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희망

 "에극-!"

 죽기 직전이란 걸 알았다면 비명이라도 실컷 질렀을 텐데, 그녀의 등에서 박히기 시작한 발톱이 그녀가 입고 있는 강화복 앞부분까지 뚫은 게 그녀의 눈 앞에 생생하게 보였다.

 그녀의 폐에서 바람이 빠지는 게 느껴지면서 그녀는 눈을 감고 싶었지만, 어째 눈도 제대로 안 감겨서 눈을 뜬 채로 죽어야 될 판이었다. 이 와중에 눈이 따갑다고 아우성이었지만, 그럼에도 눈은 기껏해야 눈물이나 쏟아낼 따름이었다.


 작전에 참가할 때, 거듭해서 죽으러 가는 것이란 경고는 받았다. 그리고 임무 목표를 달성했을 때, 조금이나마 실낱같은 희망도 품어봤었다. 하지만 그녀의 몸에 박혔던 발톱이 빠져나갈 때에야 그녀는 비로소 그들이 그토록이나 죽을 거라 얘기했던 게 현실이 됐음을 실감했다.

 다만 이렇게 되기 전에도 죽음에 대한 공포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니었다. 그렇기에 어제만 하더라도 그녀는 이번 작전에 투입된 인원들과 술판을 벌였고, 떼로 씹질을 했던 게 떠올랐다. 이미 그녀보다 앞서 죽어나간 놈들의 씨앗이 전부 그녀의 뱃속에 품고 있었는데-

 임무 목표 성공하고서 전황이 순조롭게 풀리거든 부대 복귀한 다음에 그녀가 임신이 확인되거든 후방으로 재배치된 다음에 퇴역하겠네 어쩌네 질펀하게 농담을 벌이던 건 이제 와서 다 부질없는 게 돼버렸다.


 '왈칵!'

 이런 와중에 그녀의 신경이 묘하게 사타구니 쪽은 살아있어서, 아직은 멀쩡한 그녀의 하반신, 속옷에 자궁에서 씨앗을 토해내는 게 느껴졌다.

 자궁이 지금 몸에 벌어진 사태를 알아차리기라도 한 것인지, 작전 투입 직전까지도 정액을 긁어내서 작전을 하는 내내 별 다른 이상이 없던 사타구니 비부에서 어젯밤에 벌어진 난교의 흔적을 토해냈다. 그에 그녀는 자신의 자궁조차도 희망을 놓아버렸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와 함께 아득하게 느껴지는 생리통에 그녀는 표정을 찌푸리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 작전에 투입된 이후로 줄곧 작전에 참가한 놈들과 얘기한 모든 게 죄다 헛것이었단 결정적인 증거였기에.


 '씨... 씨발...'

 입에서 피를 토해내며, 그녀는 욕지기조차 제대로 못 내뱉고서 생을 마감하며 땅바닥에 꽂혔다.



 언제나 그렇듯 전장의 차디찬 바닥엔 방금 죽은 사체가 굴러 떨어져 갈기갈기 토막나고 찢겨진다. 그 사체가 잔뜩 머금고 있던 희망은 맥없이 땅에 스며든다.

 그런 전투가 끝난 직후면 전장을 뒹굴고 있는 수백 수천의 사체들은 하나 같이 썩은내가 고약했다.

 그들이 입은 강화복조차 그걸 막진 못 하고서 그저 함께 녹슬어갈 뿐이었다. 한때 그들에게선 밤꽃 냄새가 흥건했었단 걸 모를 정도로 그렇게 썩은내를 풀풀 풍기며, 회수하는 이들 없이 그들의 사체는 썩어문드러진다.


 썩은내조차 풍기지 못 하는 백골들이 녹슨 강화복 안에서 오늘도 아우성이다. 한때나마 밤꽃냄새 진하게 풍겼노라고.

 그런 백골들 틈에, 이번엔 죽기 전에 확실히 비명을 질러대며 쓰러진 사체가 있었다.

 사체는 당연하다는 듯이, 먼저 죽은 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땅바닥에 한때의 부질없는 추억을 쏟아낸다.



 0.운명

 '타탕! 탕!'

 '타앙!'

 좀비벌레와의 전투 막바지에 부대원들이 선택한 건 자기 파괴였다. 자살이라고 그냥 표현하기엔 그녀들이 자기 머리에 총알을 먹여 숨통을 끊기 전에 취해야 될 조치들이 가혹하기에 '자기 파괴'라고 불렀다.

 자기 파괴의 과정은 간단했다. 좀비벌레들의 모판이 될 수 있는 자궁에 총을 쏜 다음에 머리에 총알을 먹이는 것이었다. 지금처럼 수가 많은 경우엔 머리에 먼저 총을 쏜 다음에 살아있는 이들 중에서 죽어버린 사체의 자궁에 총을 쏴서 훼손하는 것도 가능했다.


 이렇게까지 지독한 과정을 거쳐야 되는 이유는, 그녀들의 적인 '좀비벌레'란 놈의 특성 때문이었다. 일단 이름이 좀비벌레인 이유부터 말하자면 이 벌레들은 원래 '좀비'에 기생하던 부류였다.

 그러니까, 멀쩡한 생체는 아무래도 그 특유의 번식 방법으로 모판을 삼기 어려우니, 사체였던 것에 세균이든 뭐든 모종의 이유로 활동력을 얻게 된 좀비들을 모판으로 삼아서 번식을 하던 벌레들이 좀비벌레의 기원이었다.

 이런 좀비벌레들이 세대를 거치면서 지금에 이르러선 생체를 사냥하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이후 이세계에서 테인 그룹이란 조직이 넘어와서 이 행성을 정복하면서 지금 이런 광경이 펼쳐지게 된 것이었다.


 좀비벌레란 놈들이 땅 속에 파묻힌 묘지까지 쳐들어가진 않지만, 어딘가 전염병에 걸렸다 하거든 그 전염병 사태를 수습하려고 보낸 의료진이 좀비벌레 떼에 습격당하며 벌레의 모판이 되는 경우가 허다해지면서, 좀비벌레의 박멸을 목적으로 부대가 창설된 것이었다.

 이들 부대의 목적은 좀비벌레와의 전투다보니 아무래도 살충제 같은 걸 주로 무기로 삼았지만, 지금처럼 좀비벌레에게 습격당해 살충제를 살포할 시간이 없거든 그 때 메뉴얼이 지금의 이 지독한 광경이었다.

 그녀들을 멀리 떨어진 곳에서 원격으로 관리하고 있던 관리자가 현장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고받으면서 도저히 수습이 안 되겠다고 하거든 그녀들에게 '자기 파괴' 명령을 보내는데, 이렇게 자기 파괴 명령이 떨어지거든 해당 부대의 구성원들은 장비하고 있던 진통제가 강제로 투여됐다.


 '…….'

 얼마간의 총성이 울린 다음에, 현장에 있던 이들 모두 뇌와 자궁이 훼손된 사체로 쓰러져버렸다. 좀비벌레 입장에선 그저 '포식'밖에 할 수 없는 고깃덩어리가 되고 만 것이었지만 어찌 됐든 식량은 주어졌을 때 먹어야 했기에 먹어치웠다.

 그렇지만 진화를 통해, 그리고 운 좋게 살아남은 녀석들은 그게 얼마나 위험한 행위인지 알았기에 시체가 널부러졌다고 함부로 포식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것이 저 여자들이 자신들을 향해 최후의 반격을 가하는 것이란 걸 알았기에 하는 짓이었다.


 '파르르-!'

 '파륵!'

 이내 좀비벌레들 중에서 포식하던 놈들이 그대로 뒤로 발라당 뒤집어지면서 다리를 꼼지락대다가 그대로 생체 활동을 멈췄다. 근처에서 포식하던 다른 좀비 벌레들도 시간차가 있을 뿐이지, 모두 그런 식으로 죽어나갔다.

 그러거든 또 포식하려던 좀비 벌레들이 사체에 달려들어 포식하다가 또 다시 배를 까뒤집고 죽어나갔다.


 이런 전쟁이었다.



 "휘유, 지독하구만."

 그런 전쟁을 한바탕 치르고 난 현장엔 수습을 하러 오는 이들이 있었다. 보통 테인 그룹이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 시신을 회수해서 테은 그룹에 넘겨주거든 테인 그룹이 보상금을 내주는 걸 이용해서 지역 상단이나 영주 등이 회수에 나서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경우에 해당 시신들의 운명은 그리 곱지 않았다. 사체라곤 하나, 테인 그룹의 클론에 대한 인식이 사체조차도 이용할 수 있다면 이용할 수 있단 식이었다. 당연히 이걸 보고 떼끼놈이라고 할 놈들은 진작에 테인 그룹이 총알로 정의구현을 해버린 상태니깐 가능한 일이었다.


 그녀들의 복부나 등, 양 어깨에 총 7개의 바코드가 있었다. 복부 쪽 바코드는 자기 파괴 조치가 이뤄질 때 과녁 삼아 자궁을 파괴할 때 쓰는 용도였고, 벌레들에게 파먹히는 것까지 감안하면 등짝에나 바코드가 남아있게 마련이었다.

 그렇게 바코드를 찍어 개체를 확인한 다음에 인부들은 그 사체에 욕정을 풀었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테인 그룹이 보유한 클론들 중 상당수가 사체가 될 걸 상정하고 제작하는 경우가 대다수인 까닭이었다.

 죽은 지 1시간도 지나지 않아 썩은 내를 풍기는 친환경 상품은 테인 그룹의 지향점이 아니었다.


 그렇게 그녀들은 현지인을 위한 최후의 봉사를 한 다음에 테인 그룹에 넘겨졌다. 테인 그룹은 이에 대해서 그저 제값만 치른 다음에 그걸 받아들였고.

 어차피 돈 줘서 유전자 조사를 할 생각이었는데, 이런 식으로 자기 유전자 상태를 넘겨주니깐 테인 그룹 입장에선 굳이 막을 이유가 없었다. 도리어 정액 좀 묻은 사체를 가져오거든 가격을 후려칠 수도 있으니 대놓고 권장하려는 것도 참을 정도였다.


 그게 그녀들의 운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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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망

 필자에게 '료나' 취향이 생긴 계기를 따지라면 필자는 바로 국민겜을 넘어서 민속놀이의 일환이 되어버린 B사 게임을 언급하겠다.

 요즘은 그나마 의무관을 부르짖으며 적당한 비명이나 지른다지만, 그건 민속놀이 취급은 아니니까. 민속놀이에 나와서 비명 지르고 토막나고 으깨지기 바쁜 처자들이 필자의 료나 감성으로 이끌었다고 보고 싶다.

 그러다 최근에 고어챈에서 요걸 주제로 움짤을 만든 걸 올려둔 걸 보고서 이 글을 썼던 것 같다. 세부적인 건 다르겠지만 말이다.


 운명

 https://arca.live/b/philia/26700603?category=%EB%AC%B8%ED%95%99&p=1 의 후속작 정도 되겠다.

 스토리 라인상으론 다르다지만, 결국 좀비를 상대하는 입장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희생에 대해서 다루고 싶었다. 약간은 모독적이겠지만, 현실에선 그렇게 희생된 이들을 추모하고 숭고하게 여기는 풍조라도 있으니 모독이라 여겨지는 걸 테다. 그런데 그런 숭고함, 추모하는 의지가 없거든 어떻게 될까를 따져보면 필자는 이게 두려우면서도 이렇게 될 거라 생각한다.

 그저 우리 시대에 이런 비슷한 일이 없기를 바랄 따름이다.


 단편이라 글 하나씩 나눠서 쓰자니 뭣 했는데, 비슷한 주제로 글이 2편이 써져서 함께 올려본다.

 글 읽어줘서 항상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