하기 위해 헌 뱀파이어 헌터 목사님들이였던거에요'


처음에는 나름 어그로성 유머글 치고는 신박했기에 다들 어느정도 맞장구 치고 호응 해줬지만(몇몇 국뽕이랑 일뽕분탕들 제외하고) 당연히 모두들 그의 말에 진심으로 귀기울여 듣는 사람은 없었고 이내 그의 댓글을 어느덧 저 아래로 묻히게 되면서 서서히 기억속에 잊혀져 갔다... 

  

------------------------

같은 시각 경상남도 함양군 소백산맥 어딘가


"휴, 이게 드디어 마지막으로 남은 말뚝인건가?"


작업복 차림의 남성이 전동드릴을 멈추고 땅 속 깊숙히 묻혀있는 쇠말뚝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자기 소유의 산에 박혀져 있던 십수개의 쇠말뚝을 평생토록 증오해왔다. 


이 빌어먹을 쇠말뚝들 때문에 땅값이 항상 똥값이라서 항상 울상만 지을수 밖에 없었다.


물론 그가 이 쇠말뚝을 처리하려고 시도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였다. 그러나 어찌나 깊고 단단하게 박아놨는지 중장비를 동원하지 않고서는 파내기도 힘들었을 뿐인데다가 나이 지긋한 주변 동네 어르신들은 이 쇠말뚝을 빼면 안좋은 징조가 든다면서 쇠말뚝을 파내려고 할때마다 그한테 구박을 줬기 때문이다. 


그러나 며칠전에 왠 갑부한테서 자신의 산을 골프장으로 만들고 싶다는 제의를 받게 되었을때 그러한 것들은 더이상 문제가 될 수 없었다.     


"하여튼 쪽바리랑 늙다리 놈들은 나한테 해준것도 없으면서 내 인생에 걸리적 거리기나 하고 말이야."


땅속에 묻혀있던 마지막 쇠말뚝이 온전히 모습을 드러내자 그는 쇠말뚝을 있는 힘껏 들어올렸다.


"ㅆㅂ 존나게 무겁네"


흙이 뒤집히고 나무뿌리가 뽑히는 소리가 뒤섞임과 함께 흙먼지 묻은 쇠말뚝이 땅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앓던 이가 빠지듯이, 쇠말뚝을 뽑아 해치움으로써 찰나의 기쁨을 느끼끼도 전에 


그는 지금 뭔가가 매우 좆되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우선 첫번째는 갑자기 시작된 지진이였다. 


쇠말뚝을 뽑음과 동시에 땅이 우르릉거리며 요란을 떨더니 이내 크게 진동을 내며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두번째는 산 정상 꼭대기 에서부터 점점 내려오는 거대한 균열이었다. 


균열을 점점 그 규모가 커지고, 그리고 사이가 벌어지기 시작하였다. 


그 여파로 산사태가 발생하였고 미처 피하지 못한 그 사내는 그대로 흙에 생매장 당하였다.


마지막으로 세번째는 그 균열 사이에서 수많은 무언가들이 날아오르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다름아닌 박쥐였는데 한국에서 멸종위기로 저 깊은 산골 동굴이 아니고서야 보기 힘든 것이 지금 수백, 아니 수천, 어쩌면 그것보다 더 많은 개체가 균열에서 나와 자유를 누리려는 듯이 하늘을 향해 힘껏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하늘을 수놓은 수많은 박쥐때들은 매우 불길하고, 음습하고 사악한 울음소리를 내며 보름달이 뜬 달빛 아래, 그들만의 교향곡을 연주하고 있었다....


------------------------------

그리고 여기서 이제 장로회가 이 사실을 눈치채고 전국의 목사들한테 소집령 내린 뒤 무장시켜 사회속에 침투한 뱀파이어들 잡아내는 뱀파이어 헌터물이 되는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