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아무래도 이상한 곳이었다.


 신왕은 세상이 돌아가는 걸 볼 때마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신왕이 그저 한낱 선지자의 제자일 무렵, 그의 스승을 지킬 힘도 없이 그가 죽어가는 걸 무기력하게, 그리고 비겁하게 그로부터 도망치려고 했던 걸 떠올리거든 대체 왜 그가 죽임을 당해야 하는지 이해 못 햇다.

 그리고 지금, 신왕이 세상의 모든 이들에게 스승의 가르침을, 스승이 경전으로 여기던 바를 전파하고 그들에게 받아들여진 지금에 이르러서, 대체 왜 자신과 같은 이가 권좌에 앉아서 신좌에 앉았을 이를 대변하게 된 것인지 도저히 알 도리가 없었다.


 신왕은 아직도 스승을 사랑했다. 하지만 스승은 이제 세상에 없었고, 그저 신도들의 찬송으로나, 주교들의 가르침 속에서나 숨쉬고 있는 존재에 불과했다.

 이러한 상황은 신왕에게 거대한 공허를 안겨줄 뿐이었다. 허무했다. 그럼에도 신왕은 억지로라도 만족하고자 했다. 그래, 결국 스승께선 이렇게라도 존재하시지 않으신가. 신께서 도우셨기에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던가.



 스승은 인신공양을 배격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그 일체를 부정했다. 그리고 귀족이며 평민이며 노예며 할 것 없이 모두 다 같은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가장 문제가 됐던 건 모두가 같은 사람이라고 주장한 부분이었다. 실로 어이없게도 신왕조차도 그 말에 대해선 지금도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이라고 전부 다 같은 사람이 아닌데, 어떻게 그들조차도 사람으로 취급할 수 있을까? 대체 어째서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었던 걸까?


 결국 스승께선 본인이 그 인신공양에 의해 희생되고 말았다. 사람에 의해 살해당했고, 그는 죽은 직후엔 노예들의 왕이었고, 지금에 이르러선 신왕보다도 높고 신에 필적하는 존재가 됐다.

 그렇기에 아마 스승께서 원했던 세상은 이런 게 아닐 거라 생각했다. 신왕 본인이 가장 잘 알았다. 생전 스승은 노예라 불리는 출신이었고, 지금에 이르러서도 결국 만 사람들의 고통을 짊어지고서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는 처지였으니까.

 정녕 스승께선 이런 것을 바라셨는가에 대해서 묻자면, 신왕은 고개를 저었다. 부정하고 싶었다.


 그럼에도 부정할 수 없었다. 다들 스승께선 그것을 진심으로 원했노라고 믿고 있는데, 거기다 대고 나의 스승은 그렇지 않다고 말할 용기가 없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신왕은 여전히 비겁했다.



 "선지자시여."

 신왕은 그렇게 말한 다음에 괜히 주변을 둘러봤다. 아무도 보지 않았다. 결계 역시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신왕은 그걸 확인한 다음에 마저 기도했다.

 "선지자시여, 여전히 우릴 지켜보고 계실 내 주여! 오늘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지금의 이 시간을 주신 주여, 제가 하는 일이 정녕 옳은 것이나이까?"


 스승께선- 스승께선 늘상 고민이 많은 사람이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색하지 않았을 뿐, 적어도 신왕을 비롯한 자신의 직계 제자들에게만큼은 많이도 호소하던 분이셨다. 자신이 하려는 일이 진정 옳은가 늘 걱정하시던 그런 분이셨다.

 그렇기에 그 제자들은 스승이 죽은 뒤에야 스승에게 바치는 기도에 당신이 하는 것이 옳았단 내용을 넣었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으니까.


 "주께서 하신 일이 모두 옳았던 것이니, 우리도 그를 이어받아 바르게 나아가겠습니다. 부디, 스승께선 축복하소서. 축복하소서."

 이제 세상에 더 이상 신왕과 같이 하는 이들은 없었다. 다들 신왕에게 저항하다가 스스로 떠나거나, 신왕과 함께 하다가 늙어 죽었다. 그럼에도 신왕만은 홀로 살아남은 것도 모자라 점점 젊어지고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신에게 선택받은 존재였고, 그렇기에 신왕은 괴로워했다. 자신이 아니라 스승에게 어울릴 자리를 왜 자신이 꿰차고 있단 말인가.



 성유물, 스승의 생전 흔적은 모조리 수집했다.

 유골과 머리카락은 물론이요, 그가 쓰던 물건들은 당연했다. 그리고 그가 죽을 때에도 여전히 살아있던 그 가족들의 모든 것까지 전부 수집해서 연구하기를 수백 년이었다.

 신왕으로서 의무와 업무가 아니었다면 이리 오래 걸리지도 않았겠지만, 이미 인간 범주를 넘어선 초인인 신왕에게 있어서 시간이 오래 걸린 건 아무래도 의미가 없었다. 그렇기에 신왕은 더더욱 이 작업을 자신의 사명처럼 여겼다.


 신왕이 늘상 아쉬워하던, 이제 와선 오히려 다행으로 여기는 점은 스승이 여자와 관계하지 않았단 점이었다. 그로 인해 종종 몽정을 하시곤 하는데, 그 빨래를 맡았던 게 바로 지금의 신왕이었다.

 신왕은 순순히 빨래를 하다가, 일이 요상하게 틀어질 무렵에 그 몽정한 흔적이 남은 걸 간직하다 못 해 방부 처리에 시간 조작까지 해서 보관하곤 했다. 그것이야말로 신왕의 계획에 있어서 키 아이템이 된 건 두말할 것도 없었다.


 그 모든 성유물 덕택에 신왕은 드디어 지하의 공간에 재림한 스승의 모습을 눈앞에 목도하고 있었다.

 비록 지금은 저 형상을 유지하기 위한 각종 기능을 갖고 있는 용액에 둘러싸여서 잉태를 기다리는 아기처럼 눈을 감고 조용히 있었지만, 심장이 박동하고 있으며 때론 태동하는 것마냥 움직이기도 하는 그런 존재였다.

 스승의 생전 모습이, 재림한 그 모습이 마침내 신왕의 눈 앞에 있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에 정말로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오죽하면 신학자들을 동원해 학회를 설립하고, 이후에 학회를 따로 독립시킬 정도로 그들의 연구 결과를 반영하고, 또 반영해서 지금에 이르른 것이었다.

 그 여정은 그야말로 고난이었고, 시련이었으며, 역경이었다. 그 모든 역경을 딛고서 마침내 여기까지 오고야 만 것이었다.


 "주여, 이제 제가 받은 모든 걸 주께 돌려드리겠나이다."


 이제 탱크에 있던 용액이 빠져나갔다. 세탁기에 가득 찼던 물이 탈수를 위해 빠져나가는 것처럼 그렇게 순식간에 빠져나갔고, 재림한 스승의 육신은 그 와중에 교정되어서 그 안에 바로 섰다.

 그리고 탱크와 세상을 격리하던 유리벽이 없어지자, 신왕은 그야말로 감격에 벅차올라 울먹였다.


 "주여, 돌아오소서!"


 그렇게 신왕은 자기 생애 최후의 기적을, 재림한 스승에게 온전히 갖다 바쳤다.



 "……."

 스승은, 스승이자 곧 신왕이기도 한 그가 자기 몸에 붙었던 전극을 떼어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분명 자신은 하나인데, 어째서 몸은 둘일 수 있단 말인가? 그럼에도 스승의 몸이 움직이면서 동시에 신왕도 여전히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다. 분명 계산대로라면 일이 이렇게 될 게 아니라 둘 중 하나는 죽어서 쓰러져야 옳았다.

 그렇게 망연자실한 신왕은 이내 전극을 다 떼어낸 스승이 자신을 끌어안자 그대로 그 품에 안겼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할지 모를 상황이었지만, 일단 이렇게 하고 싶었던 건 분명했다. 그리고 신왕은 스승을 빤히 쳐다봤다. 그에게서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을, 그 말을 듣고 싶었으니까.


 "오랜만이구나."

 뭔가 실망스러운 인삿말.

 "이렇게 됐음에도 나는 여전히 망설이는구나. 제자야, 너는 어떻느냐? 너라면 답을 알 것 같으냐?"


 그 벅찬 환희는 이따금씩 신왕에게 진상되던 여인네와 동침할 때 느꼈던 그것과 상당히 흡사했다. 그렇기에 신왕은 그 앞에서 목놓아 울 수 있었다.



 "스승이시여."

 얼마나 울었을까. 간신히 감정을 추스른 신왕이 스승에게 말했다.

 "주여, 말씀하소서. 저는 여전히 답을 모르겠나이다."


 둘 다 답을 모르겠다고 하는 이 자강두천 비슷한 상황에서, 스승은 끝내 말씀하셨다.


 "제자야, 너는 이미 길을 정하고 그걸 믿고 있지 않느냐? 여태까지 네 여정에서도 알았을 것이다. 답은 아무도 모를 것이며, 그저 그렇다고 믿는 우리만이 있을 뿐이라고. 그렇다면, 이제 시작하자구나."

 사람이 사는 세상. 그 세상은 아무래도 불가능했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이 똑같은 조건을 갖고, 똑같은 상황에 놓이게 된다면 그 정도는 신왕이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이제 스승을 통해서 한 발짝 더 나아가기로 했다.

 아울러, 지금처럼- 스승과 신왕이 하나의 의식이 된 것처럼 나머지 모두도 그렇게 엮어내기로 결심하였다.


 그렇게 군체의식, '완벽한 찬가(The Perfect Chant)'가 형성됐다.




 혹자는 이것을 참사라고, 혹자는 이것을 비극이라고 부를련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일이 터지고 한참 뒤에 나타난 존재인 테인 그룹의 회장은 이 사태를 이렇게 규정했다.


 '미쳤군.'


 그럼에도 회장은, 어쩐 일인지 중국 공산당을 대하던 그 귀축의 심정과 달리 이들의 세상에선 별로 모난 심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저 그 곳에 들러서 관광이라도 한 것마냥 구경하다가 떠났다.


 곧이어 테인 그룹과 해당 군체 의식 사이에 각종 조약문과 계약서들이 작성됐다.

 이런 관계가 영원할 거란 보장은 없었지만, 일단은 그리하기로 했다.


 저들과의 주종 관계를 따지는 건, 나중에 해도 늦지 않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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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에 봤던 사상의 통합에서 이상성욕을 느낀단 글을 보고서 그게 꽤나 인상에 남았었다.

 그렇담 그러한 사상의 통합은 어떻게 이룰 수 있을 것인가? 일단 회장처럼 치트 갈기는 캐릭터라면 뭐든 못할까 싶지만, 그렇다고 회장을 대놓고 집어넣자니 회장 이 놈은 아무래도 그런 사상의 통합 같은 거 안 바라는 느낌이 너무 강했다. 그렇다고 세계관 바탕인 여신을 집어넣자니, 직접 나서서 뭘 하는 건 아무래도 이상한 그림 같고.


 조금 달리 말하면 해당 글에서 나온 '신왕'의 후원자가 여신이냐고 하거든 그건 아직 확정된 게 아니다. 아무래도 회장이 계획적으로 여신의 뒤통수를 후리고 그 자리를 자기가 꿰찰 정도로 간 큰 캐릭터는 못 되는데, 달리 말하면 이런 수준의 얘기에서 악역을 맡을 캐릭터가 하나 정돈 더 있어야 균형이 어느 정도 맞지 않을까 싶다. 회장과 여신만 갖고선 대결 구도가 아무래도 나오지가 않는다.

 회장은 기본적으론 겁쟁이이고, 여신은 구경꾼에 일부러 싸움 걸 이유가 없는 형편이니까.


 그렇게 잡다한 생각이나 하던 와중에 결국 프로토스, 저그마냥 군체 의식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프로토스는 칼라 끊어졌으니 더 이상 군체 의식은 못 된다지만, 그래도 그런 군체 의식 비슷한 걸 생각하면서 글을 써본 것 같다.


 그런 다음에 이 글을 올리자니, 분류가 참 애매했다. 애초에 섹스씬 하나도 없는 건 너무한 게 아닌가 싶어서 신왕을 아주 그냥 변태성욕자로 만들긴 했지만, 그렇다고 이걸 '동성'이나 '얀데레'라고 하긴 또 이상했다. 막말로 이 글은 예수 제자들이 예수를 대한 태도에서도 영감을 받았는데, 그걸 그렇게 표현하거든 대번에 예수 제자들은 죄다 변태 새끼들이라며 모욕하는 꼴이 되니 말이다. 적어도 본 필자는 그렇게 여길 것 같았다.

 그래서 '변태'라고 붙였다. 앞으로도 뭔가 분류하기 어렵거든 전부 '변태'라고 붙이지 않을까도 싶다. 고어나 근친처럼 뚜렷한 갈래가 있거나, '상납'이라고 따로 특정한 상황이 뚜렷한 게 아닌 이상에야 '변태'라고 붙이면 편할 것 같다.


 이렇게 쓰고나니깐 뭔가 마음 속에 남았던 게 떠나는 그런 느낌이다. 개운한 느낌 말이다.

 그 글을 썼던 이도 이 글을 보고 조금이나마 만족할 수 있기를 바라며 마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