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억!'

 전투 중에 모자가 날아간 건 아무래도 괜찮다 생각해서 넘어갔는데, 곧 이어 머리를 향해 날아온 직격에 그녀는 한순간에 의식을 놓았다.


 '꽈악.'

 "크윽!"

 그리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모든 게 늦은 상태였다.



 학창 시절, 몸 상태가 점점 더 안 좋아지고 있고, 환경이 안 좋아진다고 생각했지만 그녀는 그래도 자신은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성적도 우수하고, 전투는 적성에 안 맞으니 신경계 쪽에서 일할 거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미 그 곳은 포화 상태. 이미 성년에 이르러서 성장을 멈춘 이상에야 더 이상 고용량이 늘어나기도 어려운 직장이 됐기에 그녀는 결국 백혈구가 되어 여태껏 전투를 치르곤 했다.

 몸의 주인이 몸을 함부로 굴리긴 했어도 여태까진 그래도 그녀가 살아남을 만 한 전장들만 거치곤 했다. 사실 전장이라기도 뭣한, 몸에서 폭음이 일어나거든 그걸 수습하는 데 주로 동원되곤 했다. 그녀는 아무래도 전투는 적성에 안 맞았으니까.


 그러나, 백혈구인 이상. 그리고 지금과 같은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결국 그녀조차 전장에 투입됐다. 항의조차 할 수 없이 그녀는 사지로 끌려나왔고, 이내 그녀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한 참상을 목격해야 됐다.

 그녀가 여태껏 본 참상이라고 해봐야 폭음 직후에 순찰이나 청소 업무를 수행하면서 간에서 죽어나간 간세포의 흔적을 목격하거나, 그 사체가 적혈구들에 의해 들려져 나오는 걸 봤을 따름이었다. 시체를 보더라도 전투로 인해 죽어나간 사체를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미 절반은 고름이 되어서 형체가 녹아났음에도 고통스러워 하는 표정이며 자세가 온전한 사체들은 애교였다. 그건 그나마 형상만 흐릿하게 있었으니까.

 방금 벌어진 전투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마주치는 죽어가는 순간을 생생하게 재연하게 만드는 그 소름끼치는 표정들, 그리고 사체에 가해진 가학적인 조치들이 대번에 눈에 밟혔다.


 안 그래도 전투 적성도 없는 처지에 그런 것까지 눈에 밟혔으니 결과가 이렇게 되는 건 당연했을 테지-



 "외로워, 외롭단 말이야."

 그 때, 그녀를 붙잡은 임질이 그녀의 귀에 속삭이는 게 들렸다. 그리고 그건 다른 곳에서도 이미 전투의 승패가 결정난 임질들이 그녀의 동료를 포박해 똑같이 울어대니 그건 마치 성가 같았다.

 그런 성가가 울린 다음에 조금씩 불협화음이 생겨났다. 벌써부터 백혈구의 제압에 들어가며 신음소리가 나오는가 하면, 추가적인 제압이 필요없을 정도로 허술하거나 부상이 심한 경우엔 희롱하기 시작하면서 거대한 불협화음이 발생했다.


 "외롭지? 알아. 너 같이 1인분도 못 하는 년들이 참 여럿이었거든."

 당연하다. 이 몸의 주인이 몸을 함부로 쓰기 시작한 게 그녀가 학창 시절일 때부터였으니까. 그녀처럼 전투 적성이라곤 눈꼽만큼도 없는 줄기세포가 백혈구가 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또, 적이 하는 말따위 귀를 기울일 필요도 없다.

 헌데, 그 시점에 그녀의 눈엔 끝까지 싸우고 있는 백혈구들이 눈에 밟혔다. 그래, 저들에 비하면 자기는 아무 것도 못 해낸 머저리겠지. 그 순간, 그녀는 자신의 패배를 끔찍하리만큼 실감했다.


 "크윽, 큭!"

 그런 와중에 그녀의 머리에서 뭔가 차가운 게 느껴지더니, 그대로 그녀의 얼굴 아래로 그 정체가 흘러내렸다. 그녀의 세포벽이 무너져버린 것이다. 이대로면 설령 구조되더라도 시한부인 건 분명했다.


 "외롭지? 우리도 외로워. 그러니 사이좋게 지내자구?"

 '찌익!'

 그런 절망적인 소식과 함께 그녀의 옷이 찢겨져 바닥에 나풀거리며 떨어졌다. 그녀를 지켜주는 건 실로 아무 것도 없는 와중에 일단 그녀의 세포벽, 몸에 가장 먼저 침투한 건 임질의 촉수였다.


 '찌거억!'

 비부를 파고든 촉수는 단순히 그녀의 뱃속에만 영향을 주지 않았다. 임질의 촉수에 박히기 무섭게 그녀의 온몸에 그 여파가 단단히 미쳤다. 그리고 그녀의 목을 임질의 촉수팔이 아주 굵게 조여왔다.


 "커헉!"

 그 강렬한 조임에 그녀는 입 안에 고였던 걸 내뱉었다. 머리를 다친 까닭인지 입안에 고인 건 핏물이 아니었지만, 그녀가 내뱉은 침은 임질의 피부엔 아무런 영향이 없단 걸 보면서 그녀는 다시금 절망했다.

 임질이 보통 세균과 같은 놈들일 것 같으면 저 침에 묻은 곳이 부식됐을 터였다. 백혈구가 된 이상 그녀들은 하나하나가 생체 폭탄과 다를 게 없었으니까. 그렇지만 임질의 단단한 껍질 앞에서 백혈구가 할 수 있는 건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었다.


 그와 함께 그녀의 비부를 파고든 촉수가 징그럽게 율동하기 시작하자, 백혈구의 몸 깊숙한 곳에 내장된 장치가 켜졌다.

 앞서 말했지만 백혈구는 하나하나가 생체 병기이자 생체 폭탄이었다. 그렇기에 노화된 백혈구를 폐기하는 것에 있어서 안전하게 해제하는 방법이 있었으니 바로 백혈구의 비부 안쪽을 자극하는 것이었다.

 그 곳이 자극되거든 이제 백혈구의 생체 구조에 변형이 생기면서, 백혈구의 몸에서 위험한 요소들이 모두 가슴으로 분출되는 구조였다. 그렇게 일단 위험 물질을 전부 빼낸 다음에 적혈구나 혈소판을 재활용하는 것처럼 노화된 백혈구가 체내에서 재활용되게 마련이었다.


 '싫어, 이런 거...!'

 "괜찮지? 드디어 네가 네 몫을 온전히 해내는 순간이야. 거봐. 우리와 사이좋게 지내면 이렇게 되는 거야. 쓸모없고 미움이나 받던 네가 마침내 제자리를 찾게 된 거야."


 그녀의 눈에 피가 흘러서 깜박이자 시야가 뻘갰다. 다시 깜박이자 그나마 맑게 보였지만, 그녀의 눈에 보인 건 참상이었다.


 그녀처럼 임질에게 보지가 쑤셔지며 모유를 뿜어내며 생체폭탄으로서 마지막 소임조차 이루지 못 하게 되며 해체당하고 있는 광경들, 그나마 자폭에 성공해도 그 잔해가 널부러져서 그대로 고름에 휩쓸리는 광경들. 아니면 그 잔해가 임질의 입안에 들어가 포식당하는 광경들.

 팔다리가 잘려나가 아무것도 못 하는 백혈구의 몸통이 임질의 촉수에 의해 바닥을 뒹굴다 끝내 자폭을 해도 임질들에게 아무런 피해를 못 주고서 허망하게 터져나가는 광경들, 저항수단을 모두 잃고 이빨마저 빠졌지만 세포벽은 튼튼해서 임질의 노리개로 전락한 동료들.

 그녀는 그 중의 하나였다. 1인분조차 제대로 하지 못 하고 임질에게 먹혀 오히려 저들 좋은 일만 해주는 이들만이 그녀의 눈에 보이고 있었다.


 그러한 모든 굴욕 중에서 그녀가 제일 견딜 수 없었던 것은, 쾌락이라곤 눈꼽만큼도 없던 그녀의 삶에서 지금 이 순간에 가장 많은 쾌감을 느끼고 있단 점이었다.

 여태까지의 메마르게 그저 숨이 붙어있어서 쉬고 있었던 것과 달리, 지금 살해당하고 있는 이 순간이야말로 역설적으로 그녀가 살아있음을 가장 뼈저리게 깨닫고 있는 순간이었다.


 촉수의 진퇴가 빨라지면서 그녀의 머리에서 나오는 출혈량도 점점 많아졌다. 그녀의 시야는 붉었지만 더 이상 눈을 감을 기력조차 없었다. 그녀의 목은 잔뜩 졸려지다가, 그녀가 의식을 놓고 죽으려고 할 때쯤이면 슬쩍 풀리면서 호흡이 이뤄지고 다시 조여들었다.

 그 순간, 그녀는 참혹한 현실을 깨닫고 말았다. 학창 시절, 그리고 지금조차도 한창 꽃이 필 때였지만 결국 그녀의 삶은 이 순간을 위해서 달려왔던 것이노라고- 그와 함께 수도 없이 많은 비난들도 떠올랐다.

 당장 만나는 어른들이 하나 같이 입에 담던 백혈구는 되지말라던 말씀부터, 백혈구가 되면서 그저 순찰이나 돈다는 적혈구들의 한탄부터 상처가 난 부위에서 나름대로 조치를 취하거든 백혈구들 제대로 일도 못 하면서 여지껏 살아있냔 비난마저 들었던 게 떠올랐다.


 임질의 말 중에 틀린 게 과연 하나도 없었다. 그 절망적인 현실 앞에서, 그녀는 혀라도 깨물려 했지만 이미 그녀의 동력원은 외부로 잔뜩 빠져나간 상태였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녀의 몸 안에 남아있는 체액은 그저 그녀의 형태만을 보존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끝내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였지만, 머리 위에서 흘러내리는 피에 섞여서 그게 눈물인지조차 몰랐다. 그저 그녀의 눈에 고인 흔적만이 그녀가 울고 있단 걸 보여줄 뿐이었다. 그녀의 최후는 감정조차 제대로 호소하지 못 하고서 비참하게 죽어나가는 모양새였다.


 마지막으로 그녀가 느낀 것은 이 모든 비참함에 절여진 자신의 몸에서 비롯된 극진한 쾌감과, 그로 인해 자신의 코에서 뭔가가 쏟아지는 느낌이었다.



 그런 와중에 그녀의 머리 위에 모자가 씌워졌다. 아무래도 임질은 그녀가 죽어가는 걸 느끼고서 조금이라도 막아보려 했지만, 아무래도 그녀의 것이 아닌 모자를 씌운 까닭인지 별 효과는 없었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백혈구 모자 중에서 아무거나 주워서 올린 것에 불과했으니까.

 끝내 임질은 자기가 갖고 놀던 게 사멸했단 걸 깨닫고서 기왕 이렇게 된 김에 노리개로라도 제대로 써먹을 작정으로 굴었다. 일자로 바닥까지 쭉 뻗어있던 그녀의 자세에 변화가 생긴다. 그녀의 왼쪽다리가 들어올려지며 'ㅏ'형태로 체위가 변했다.

 그에 따라 조금은 달라진 조임에 임질은 다시금 그녀의 몸에 자신의 욕망을 털어넣기 시작했다.


 아직 할 게 한참이나 남은 몸뚱이가 온몸에 피칠갑을 하고서, 그녀가 이 희생제의 적합한 제물임을 널리 알렸다.

 거기 있는 그녀들 모두가 이 희생제를 위해 지금껏 존재해왔던 것이었다고, 임질들에 의해 선언됐다.



 "외롭다..."

 자신이 제압한 백혈구로 하려던 걸 모조리 다 해치운 다음에 임질균은 여전히 자기 촉수에 박혀있는 사체를 봤다. 이미 사체와 촉수가 한 데 결합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굳어버린 사체에서 임질은 간신히 촉수를 빼냈다.

 그 때, 임질의 눈에 이런 데 겁도 없이 수레를 끌고 돌아다니는 게 보였다. 백혈구의 호위도 없이 돌아다니고 있는 적혈구였다. 그 순간, 임질은 기가막힌 생각이 떠올랐다.


 "외로워-"

 "흐아악!"


 적혈구를 포획하는 건 아주 쉬운 일이었다. 더군다나 이제 막 입사해서 뭣도 모르는 적혈구가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 일에 휩쓸린 건지도 모르는 그 적혈구를 임질이 포획을 못할 리 없었다.

 이내 적혈구의 온몸이 포박되어서 임질에게 끌려갔는데, 그 와중에도 열심히 아둥바둥대는 모양새가 임질은 조금 거슬렸다. 그렇지만 이내 나올 반응을 기대하며 임질은 적혈구를 끌고 갔다.


 '털썩!'

 적혈구를 바닥에 내동댕이치듯, 그렇지만 딱 목표했던 지점에 갖다놓은 다음에 임질은 미소지었다. 그리고 적혈구는 내상을 입어서 피를 한 차례 토해내더니, 이내 자기 눈앞에 있는 참상을 보며 몸이 굳어버렸다.


 "외롭지?"

 새로운 유흥거리의 등장에 주변에 있던 임질들이 하나둘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이 쇼를 기획한 임질이 적혈구의 몸을 들어올려 그 사체 위에 엎어놨다.

 암만 신입 적혈구래도 이게 무슨 뜻인지 모를 리 없었기에 적혈구는 그대로 그 사체에 구토하기 시작했다.


 이건 의도한 게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아주 흥미로웠기에 그 자리에 있는 임질들은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즐거움을 표현했다. 그리고 쇼를 기획한 임질이 적혈구에게 속삭였다.


 "너희가 그토록 미워하던 백혈구를 직접 보니 역겨운 모양이구나. 좋다, 제안을 하겠다. 네가 그걸 이용하면 살려주마."

 "그게 무슨..."

 "겁탈해라. 그럼 살려준다."



 그 순간, 적혈구는 자신의 눈에 띈 광경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잊을 수 없었다.

 그녀의 슬쩍 벌려진 입 사이에 그가 토악질했던 게 넘쳐흘러 그녀의 입과 목을 뒤덮고 있는 게 꼭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게 아니라, 그녀가 토악질을 하다 쓰러진 모양새 같았다.

 그러나 그 시선을 슬쩍 올려서, 눈도 제대로 감지 못 하고 죽은 백혈구의 눈과 마주쳤을 때 그는 그 눈빛을 도저히 잊을 수 없었다. 이미 죽어서 눈빛도, 초점도 없이 위로 들어올려진 것만 해도 절규하고 있음이 생생했는데, 피눈물까지 쏟아내고 있는 그런 몰골이었다.

 그 눈과 마주친 덕에, 적혈구는 자신의 단명할 삶 앞에서 그가 최후로 해야될 일이 무엇인지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 위해선 적어도 시간이 필요했다.

 '스륵.'

 적혈구가 그 때 결심했던 걸 이루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그녀에게 필요한 절차를 차근차근 밟았다.


 그녀의 몸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가슴에서 쏟아내야 될 것들이 다시 쏟아지기 시작한다.




 "윽, 지독하군."

 페니실린의 투입으로 역전승을 거둔 신체는 이내 사후 수습에 돌입했다. 이번 전쟁에서 전사한 전사자를 수습해서 예우를 차리게 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될 일이었다.

 하지만 높으신 분들의 결정과 현장의 현실은 달랐으니, 이 고름밭에 돌아다니는 거라곤 기껏해야 사체 조각, 팔 다리가 따로 따로 노는 이 광경에서 온전한 사체를 회수하기란 그리 쉬운 게 아니었다.


 애초에 백혈구는 생체 폭탄이고, 임질에게 암만 쥐어짜이더래도 결국 몸 안에 생체폭탄이 되는 성분은 남아있게 마련이었다. 말 그대로 제대로 성분을 뽑아낸 게 아니거든 그 성분들이 작용을 일으켜서 부패를 더 촉진시키게 마련이었다.

 당연히 임질들에게 어지간히 쑤셔지는 것 갖곤 택도 없는 일이었다. 쑤셔대는 양으로만 따지거든 충분히 가능할 법도 한데, 제대로 된 해체 절차도 안 밟고 무작정 쑤셔댄 게 제대로 해체될 리 당연히 없었다.

 현장에서 필요해서 과정을 익히는 적혈구들 아니면 재활용 처리를 하는 간에서나 관련 기술자들이 있을 정도였다. 조금은 달리 말하자면 그것 때문에 지금 적혈구들이 질색하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그저 고름만 있거든 고름만 퍼다가 노폐물 처리하는 곳에 갖다 버리면 그만인데, 백혈구의 머리나 몸통 부위가 조금이라도 멀쩡하거든 이에 대해선 조치를 취해야 됐으니까. 그거 자체가 언제 터질 지 모르는 시한폭탄인 건 덤이다.

 또, 그들 중에서 그나마 신선한 편에 속하는 백혈구에 대해 처리한 경우도 잇었는데, 그 백혈구들이 임질에게 된통 당한 사체들이다보니 상태가 아무래도 더러운 것도 있었다. 그런 전투가 벌어지다못해 썩어문드러진 현장이 바로 이 곳이니 질색할 수밖에 없었다.


 "잠깐, 저거 적혈구 아냐? 신입! 저거 네 옷 아니냐?"

 "쯧쯧, 이런 데 임무 배당받고 죽은 모양이로구만."

 동료, 선배들의 말을 그는 애써 무시하며 그 쪽으로 달렸다. 저 신입이란 놈은 저기서 죽어나갔을 놈관 다르게 옷이 없어져서 그렇지, 이 전쟁터를 무사히 통과한 기이한 전적을 갖고 있었다. 그거 빼면 딱히 모난 데도 없고 그런 신입이었다.

 그에 그들은 신입이란 놈이 자기네들 할 일을 대신 하겠거니 싶어서 근처에 삽질했다. 어차피 삽질해봐야 이 고름밭에서 뭘 얻어낼 수 있겠나. 지금 저기에 적혈구가 있었단 걸 아는 것도 백혈구들 옷가지만 널린 이 고름밭에 저기만 눈에 띄게 적혈구 옷이 걸려있어서 그랬다.


 "여기 좀 보세요! 여기에요!"

 그리고 그가 소리치자, 적혈구들은 뭔가 싶어서 그 신입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으, 이거 뭔데 이렇게 상태가 멀쩡하냐?"

 "저 백혈구 놈, 백혈병 걸렸거든 분명 미쳐날뛰었을 거야. 생전에 얼마나 독한 년이었으면 이 지경이 되어서도 버티겠어?"

 그렇게 험담을 하면서도 그들은 백혈구의 시신을 수습했다. 임질이 해체법을 알고 이렇게 조져놓았을 린 없어도, 이렇게까지 제대로 해체되어 보존될 정도면 시간은 제대로 끌었던 걸 테다. 그리고 아예 덕을 안 봤다곤 할 수 없으니 백혈구들이 예우 차리는 곳에 보내주는 게 옳았으니까.

 그렇게 적혈구들은 백혈구의 상태를 분석한 다음에 이내 해체 조치가 딱히 필요없단 걸 확인하고 수습하는 장소로 해당 백혈구를 발견한 적혈구를 시켜 보냈다.




 "일동, 차려!"

 새로 임명된 백혈구 대장의 말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백혈구들이 움직였다. 비록 전투 후 제대로 정비를 마치지 못 했지만, 적어도 떠나보내는 이들의 수의만큼은 똑바로 맞춰서 보내주는 그들의 눈에 절망 같은 건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았다.

 "묵념!"


 비록 수명을 다 했다곤 하나 생체병기였던만큼이나 떠나가는 백혈구들의 시신에 대한 조치는 이미 다 마친 상태였다. 안에 있던 내장은 다 빼내고, 위험하다 싶은 물질들에 대한 제거 조치도 이뤄진 터였다. 당연히 고름을 씻어낸 건 두말할 것도 없었다. 누워있는 그녀들 모두 껍데기였다.

 개중에 생전의 공적이 있거든 관 안에 꽃을 집어넣었다. 적혈구들 중에서 애도하는 이들이 있거든 붉은색 꽃을, 백혈구들 내에서 활약이 있다고 인정되는 이들이 안치된 관 안엔 하얀색 꽃을 하나라도 채워넣고 흘려보내긴 했지만, 관 안에 누운 백혈구는 이제 아무 쓸모 없는 껍데기였다.

 그렇게 여행을 떠나는 껍데기들 중에서 한 구의 상태도 별반 다를 건 없었다. 공로를 인정받지 못 해 꽃 하나 수여받지 못 한 대다수의 시신들과 다를 바 없이 새하얀 그런 시신이었다. 그런 그녀의 비부에서 뜬금없는 붉은색이 수의 위로 꽃을 피웠다. 분명 고름과 이물질로 가득해서 세척을 하고서 보내는 시신이었음에도, 분명 생전에 아무 것도 못 했기에 꽃 한 점조차 없던 시신에 스스로 꽃이 핀 것마냥 수의에 새겨졌다.


 그렇게 광휘 속으로 떠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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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짤을 모티브로 쓴 글이다.


 제목은 안 붙일까 했다가 그나마 내용에서 연상되는 '희생'으로 붙였다.

 내용은 어떻게 잘 해놨는지 모르겠다. 마지막 부분을 추가하느냐, 아니면 사체가 계속 겁탈당하는 광경으로 끝내느냐를 두고 고민했는데 결국 마지막 부분을 추가하는 쪽으로 결정했다. 이래야 될 것 같았으니까. 마지막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선 독자들의 상상에 맡긴다. 그걸 아름답다고 여기든, 추하거나 역하다 여기든- 그것마저 필자가 감 놔라 대추 놔라 하고 싶지 않다.

 다만 마냥 개죽음으로 끝내려니 원작의 엔딩 부분에 떠내려가는 신이 눈에 밟히는 게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개죽음을 당하면서도 결국 엔딩씬에선 다른 백혈구들과 마찬가지로 곱게 수의가 입혀져 떠내려갈 것이 아니던가. 그렇기에 달아놓은 글이란 걸 밝힌다.


 그리고 고증 같은 건 당연히 저 멀리로 날아간 것임을 알린다. 백혈구가 세균을 소화하는 건 있어도 지가 터져서 세균에 자폭 공격을 하지는 않는다. 그냥 소설이니깐 고증 같은 거 짓밟은 만행이란 건 알아주길 바란다.


 그래도 글 쓰는 동안에 꽤나 행복하게 썼던 것 같다. 완성이 제대로 됐다기엔 여전히 모자란 글이지만, 적어도 내 나름대로 쓸 수 있는 건 여기까지란 건 확인할 수 있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행복하다. 이런 시도를 해볼 수 있었단 게 너무나도 행복하다.

 비록 모든 이들에게 공감을 얻진 못 하겠어도, 나란 놈은 이렇게 행복한 거구나 싶다.

 이 글을 쓸 동기를 제공한 고어챈과, 작품을 그리신 쿠로히메 선생에게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