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난 시간에 드래곤을 우리가 사는 세계에 소환해 왔다. 그렇다면 이제 드래곤을 자연방류할 필요가 있다.



21세기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덩치 큰 육상동물이자 비행 동물이 될 드래곤은 어느 생태계에 던저 놔도 독보적인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하리라는 것에 의심의 여지가 없는 생물이다. 코끼리를 능가하는 엄청난 덩치, 인간이 아니면 다룰 수도 없는 코즈믹 호러적 존재인 불을 마음대로 뿜어내는 능력, 독수리를 비롯한 어떤 맹금류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거대한 날개.


드래곤은 예의 그 덩치 때문에 어느 한 곳에 주로 자리잡고 사는 것이 불가능하다. 드래곤이 사냥터로 삼는 범위는 어마어마할 것이다. 먹이가 부족한 지역에서 살아가는 호랑이의 경우 1,000제곱킬로미터에 육박하는 영역권을 가지는데, 드래곤은 호랑이보다도 훨씬 더 덩치가 크므로 호랑이의 수 배에 준하는 먹이를 먹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어마어마한 크기의 영역권을 경영해야 하며, 이것이 드래곤에게 날개가 있는 이유다. 날개 없는 드래곤이 존재했을지도 모르지만 아마 백악기처럼 드래곤에 필적하는 덩치의 생물들이 득시글거리지 않는 지금은 날개 없는 드래곤 역시 살아갈 자리가 없을 것이다.


드래곤이 잡식이라고 하지만 이야기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면에서 육식은 초식보다 영양학적으로 우수하다. 식물은 섬유질이 많아서 대부분이 변으로 배출되고 전체 식사량 중 10%~30% 정도밖에 흡수되지 않지만, 순수한 영양덩어리인 동물의 고기는 60%~90%에 이르는 흡수율을 보인다. 따라서 드래곤 역시 굶어죽을 상황이 아니라면 굳이 식물을 고집하지 않고 동물을 사냥할 것이다. 


드래곤의 주식이 될 동물은 대부분 아프리카 평야 지역에서 서식하는 대형 동물들이다. 그보다 작은 동물은 사냥하는 데 들어가는 노력 대비 얻는 고기의 양을 고려했을 때 드래곤에게는 매우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드래곤이 주식으로 삼는 동물은 아마 코끼리, 코뿔소, 하마, 기린, 야크와 같은 대형 초식동물들일 것이다. 7미터에 이르는 덩치에, 하늘에서 쏜살같이 날아 내려오면서 생기는 운동 에너지의 충격력은 그런 대형 동물들을 덮쳤을 때 단번에 쓰러뜨리거나 혹은 아예 허리를 분질러 버리는 것도 가능하게 할 것이다. 드래곤은 현생 독수리와 비슷하게 하늘에서 날아다니다가 표적이 보이면 하늘에서 급강하하여 덮치는 사냥 방식을 구사할 것이다.


일단 드래곤이 둥지에서 나와 활동하기 시작하면 드래곤의 적은 같은 드래곤, 그리고 인간뿐이다. 드래곤이 육상으로 내려오면 백수의 왕이라는 사자나 호랑이도 일개 먹이에 불과할 뿐이다. 사자가 덤벼들면 일대일로는 그냥 앞발로 후려치기만 해도 즉사시키는 것도 모자라 완전히 "박살"을 나게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다수의 사자가 몰려와서 포위할 경우, 그냥 덩치로 밀어붙이면서 짓밟고 나가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육공군을 모두 소화해 내는 드래곤에게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배고파서 사자 한 무리를 다 집어삼켜야겠다고 들 때가 아니라면 거대한 날개를 펼쳐 날아오르면 그뿐이다.


드래곤이 가장 골치 아프게 여기는 상대인 같은 드래곤끼리 만날 경우, 만약 영역, 먹이, 혹은 짝짓기 상대 등의 문제로 정말 지구상 최상위 포식자가 사생결단을 내면서 싸워야겠다는 상황이 된다면, 드래곤은 효율 문제로 인해 사용하지 않고 있던 자신들의 필살기를 꺼내 든다. 바로 화염이다. 공중을 날아다니는 드래곤끼리는 서로 엉겨붙어 싸울 경우 추락하기 일쑤이며, 새처럼 빠르게 자세를 바꾸는 것이 가능한 덩치도 아니기에 대부분의 격투가 원거리에서 화염으로 벌어진다. 


드래곤들은 먼 거리에서 화염을 뿜으며 위협하다가, 상대방이 물러날 기색을 보이지 않으면 육탄전으로 돌입한다. 엄청난 악력, 자유로운 사지, 길고 채찍처럼 생긴 꼬리, 입에서 뿜어지는 화염 등은 지구상에 대적할 자 없는 최강의 무기들이다. 드래곤은 같은 드래곤끼리 싸움이 붙으면 하나만으로도 먼치킨일 이 무기들을 총동원하여 단기간에 싸움을 끝내기 위해 혈투한다.


드래곤이 가장 무서워하는 존재이자 드래곤의 유일한 적은 인간이다. 서구의 인간들은 대부분 용을 악마와 같이 취급하여 공격했겠지만, 동양의 인간들은 용을 숭배했으니 공격하지 않고 오히려 칭송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마 21세기가 되기 전에 유럽권은 인간이 살지 않게 되었을 공산이 크다. 화약도 없는 고대~중세 수준의 기술력으로 자유롭게 비공하며 아무 곳이나 마음대로 화력을 투사하는 드래곤을 상대로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동양권에서는 드래곤을 칭송하며 가축을 잡아가면 오히려 제물로 더 바치려고 애를 쓰고, 드래곤만 나타나면 가축과 처녀를 바쳤을 것이다. 그렇다면 동양권 드래곤이 인간이 주는 음식에 길들여져 서서히 가축화되는 동안, 서양에서는 닥치는 대로 죽이려고 드는 인간과 드래곤 간 영역 다툼이 거대하게 벌어졌을 것이다.


따라서 21세기에 드래곤을 갑자기 방류하는 것이 아니라면, 인류의 역사는 엄청난 개변을 겪었을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근 100만 년 정도의 지구에는 드래곤을 대적할 만한 존재가 없다. 다음 시간에는 드래곤이 가지는 생활 양식에 대해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진행해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