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에에에엑!"

 '투투퉁!'

 여지껏 인류를 위협한 존재는 여럿 있었다. 그 중에 질병도 포함된 것이었는데, 지금의 '시체들의 산'이라 이름붙여진 건 그 정도가 달랐다.

 감염자를 좀비로 만드는 것이며, 그 좀비가 되기 전에 중성화-가슴도 크고 사타구니에도 자지가 솟게 되는-를 시키는 것이며, 좀 더 감염을 원활하게 하기 위하여 환각 물질을 더 광범위하게 살포한 다음에 무력해진 이들이 꼼짝없이 감염원에 노출시켜 좀비로 만드는 것까지.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보다도 더 다양한 방식으로 세력을 갖고 있고, 품종이 다양해지고 있었지만 그런 건 지금 중요한 게 아니겠지.


 '시체들의 산'은 좀비 바이러스를 넘어 그야말로 생물병기에 가까운 것이었다. 인공지능 반란 사태조차 극복한 인류는 이 '시체들의 산'이란 종합선물세트를 감당 못 하고 문명세계의 절반을 시체들의 산에 넘겨줘야 했다.

 심지어 인공지능들조차도 거의 대다수가 시체들의 산을 기존 인류보다 더 자신들이 충성하기 적합한 대상이라 인식하고 그 쪽으로 넘어가는 바람에, 인류는 현재 끔찍한 위난에 처한 처지였다.


 그러나 인류가 아예 무방비한 건 아니었다. 생물공학 기업들은 시체들의 산을 치료할 순 없어도, 시체들의 산이 내뿜는 환각물질이나 감염되지 않게 할 순 있는 조치를 보존된 연구자료를 통해서 만들어냈으니까.

 그리고 그걸 생존자들에게 시술하는 한편, 전선에 내보낼 클론들에도 동일하게 적용해서 전장에 내몰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렇게 인간과 좀비의 투쟁이 전개됐다.


 아니, 그러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제기랄...'

 좀비 바이러스의 창궐보다도 인공지능의 배신이 인류 문명에게 있어선 더 치명적인 위협이었다. 그렇기에 생체 전반을 인공으로 생산하는 것은 아무래도 수요를 따라잡을 수 없었기에, 시체들의 산에 대항한 세계정부연합은 지원자들을 닥치는 대로 긁어모았다.

 오죽하면 기존엔 소년병이라면 질색하던 이들조차도 성인이 채 되지 않은 지원자들에게 일련의 시술을 시켜서 볼스터드, 그러니까 강화 군인으로 만들 정도였다.


 그녀도 그렇게 군인이 됐다. 그리고 이 인류의 명운을 건 전쟁에서 그녀가 한 것은 사실상 전무했다.

 훈련을 받다가 투입되려니 '시체들의 산'은 여태까지 비등비등하게 겨루던 건 전부 연기였다는 듯 본색을 드러냈고, 그로 인하여 세계정부연합 및 사령부에 그 빌어먹을 좀비 바이러스가 퍼지면서 그 잘나신 분들이 전부 시체들의 산이 되어버렸으니까.

 그 소식을 듣고서, 제대로 된 지휘통제 없이 인류 문명의 군대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생존을 위해 매일마다 싸우는 것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첫날에만 그녀가 소속된 부대의 절반 이상이 죽었다.

 그 중에 절반은 좀비들에게 노출되거나 감염되어 죽었고, 나머지 절반은 그 상황에 '매뉴얼'대로 자기 머리에 총을 쏘거나 살아남아보겠단 이들의 손을 빌려서 살해당한 것이었다. 생존자들 입장에선 꺼림칙했지만, 자기 몫의 물자가 많아진단 판단하에 그들의 선택을 존중했고.


 그렇지만 부대 단위로 돌아다니는 건 놈들의 표적이 될 뿐이었다. 놈들은 분명히 그들을 조종하는 수뇌부가 있었다. 여태까지 좀비 바이러스라며, 적들은 수뇌부가 없으니 우리가 이길 것이란 정부의 선전과 군의 정훈 교육은 죄다 개소리였다.

 그 결과, 결국 그녀만이 남은 처지였다. 그녀는 자기 품에 놓인 권총을 봤다. 돌격소총 같은 건 진작에 탄이 떨어져 무게만 나가는 것이 됐기에 권총으로 바꿨는데, 권총탄은 의외로 전투가 벌어졌던 곳에 널려 있었다.

 전투 초기에, 권총까지 쓰기도 전에 죽어나간 전우엿던 것들이, 좀비가 되면서 자기 장비를 놓고 가둔 걸 회수해서 쓸 수 있었던 것이다. 돌격소총도 잠시 회수해봤지만, 아무래도 무게 대비 효율이 그리 좋지 않아서 권총과 권총탄을 주로 챙기던 터였다.


 '썩은내...'

 썩은 냄새는 의외로 좋은 징조였다. 시체들의 산이란 바이러스를 편의상 '좀비 바이러스' 취급하고 있긴 하지만, 시체들의 산은 사람을 시체로 만드는 게 아니란 걸 그녀는 여태까지 경험을 통해서 어렴풋이 느꼈던 것이다.

 시체들의 산은 시체를 일으키는 게 아니었다. 살아있는 신체를 재구성하는 것에 가까웠다. 놈들이 새로운 종을 만들어내는 방식이, 기존의 좀비처럼 보이는 개체들이 서로 한데 뭉쳐서 커다란 젤리 덩어리 같은 고치를 만든 다음에 그 고치에서 새로운 개체가 나타났으니까.

 마치 벌레가 애벌레에서 번데기 과정을 거쳐 성충이 되는 것과 흡사했다. 그녀가 이런 걸 아는 이유는, 그녀가 시민권자였던 시절에 대학에서 전공으로 배웠던 게 곤충학인 까닭이었다. 생물학 계통 중 하나란 점에서 그녀는 나름대로 엘리트였던 처지였다.

 이제 와선 꼴이 말이 아니게 됐지만- 이런 썩은 냄새는 이미 시체들의 산이 자기네들 방식대로 번식을 잔뜩 치른 흔적이었다. 그렇게 번식을 치른 다음에 그들은 무리 지어서 다른 곳으로 움직였는데, 그렇다보니 이런 썩은내 나는 곳은 생존자의 안식처론 적합했다.


 '오늘은 좀 마음 놓고 잘 수-'

 그 순간, 그녀는 사타구니를 향해 뭔가가 강하게 부딪힌 느낌이 들었다. 비비탄 총알이 부딪힌 느낌이었는데, 강화 시술이 이뤄진 까닭에 그걸로 치명상을 입거나 그런 건 없었다.

 '뭐야.'

 그럼에도 그녀는 잽싸게 상황을 파악하고, 자기 사타구니를 훑어냈다. 혹시라도 화학 계통 물건이거든 빨리 몸에서 훑어내버리는 게 나았으니까. 사타구니에 화학공격을 당하는 것보단 손에 노출이 되는 게 좀 더 대처하기 용이한 것도 있었고-


 '툭!'

 '투욱!'

 이번엔 맨살에 그대로 적중한 느낌이었다. 그에 그녀는 자기 손을 살폈다. 군복의 잔해처럼 보이는 게 녹아서 손 위에 있었는데, 섬유질에 효과가 있는 것인지 손엔 별 다른 이상이 없었다.

 그걸 확인한 순간, 그녀는 자기 사타구니를 뭔가가 비집고 들어온 걸 느꼈고, 이에 그녀는 직감하고 말았다.


 '아, 여태까지 그 고생을 했는데 이런 식으로... 안 돼!'

 일단 사타구니에 손을 집어서 자기 사타구니에 비집고 들어오려는 게 뭔지 확인부터 하고 싶었다. 그래야 자기가 뭣 때문에 머리에 총구를 갖다대는진 보고 죽을 테니까.

 '투욱! 툭툭! 투두둑! 툭!'

 그렇게 뭔가 콩알 같은 걸 잡고서 확인하는데, 그런 와중에도 그녀의 사타구니엔 콩알 같은 게 부딪혀서 사타구니의 틈새를 파고들려는 시도가 느껴졌다. 이런 점에서 시체들의 산에서 비롯된 부산물이란 건 분명했다.

 시체들의 산과 엮인 개체들은 죄다 인류에 대해 섹슈얼 어택부터 하고 봤으니까. 놈들의 대가리를 부숴도 몸통에게 몸을 갖다대거든 바로 성교로 이어질 정도로 이에 대한 집착이 심했다

. 물론 생물학적 사고로 따지면 그게 개체수 증식에 도움이 되니깐 그러는 것이겠지만- 안타깝게도 상황을 그런 식으로 낙관적으로 보기엔 그녀의 사타구니에 뭔가 부딪히는 빈도가 심상치 않았다.


 그렇기에 자살하려거든 생식과 관련된 요소를 먼저 제거하는 게 우선이었다. 시체들의 산이 온전히 감염된 육신을 '모판'으로 삼는단 게 알려지자, 매뉴얼에 추가된 내용이었다. 생식과 관련된 요소를 진작 제거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게 꺼림칙하다면 적어도 죽어가는 순간에 생식과 관련된 부위를 훼손해야 된단 매뉴얼이 추가된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망설였기에 일단 입부터 열었다.


 "이 벌레 새끼들!"

 그녀는 자기 손에 잡은 콩벌레 같은 걸 확인했다. 이 와중에도 그녀의 보지에 들어오려던 벌레들은 이미 질 안에 침투해서 꿈틀거리는 게 느껴졌다. 이대로면 틀림없이 이용당할 게 뻔했다. 그렇기에 그녀는 이 순간을 위해서 남겨둔 어깨의 '진통제'를 투입했다.

 그에 어깨 쪽에 찔린 통증이 있었지만, 이내 통증이 완화되는 걸 느꼈다.

 진통제는 어지간해선 마음도 못 먹을, 생식 기관의 파괴 후 자살이란, 최후의 의무를 위한 세계정부의 마지막 양심이었다. 그렇게 보지에서 느껴지는 통증이 완화되면서 몸이 들뜨는 고양감마저 느꼈지만, 그녀는 총구를 자기 배쪽을 향했다. 그러고도 바로 쏘진 못 하고 망설이다가 끝내 그녀가 소리쳤다.


 "내가 너희들 모판으로 이용당할까 보냐! 절대로 안 돼!'

 아직은 시간이 있을 거라 본 것도 있고, 제정신을 차리고 있는 것 역시 그녀를 망설이게 하는 요인이었다.

 '툭!'

 그러나, 그녀의 머리에 뭔가가 부딪히기 시작하자, 그녀는 그걸 팔로 훑어낸 다음에 자신이 해야될 일을 상기하고서 이를 악물고 자기 배를 노려봤다. 그리고 권총을 조준하고, 방아쇠를-


 '타앙!'

 '타앙! 타앙!'


 진통제의 효과가 없었거든 분명 그 순간에 정신을 놓고 머리에 총구를 겨눌 정신도 없었을 테지만, 진통제에도 불구하고 미약하게나마 올라오는 통증에 입안이 미끌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목에서 절로 핏물이 울컥대는 걸 그녀의 목이 삼켰지만 그녀의 입안에 침이 고이기 시작한다.  구역질이 나는 걸 다시 삼키려니, 더욱 더 역해졌지만 그런 역함도 진통제가 퍼지는 것에 따라 둔해지기 시작했다.


 '이런 씨발..."

 그녀는 자신의 배에서 피가 울컥울컥 나오는 게 보였다. 입으로 올라오려던 게 올라오질 못 하니 빠져나가는 모양이었다. 이런 와중에 보지에서 뭔가가 꿈틀거리는 게 미약하게 느껴지자, 그녀는 통증으로 분비됐던 침을 마저 삼키며 이를 악물었다.

 '타앙!'

 그녀는 다시금 총을 쏴서 보지가 있던 부위가 터지는 것까지 봤다. 한때 이 사태가 금방 진정되고 사랑하는 이와 엮일 기대감을 갖고서 놓아뒀던 것을 자기 손으로 부숴지고, 헤집어놓은 걸 보자, 그녀는 끝내 눈물을 찔끔 흘렸다.

 그런 다음에야 그녀는 비로소 자기 머리에 총을 쏠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이렇게 된 이상 고통스럽게 죽어가느니, 빠르게 끝내는 게 더 낫단 확신이 생기고 만 것이다.



 '타앙!'



 젊은이가 청동 창 끝에 난자된 채로 전장에 누워 있는 모습은 완벽했다고 노래하던 적의 기억을 되살리거든, 그녀의 죽음은 정당한 걸 넘어서 숭고하기 그지없었다.

 그녀의 피비린내 풍기는 시체가 벌레떼에게 갉아먹힐지언정, 모판이 되거나 시체들의 산에 합류하여 동족이었던 이들을 죽이는 데 일조하기 않게 될 테니, 그녀의 어디에다 놔도 쓰잘데기가 없어진 몸뚱아리만큼 숭고한 광경은 없었다.


 그게 그녀의 의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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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으론 인체 외부에 장기 삐져나온 건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이 글을 쓰게 된 걸 보니 아무래도 이 쪽에 슬슬 발을 들이려는 모양이 아닌가도 싶다.


 이 이야기의 모티브는 pestilencesfm의 최신작인 질 발렌타인이 자살하는 sfm 영상이라 해도 될 것이다. 비록 질 발렌타인은 강한 여성상이지만, 그 강한 여성이 저항한답시고 권총을 쏘다가 끝내 자기 머리에 쏘던 순간에 든 감정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을 하던 찰나에 이 채널에 올라온 여성기 관련 글을 보고서, 한 번 끄적여본 게 지금 이 글이다.


 도중에 총알 다 떨어져서 자결에 실패하는 식으로 변형도 할까 싶었지만, 일단 이 이야기는 이렇게 끝내는 게 낫다고 봤다. 변형은 나중에 여유가 되거든 그 때 써도 되겠지.

 그럼, 만족스러웠길 바라며 물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