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짧은 소개글

<그녀가 인간을 보는 방법>은 전작인 '최강의 군단'의 홈페이지에 게재되었던 공식 단편 소설로, 플레이어블 캐릭터인 '오드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음.

굳이 따지자면 시간 순서 상으로는 <인간의 증명>보다 이전. 그리 중요한 사실은 아님.

이 글은 전작을 애정했던 업로더가 원문을 복사+붙여넣기 한 뒤 간단한 오타만 수정한 채 개인 소장했던 것임.

나이트 워커와 맥이 흥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카라이브에 업로드함.




<그녀가 세상을 보는 방법> 6장

 

핸드폰을 내려놓고 총을 사무실 서랍에 넣었다. 거기엔 이미 총이 한 자루 있어서 잘 어울렸다.

책상 뒤쪽에 쌓아 놓은 옷더미에서 내일 입을 옷을 뽑았다. 가격이 많이 나가는 것들은 대부분 팔았다.

드레스 룸을 가득 채우던 때에 비하면 부피가 많이 줄었다. 구두는 잘 팔리지 않아서 흥신소의 신발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녀가 사무소 신발장 가득 힐과 펌프스와 플랫들을 가지런히 꽂아 넣는 걸 보던 사장은 한숨을 쉬며 맥에게 말했다.

 

“아따 이 여자 뭐하던 여자냐?”

“총을 잘 쏴. 침착하고. 보디가드로 생각하면 네 목숨값은 할 거다.”

“내 목숨값은 헐값이니끼, 월급은 아주 낮게 쳐줘도 되겠구만.” 사장은 끅끅거리며 웃었다. 

일은 전혀 힘들지 않았다. 사장이 어딘가 차를 몰고 가서 마냥 죽치고 있으면 총을 허벅지 사이에 숨기고 멍하니 있으면 된다.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사진을 연방 찍는다. 그래도 멍하니 있으면 된다.

그러다 차를 몰고 사무실에 돌아오면 적당히 청소도 하고 사진 정리도 하고 그러다 잠들면 하루가 지난다.

다른 사람을 상대할 일도 없어서 좋다. 사장도 가끔 혼잣말처럼 얘길 하는 걸 빼면 말수도 거의 없다.

그나마 대꾸를 안 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제가 정말 하는 일이 있는 건가요?” 한번은 먼저 이렇게 물었다.

“가끔. 정말 위험한 일이 생긴다야. 전에 폭력간부 놈의 정부인 줄 모르고 사진을 찍었는디 말여 양복놈들헌티 몰매 맞아 죽을 뻔 했지비. 어제 그노마 녀석이 막아주지 않았으면 거기서 인생 종쳤을 기야.”

 

오후에는 반차를 쓰고 의사에게 연락해서 첫 상담을 다녀왔다.

사장은 일한 지 얼마나 됐다고 휴가라는 기냐-라고 투덜댔지만 허락은 해 줬다.

의사는 꾸부정하게 서 있는 모양이 50대 후반으로 보였다. 동그란 안경을 끼고 조용조용한 말투로 얘기하는 노인이었다.

남편은 세계 지식인 포럼에서 만났다고 했다. 도시국가 셋이 모여 세계 지식인 어쩌구 하는 게 웃기지? 하며 호호 웃었다.

느리고 나긋나긋한 말투가 여성스럽기까지 했다. 남편이 그러던데 부인이 특이한 사람이라 하대하며 얘길 시작했다.

 

“어떤 문제로 오셨어?”

“남편이 저보고 사이코패스라고 가보래서요.”

그 말을 듣더니 오호호- 하고 감탄사를 뱉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데?” 존칭어를 좀 쓰는 듯하더니 바로 반말이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잘 몰라서 그런 거 같아요. 제가 그들을 아프게나 슬프게나 화나게 하거나 하죠.”

의사는 안경을 연신 올리며 뇌 MRI 사진을 살펴보았다.

“사이코패스는 주로 전두엽에 손상이 생겼을 때 생기는데 부인은 그런 건 안 보여. 살아온 얘길 해 봐”

“특별할 건 없어요. 학교에서는 말이 없어서 도도한 아이로 취급받았죠. 졸업하고 몇몇 회사를 다니다가 결혼한 거에요. 그게 제 인생이죠”

“부모님은 어떤 분이셨어?”

“몰라요. 어렸을 때 돌아가셔서 양부모 밑에서 자랐거든요.”

“흠 그럼 양부모님들은?”

“그분들도 제가 6살 때 돌아가셨어요. 강도가 들어서 두 분 다 살해되셨대요.”

“남의 얘기처럼 하는데, 본인은 그 자리에 없으셨나?”

“자고 있었어요. 그즈음의 기억이 없어요. 워낙 어려서라서 그런지.”

“감정을 잘 모른다는 얘길 더 해봐.”

의사가 펜을 들더니 종이에 서걱서걱 뭔가를 쓰기 시작했다. 그전의 회사들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을 얘기했다.

한참 듣던 의사가 물었다. “자신의 감정은 어때? 뭔가를 갖고 싶다거나. 괴롭다거나 그런 건?”

“그런 것도 없어요. 배고픔 같은 거, 맞고 나면 몸이 쑤시는 감각들은 있죠”

“그런 건 몸이 반응하는 거니까. 감정이라고는 할 수 없는데. 호옴.” 또 서걱서걱 펜을 놀리더니 그 종이를 쑥 내밀었다.

“이걸 들고 약국에 가 봐. 약물치료를 시작해 봅시다. 감정의 변화가 있으면 다음 상담 때 얘기해 줘 봐요”

그녀는 문을 닫고 나와 슬쩍 읽어보았다. 일정한 각도로 꼼꼼하게 기울어진 글자들이 보였다. 대부분 처음 보는 단어들이었다. 

 

병원 앞에서 버스를 탔다. 다 팔고 딱 하나 남긴 백이 에르메스여서 괜찮을까 싶었는데 알아보거나 하지도 않는 듯했다.

그래도 버스에 오르자 사람들의 눈길이 쏟아졌다. 2년간 차를 타고 다녀서 버스노선은 거의 잊었다 생각했는데 아직 기억이 남아있다.

중학교를 다니던 노선이다. 고등학교 가서야 키가 쑤욱 커졌다. 당시엔 조그만 아이였다.

누구에게도 다가가지 않고 혼자 떨어져 있는 조그만 소녀.

요금을 몰라 버스 기사에게 물어봤다. 그리 많이 변하지 않았다.

그때 그 버스가 도시의 길바닥에서 몇 년의 시간을 보낸 것 같았다.

창밖을 멍하니 보다 보니 사무소 근처다. 마트에 들러 빨래 건조대와 빵을 사 들고 모퉁이를 돌았다.

조그만 여자아이가 쪼그리고 앉아서 혼자 소꿉놀이를 하고 있었다. 이건 엄마, 이건 아빠. 하면서 조곤조곤하게 속삭인다.

어른이 다가와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녀는 몸을 살짝 비틀어 방해하지 않고 지나갔다.

 

누군가 골목으로 후다닥 뛰어 들어와 그녀를 덮쳤다. 몸을 비트느라 시야에 들어온 게 다행이었다.

빨래 건조대를 집어 던져 공간을 만들고 백을 더듬어 총을 꺼냈다.

겨누고 보니 남편이었다. 얼굴이 일그러지고 뺨과 손등과 회색 셔츠 곳곳에 핏자국이 보인다.

“너...” 그의 눈의 초점이 맞지 않는다. 이건 술에 취했을 때, 정신을 잃을 때, 잠에서 깰 때의 표정인데 지금 무엇에도 맞지 않는다. 모르는 표정은 조심해야 한다.

“이제 더 볼 일 없을 텐데?” 총으로 물러나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만 좀 따라다녀. 나도 죽일 셈인가?”

“무슨 소리야?”

“휘트먼을 죽였잖아. 눈을 파서.”

“눈을 파긴 했는데.. 죽었나?”

“죽었지. 넌 정말로 사이코패스였어. 처음부터 그랬어. 결혼도 돈 때문이지? 내가 변호사와 상의하지 않았으면 날 죽이고 내 재산을..”

“시끄러워요 방해되잖아요.”

아이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여자애가 고개를 들어 남편을 쳐다보고 있었다. 

“저리 꺼져.” 남편이 소리 질렀다. 아이는 멍하니 반응이 없었다. "이년이나 저년이나." 남편이 터벅 다가가더니 모질게 머리채를 잡아 눌렀다.

“그만 해”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남편은 멈추지 않고 팔을 들어 올렸다. 아이는 아파서 비명을 질렀다.

“그만 하라니까!”

그리고 귀가 먹먹하더니 모든 게 한순간에 사라졌다.

 

소꿉놀이하던 소녀가 침대에 누워 눈물을 흘리고 있다. 남편 크기의 검은 그림자가 그 위에 드리우고 문이 쾅 닫힌다.

두런두런 목소리와 웃음소리가 들린다. 소녀의 눈은 점점 더 흐릿해진다.

저건 뭐였더라. 공포, 졸림, 체념, 고통. 너무 많은 표정이 섞여 있잖아. 해독이 힘들어. 피곤해.

 

악몽에 놀라 벌떡 일어났더니 사무소였다. 그녀는 침상에 누워 있다. 꿈을 꿨다. 어디까지가 꿈이지?

총을 꺼내 총알을 세 보았다. 가득 차 있었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목이 칼칼했다. 냉장고를 열어 생수를 꺼내 벌컥 들이켰다.

화장도 지우지 않고 잠들었다. 백에 보니 어제 처방받은 약이 있었다. 병원까지는 현실이다.

빨래 건조대가 침상 옆에 기대어 있었다. 모서리에 흙이 달라붙어 있다.

시계를 보니 오전 11시였다. 이번엔 12시간을 잃었다. 알약을 정량대로 삼켰다.

타이레놀을 찾아 두 알을 먹고 침상에 다시 누웠다. 얼굴을 씻고 자야 하는데.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사장은 왜 출근하지 않았지? 8시면 나와야 할 사람인데. 

그런데 방금 본 거 같은데.

어디서였지?

그녀는 홀린 듯이 일어나 냉장고 앞에 섰다. 냉장실 문을 열고 사장의 잘린 목을 마주했다. 그녀는 문을 닫았다.

 

 

 

<그녀가 세상을 보는 방법> 7장

 

잘린 머리를 어쩔까 생각하고 있는데 형사가 문을 두드렸다.

예상과는 달리 짧은 머리의 동양인이었다. 문을 열어주려 일어난 내 키와 비슷했다. 힐을 신었으니 10센티 정도 더 큰 거군. 

뚱뚱하거나 근육질이거나 둘 중 하나인 형사들과는 달리 적당한 체형이다. 나이가 그리 많지는 않아 보였다. 수염이 없어서인가. 동양인의 나이는 읽어내기가 어려웠다.

 

“잭 부인 되십니까?” 물어보는 형사의 표정과 눈을 살폈다.

처음 봤을 때의 표정에서 이후의 기준이 맞춰진다. 초반이 중요하다.

“전 부인이에요. 지난주에 이혼했어요”

“아 그렇군요. 전 남편은 어디 계신가요?”

“몰라요. 연락하지 않는데요. 그런데 무슨 일로?” 형사에게 어제 총을 겨눈 후 기억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어제 말씀드렸던 휘트먼이 살해당했습니다.” 남편의 말은 사실이었다. 분명 방을 나오기 전엔 살아 있었는데. 어쩌다 죽었을까.

형사가 수첩을 보며 말을 이었다.

 

“부인 전화번호가 통화 기록에 찍혀 있었습니다. 28일 저녁에요. 그 다음 날 저녁 식당과 호텔 방을 예약했던 것도 확인했습니다.”

“그날같이 식사했죠. 방에도 갔어요.”

“그를...” 형사는 여러 가지 질문 중에 선택하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죽였습니까?”

“눈을 찌르기는 했는데 방을 나올 때는 살아있었어요.”

 

그렇게 된 거로군. 왼쪽 눈의 상처는 이 여자가 만든 거였다. 감정을 읽기는 어려웠지만 심문하기엔 편한 타입이었다.

대답에 주저하는 게 없다. 반응이 일관적이고 항상 일정한 시간 후에 나온다. 하지만 그래서 어느 게 거짓말인지 알 수도 없다.

 

“그 다음 날 저녁에는 어디 계셨습니까? 29일요.”

“집에서 자고 있었어요.”

“혼자서요?”

“네.”

대답이 너무 빨라서 심문자가 오히려 말리고 있다. 시간을 벌 필요가 있었다.

 

“물을 좀 주시겠습니까? 아. 시원한 걸로요”

그녀는 냉장고 앞에 서서 문을 열고 생수병을 꺼냈다. 종이컵에 물을 가득 부어 주었다. 형사는 받아서 한 모금에 쭉 들이켰다.

“이 도시는 해가 안 보여도 덥군요.” 들고 있던 파일로 부채질하며 그녀를 관찰하듯 쳐다보았다.

“팔에 상처가 많네요” 그의 눈썹이 꿈틀했다. 멍이 여러 개였는데 진하기가 전부 달랐다. 여러 번에 걸쳐 생긴 상처다.

“남편에게 자주 맞았어요”

“아... 죄송합니다.” 그녀는 마음의 상처를 입지 않으니 사과는 의미가 없다. “그래서 이혼한 건가요?”

“그보다 서로 사랑하지 않아서겠죠”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막연한 사실이다. 형사는 이마를 찡그리며 입맛을 다셨다.

땀이 배어 몸에 붙은 셔츠의 가슴께를 집어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땀을 식혔다.

셔츠의 로고가 특이했다. 구두는 그녀가 본 적이 있는 거였다. 재작년 여행에서 남편이 몇 켤레 샀다가 세관에서 죄다 뺏긴 거다.

“형사님은 이곳 소속이 아니죠?”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가 움찔했다.

“옷이랑 신발. 여기서는 구할 수 없는 것들이에요. 왜 이곳까지 오신 거죠?”

“얘기가 좀 긴데 담배 한 대 피워도 되겠습니까?”

“그러세요.” 그녀도 담배가 필요하던 참이었다. 그를 데리고 사무실 뒤쪽 공조실로 갔다. 사무실 안팎에서는 피지 않았다.

사장은 여자가 무신 담배질이냐아- 라고 타박했다.

그러고 보니 그는 죽었잖아. 발걸음을 멈췄다. 따라오던 그가 그녀의 등 뒤에 부딪혔다.

“어이쿠. 미안합니다.” 그녀를 붙잡지 않으려다 거의 넘어질 뻔했다. 그녀는 빙그레 웃었다.

그녀는 다시 걸음을 이어 공조실로 들어갔다.

 

 

 

<그녀가 세상을 보는 방법> 8장

 

맥은 오랜만에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왔다. 이번 건 총을 쏘지 않고 해결할 수 있어서 좋았다.

오래 걸리지도 않아서 아직 새벽인데 벌써 퇴근이다. 여러 명을 죽이고 나면 한 달은 술에 빠져 지내야 한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한 명당 일주일 분량의 알코올이 필요한 거지.

 

어둑어둑한 지하 주차장에 지프를 대고 걸어 나오는데 부와아앙 하는 차 소리가 덮쳤다. 뒤도 안 돌아 보고 냅다 앞으로 굴렀다.

등이 뜨끔했다. 총이 캉 소리를 내며 저만치 날아갔다. 지나친 차를 보니 빨간색 페라리다.

차창으로 나와 있는 가느다란 팔이 칼을 쥐고 있었다. 끼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차가 회전하더니 다시 속도를 냈다.

등을 만져보니 깊숙하게 살을 파고 들어가려다 총에 걸려 멈춘 것 같았다. 운이 좋았다. 연속으로 운이 좋지는 않겠지.

주위를 둘러보았다. 바닥에 전등 덮개가 떨어져 깨져 있었다. 적당한 조각을 하나 집어 들고 차량 사이에서 나와 기다렸다.

차가 질주한다. 주차된 차들 때문에 그를 바로 칠 수는 없다. 이쯤 해서 칼을 내밀겠지. 몸을 뒤로 해서 수평으로 던졌다.

칼이 그의 얼굴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간다. 유리 조각을 꼭 쥐고 팔을 들어 올렸다. 살을 찢는 느낌이 있었다.

칼을 피하느라 높이를 잘 맞추지 못해서 깊숙이 베지는 못한 것 같았다.

페라리는 그대로 속력을 줄이지 않고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몸을 있는 대로 뒤로 눕히느라 뒤통수를 땅에 박아서 어질어질했다.

당분간 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 일도 휴가가 애매하다.

 

오드리는 병원에서 나와 버스를 탔다. 상담은 이걸로 두 번째다. 의사의 유도에 따라 어린 시절의 기억을 회상해 보려 했다.

잘 안됐다. 특히 6살 주변의 기억을 떠올리려 하면 두통이 심해졌다. 다음에는 잘 될 겁니다. 오호호.

의사는 예의 그 웃음을 지었다. 약국에서 바로 물을 뽑아 알약을 삼켰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팔에 큰 상처가 나서 물컵을 들기가 어려웠다. 자다가 이런 상처가 생겼을 리는 없다.

이제 자다가도 돌아다니는 건가. 정신을 잃는 일이 생겨요 -라고 해도 의사는 걱정하지 말라고 할 뿐이었다.

마음의 문제를 찾으면 다 해결될 거라고.

 

사무실로 돌아와 보니 우 형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커피와 타코를 사왔습니다. 이 도시에서 먹을만한 유일한 음식이던데요.” 그는 싱글싱글 웃으며 말했다.

“잘 먹을게요.” 냉장고에서 얼음을 꺼내 커피에 담갔다. 사장의 머리는 비닐에 싸서 냉동실 깊숙한 곳으로 옮겼다.

보기 싫을 건 없지만 음식에 냄새가 배는 건 곤란하다. 대화가 길어지면 둘은 공조실에 가서 담배를 피우며 얘기를 했다.

협소한 곳이어서 마주 앉은 그의 체취가 느껴졌다. 이곳의 남자들과는 좀 달랐다.

타코의 매캐한 향, 약한 땀 냄새, 시트러스 향. 좁은 공간에서 손이 팔에 스칠 때의 느낌도 부드러웠다.

털이 수북한 남자들과는 다른 낯설지만 익숙한 감각. 알고 지낸 남자 중에 동양인이 없었는데.

 

“작년 8월에 바빌론에서 미해결 살인이 여러 차례 발생했습니다. 거긴 살인사건이 그리 많지 않은 곳이죠. 미해결은 더욱 흔하지 않아요. 일 년에 서너 건 정도가 통계인데. 2주 사이에 무려 4건이였죠.” 그는 이곳에 오게 된 이유를 말하고 있었다.

“피해자 중에 한 명이 눈알이 없었습니다. 살인 방식에는 공통점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본부에서도 연쇄살인이라고 확신하지는 못해요. 그런데”

 

그녀는 갈라진 손톱을 입술로 떼어내며 듣고 있었다.

“재작년 겨울에 블랙시티에서도 유사한 미해결 살인이 있었습니다. 3건이었는데. 역시 한 주 사이에 발생했어요. 그쪽에도 다녀 왔습니다만 역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눈치더군요”

“그냥 우연일 수도 있지 않나요?”

“그래서 설득이 어렵습니다. 뚜렷한 연결점이 없거든요. 신체훼손이라는 특징이 있기는 합니다만... 어디보자 손을 자른 게 한번, 머리를 자른 게 한 번 정도라. 이번에 처음으로 눈을 파낸 게 두 개가 생긴 거죠.“

‘머리를 자른 것도 한 번 더 있지.’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그가 몸을 앞으로 숙이며 물었다.

“남편분이 그때 어디 있었는지 기억나십니까?” 그녀도 생각하던 질문이었다. 

“두 번 다 거기 있었어요. 그… 세계지식포럼이 열리던 때거든요.”

“아. 그걸 생각하지 못했군요. 일단 남편분을 찾아야겠습니다. 혹시 연락이 오면 꼭 알려주십시오.”

그가 담배를 피워 물며 말했다.

 

“네. 그럴게요.” 그녀가 대답했다.

주변의 공기가 변해 있었다. 형사는 그녀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얼굴이 굳어 있다. 그의 손에 방금 문 담배가 없었다. 재떨이에 꽁초가 늘었다. 

“혹시 증상을 앓고 계신 거 없으십니까?”

“네. 왜요?” 확인할 필요가 있다.

“조금 전 아무것도 안 하고 5분 정도 앞만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생각에 잠긴 건 줄 알았는데 눈동자가 움직이질 않던데요.”

이렇게 순간순간 시간을 잃기도 하는 거구나.

“병원에서 상담을 받고 있기는 해요. 남편 폭력으로 인한 후유증 때문에.” 거짓말이다.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일 겁니다. 힘드시겠군요. 오늘은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푹 쉬세요.“ 표정에 걱정이 묻어났다.

말과 표정이 잘 맞는 사람이다. 대다수의 사람은 그렇지 않다. 구걸하는 아이에게 경멸의 표정으로 돈을 주는 사람들, 미안해하지 않으면서 미안하다고 말을 하는 사람들. 눈은 웃지 않는 가짜 웃음. 귀찮아서 눈초리가 멍한 과도한 친절.

 

 

 

<그녀가 세상을 보는 방법> 9장

 

“마음을 편하게 가라앉히고 숨을 천천히 쉬어요.” 의사는 커다란 책상 뒤편에서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의 마음은 항상 가라앉아 있다. 약을 먹어서 그런지 눈이 뻑뻑하고 의사의 형태가 울렁울렁거렸다.

그가 기록해 놓은 노트와 처방전의 글자들도 구불구불하게 보였다. 소파에 누운 그대로 잠들고 싶었다. 

“셋을 세면 한 단계씩 과거로 돌아가 보는 거야아. 깨어나세요. 하면 일어나는 거지이” 그의 말도 늘어져 들린다.

증세가 심각해진다는 얘길 듣고 최면요법을 써 보자고 했다. 몸이 나른하다.

 

“자. 이제 최근 일부터 조금씩 거꾸로 떠올려 봐. 어제 누굴 만났지?” 최근엔 형사 말고는 만나는 사람도 없다.

사건에 대한 얘기도 하지만 잡담이 더 많다. 그녀에게는 친구도 없었고 일도 없어져 버려서 그와 같이 점심을 먹는 게 유일한 일이 되었다.

그녀가 가끔 대꾸하는 정도로도 혼자 얘기를 많이 했다. 남편처럼 잘난 척 얘기도 하지 않는다.

그녀가 만났던 대부분의 남자는 자기 자랑이 필수였다. 그가 맡았던 사건들 얘기, 어린 시절에 넓은 공터에서 뛰어놀던 얘기, 해변에서 보았던 거대한 물고기의 난동, 아이를 셋씩이나 낳았다는 여동생 얘기.

들으면서 그의 표정을 보는 게 좋았다. 말을 하면서 이런 느낌이었죠 하면 그게 표정으로 고스란히 드러난다.

표정 읽는 공부가 되는 사람이다. 당신은 꽤 버티네요. 저랑은 몇 마디 하면 상처 입고 가버리던데.

형사가 그 말을 듣더니 웃으며 말했었다. 우린 친구가 될 수 있을 거 같은데요.

입이 달짝달짝 하는 게 그녀 자신이 생각을 말로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꿈 같기도 하고.

“좀 더 과거로 가봐요.”

초등학교 때 교실에 고양이가 한 마리 들어온 적이 있었다. 짓궂은 아이들이 둘러싸고 막대기로 찌르고 책으로 때리고 괴롭혔다.

그날 그녀는 심하게 싸웠던 거 같다. 얼굴도 상하고 긁힌 자국들이 많아서 싸움은 나쁜 거라고, 고아원 원장에게 심하게 매를 맞았다.

그 고양이는 어떻게 되었지? 원장이 물었다. 아니 이건 사실이 아니다. 원장에게 고양이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기억이 잘 안 나네요. 머리가 지끈 아파왔다. 정수리에 송곳이 하나 퍽 박히는 것 같았다.

첫 회사에서는 손버릇이 나쁜 대리가 있었다. 회식 때마다 그녀에게 술을 먹이려고 노력했다.

그녀가 취하든 취하지 않든 옆자리에 앉아 집에 데려다 줄까 했었다. 그래서 그녀는..,

 

“아니 그쪽으로 말고. 더 예전으로 돌아가야지. 양부모님을 떠올려 봐요.”

양어머니는 부유한 집에 결혼해 들어온 젊은 여자였다. 옷도 잘 차려입고 말도 나직하게 하고.

그런데 양어머니는 그녀를 미워했었다. “왜 그렇게 생각했어?”

원장이 오래전 그 집에 나타나 꼬마 오드리에게 의사의 목소리로 물었다. 표정을 보면 알아요.

증오. 아무도 없을 때 저를 가만히 보면서 그런 얼굴로 노려보곤 했어요.

 

“양아버지도 널 미워했나?” 고아원 원장이 어깨에 손을 얹으며 다시 물었다.

그는 잘해 줬었다. 밥을 잘 먹었는지. 아픈 데는 없는지. 관심도 많았다. 그녀를 볼 때 전혀 나쁜 종류의 표정은 없었다.

“6월 16일로 넘어가 보자. 그날 아침은 기억나시나?” 머리에 송곳이 하나 더 박힌다. 조금은 기억이 난다.

그날 일어나서 토스트를 먹었다. 양아버지가 늦게 일어나는 날은 아침 식사 대신 토스트를 먹었는데 그녀는 그걸 더 좋아했다.

입술에 닿을 때 바스락거리는 촉감과 떨어지는 빵가루. 살짝 까맣게 익은 모서리의 쌉쌀한 느낌도 좋았다.

잼은 평상시엔 손댈 수 없었는데 양아버지가 기분 좋은 날은 직접 발라주기도 했다. 그럼 게걸스럽게 그걸 먹었다.

하지만 그런 날은 낮에 꼭 몸이 아팠다. 양어머니가 더 많이 노려봐서였을까. 잼 먹는 게 그렇게 싫었을까.

유치원도 못 가고 하루 종일 누워서 잠을 잤다. 그래서 밤에 잠이 오지 않았다.

문밖에서 그들이 다투는 소리가 들렸었는데 그게 강도와 싸우는 소리였던 거 같기도 했다. 그리고는...

 

“그리고는?” 양아버지가 바싹 귀에 얼굴을 대고 말했다. 구레나룻이 턱을 간질였다. 그녀는 비명을 질렀다.

세상이 심장 박동에 맞춰 두근거렸다. 소파와 함께 자신이 빙글빙글 돈다. 아. 왼팔이 심하게 아파왔다.

고아원 원장이 칼로 그녀의 왼손을 그어대고 있었다. 한번, 두 번. '그만해. 저년한테 피가 나잖아.'

양어머니가 말로는 말리고 있었지만 얼굴은 입이 찢어지도록 웃고 있었다. 

 

“일어나. 일어나라니까!” 까만 밤의 저택의 장면이 희번득 사라지고 의사의 얼굴이 보였다.

눈의 초점을 맞추고 보니 의사가 그녀의 왼팔을 움켜잡고 있다. 팔을 들어 보니 심하게 상처가 나서 피가 흘렀다.

“계속 책상 모서리를 치더군. 잘 깨어나지 않아서 위험했어.” 의사가 붕대로 대충 말아주며 말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 더 진행하다간 큰일 나겠네.”

최면에서 덜 깨어난 채 일어나서 병원을 나섰다. 평소처럼 버스를 타지 않는다.

팔이 아픈지도 느끼지 못한 채 성큼성큼 걷는 그녀의 눈동자가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그렇게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잭은 숨어 지내던 원룸에서 헐떡이고 있었다. 목의 무수한 상처에서 나온 붉은 피가 침대를 흥건히 물들였다.

살인자는 의자 등에 팔을 괴고 피가 다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그의 숨이 멈추자 눈을 파내고 손목과 머리를 잘라냈다. 희생자에게 이렇게까지 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 남자에 대해서는 더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한쪽 손이 불편한지 칼을 든 손만으로 모든 걸 처리 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

자른 것들을 비닐에 담고 가방에 싸서 방을 나왔다. 눈알이 하나 떨어져 복도를 도르르 굴렀다.

 

 

 

<그녀가 세상을 보는 방법> 10장

 

오전에 전화를 받고 시체안치소에 다녀왔다. 심하게 훼손된 시체를 보고 남편의 신원을 확인해 줬다.

머리와 손이 없지만 체형이 남편과 정확히 일치했다. 당연하게도 슬픔 따위 감정은 없었다.

더 이상 맞지 않아도 되겠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무소에 들어와 보니 우 형사가 사장 의자에 앉아 그녀가 들어오는 걸 주시하고 있었다.

오늘은 먹을 걸 준비해 오지도 않았고 싱글거리며 웃는 표정도 아니었다.

“어디서 오는 길이죠?” 마지막 올리는 음성이 짧고 올라가는 게 목소리에 날이 서 있었다.

“시체안치소에요. 남편이 죽었거든요.”

“좀 전에 이쪽 형사들에게 들었습니다. 이 약들은 뭔가요?” 책상 위에 알약이 몇 개 흩어져 있다.

“의사에게 처방받은 약인데요.”

“거짓말 말아요. 처방전은 어디 있는데요?”

“모르겠어요. 어디 둔 거 같은데.”

“기억해봐요. 찾아낼 테니.” 그는 일어나서 서랍을 열고 다니면서 말을 이었다.

“입국 기록을 봤는데, 연쇄살인이 있던 곳에 남편과 항상 같이 계셨더군요.”

“맞아요.”

“왜 저번에 말 안 하셨습니까?”

“물어보지 않았으니까요.”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씨익 웃었다. 눈이 웃지 않는 꾸미는 웃음. 저 남자도 똑같다. 문득 그가 떠들었던 얘기 중에 어떤 기억이 떠올랐다.

“형사님이 이 도시에 온 후 살인이 시작됐죠. 첫 살인이 발생한 도시에는 물론 계셨을 거고. 작년 블랙시티에도 그 시점에 있었다고 했죠.”

“수사 때문에 갔었다고 말씀드렸을 텐데요.”

“날짜가 빨라요.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계셨잖아요.” 뒷목이 싸늘해졌다. 위험을 감지하는 본능은 남들보다 강하다.

소파 옆에 두었던 백을 끌어당겼다.

형사는 책상이며 테이블이며 이곳저곳 들추고 다니다가 웃기는 소리 그만 하세요- 하면서 냉장고 앞으로 갔다.

그는 냉장실 문을 열더니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그녀를 돌아보았다.

“머리.”

“네?”

“머... 머리가 있어”

“이상하네. 냉동실에 넣었을 텐데.”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말해 버렸다. 형사의 얼굴이 경악에서 무표정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가 양복 안주머니에 손을 넣어 총을 꺼냈다. 동시에 그녀도 백에서 손을 빼서 총을 들어 올렸다.

 

“총까지 들고 다니는군” 형사가 눈을 샛뜨고 노려보았다.

“위험한 세상이니까.”

“총 내려놔”

“그러면 쏘려고? 당신이 머리를 넣었지? 여기 들락 달락 하는 건 당신뿐인데”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형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저건 슬픈 표정이다. 뭐가 슬플까. 이 상황에서.

그녀는 핸드폰을 들어 아까 남편의 신원을 확인해 주었던 형사의 번호를 통화 목록에서 한 번에 눌렀다.

시선은 계속 그에게 두었다. 

“뭐 하는 거야?”

 

그의 말을 무시하고 통화를 했다. 일부러 급박한 목소리를 내며 살려달라고 주소를 불러줬다. 그의 표정이 다시 한번 변했다.

의혹. 통화가 끝나자 그는 총구를 겨눈 채 문가로 조금씩 이동했다. 왼손을 뒤로 빼서 손잡이를 돌리더니 그대로 사라졌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인기척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역시 남편의 머리가 새로 추가되어 있었다.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창문 틈으로 경찰차가 멈추는 걸 보고 서둘러 총을 공조실 박스에 숨겼다.

사장 머리는 비닐에서 빼서 냉장실로 옮겼다. 남편 머리와 나란히 잘 어울렸다.

외롭지 않겠네. 잭.

 

형사들이 도착하자 사건의 전말을 얘기했다.

네. 그가 여기 자주 왔었어요. 글쎄요. 계속 찾아올 이유가 딱히 없었는데.

루이스와 클락을 닮은 두 형사가 교대로 질문을 했다. 확인해 보세요. 작년 재작년 살인이 발생한 시점에 그곳에 있었을 거에요.

“남편까지 잃으셨는데 많이 놀라셨겠어요 마담.” 루이스가 말했다.

“그 동양인 형사 녀석 처음부터 수상했었지” 클락이 말했다.

“그래. 형사가 맞는지도 의심스러운데” 루이스가 받았다. “빨리 찾아서 잡아넣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마담.”

“그래 이렇게 예쁜 분이 마음고생하면 안 되지 안 그래?”

“여. 또 껄떡대는구만.” 둘이 낄낄거리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