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을 통틀어 '잡몹'의 역할을 여성에게 맡기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기껏해야 아마조네스 설화 같은 여인국, 여전사들에게 은근슬쩍 그런 분위기가 풍기긴 하지만, 아마조네스와 같은 역사적으로 오래 된 여전사들은 잡몹이라고 하기엔 강한 여성으로 나오는 경우가 절대다수다. 발키리 같은 경우도 전사들 뒤통수를 후려갈기긴 해도 어쨌든 칼밥 처먹은 놈들 때려죽인단 점에서 잡몹이라곤 결코 말할 수 없다.

 그렇기에 여성이 잡몹으로 묘사되어, 때로 죽어나가기 시작한 건 꽤나 최근의 일이다. 실로 자본주의가 이뤄낸 쾌거라 할 수 있겠다. 성 평등을 진정으로 이끄는 건 페미니즘 같은 위선에 절여진 논리가 아니라, 저속하고 단순한 자본 논리에 의해 나왔을 게 분명한, 여성을 잡몹으로 소모하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먹물 좀 먹었거든 제 2차 세계대전을 언급하겠지만은, 잡몹마냥 뒈졌는데도 창에 찔린 모습이 좋다며 숭상되는 건 남자에게나 국한되던 고대 그리스 시절 관점에서 우리가 벗어난 건, 적어도 매체에서나마 여성들이 잡몹마냥 무기를 들고 싸우다 떼죽음을 당하기 시작하면서부터일 것이다.

 비록 여자들이 무기를 안 들고 떼죽음 당하는 이야기나, 위난을 피하려고 단체로 자결했단 얘기-3천 궁녀- 등은 역사가 유구하지만 그건 잡몹으로 죽어나간 게 아니라 그냥 학살이니 여기선 논외로 하자.


 이런 와중에 일하는 세포 블랙에 나오는 백혈구들 같은 경우엔 뭔가 애매한데, 주역으로 나오는 긴 생머리 백혈구 눈나 U-1196은 잡몹과 거리가 멀지만, 임질 편에서 임질이 내뱉는 대사 하나하나며, 장면 묘사 등은 실로 여성이 잡몹으로 묘사될 때 나올 수 있는 참혹함을 잘 묘사한 것이라 말할 수 있겠다. 그렇게 나는 일하는 세포 블랙에 나오는 백혈구의 팬이 됐다.


 이 작품은 그런 백혈구와 이 분야 장인이라 할 수 있는 쿠로히메 선생이 만나서 나온 작품 되시겠다.

 https://www.pixiv.net/users/20471688 - 쿠로히메 선생의 픽시브

 https://www.pixiv.net/artworks/70160631 - 선생의 해당 작품 링크, 작품에도 링크 걸어놨다.


 비록 원작 백혈구들이 보여주는 그런 처절함에서 비롯된 위풍당당함은 어디로 가고 없지만, 대신에 제대로 된 저항도 못 하고 사체마저 사용되는 그 비참함이 아주 돋보이는 것이 일품이다. 거기에 고어에 익숙치 않은 이들도 어느 정돈 받아들일 수 있는 낮은 수준에 그치는 것 역시 내가 선생의 작품 중에서 이 백혈구 작품을 으뜸으로 여기는 이유이다. 피투성이 정도야 케찹 좀 뿌리고서 저렇게 연기하고 있는 거라 생각하면 그만 아닌가.


 쿠로히메 선생 작품들의 전반적인 특징은 여성에게서 나올 수 있는 건 싹싹 긁어서 먹을 정도로 알차단 것이다. 그렇기에 가슴팍에선 젖소라도 빙의한 것마냥 임신 여부 상관없이 모유를 뿜어내는데, 이것만큼 선생의 페티시-정확히는 선생이 공략하고자 하는 타겟들의 페티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는 없으리라. 이걸 보통은 식인 내지는 고어라고 할 수도 있겠고, 나 역시 사지절단이 되거나 어디 신체가 뭉개졌거나 하는 건 그리 좋아하지 않아서 쿠로히메 선생의 작품이라고 무조건 좋아한다곤 말 못 한다. 선생의 작품들은 묘사하는 대상의 상태가 훼손된 것 여부와 상관없이 여체를 아주 그냥 박박 긁어 착취하는 것에 방점을 찍는데, 정작 이 글을 쓰고 있는 놈은 사체 훼손 여부를 신경쓰는 까탈스러운 식성인 까닭이다.

 다만, 생전에 얼마만큼 저항했느냐 여부따위 안중에도 없어질만큼 저항조차 제대로 못 하는 처지의 여체를 어디까지 희롱하고 모욕할 수 있는가란 관점에서 보거든 그렇게 사지 짓뭉개진 작품들조차도 감탄을 금치 않을 수 없다.


 배경 설명은 이쯤으로 하고, 이제 작품 내재적인 것을 보자.

 그림의 주인공은 단언컨대 백혈구지만, 그 백혈구의 몸을 임질균이 뒤덮고 있는 모양새이다. 그러면서도 주요 포인트는 가리지 않고 마치 전리품을 자랑하듯 카메라 구도에 노골적으로 노출시키고 있는 것까지가 기본적인 작품의 구도이다.

 이런 구도가 가져오는 효과는 여체를 부각시키는 것, 더 나아가 그런 여체가 처한 상태를 부각하는 효과가 있다. 이런 점에서 디테일로 들어가거든 비로소 이 작품이 외부적인 요소들을 빼고 보더라도 취향저격당한 이들의 심금을 울리는 이유를 볼 수 있다.




 먼저 위에서부터 보자면, 모자와 눈 사이 구간에 있는 저 피가 고여있는 구간 묘사부터 보자.

 정상적이라면 저런 상황에서 모자는 벗겨지거나 아예 시뻘겋게 물들어야 했음에도 모자는 멀쩡하고 피만 그 곳에서 뿜어져 여체의 곳곳을 피투성이로 만들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이것이 무얼 뜻하느냐? 조금은 현실적으로 보거든 모자가 벗겨진 상황에 가격을 당해 쓰러진 걸, 저 임질균이 일으켜 세운 것도 모자라 모자까지 씌우는 여유로움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여기서 저 백혈구가 U-1196 눈나가 아니라 그저 디자인만 따온 오리지널 캐릭이란 것이 백미가 된다. U-1196은 앞서 언급했지만 잡몹 속성을 갖고 있다기엔 존나 강한 여성으로 묘사된다. 강한 여성도 왜곡된 성욕의 일종이라지만 적어도 이 그림에서 나오는 상황은 강한 여성관 어울리지 않는 상황이다. 그런 점에서 U-1196이 아닌 오리지널 백혈구를 내세운 선생의 선택은 그야말로 일품이다.

 즉, 임질균은 가볍게 백혈구를 제압하고 실컷 여유를 부리며 이제 능욕에 나서려는 걸 이 모자와 눈 사이 구간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그 다음은 눈인데, 죽었음에도 눈도 제대로 못 감은 것부터가 일품이지만 눈동자를 위로 치켜뜬 것이며 눈에 눈물이 고인 것이며 머리에서 흐르는 피와 결합해 마치 피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연출된 것 등등 모자람도, 과함도 없이 적재적소에 배치된 것이 인상적이다.

 이 눈을 묘사한 대목을 앞서 한 것처럼 쭈욱 해석하기엔 그야말로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황홀하게 만들 정도이다. 해석을 덧붙이는 게 모욕이라 느껴질 정도로, 그저 좋을 정도의 광경이다. 보면 볼 수록 빠져들 정도로 황홀하다.



 그런 황홀감에서 벗어나 좀 더 아래로, 이제 코를 보자.

 코에서 흐르는 혈액은 단순히 '코피'라고 하기엔 안 맞을 정도의 퇴폐미를 뿜어내고 있다. 물론 이걸 '코피'라 인식하고 보면 작품 전체 구도와 다르게 조금은 어긋난 분위기일 정도로 익살스러움이 드러나지만, 정작 작품을 전반적으로 즐기는 입장에서 이 코피가 익살스럽다고 여기긴 어려울 것이다. 이것은 작품 전체가 품고 있는 문맥이 이 코피는 웃기려고 묘사한 게 아니라, 꼴리게 하려고 집어넣은 장치란 걸 노골적으로 알려주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코피의 원인은 이미 그녀의 머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핫소스 같은 느낌의 피가 여실히 드러내주고 있지 않은가. 무슨 용의 콧물마냥 투명하게 묘사된 것보단 훨씬 더 비장한 맛이 있다.



 코에서 나온 혈액이 이제 입으로 흘러가는 걸 쭉 따라가서 입을 들여다보자.

 치아에 대한 묘사는 없고 혀가 치솟아 오른듯한 묘사와 함께 턱 부분은 임질의 팔에 의해 가려진 것이 보인다.

 그리고 입에선 탁한 액이 나와서 임질의 팔에 피와 함께 흐르는 모양새인데, 이건 임질균의 것이 아니라 백혈구가 갖고 있던 타액으로 보인다. 혀를 내밀고 침을 질질 흘리는 구도... 익숙하지 않은가?

 '응기잇!' 으로 대표되는 여자의 절정 묘사를 할 때의 그 구도이다. 잡몹으로 쓰러져서 유린당하고 있는 것도 서러운데, 절정하고 있는 것마저 자신의 의지와 다르게 전개되고 있는 그야말로 모독적인 연출이라 할 수 있겠다.

 당연히 죽은 자가 이런 자세를 작정하고 취할 순 없지만, 목 부분의 묘사에서 이 작품의 또 다른 백미를 우리는 마주할 수 있게 된다.



 목 부분은 전반적으로 임질의 팔에 의해 가려져 있는데, 이 목 부분이 가려져 있는 것이며, 은근히 머리와 몸통 사이의 간극이 길게 표현됐단 점, 임질의 팔 아래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점 등에서 결코 좋은 상태는 아니란 걸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상황이다.

 다만, 머리와 몸통이 분리됐다고 하기엔 저 입의 상태가 조금은 어색하기에 아마 목이 졸려져서 길어진 상태 정도라 보는 것이 적당할 것이다. 왼쪽 부분에 백혈구가 입고 있던 제복이 찢어진 것 흔적이 마치 지금 백혈구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타액처럼 묘사된 것도 꼴릿함을 배가시키는 요소이다.

 조금 더 나아가, 본편의 줄거리까지 끌어들여보자. 저만큼이나 처참한 사체도 끝내 살아남은 백혈구 동료들이 수습해서 곱게 차려입히고 떠나보냈으리라 생각하면 거기서 비롯된 배덕감은 가슴 한 켠을 아릿하게 하면서도 보는 이들을 즐겁게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흉부 같은 경우엔 앞에서 다 떠든 감이 없잖아 있는데, 모유를 뿜고 있는 것에 대해선 쿠로히메 선생의 작품 전반이 품고 있는 주제를 반영한 것이다.

 그럼에도 굳이 디테일을 찾아내자면, 저 풍만한 가슴을 핫소스처럼 긋고 있는 피를 묘사한 것이다. 제복은 찢어지고, 속옷조차 없어져 드러낸 맨몸을 백혈구의 피였던 것만이 애써 가리려고 들지만, 그조차도 정작 정말로 가려야할 곳은 가리지 못 하고서 도리어 가려야 될 곳을 부각시키고 있는 상태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녀에게 주어진 모든 것들이 그녀가 생전에 지키고자 했던 것들을 못 지키고 있단 걸 이런 묘사에서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유린당하는 알프스 가슴을 넘어서면 이제 평야가 펼쳐진다. 허리와 팔이 보일 것이다.

 허리 부분의 묘사는 아무래도 블랙 백혈구 특유의 '강한 여성상'과 달리 아주 매끈하고 고운 모양새로 자리잡힌 걸 피를 좀 걷어내거든 눈에 밟힌다. 고어 묘사에 가려져있는 저 여체로서 이상적이라 할 수 있는 형상은, 이 작품의 비극성을 좀 더 부각시킨다. 살아있는 상태였거든 어떻게든 자리잡고 이쁨 받았을 여자가 살해당해 유린당하고 있는 참혹함을 이 허리의 형상이 배가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뒤로 젖혀진 양쪽의 팔들은 백혈구가 임질에게 완벽히 제압됐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이상적이라 할 수 있는 여성 허리를 부각시켜주고 있는 것 역시 보일 것이다. 단순히 페티시이기 이전에, 그녀는 그녀 자체만으로도 남성들로 하여금 그녀를 박고싶은 충동을 일으키게 했던 존재란 걸 보여주는 것이다. 현실에 저런 여자들은 재벌 수준의 높으신 분들과 어울리는 게 오히려 당연하다 여길 정도인데도, 저리도 비참한 꼴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어찌 꼴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제 마지막 하층부를 보자.

 백혈구의 보지가 비교적 높은 위치에 있는데, 임질의 거근을 뿌리까지 받아내지도 못 하고 들려진 모양새이다. 그리고 백혈구의 다리 묘사도 주목할만 한데, 오른쪽 다리(왼쪽편)은 아래로 쭉 뻗어있고, 왼쪽 다리(오른편)는 임질의 손에 들려져 90도 직각을 이루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아래쪽이 잘려져 있어서 부각이 안 되어서 그렇지, 사실상 들박 내지는 적어도 여성의 다리 한쪽 끝만 바닥에 닿은 체위라는 걸 알 수 있다. 이런 체위가 가진 특징을 말하자면 뭣보다도 남성성을 부각시키는 것이 된다.

 그녀의 머리에서 흐르는 피가 그녀의 가슴을 애써 가리려고 하지만, 도리어 부각시킨 것과 유사한 효과가 나오는 것이다. 백혈구의 보지가 애써 임질의 자지가 끝까지 침투 못 하게 막아냈지만, 도리어 그로 인해서 남성성을, 그녀의 패배를 좀 더 도드라지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다리도 한 쪽은 끝까지 저항이라도 하듯 축 늘어져 있지만, 임질에 의해 통제되고 있는 부위는 여지없이 들어올려져 백혈구의 사체가 처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다시 시야를 넓혀서, 그녀의 몸 근처에 그어져 있는 동작선들을 보자. 보이는가?

 이것이 그녀가 유린당하는 순간을 묘사하는 게 아니라, 그녀가 유린당하고 있음을 묘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정적인 그림에 생동감을 부여한 것인데, 이로써 한낱 그림인데도 sfm 등의 움직이는 야동에서 느낄 수 있는 시각적 효과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그림 한 장 놓고 딸을 잡고 있는 상황을 상정하여 쿠로히메 선생이 화룡점정으로 얹어낸 묘사라 할 수 있겠다.


 이걸로 딸 잡은 것만 이 짤을 봤던 무렵에 10번 가량 되고, 그 이후로 누적된 것까지 합치면 슬슬 3자리 수를 넘보지 않을까도 싶다. 이런 작품이기에 여러분들 앞에 소소하게 소개해보는 바이다.



 *사족

이 장면은 벨리펀치 선생의 유료 작품의 일부를 갖고 온 것이다. 전부 다 갖고 오거든 아무래도 양심에 찔리니깐, 비교 차원에서 가지고 온 것이다. 앞서 쭉 적은 뻘글을 겪들인 쿠로히메 선생의 작품과 이 작품을 비교하거든 조금은 보는 맛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갖고온 바이다. 다음 링크는 혹시나 벨리펀치 선생의 작품을 더 찾고 싶은 분들을 위한 링크이다.

 https://www.pixiv.net/users/44187595 - 彦@腹パンチ(벨리펀치) 선생의 픽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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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 끝났다.


 이런 뻘글을 쓴 이유를 굳이 밝히라면 다른 건 아니다. 옛날에 프랑수아 모리아크란 프랑스 작가가 한 말이 있다.

 "난 독일을 사랑한다. 그래서 독일이 여러 개였으면 좋겠다."

 이 말은 드골이 한 말로 와전됐는데, 아무렴 이런 마음가짐으로 나는 이 글을 쓴 것 같다.


 사랑스러운 백혈구들이 피 흘리며 산화되는 광경에 대한 경의 한 모금, 술게임에서 말하는 사랑은 아주 가득 담아서 써봤다. 실제로도 백혈구 하나 있는 걸 아주 그냥 조각조각내는 기분도 들었고.


 가슴 속에 응어리진 것 이렇게 또 풀고 가는 바이다. 가톨릭에서 고해성사하는 게 이런 것 때문인가도 싶다.

 끝으로 이런 뻘글 여기까지 읽어줘서 정말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