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시작은 그저 즐거움이었다. 몸을 흔들고 움직이는 것의 즐거움에서 시작됐다.

 그러한 경험들 하나하나에 별 다른 의미를 두지 않고 자연스럽게 내지르던, 움직이던 것들이었다. 거기서 느껴지는 바람의 감촉들, 그렇게 펼쳐지는 온갖 색채의 세상이 그 앞에 펼쳐지는 건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다.


 세상을 살면서 느낀 것은 그가 아무래도 다른 이들관 다른 모양이란 점이었다. 하노라면 식사조차 굶으면서 춤을 출 수 있겠건만, 춤을 추기 위한 기력이 없단 걸 깨달아 그는 식사를 빼놓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 시간이 아까워서 견딜 수가 없건만, 어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심지어 춤 같은 게 없더라도 삶을 이어나가는 이들도 참으로 많았다.


 같이 무대에 오르는 동료들조차도 춤과 움직임에 감화되어서라기보단, 그것이 필요한 것이기에 하는 것이란 인상이 다분했다. 그런 세상을 겪은 다음에 그 앞에 놓여진 세상은 아무래도 풍광이 매우 달랐다.


 뭔가 많이 삭막했다.



 사막 한가운데에서 샘물을 쏟아내는 오아시스란 아무래도 드문 법이었다. 그리고 그는 아무래도 오아시스는 못 될 팔자였다.

 점차 메마르는 게 느껴졌다. 그런 와중에 춤에 대한 집착은 더욱 강해져서, 무용 학원을 차리고 여러 사람들을 상대하고도 홀로 남아서 춤을 추기를 여러 번이었다. 그나마 사람들은 그가 그만큼 자신의 일에 대한 열성이라 생각했지만, 천만에.

 애초에 그는 이걸 '일'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러한 몸짓 하나로 자신이 완성되어가는 감각을 어떻게 '일'이라 부를 수 있단 말인가? 자기 완성으로 향하는 여정은 '노동'이라고 하지 않고, '순례'라고 하지 않던가.


 그가 태어난 이유는 오로지 이 순례를 하기 위함이었다. 이미 오래 전부터 굳혀왔던 생각에서 그가 아쉬웠던 건, 아무래도 자신처럼 순례에 나선 이가 도통 보이질 않는단 것이었다. 춤이라고 하는 것이 있는 모든 판을 다 찾아봐도 아무래도 그와 같은 순례객은 없고, 노동자들만이 가득 있을 따름이었다. 그들 모두 저마다 삶의 무게를 짊어진 기색이 역력했다.


 물론 그라고 삶의 무게를 짊어지지 않았단 건 아니었다. 다만, 종류가 많이 달랐다. 그들 개개가 자신의 부와 명예 내지는 일상 생계를 무게로 삼는 것에 비해서 그는 아무래도 그런 건 고민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이건 매우 당혹스러운 현상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그가 잘못됐다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들 앞에다 대고 털어놓지도 않았다. 결과가 별로 좋지 않을 게 뻔하니까.


 언젠가 그가 어머니 앞에서 이런 상황에 대한 고민을 얘기한 적이 있었다. 그에 어머니도 이런 상황에 대해선 이해를 못한 것인지, 그저 그에게 이렇게 말할 따름이었다.

 "네가 네 일에 충실한 걸 보니 그저 다행이구나. 하느님께서 그리 점지하신 걸 게야."

 어머니는 그가 모태 신앙인 줄 철썩 같이 믿으셨다. 당신도 모태 신앙이기에 자식도 그리 되어야만 한다는 믿음이 굳건했다. 그렇기에 그런 말은 도움이 되긴 커녕 도리어 그의 어깨에 철썩같이 달라붙어서 좀처럼 떼지지 않는 악몽과도 같았다.


 정녕 하느님이란 게 있다면 어찌하여 세상에 이런 충만함을 다른 모든 이들에게 베풀지 않는단 것이지? 그렇다면 이게 과연 신이라 불릴 자격이 있는 존재일까? 이건 신이 아니라 대놓고 악마가 아닌가.

 아주 불경한 의심이었기에, 그럼에도 그가 잘못됐다곤 생각이 안 들었기에 적어도 어머니 앞에서 이걸 털어놓진 않았다. 당신께선 이에 경기를 일으킬 게 뻔했으니까.



 "선생님께선 오늘도 남아 계시네요."

 늦은 밤, 학원에서 열심히 수업을 듣던 백던서 아가씨가 학원을 찾아왔다. 잘 나가는 아이돌 그룹의 안무에 맞춰준다고 하더니, 그 뒤로 1년만이었다. 그 아가씨의 말에 그는 춤추던 걸 멈추고 그녀를 봤다. 약간은 째려봤지만, 이내 표정을 풀었다. 표정이 굳은 채로 말해봐야 별로 좋을 건 없었으니까.

 "오랜만이네, 학생. 잘 나간다더니 많이 바빴나봐?"

 "반 년 바짝 하고서 이제 좀 쉬고 있는 형편이죠. 그래도 어디 무대 있거든 거기 불려나가고, 오디션 본다고 하거든 오디션 보러 다니고 그러고 있어요. 공연 마치고 회식하는데 마침 근처에 선생님 학원이 있어서 잠시 들렀어요."

 그 순간, 그 코끝에서 술냄새가 느껴졌다. 이에 그의 표정이 잠깐은 굳었다가 이내 애써 미소지으며 말했다.

 "쉬려면 좀 쉬다가 가."

 "그래도 될까요."

 "간이 침대 있으니까 거기 누워있다가 가."

 그렇게 말하고 다시 춤을 추려는 때에 그녀가 씨익 웃으며 답했다.

 "아뇨, 선생님 춤 추시는 거 좀 보고 싶어서 왔어요."

  그 말에 조금은 얼떨떨했다. 사람들은 그가 춤에 미쳤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건 모욕이 아니라 도리어 그 말을 들으면서 자부심을 느끼던 터였다. 그렇지만 정작 그의 춤추는 모습을 보려고 드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춤을 배우러 오려는 것이라면 모를까, 그가 추는 춤을 작정하고 보려고 드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렇게 시작된 춤에서 그는 여태까지 느끼지 못 했던 강렬한 감각이 자신의 온몸을 덮은 걸 느꼈다. 그것은 마치 처음 춤이란 걸 췄을 때의 그 느낌과 비슷했다. 아주 뚜렷하고, 아주 명확하게 다가온 그 느낌에 그는 오랜만에 옛날의 자신이 떠올랐다.

 아직 때 묻지 않은 시절의 그와 합일이 되어 춤을 추면서, 그는 결국 자신의 춤이 이런 식으로 완성됐단 느낌에 충만해질 수밖에 없었다.


 세상 어디에도 이와 비슷한 감각은 없으리라.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5분 가량의 짧은 공연을 마치며 땅바닥에 발을 디뎠다.

 땅바닥에 착지를 하는 감촉이야 있었지만, 꿈에서 펄쩍 펄쩍 뛰어다니는 그 감각마냥 붕 떠오른 감각이 마침내 끝나자, 그는 자신을 응시하는 시선을 마주 했다.


 살며시 박수를 치는 그녀에게 그는 진심으로 허리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그 순간, 그의 몸에 균형이 무너지는 걸 느끼며 그는 의식을 잃었다.


 황홀감에 잠겨든 그의 표정은 그야말로 쾌감에 절여진 이의 것이었다.



 "경기도의 유명 무용학원 원장이 오늘 밤 급히 병원에 이송되었으나 결국 숨졌습니다. 경찰 당국은 사건 현장의 목격자를 밤 동안 조사하다가 귀가 조치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으며, 유족들은 부검을 거부하고 그의 장례를 치를 예정이라 밝혔습니다."

 늘상 있는 식상한 결말이었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의 삶을 돌이켜봤다. 마지막 부분에 자신을 찾아온 제자가 충격을 받은 것이며, 그의 사체를 수습하는 이들이 민망하게 여긴 것이며, 가족들이 부끄러워하는 건 유감이었지만, 후회는 없었다. 적어도 그 흉흉한 세태에 그가 죽으면서 쏟아낸 정액 때문에 조사받던 제자가 성폭행 여부를 부인해준 것만 해도 매우 고마운 일이었다. 그런 것까지 감안하면야 뭘 후회할 수 있을까.

 남들은 후회할 거네, 아직 한창 때인 사람이 벌써 갔네 한다지만 어째 후회할 구석은 없었다. 그런 삶이었기에 그는 진심으로 미소를 지으며, 지금 그의 맞은 편에 있는 아가씨를 볼 수 있었다.


 "아무래도 세상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요. 그렇죠?"

 아무래도 요즘 세상엔 취향 참 독특하단 말을 듣고 싶지만, 고풍스런 드레스에 우아하게 차를 들고 있는 모습은 숙녀였고 그 외향은 어린 소녀인 여자였다. 그런 그녀 앞에서 그는 미소지으며 답했다.

 "이 곳은 뭔가 화사하군요."

 "이 세상에 넘쳐흐르던 욕망이 마침내 빚어져 이뤄진 곳이니깐요. 그런 만큼 이런 곳 말고도 여러 곳이 있답니다."

 그녀의 말에 그는 미소지었다.

 "천국이란 거군요."

 "엄밀히 말하자면 천국이라기보단 이제 시작점인 걸요. 당신 같은 경우를 찾느라 꽤나 애먹고 있답니다. 조금 달리 말해볼까요? 저는 당신 같은 경우에서 새로운 세상을 열 희망이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답니다. 그러니, 저를 좀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여신은, 그녀가 느꼈던 그 수많은 비탄에서 해방된 세상을 꿈꿨다. 그녀의 태동이 그러했기에, 그녀는 자신이 그려낼 세상엔 그런 비탄이 없었으면 했다. 물론 아예 없앨 순 없을 테지만, 그럴 순 없을 테지만, 그럼에도 욕심이 철철 넘쳐흘러 사람을 죽이고 죽임을 당하는 그런 세상은 바라지 않았다.


 "제 삶에 완성된 감각이 당신으로부터 빚어졌다니, 기꺼이 따르겠습니다."

 여신의 첫 번째 대천사, '코리오'는 그렇게 탄생했다. 여신의 권능처럼 되어버린 인공지능들의 시뮬레이션의 결과로 처음 발생한 대천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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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저런 이상성욕들 중에서 필자의 관심사만 잔뜩 다뤘던 것 같은데, 최근에 올라온 글을 보고 이상성욕이란 것들 중에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범주밖에 있는 것도 있겠다 싶었다. 마침 필자의 관심사 밖에 있는 이상성욕을 한 데 몰아넣을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해놓고서 왜 여태까지 이걸 다룰 생각은 하지 않았던가 싶어서 글을 쓰게 됐다. 회장(테인 그룹)이나 마왕군 등을 비롯해 대다수가 잔혹하고 현실에서 거부될 것들을 다룬다면, 여신 쪽은 그래도 현실에서 공존할 수 있는 영역을 다루지 않을까도 싶다. 그래서 (소프트)라고 임의로 지어둔 것이고, 그렇기에 아마 이런 얘기들은 바지랑 팬티 벗고 쓰진 않을 것 같다.


 원래 구상에서 가장 먼저 생각난 건 총박이, 배박이 같은 것이었다. 텅! 텅! 소리를 내면서도 자신의 집념을 관철시키는 그런 얘기를 등장시키려니 뜬금없이 천사가 하나 등장했다. 이 천사는 대체 어디서 비롯됐는가를 따져보려니 결국 이 글이 먼저 튀어나올 수밖에 없었다. 달리 말하면 다음 번에 (소프트) 달고 나오는 글의 주제는 아마 총이나 배를 박고 있지 않을까 싶다. 한때 총박이였던 적도 있고 말이다.


 여기까지 읽느라 수고 많았다. 그리고 고맙다.