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피아는 철제 테이블 맞은편에 가만히 서있는 가면을 쓴 사내를 바라보며 가볍게 웃고 있다. 그는 무시무시하고 위협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고작 인간, 고귀한 군주의 딸인 그녀가 패배할 요소는 어디에도 없다. 물론 손발에 말뚝이 박힌채 튼튼한 사슬에 묶여있지도 않고, 어둠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전제 하의 얘기지만.


어째서 이 곳에 있는건지 생각해 내려고 할 때 마다 오르피아는 머릿속에 뿌연 안개가 낀 것 처럼 사고가 흐려지는 증상을 겪고있다. 시공의 폭풍에서 많은 일들은 겪어왔지만 이런 상황은 처음 있는 일이다. 그녀가 눈을 뜬지도 벌써 몇 시간째. 오르피아는 조금 초조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봐 너, 나한테 혼나기 싫으면 이걸 빨리 풀어주는게 좋을텐데"


불손한 태도로 소리치는 오르피아의 말에 사내는 깨진 항아리를 힐끗 바라보고는 테이블 밑으로 몸을 숙여 무언가를 부스럭거리며 찾기 시작했다. 허리를 편 사내의 손에 들려있던 것은 밀랍으로 봉해진 플라스크였다. 테이블 위에 플라스크를 놓은 사내는 잠시 쳐다보고는 집어들고 오르피아에게 다가왔다.


사내의 손에 들린 플라스크에서 희미하게 들려온 찰랑거리는 소리. 소녀의 모습을 하고있지만 오르피아는 시공의 폭풍에서 노련한 투사와 다름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겪을만한 일 들은 이미 익숙해졌다. '미약의 종류인가. 겨우 이정도에 당할 것 같아?' 비웃음을 띄우는 오르피아의 앞에서 사내는 플라스크의 씰을 떼어냈다. 희미하지만 향기로운 냄새가 퍼졌다. 동시에 사내는 그녀의 손발에 박혀있는 쇠말뚝을 우악스럽게 잡아뽑았다.


"앗, 큭?!"


조악하게 만들어져 표면이 울퉁불퉁한 쇠말뚝이 뽑히며 부러진 뼈를 긁는 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 오르피아는 이를 악 물고 참아냈지만 머릿속에 불꽃이 튀기는 듯 한 격통을 느끼며 신음했다. 살점이 묻은 쇠말뚝을 거들떠도 보지 않고 뒤로 집어던진 사내는 손으로 오르피아의 턱을 붙잡아 강제로 입을 벌린 후 플라스크안의 내용물을 쏟아부었다. 치유의 샘물이였던건지 오르피아의 상처가 빠른 속도로 아물기 시작했다.


"후욱,후욱.. 큭.. 이런 장난 재미없거든"


살의가 배어나올듯한 눈빛으로 사내를 노려보며, 오르피아는 양 손을 쥐락펴락하면서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사내는 말없이 오르피아의 턱을 붙잡았다. 그녀는 사내의 손을 뿌리치기 위해 고개를 격하게 흔들었다. 아니 흔들려 했다. 사내의 손은 그녀의 턱을 굳세게 잡고 있었고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오르피아의 턱뼈는 굉장한 악력으로 움켜쥐어져 삐걱이고 있다.


"으.. 으극..! 당장 놓지 못해!"


약간 발음이 뭉개졌지만 오르피아는 있는 힘껏 소리치며 저항했다. 그녀의 턱관절 부근에서 짝 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턱뼈에 금이 갔으리라. 심한 통증에 손발에 불쾌한 땀이 차기 시작하는 것을 느끼던 오르피아는 사내의 손에 들린 단검을 눈치챘다. 뭐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사내는 칼날을 오르피아의 인중에 찔러넣었다.


"아갸아아아아아!!?"


윗입술을 가르며 입안으로 들어온 칼날은 그녀의 앞니 틈에 박혀, 두 개의 앞니를 양 쪽으로 밀어젖혔고 입 천장과 목젖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사내의 흉행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고 찔러넣은 칼을 횡으로 힘껏 비틀었다. 빠지직거리는 소리가 오르피아의 두개골 전체에 울렸고 앞니가 반쯤 빠져 뿌리가 덜렁거리고 있다. 사내는 오르피아의 입에서 칼을 빼 테이블에 올리고, 엄청난 꼴이 된 그녀의 앞니를 엄지와 검지로 하나씩 잡아뜯었다.


"기히이이익-??!"


뿌직 하는 소리와함께 오르피아의 잇몸에서 뽑혀나온 앞니를 옷자락에 문질러 닦은 사내는, 천장의 조명에 그녀의 이를 비춰보고 있다. 오르피아는 쇼크로 온몸을 덜덜떨면서도 눈물을 머금은채 사내를 노려보았다. 오르피아가 반으로 갈라진 윗입술과 윗잇몸에서 흐르는 피를 사내의 구두에 뱉자 축축한 소리와 피비린내가 방안에 퍼졌다.


"개자식-"


"반드시 죽여버릴꺼야.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방법으로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여주겠어!!!"


증오로 불타는 표정을 한 오르피아는 괴물처럼 울부짖었다. 사내는 구석에 놓인 특수한 전신거울을 가져와 오르피아 앞에 놓았다. 찢어진 윗입술 사이로 앞니 두개가 빠져 잇몸만 보이는 자신의 모습에 오르피아는 굴욕스럽다는듯 시선을 돌렸다. 사내는 주먹에 쥐고있던 오르피아의 앞니를 조심스럽게 테이블의 접시 위에 올려놓고 다시 단검을 집어들었다.


"믓, 뭐야! 오지맛...! 흐기이이이이익!?!!"


조금 전과 같은 방식으로 사내는 오르피아의 남은 26개의 치아를 하나씩 뽑아나가기 시작했다. 엄청난 비명을 내지르며 몸부림치는 그녀를 무서운 완력으로 억누른 채, 이 사이로 칼날을 집어넣기도 하고, 때로는 잇몸 안쪽으로 칼끝을 찔러넣어 지렛대처럼 활용하면서, 결국 28개의 치아를 모두 뽑아낸 사내는 그것들을 2행 14열로 가지런히 정렬했다.


순서대로 늘어놓은 치아가 담긴 접시를, 사내는 소중한듯 손에 들고 헐떡이는 오르피아의 뒤로 걸어갔다. 오르피아의 등 뒤에서 그녀의 얼굴 앞으로 접시를 내민 사내는 앞에 놓인 거울로 오르피아의 표정을 관찰하고 있다. 충치하나 없는 새하얀 치아는 뿌리부분에 잇몸 조각이 들러붙어 있다. 오르피아는 참지 못하고 자신의 이가 놓여있는 접시 위에 뱃속에 든 것을 잔뜩 토해버렸다.


"히, 히셰, 용셔햬 슈셰요..."


오르피아는 입가에서 시큼한 위액을 흘리며 사내에게 용서를 구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희미한 암모니아 냄새와 함께 그녀의 발치에 노란 물웅덩이가 퍼져나갔다. 사내는 오르피아의 말은 들은척도 하지 않은채 양 손으로 그녀의 두 눈을 찌르고 안쪽부터 긁어 뽑아내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아아아악!!!"


고통이 너무 컸던건지 처참한 비명소리와 함께 오르피아는 눈이 있었던 구멍에서 피를 흘리며 까뒤집고 기절했다. 사내는 피가 묻어있는 은빛 머리카락을 몇 번인가 쓰다듬은 후, 뽑아낸 눈알과 이를 잘 포장해 집어넣고, 오르피아 주변의 토사물과 실금한 것을 치운 사내는 플라스크를 가져와 오르피아의 입에 남은 치유의 샘물을 마져 흘려넣었다. 가벼운 상처는 재생되었지만 흉측한 몰골은 그대로였다. 사내는 시체처럼 축 처져있는 오르피아의 뺨을 가볍게 두어번 두드렸다.


"으, 히익! 흐이이이-"


깨어남과 동시에 발광하는 오르피아의 머리를 붙잡은 사내는 그녀의 목에 단검을 대고 톡 톡 가볍게 쳤다, 이내 몸을 뻣뻣하게 경직시키고 공포에 질린채로 오르피아는 텅빈 구멍에서 피눈물을 방울방울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흑, 제발, 이제 그만해... 원하는건 다 들어줄 테니까, 히끅..."


서럽게 오열하는 오르피아를 무시하고, 사내는 천천히 칼로 목을 베어내기 시작했다. 고통으로 울부짖는 오르피아의 괴성이 잠깐 울려퍼졌다. 피로 얼룩진 바닦을 전부 청소한 사내는 오르피아가 쓰고 다니던 왕관을 오르피아의 머리에 쑤셔넣고는 그대로 들고 방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