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때 자캐 커뮤니티에서 유치원생 수준의 그림실력으로 놀며 스트레스 풀던게 대학 가서도 이어졌고, 야매로 배웠던 그림이라도 돈벌이에 써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멍청한 생각하던 찰나에 집이 망해가서 어거지로 노가다판에서 일하게 됐다. 


 그런데 가세가 기울어서 일하고 있다지만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고생도 아니다보니, 뭐라도 내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줄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결론은 그림이었다. 나중엔 그 일도 때려치고 사이버대 편입해서 제대로 그림 배우고 써먹겠다고 설쳤는데, 편입하고 기초부터 다시 공부한다는 명목으로 3년을 허비하면서 깨달은건 결국 난 진심으로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게 아니라 뭐라도 즐거웠던 기억에 매달려서 도피하려고 했다는 사실이었다.


 막상 20컷 30컷짜리 개인작 콘티도 짜본적 없고 포폴에 써먹을 일러스트 하나 만들지도 못했으면서, 만들 생각도 안했으면서 "난 남들과는 다르게 이런 그림 그리는 쪽으로 소질도 있다" 내지는 "남들은 뼈빠지게 노가다 뛰고 지루하게 회사 출퇴근이나 하고 살 때 나는 하고픈 일 하면서 돈버는 특별한 삶을 살 것이다"같은 얼토당토않은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던게 제일 큰 실수였다.


 여느 자캐 커뮤니티 문화가 그렇듯 존나 못그려도 칭찬부터 박고 보는 그루밍 문화에 취해 애초에 그림에 남다른 재능도 실력도 없었으면서 관심받고 놀았던 기억이 진짜 내가 그림에 감각있고 소질있는 놈이었던 것 마냥 착각하게 만들었고, 그 와중에 노력하는 보람도 못 느끼다보니 기초 다질 시간에 딴짓만 잔뜩 하고 살았다. 덕분에 졸업한 지금에서야 얼마나 해이하게 시간을 보냈고 왜 해이했는지 이해했다. 남들한테는 그림 그려서 나중에 어쩌구 저쩌구 떠들었던 주제에 막상 "업계"에 뛰어들 마음 따윈 없었다. 마음부터 그랬으니 결국 하기 싫어지고 안하다보니 늘지 않는 악순환이었던 거였다.


 더는 내가 들인 시간과 노력 대비 가치가 없다 생각한 것에 시간낭비 그만하고 다른 돈 벌 수 있는 길 찾아서 갈란다. 내 수준에 그림은 취미로 혼자 끄적이는 정도가 맞는거 같다. 혹여 10대든 20대 초반이든 그림 그려서 먹고 살겠다 마음먹은 사람 있으면 진짜 빡시게 뛰어들어봐라. 


 나처럼 목표 제대로 못잡고 이도 저도 아닌 채로 마음속에서 '공부해야지', '연습해야지'만 반복하면서 스트레스 받지 말고 실제로 몇달이고 몇년이고 빡시게 한 다음 판단해봐라. 귀찮거나 싫어서 안하건 피치못한다 해서 못하건 아무것도 안하고 있으면 시간은 생각보다 잔인할 정도로 빨리 간다.



요약

1. 10대 때 그림 그리는거에 재미들림(대부분 자캐커뮤에서 못그려도 그루밍 해주는 거에 취해 있었음)

2. 집안 힘들어졌는데도 정신 못차리고 그림에 매달리다 편입까지 함

3. 막상 기초부터 해보니 재미 보람 좆도 없고 무엇보다 돈도 안되서 스트레스만 받음 → 노력 안함 → 발전 없음 → 반복

4. 졸업하고 나니 이대론 좆되겠다 싶어서 포기하고 다른 길 찾을 예정

5. 니들은 이따위로 해이하게 살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